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9. 박선용 ‘슈가 큐브의 추억’

[한경닷컴 게임톡 창간 2주년 새 연재] ‘인디 정신 열정사랑방’ 9. 박선용

한경닷컴 게임톡이 ‘인디 열정사랑방’을 열었다. 창간 2주년을 맞아 예고한대로 당대 내로라하는 개발 독립을 꿈꾸는 재야 개발자 고수가 칼럼진과 기획진을 구성했다.

필진은 김성완 부산게임아카데미 교수를 비롯한 박선용 인디게임 스튜디오 터틀 크림 대표, 장석규 도톰치게임즈 대표, 전재우 인디게임개발자그룹 GameAde 운영자, 국내 최초로 인디개발자 총회와 지스타 인디게임전시회를 개회한 이득우씨, ‘별바람’으로 유명한 김광삼 청강대 게임학과 교수다. 그 아홉째는 박선용 터틀크림 대표가 ‘개발자 자신을 위한 게임을 만들 것’를 집필해주었다. [편집자 주]

게임 개발자라면 ‘아, 죽기 전에 이러 이러한 게임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하는 로망 하나 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로망을 실현하는 개발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회사의 녹을 받으며 개발하는 ‘회사원’이다 보니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개진해보지도 못하는 개발자도 있을 것이고, 기술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아이디어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게다.

그렇지만 이유야 어쨌든 간에, 자신이 정말 만들어보고 싶은 게임 한번 제대로 못 만들어본 다는 건 개발자로서 슬픈 일이다. 터틀 크림은 지금까지 2개의 상용 게임을 낸 바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두 개의 게임을 개발하면서 겪었던 감정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슈가 큐브: BF의 티저 이미지, 개발하면서 담배 많이 피웠다
터틀 크림이 릴리즈한 첫 상용 게임은 2010년 IGF 차이나에서 베스트 게임(Best Game)을 수상한 ‘슈가 큐브(Sugar Cube)’의 정식 버전, ‘슈가 큐브 : 비터스위트 팩토리(Sugar Cube: Bittersweet Factory)’였다.

사실 개발 초기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외국에서 상 탄 게임이니까, 새 프로젝트를 하는 것보다 게임을 알리기가 더 쉬울 것 같다라는 매우 안일한 생각으로 정식 버전 개발을 시작했다.

애초 6개월을 예상했던 개발 기간은 배로 늘어났다. 프로그래머는 교체됐다. 시간은 흐르고, 돈은 점점 줄어들었다. 뭔가 첫 작품을 어떻게든 수습하고 런칭해서, 수익을 얻어야 했다. 그래서 그걸로 돈도 좀 벌어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뭔가 우리 게임, 잘 안팔릴 것 같았다. 그래서 외형적인 부분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그래픽은 무조건 예쁘고 귀엽고 보기 좋게! 레벨도 거의 100개쯤! 달성 목표에 따른 멀티 엔딩! 뭔가 영혼 없이 이런 저런 요소돌을 덕지덕지 붙여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아! 우린 성공할 거야!” 와 “아니야. 우린 망할 거야…”를 번갈아 외쳤다.

결국 게임은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게임도, 플레이어가 정말 좋아하는 게임도 아닌 뭔가 애매한 모습으로 출시되었다. 운 좋게 스팀에 게임을 런칭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작품으로 남아버렸다.

6180 the moon의 등장인물 ‘금성’의 대사. 나 빼고 딴 것 따위 알게 뭐야!
눈치보다 영혼없는 첫게임 ‘슈가 큐브 : BF’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 ‘6180 the moon’이 좋다

'슈가 큐브 : BF(Sugar Cube: BF)’를 출시하고 1년. 이런 저런 프로토타입들을 만들어보다가 두번째 작품 ‘6180 더 문(6180 the moon)’의 개발을 시작했다. 이 게임은 외부 프로그래머와 함께 작업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빨리 개발을 마치고 우리 팀 프로그래머와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해야 했다. 마음을 비우고,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우리 맘에 드는 게임을 작은 스케일로 만들어서 끝낼 계획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개발을 더 즐겁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 온전히 내 취향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개발 기간이 점점 늘어갔지만, 수백 번을 플레이해도 내 게임이 재미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을 론칭하기 전에 스팀 그린라이트(스팀 유저들의 투표를 통해 입점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에 올렸다.

누군가 우리 게임 링크를 인터넷 게시판에 퍼날랐다. 악플도 아주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악플을 봐도 기분이 크게 나쁘지도, 창피하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내가 만든 게임이 내 맘엔 쏙 들었으니까. ‘슈가 큐브 : BF’를 릴리즈하고 여기저기에 실린 리뷰들에 일희일비하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게임은 전작보다 한참 못팔았지만, 평단의 반응은 괜찮았다. 이 게임으로 GDC에서 발표도 했고, E3 부스도 얻어냈다. 그리고 닌텐도와 콘솔 버전 계약도 했다! 나는 이미 수천 번 플레이한 이 게임이 아직도 여전히 재밌다. 내 맘에 든다. 남들이 보기에 별로라면 그건 내가 무능한 게 맞고. 뭐,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많으면 돈도 많이 벌겠지 뭐.

이제야 상용 게임 2개 만들어 놓고 “와 내가 해보니까, 딴 거 신경 안 쓰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었을 때 결과가 더 좋더라”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뭘 어떻게 만들든,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별바람님이 지난 칼럼에서 언급하셨듯, 그냥 내가 굴릴 주사위의 면 수를 줄여나갈 뿐이다. 물론 “돈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라!”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냥 알리고 싶다. 내가 만들고 싶은, 내 맘에 드는 게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게임 개발은 정말 힘들고 긴 레이스와 같다. 이 장기 레이스를 버틸 수 있는 힘.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바로 그 맛에서 나온다. 자고로 개발자가 재미있게 즐기며 만들어야,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박선용 객원기자 sun@turtle-c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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