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나 그림이나 춤이나 새로 개발된 술이든 세상에 감동 선사
“아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10년 전 식사 중에 아들이 뜬금없는 질문을 하자 나는 “감동을 주는 사람”라고 말해 주었다. “감동은 주변에 많다. 그래서 사는 동안 한 번만이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감동이란 음악이나 그림이나 춤이나 새로 개발된 술이나 음식이든 시, 수필, 소설이든간에 모든 세상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고흐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려 자신이 행복해했던 밤하늘의 별을 아직도 100년 넘게 세상을 비추며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쇼팽의 ‘녹턴’, 베이토벤의 ‘월광’은 이 가을밤 풍경에 그 당시 공기를 섞어 듣는 이에게 감동을 더해준다. 가우디는 100년 전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지어 영원한 감동을 주려고 아직도 사그리아 파밀리아 성당을 짓고 있다.
이름모를 전통주가 세월이 흘러도 하루를 길게 넘기는 사람들에게 힘든 시간을 잊게 하며 감동을 준다. 그 술이 때로는 삶 속 깊숙이 박힌 감동을 다시 꺼내어 눈물을 흘리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작고한 요리사 임지호 선생이 시골 아이들과 잡초를 뽑아 갈고 밀가루로 반죽해서 짜장면을 만들어 주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받는 감동이 여전히 전해온다. 그가 가지고 있는 품성과 요리의 철학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중국에서 작품을 만들 때 상하이 외곽 가난한 도시를 여행하며 동네 아이들에게 얼굴을 그려 주었다. 가난한 아이들이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어렵지 않다. 베짱이에게 “작은 감동보다 아주 큰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을 해 주었다.
지구에 와서 어떤 이는 먼지처럼 존재감 없이 사라지고, 어떤 이는 남에게 고통과 슬픔만 주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남을 위해 희생하며 감동의 도가니만 몰고 다닌다. 늘 후회하지만, 정치인을 뽑을 때도 감동을 주는 사람을 선택하면 그나마 실망을 덜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아들에게는 “많이 놀면서 세상의 감동을 모두 얻고 담고 배우며 그 감동을 다시 크게 불려 사람들과 나누라”고 말을 했다.
“감동을 줄 수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감동을 담을 줄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멀리하라”고 했다. 남은 생을 얼마나 감동을 한 사람들을 만나며 감동을 나눠줄 수 있을까?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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