나이 들어가며 만족 알고 행복하게 사는 지구 여행자들 존경

 

60번이라는 숫자는 나에게 먼 행성의 번호인증 알았다. 지구에 도착해서 받은 번호가 곧 60번이라는 통보를 부여받는다. 

이제 주변에 70번도 많고 80번 번호를 쥐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번호가 높을수록 작은 숫자를 지닌 여행자들을 위해 방을 비워주듯 이 지구라는 행성을 떠나야만 한다.

그렇게 요즘은 번호가 높은 사람일수록 어느날 갑자기 떠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이곳을 떠날 출발 날짜도 모르면서 끊임없는 사욕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있다는 걸 안다.

어제는 아내와 식사를 했다. ‘화성에서 온 이 여자’는 아파트 입주며 저축, 그리고 환상적인 인생 계획을 거창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말에 나는 “하향하는 마차에 보물을 가득 실은 금빛 같은 계획이 나머지 인생에서 꼭 필요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런 거창한 인생 계획은 20, 30, 40번 번호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계획하는 것이지 60번 이후의 여행자들이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이지만 60번부터는 남은 재산을 꼭 필요한 곳에 쓰고, 이 전에 장롱에 숨겨놓고 쓰지 못한 자유를 찾아 쓰는 번호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불편한 만남과 먹는 것도 줄이고 몸에서 모든 걸 가벼이 하는 시기다. 결국 잘 산다는 건 여행지에서 후회 없는 여행을 잘 마치는 것이 아닐까? 

이번 기부하는 미술 전시회에 들러 적지 않은 기부금을 몰래 내고 가신 형님들을 생각하며 “역시나 내가 보고 생각하고 배운 대로 사시는 지구 여행자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이 가을이 더욱 짙어져 간다. 하늘은 짙은 푸른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푸른 구름은 마치 화가가 바로 풀어놓은 듯 순백색으로 그 경계가 뚜렷하다. 이 가을에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이 사라지는 계절은 북풍이 섞인 찬 바람이 불어오며 점차 우리를 겨울로 안내할 것이다.

그렇게 몇 해가 또 흘러가면 서서히 부여받은 높은 번호를 붙인 석양이 낯설지 않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겠지. 나이가 들어가며 만족할 줄 알고 훈풍에 몸을 날리듯, 흐르는 물결에 나를 맞추어 가는 삶에 이제는 충분히 행복하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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