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이 떨어진 낙엽들은 가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눈물

 

만추(晩秋)입니다. 오늘은 지난주보다 기온을 더 낮춘 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저를 깨웠습니다.

생명의 새싹이 돋는 봄이 탄생의 시작이라면 가을은 어쩌면 한 절기의 마지막 그 해가 떠나가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겨울은 우주로 떠나버린 계절들을 영원히 추모하는 침묵과 안식의 시간이라 비유를 해 봅니다.

그래서 가을은 만남보다 헤어지거나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며 다른 계절보다 센치하게 감정을 더 돋우게 됩니다.

얼마 전 지리산을 종주하며 산 아래를 보니 마지막 가을 영혼에 담긴 고사목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사람의 모습과 닮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떨어진 낙엽들은 이 가을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눈물이 아닌가 하고 느껴봅니다.

산 위에서 보는 황혼의 풍경이 주는 느낌이 꼭 황혼의 안식이 다가오는 절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1년을 어떻게 살았을까? 한 해를 보람되게 채웠을까? 일찍 등정을 끝내고 먼저 올라간 아무도 없는 산 정상에서 시간을 다시 생각합니다.

삐걱거리는 무릎 때문에 중년과 노년에는 육체를 봄 여름보다 활기있게 사용할 수 없고, 자신이 맺은 풍성한 과실을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세상에 나눠주는 계절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단풍처럼 아름답게 머리가 희어가는 계절에 더 가지려고도 하지말고 줄여나가야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자연처럼 맞추어 사는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세가 70이 넘은 분이 자신의 물건들을 주변에 친구나 후배들에게 하나둘 남겨주며 “나이가 들면 물건도 줄이고 사람도 줄여가야 해!”라고 하십니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이 쓰지 않은 물건을 주변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는 건 언젠가 자신을 기억하라는 뜻이고, 황혼의 절기로 가면서 낭비하듯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라고 합니다.

우자(愚者, 어리석은 사람)를 멀리하고 仁賢(인현, 인하고 현명한 것)을 가까이하라는 선인들의 충고를 새기며 단풍이 떨어지기 전 서로 껴안고 모여있듯 주변에 선한 사람들과 같이 익어가면 그만이라는 세월 속에 지혜를 자연에서 배웁니다.

정상에서 지리산의 가을바람이 귀를 스치며 속삭이며 삶 속에 마음을 식지 않도록 북을 치라고 알려줍니다.

나이만큼 수많은 만추를 보내고 바라보며 지내온 세월에  우뚝 솟은 가슴을 새기고 정진하며 삶을 낭비하지 말고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라! 

이 만추의 계절에 기쁨을 가져가듯 황혼에서도 웃을 수 있는 당당함을 가져가라!!"

이렇게 산은 오를 때마다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자유를 주고 가르침을 줍니다.

가을이 우주로 떠나고 산머리가 벗겨져 흰 눈으로 다시 덮이기 전 조만간 하룻밤을 혼자 새고 와야겠군요. 온 산이 울긋불긋 겨울 단장으로 분주합니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