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로커에서 K-POP 작곡가로 뚝심 외길 인생 작곡가 ‘프란츠’ 만나다

[작곡가-프로듀서 ‘프란츠(FRANTS)’]

한국 음악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이돌 음악’이다. 단순히 아이돌을 뛰어넘어 ‘한국’하면 생각나는 세계적인 아이콘이 된 것이 ‘K-POP’이다.

지구촌을 들썩이는 동양의 무서운 아이돌들 이름만으로 환호성과 박수세례가 쏟아진다. 기라성 같은 이름들 방탄소년단, 워너원, EXO, 트와이스, 블랙핑크, 레드벨벳, 갓세븐 등...

이런 아이돌 가수들의 곡은 어떤 프로세스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필자도 음악을 시작하면서 굉장히 궁금했던 부분이다.

역시 ‘필소굿’ 독자들도 궁금증이 클 것이다. 왜 한국의 음악 K-POP이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한류’ 대표 상품이 되었는지, 또한 어떤 매력이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오리콘 차트’ 1위, 한국 인기차트 1위로 만든 주인공 작곡가 ‘프란츠(FRANTS, 본명 최석)’다. 그를 만나는 자체가 행복했다.

■ 곡과 가수 매칭하는 시대...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탄생 “그 자체가 오디션”

예전 작곡가가 귀했던 시기에는, 가수가 작곡가를 찾아가 “선생님, 곡 좀 써주십시오”라고 부탁하던 시절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가수가 곡을 받아 부르는 시대가 아닌, 곡과 가수를 ‘매칭’시키는 시대다.

아이돌이 소속된 기획사에서 곡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A&R(Artist & Repatories)’팀은 내부의 회의를 통해 ‘리드’라는 것을 작성한다.

‘리드’란 예를 들면 “소속 가수의 다음 앨범 타이틀곡: 밝고 명랑한 ‘퓨처 팝(Future Pop)’ 스타일로 소녀의 두근거림을 표현한 곡. ‘레퍼런스(참고 곡)’는 누구누구의 어떤 곡”이라는 내용으로, 가수에 맞는 전략과 컨셉을 반영한 ‘곡의 주문서’다. 그리고 ‘A&R’ 팀은 그 리드를 ‘퍼블리싱(Publishing)’ 회사에 뿌리게 된다.

어쩌면 이 과정은 제가 몸을 담고 있던 게임사들의 개발 과정과 유사하다. 대부분의 프리랜서 작곡가들은 ‘퍼블리싱’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퍼블리싱’의 역할은 이러한 리드를 소속 작곡가들에게 뿌리고, 만든 곡을 취합해 기획사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2주 내외의 짧은 마감 기간 전국의, 아니 전세계의 작곡가들이 (요즘엔 해외 작곡팀도 K-POP 작업을 많이 한다) 곡을 만들어 ‘퍼블리싱’에 전달한다. 

댄스곡들이 대부분인 아이돌 곡의 작업은, 먼저 ‘트랙(Track)’이라 불리는 반주를 ‘트랙 메이커(Track Maker, 트랙 작곡가)’가 쓰고, 그 위에 ‘탑라인(Top Line: 보컬 멜로디)’ 작곡가가 멜로디를 부른 뒤 가사를 붙이는, 분업화된 프로세스로 진행된다.

일례로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은 외국작가가 쓴 ‘트랙’을 받아, 여러 작곡가들이 ‘탑라인’과 가사를 써서 만든 ‘데모곡’들을, 회사에서 좋은 부분만 취합해 만들어진 곡이라 한다.(출처: 김도훈 작곡법)

비로소 ‘가이드 가수(해당 가수와 비슷하게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녹음까지 완성된 곡을 ‘데모:Demo’라 부르는데, 오히려 실제 가수가 부른 곡보다 더 좋을 정도로 뛰어난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은 ‘퍼블리싱’ 회사를 통해 취합되어 기획사에 보내지고, 기획사의 ‘A&R’ 팀은 수십에서 수백 곡까지의 후보작들을 면밀히 검토한 후, 앨범에 수록이 될 곡들을 고르게 된다. 이 과정을 ‘곡 매칭’이라 한다.

실로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우리가 듣는 아이돌 곡 한 곡이 탄생하는 것이다. 작곡가들에겐 이런 매 과정이 시험이자 ‘오디션’이다.

■ 오리콘 차트 1위 프란츠 아이돌작곡가 탄생기1. 펑크로커 시절

우리가 듣는 아이돌의 인기곡이 하나하나가 ‘오디션’을 방불할 정도로 피말리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이러한 일상을 뚝심으로 버티며, 결국엔 자신이 쓴 곡들을 ‘오리콘 차트’ 1위, 국내 인기차트 1위로 만든 장본인, 작곡가 ‘프란츠(FRANTS, 본명 최석)’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티스트이자 작곡가-프로듀서 ‘프란츠’]

필자와 ‘프란츠 작가’와의 첫 만남은 2016년이었다. ‘레코드 팩토리’라는 뮤직 아카데미 강사인 그를 만났는데, 한눈에 범상치 않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프란츠’는 부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다. 유복한 집안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반항적인 아이었다. 그때부터 끼가 발동했던 그의 유일한 낙은, 당시 유행하던 ‘뉴 키즈 온 더 블럭’이나 ‘서태지’ 같은 댄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이러한 특기를 살려, 수학 여행때마다 무대에서 멋진 춤을 선보이며 여학생들의 환호와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던 그가 첫번째로 문화적 충격을 받은 사건은 바로 ‘엑스 재팬(X-JAPAN, 일본의 록 밴드)’였다. 당시 학교 앞 문방구에서 연예인 사진을 팔던 시절이 있었는데, ‘엑스 재팬’의 사진을 보고 그는 온몸이 저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그는 ‘엑스 재팬’이 일본의 유명한 록 밴드라는 사실도 몰랐다.

집에 돌아와 그 사진을 책상 유리 밑에 깔아 놓고 뭔지 모를 동경에 사로잡힌 그는, 얼마 뒤 구해서 보게 된 ‘엑스 재팬’의 라이브 비디오를 보고 비로소 록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록 밴드 시절의 ‘프란츠’]

그후 시내에 있는 레코드 점에서 ‘너바나(Nirvana)’, ‘메탈리카(Metallica)’ 등 해외 록 밴드 카세트 테이프를 사서 듣게 되고,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알게 된 친구 덕에 부산 시내에 있는 음악 학원에 등록을 하게 된다. 당연히 부모님에게는 비밀이었다. 그 사건은 그가 처음으로 주도적 인생을 살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그 곳에서 처음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게 된 그는, 당시 유행했던 선배 메탈 밴드 ‘피아(PIA)’ 등을 보며 자신이 이런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쓴다는 사실에 하루하루를 설레며 보냈다. 일찍 부터 연주실력을 인정받아, 대학 밴드에 스카우트되어 대학 축제에서 데뷔 무대를 설 정도로 성장했다. 팬도 생겼다.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메탈 음악은 뭔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더 트렌디하고 멋진 음악이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옆 합주실에서 너무나도 멋진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들었다. ‘바로 이거다!’라는 감이 왔던 그는, 그 음악이 ‘네오 펑크(Neo-Punk)’ 밴드 ‘랜시드 (Rancid, 미국)’의 음악임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펑크(Punk)’와의 사랑에 빠졌다. 비로서 자신의 인생을 걸만한 대상을 찾게 된 것이다. 헤어 스타일과 의상을 비롯한 외모도 점점 ‘펑크’화 되어갔다. 결국 친구들과 ‘사이드 티켓’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꾸렸다. 아직 고등학생 임에도 공연 투어를 돌고, 팬이 늘어나고 그들의 밴드 매니저가 붙을 정도로 인기가 하루하루 치솟았다.

[펑크 록 밴드 ‘게토밤즈 (Ghetto Bombs)’]

2002년, 꿈에 그리던 서울 진출을 위해 결성하게 된 밴드 ‘게토밤즈(Ghetto Bombs)’. 당시 신인밴드의 꿈이었던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신인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고, ‘쌈지 레코드’와 계약하기에 이른다.

다수의 ‘컴필레이선 앨범(Compilation Album, 편집 음반)’과 OST 참여 후 발매 된 ‘게토밤즈’의 2005년 데뷔 앨범 ‘Rotten City’는 국내 펑크 록의 대중화에 기여하며, 국내 록 신(Scene)에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당시 이동 통신사의 광고모델로 CF를 찍을 정도로 ‘트렌디함의 상징’이 되었다.

■ 오리콘 차트 1위 프란츠 아이돌작곡가 탄생기2. 박진영의 ‘K-POP 작곡가’ 러브콜

그렇게 펑크 로커로 젊은 전성시대를 누리던 그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에시드 테크노(Acid Techno)’와 ‘미니멀 하우스(Minimal House, 2000년 초중반 유행했던 사운드로, 일본에서 ‘시부야케’라고도 불린다)’ 같은 ‘일렉트로닉 뮤직(Electronic Music, 전자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부터 ‘미디(MIDI, 컴퓨터 음악)’를 독학하던 그는, ‘게토 밤즈’ 해체 이후 조금 더 진지하게 전자 악기들에 빠지게 되어 ‘일렉트로닉 뮤지션’이 되었다. ‘텔레파시’라는 팀을 결성, 당시 ‘일렉트로니카’의 선구자였던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디제이 (DJ)’로도 활동했다.

[로커 ‘프란츠’, 일렉트로닉 뮤지션으로 변신하다 ‘텔레파시(Telepathy)’]

그러던 중 그의 재능을 알아본 ‘JYP’ 박진영 대표에게 러브콜을 받게 되고, ‘K-POP 작곡가’로 또 한번 변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그런 ‘프란츠’와 오랫만에 만난 필자는 그동안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 "원더걸스, 갓세븐, 트와이스와 작업...선미 1위 1주일 지나 실감"

류기덕: 주변을 보면 젊을 때는 음악을 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면 뒤늦게 다른 직업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기간을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었나.

프란츠: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음악 외엔 택할 수 있는 다른 옵션이 없었다. 음악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이라 생각했고, 항상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 만을 했다. 노력도 많이 했고 운도 따라 줬던 것 같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류기덕: 운도 운이지만 트렌드를 감지하는 센스가 뛰어난 것 같다.

프란츠: 희한하게도 내가 흥미를 가지고 하는 음악 장르들은 좀 있으면 유행하게 되더라. 새로운 것에 대해 많이 민감한 스타일이긴 했다. 요즘은 새로운 것들만 추구하기 보다는 ‘나를 믿고 뭐든 만들자’ 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 항상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다.

류기덕: ‘JYP’의 스카우트 제안이 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프란츠: 사실 그전까지 음악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생계의 어려움도 없진 않았다. 그리고 음악 비즈니스계에 속은 일들이 많아 그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사람들 만나기도 꺼려지고 작업실에만 박혀있을 때도 많았다. 처음 ‘JYP'의 제안을 받았을 때도 역시 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들과 멋진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되어 행복하다.

류기덕: 원더걸스, 갓세븐, 트와이스, 선미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의 곡을 함께 작업했고, 또 1위까지 했는데 소감이 어떠한가.

프란츠: 사실 부담감이 엄청났다. 내가 쓴 ‘음표’ 하나 하나가 그들에겐 가수생활을 접느냐 흥하느냐라는 큰 운명이 걸려있지 않은가. 선미의 ‘사이렌’ 앨범을 끝 마쳤을 때도 혹시 이번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컸다. 항상 좋은 성적을 냈던 아티스트니까.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1위를 했지만, 그런 부담감 때문에 긴시간 동안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이제서야 현실 같고, 주변의 축하도 와 닿게 됐다.

■ “아이돌과 노는 기분으로 작업...내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좋아할 만한 음악 만든다”

류기덕: 아이돌 스타들과 작업할 때 ‘프로듀서’로써 특별한 리더십이 있는지.

프란츠: 같이 재미있게 노는 기분으로 작업한다. 하기싫은 것을 한다던가 특별한 것을 고집하기 보다는, 아티스트와 서로 존중하며 즐겁게 작업한다. 결과보다 그러한 과정을 중요시한다. 좋은 콜라보를 하려면 서로가 만족하는 곡을 만들기 위해 즐겁게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야 좋은 시너지가 나오게 된다.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중인 ‘프란츠’]

류기덕: 얼마 전 필자와 같이 작업할 때에도 그런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굉장히 좋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질문인데, 원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하다 이제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입장이 되었다. 거기서 오는 어려움은 없나.

프란츠: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되지만, 대중가요는 내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그 점이 어렵다. 가끔씩 불특정 다수가 아닌,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며 그것을 해소한다.

류기덕: 그런 음악은 ‘테크노’ 같은 언더그라운드 장르의 음악인가?

프란츠: “테크노도 그 일부이지만, 그런 음악도 K-POP으로 만들어 본다. 다른 점이라면 내 만족을 위해 만드는 곡들이다.”

류기덕: 진심으로 ‘K-POP’을 좋아하는 것 같다.

프란츠: 사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좋아서 해야 오래할 수 있다. 특히 음악은 더 그렇다. 마음속으로는 축구를 좋아하면서 직업은 야구선수..할 수는 있겠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요즘 ‘K-POP’들은 독창적이고 퀄리티도 뛰어나다. 작업자체도 즐겁고 재미있다.

류기덕: 엄청난 작업량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여전한가.

프란츠: 방금 전에도 회사에 5곡을 보냈다. 밖에 나와 본지가 오래된 것 같다. 이제부터는 게임을 할 계획이다(웃음).

장시간 대화를 통해 만난 그는 여전히 소년처럼 순수했다. 하지만, 음악을 향한 강한 열정은 압도당할 정도로 대단했다. 오랜 기간 고생할 수밖에 없는 뮤지션의 길을, 뚝심 하나로 버텨 성공한 그가 존경스웠다.

이제 많은 스타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는 작곡가-프로듀서 ‘프란츠’. 그의 굳건한 뚝심과 불타는 열정으로, 오랜 기간 사랑받는 국민 작곡가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그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글쓴이=류기덕 PD jadekeymusic@gmail.com  

류기덕 PD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데뷔하자마자 돌풍을 일으킨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1집에 참여했다.

이후 게임사 소프트맥스, 이오리스게임즈를 거쳐 위메이드에 입사해, 중국에서 20년 이상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2’ 그래픽 총괄을 맡았다.

이후 게임 PD로 17년 위메이드에서 맹활약하다 2017년 돌연 음악 PD이자 작곡가로 데뷔해 음악계로 돌아왔다. 현재 제이드 키 뮤직(Jade Key Music) 대표/음악 프로듀서, CJ E&M 음악 퍼블리싱 소속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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