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햇볕과 담배 연기까지도 가리는 난...겨울 채비하다 ‘집착’ 생각


수필가 박연구 선생은 추사의 ‘묵란도’를 벽에 걸어놓고 아침마다 일어나 상념에 젖거나 그림에 들어간 샘에 물을 고이게 하는 상상을 하며 어설픈 글을 썼다고 책에 써 있다. 

그 생각에 지난해 친구 황 박사가 비싼 난이라며 어린 난을 한 분을 주었는데 남산 사무실 구석에 놓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어느날 우연히 난초가 말라 비틀어져 죽은 걸 생각했다. 

평소 동물이나 화초에 별 관심이 없는 터라 죽고 말라 비틀어진 작은 생명 나는 참 무감(無感)하구나 하며 스스로 죽은 난을 생각하며 자책을 하였다. 

박연구 선생은 난을 좋아하지만 비싼 난을 살 돈이 없어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는 대상처럼 늘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하셨다.

언젠가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에서 읽은 대목이 선생의 수필 안 에 그대로 녹여있는 대목을 인용해 본다. 

법정 스님이 선물 받은 이름있는 난초 두 분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길렀는데 스님이 법회로 나가시다가 뜨거운 햇빛을 보고 부랴부랴 다시 암자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이미 난이 시들해지고 빈사 상태라 샘물을 축이고 정성을 다했지만, 스님은 기울어진 난처럼 마음의 기운이 빠져 왠지 괴롭다고 하셨다.

결국 집착이라는 것이 괴로움을 만든다는 걸 스님은 글에 써 놓으셨는데 키우던 난을 다른 사람에게  바로 주셨다고 했다.

난은 키우기 어렵다고 한다. 습기 햇볕, 특히 담배 연기까지도 가린다고 하니 화초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산으로 들로 나가 직접 구경하는 사람들은 집에 둘 이유가 없다. 

난을 키우는 사람들은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꽃이 피는 풍경에 키워냈다는 성취감과 황홀에 기쁨을 맞는다고 한다. 

집착의 결과물은 작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잠이 없을 때마다 나는 머리맡에 둔 낡은 책 한 권을 놓고 읽는다.

서점에서 사온 아버지 세대 문학가들의 책을 베개 옆에 놓고 가끔 읽다 보면 지나간 시간에 낡은 궤짝에 숨겨놓은 감을 하나씩 몰래 먹듯 꺼내 먹는 기분이다.

추사가 ‘묵란도’를 그렸을 때는 가을이었나? 바람은 불었을까? 먹 냄새 진하게 나는 붓의 끝이 그려지며 아침부터 생뚱맞게 별 상상을 하고 있다.

겨울 준비에 작은 짐을 하나씩 정리 하다 보니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집착이 많았다. 줄이고 줄여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마음의 자세는 여전히 부족함이로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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