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속 주인공 뫼르소 요양원으로 가는 대목 연상

 

초겨울이면 산동네 가가호호 지게를 멘 무장수, 배추 장수들이 골목 사이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누비며 김장 무와 배추를 등짐에 실어 날랐다.

늦가을 장사꾼들은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지게를 나무 지팡이 하나로 굽은 몸을 지탱하며 느리게 숨을 고르며 올라왔다. 

겨울이 오기 전 일곱 식구가 먹을 김장 배추를 공동 주택 같은 철문이 있는 언덕 골목길까지 올라오는 장사꾼들을 보며 어린 나이에도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문밖에 튀어나온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유일하게 그들의 수분을 채울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매년 늦가을이면 야채 장수가 배달해준 배추가 커다란 진고동색 통 안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김장철만 돌아오면 어머니는 반으로 쪼갠 배추를 담아 통에 절여 두셨다. 흙이 묻은 시퍼런 배춧잎과 달리 내 손바닥만한 속살은 하얗고 달달했다.

한 해마다 커가는 형제들과 부모님이 먹을 겨울 먹거리로 김치만 있으면 한 겨울 내내 찌개와 볶고 지짐 등 식구들 모두 둘러앉아 먹을 겨우내 도토리처럼 버티던 식량이 되주었다.

학창시절 겨울 방학 전까지 김이 모락모락 피는 교실 난로 위에 올려진 스덴(?) 도시락과 김치가 익는 냄새로 가득한 풍경이 지금 기억에도 생생하다.

아침마다 어머니는 재활용된 커피 병에 김치를 담아 주셨다. 가난했던 시절 유일하게 볶음 김치나 생김치가 반 아이들의 대부분 점심 반찬이다 보니 점심시간에는 삼 도의 김치를 모두 먹을 수 있었다. 

겨울만 되면 어머니가 담그신 전라도식 김장 김치가 떠오른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장독대에 보관된 김치는 한 해를 넘기며 살얼음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우리가 커가는 키만큼 줄어들었다. 

요양원에 의식도 없이 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다음주 방문 예약을 했다. 생각해보니 많은 식구의 겨우살이를 위해 허리가 굽은지도 모르고 나는 철부지처럼 살아왔다.

어머니의 삶에 수 백통의 김치를 절여 살아온 세월의 노고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또 한 해의 겨울이 왔다 갈 것이다.

요양원 방문 날짜를 보며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주인공 뫼르소가 죽은 어머니를 뵈러 요양원으로 가는 대목이 생각났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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