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파키스탄 시장 골목에서 물담배 피우는 상상...시간이 허락한다면 여행을

 

유명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고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K를 내 작품 때문에 조언을 구하고자 여러 지인들을 통해 수소문을 했다.

그러나 그를 찾는다는 내게 돌아온 소식은 그가 파키스탄으로 떠나 현재 여러 나라를 지나 일본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듣고 보니 그는 무작정 자유를 찾아간다며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보헤미안처럼 한국을 떠난지 몇 해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몇 년 전 여행 중에 만난 일본 여성 여행가와 같이 주저앉아 낯선 곳에 정착해 지내기도 하고, 그곳이 질려지면 다시 떠나 낯선 장소로 무작정 떠난다고 한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정직한 샐러리맨 같은 그의 소식에 삶의 자유를 늦게나마 찾은 그가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급변한 그의 상태가 놀라웠다. 

나는 레게 머리를 늘어트리고 파키스탄의 허름한 시장 골목에서 물담배를 피우는 그를 상상을 했다.

오래 전 세영동화에서 내가 PD로 일할 때 ‘은비까비’‘옛날 옛적에’ 작품을 같이 했고, 깔끔해보이던 20대 초반의 보조작가인 샌님인 그가 이제 용기를 가진 마오이 전사처럼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마음 속으로 열렬히 축하를 보냈다.

나는 아들에게 항상 권유하는 게 “있는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행을 떠나라”고 말을 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처럼 미지의 세상을 동경하듯 새로운 세상을 돌며 그곳의 풍경과 음식 등을 담을 때 느끼는 감정은 화려한 서울 강남에서 먹던 인도 음식과는 완전히 다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것이다 라고..

나는 지금도 가끔 혼자 돌아 다녔던 중국 낯선 도시를 스케치해놓은 풍경에서 그 곳의 바람,사람들의 웃음, 그리고 음식에 담긴 향을 기억하고 다시 소환할 때 행복을 느낀다.

가장 맛있게 먹었던 중국 음식 중에 하나는 비싼 레스토랑의 고급 요리가 아닌 중국 쿤산의 싸구려 기사 식당에서 먹던 음식이다.

우리돈으로 300~500원 정도의 기사 식당의 음식은 일반 서민들도 잘 먹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삶에 찌든 순수한 그들의 웃음과 지저분한 식당 내부에서 먹은 무나물과 가지볶음 그리고 샹차이가 섞인 ‘볶은 붉은 빛깔의 돼지고기’는 지금 생각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유랑하듯 며칠을 돌며 배고픈 시간에 불쑥 들어간 식당은 많지만 유명한 식당보다 가난한 중국인의 때가 묻은 서민들 식당을 특히 좋아하고 기억하는 편이다. 

일 때문에 올해 초 쉬저우(徐州, 서주)에 방문이 예정되어 있지만, 코로나19가 더 난장을 부리고 있어 언제 갈지 모르겠다.

베짱이가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군대 가기 전 호주 그리고 홍콩 등 여행을 계획했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완전히 망했다고 투덜거린 대화가 떠오른다.

그래 서울대 다니는 애보다 자랑스럽다. 스스로 땀을 흘린 노동을 통해 얻은 가치를 소비해서 하는 여행은 삶에서 가장 큰 자산과 추억이 될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갇혀있는 신세지만 더 노쇠한 나귀가 되기 전에 두 다리로 걷는 여행을 꿈을 꿈자. 두 번 다시 지구 여행은 올 수 없다.

오늘 저녁은 상하이에서 자주먹던 서민들의 만두 소양생전(小杨生煎)이 생각나서 냉동실 만두를 녹여 물, 기름넣고 지져냈다.

세월이 흘러도 여행지의 그리움은 사진이나 간혹 매체를 통해 잠깐씩 스쳐가듯 볼 때 몽상처럼 다시 일어난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만화가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30년 넘게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자신의 원작 OTT 애니메이션 ‘알래스카’를 영화사 ‘수작’과 공동으로 제작 중이며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다. 그림과 글과 엮어낸 산문집 ‘토닥토닥 쓰담쓰담’을 2022년 1월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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