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덕의 필소굿9...인연 같은 음악, 인연 같은 게임, 인연 같은 인생

[2018년 1월, 게임톡 박명기 국장이 찍어준 사진.]

류기덕의 필소굿9...인연 같은 음악, 인연 같은 게임, 인연 같은 인연

사람은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과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있고, 언제 그런 사람과 만났는지도 모르게 잊혀지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의 인연이란 게 재미있다. 당시에는 크게 중요한 관계가 아닌 것 같아 잊고 지내다, 훗날 사소한 계기로 인해 갑작스레 굉장히 중요한 관계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필자는 살아오면서 정말 우연한 인연으로 ‘인생의 귀인’들을 몇 만났다.

■ 인연1.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 리더 “베이스 기타 칠래?”

첫 번째로 만난 귀인은,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이자 작가인 ‘이석원’ 작가님이다.

PC통신 시절, 필자가 시삽(대표 관리자)을 맡던 ‘메탈동’이라는 음악 커뮤니티에서 항상 앙칼진 내용의 글을 쓰던 분이 있었다. 몇 번 모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정말 특이하고 자기 철학이 단단한 형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언니네 이발관 (1996년)]

그러다 갑자기 당시 핫하던 ‘모던 록’ 밴드를 결성하겠다고 하더니, 나에게 베이스 기타를 맡아 보라고 제안했다.

사실 난 베이스 기타를 갖고 있긴 했지만, 끝까지 연주하는 곡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연주 실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연주실력은 나뿐 아니라 리더 ‘이석원’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자신과 내 음악 취향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이 형과 같이 음악을 하면 특별한 음악이 나올 것 같은 ‘촉’이 왔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언니네 이발관’의 데뷔 앨범은 거짓말처럼 ‘홍대 인디 밴드의 전설’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류기덕’이라는 캐릭터에서 ‘언니네 이발관’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별난 이력이 되었다.

■ 인연2. 중국 초대박 ‘미르의 전설2’ 위메이드 박관호 의장

두 번째 귀인은 바로 게임개발사 ‘위메이드’의 ‘박관호’ 의장님이다.

1999년 당시 게임업계는 지금과 다르게 매우 영세했다. 월급이 밀리는 일은 다반사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새벽까지 일하고, 간이침대에서 자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게임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가질 수 없는 직업이었다.

매우 고생을 했던 필자도 몇 번의 이직 끝에 새로운 직장을 구직 중이었다. 면접을 보러 찾아 갔던 작은 사무실에서 운명처럼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분위기부터 왜인지 모르게 다른 회사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나의 숨은 재능을 알아봐 주는 느낌을 받았고, 면접 때 말씀하시던 본인의 게임에 대한 철학에 남다른 열정을 느꼈다. 이 분과 함께 하면 뭔가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직감이 왔다.

결국 박 의장님이 직접 개발한 게임 ‘미르의 전설2’는 중국에서 엄청난 국민 게임이 되었다.  회사는 수천억대 연 매출을 내는 회사로 급성장을 했다. 현재까지도 ‘미르의 전설(중국명 ‘촨치’ 傳奇, 전기)’는 중국 전체 게임시장 점유율 14%를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게임이다.

■ 인연3. 작곡가 데뷔 후 조피디-김창환-홍종구 등 레전드 만남

신기하게도, 다시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도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유명인들과 친분을 쌓게 되는 일이 생긴다.

한국 힙합의 레전드 ‘조피디’님, ‘김건모’ 등을 키운 명 프로듀서 ‘김창환’ 회장님, 90년대 아이돌 ‘노이즈’의 리더 ‘홍종구’ 대표님 등, 작정하고 만나려 해도 뵙기 힘든 분들을 정말 자연스레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아직은 그분들과 본격적인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훗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지 모른다.

영화 ‘반지의 제왕’도 사실 이러한 ‘인연이 주는 가능성’들을 작품의 주요 테마로 깔고 있다. 아무리 하찮은 인연이라도 소중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극 초반부, 주인공 ‘프로도’ 일행을 괴롭히는 ‘골룸’이란 괴물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현자 ‘간달프’는 이를 강하게 만류하며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삶과 죽음은,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프로도’ 일행은 ‘간달프’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간달프’의 결정은 마지막 장면에 와서야 옳았음이 밝혀진다.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드디어 ‘불의 산’에 다다른 일행. 끓는 용암 속에 반지를 빠뜨려 파괴해야 하는 상황에서 ‘프로도’는 반지의 힘에 취해, ‘반지는 내 거야’라며 악에 물든다. 그동안의 여정이 수포로 돌아갈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2003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때 숨어있던 ‘골룸’이 반지를 빼앗으러 ‘프로도’의 몸을 타고 기어 올라와, ‘프로도’의 손가락을 깨물고 반지와 함께 용암 속으로 떨어져 죽게 된다. 어이없게도 반지를 파괴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하찮고 성가신 인연, ‘골룸’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전에 ‘골룸’이 죽어 없었다면? 반지원정대의 여정은 실패했을 것이다. 인생의 통찰이 담긴,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 인연4. 게임톡 박명기 국장 2006년 첫 인터뷰...이후 특별한 인연

사실 필자가 이렇게 매달 칼럼을 쓸 수 있게 된 계기도 ’게임톡‘ 박명기 국장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처음 그분을 뵈었을 때는 이런 관계로 발전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게임톡과 필자의 첫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게임개발사 ‘위메이드’ 개발 총괄 이사였던 필자는 과거 ‘언니네 이발관’ 출신 개발자라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인터뷰 의뢰가 심심치 않게 들어왔었다.

2006년, 일간스포츠 IT 게임 담당 기자로 필자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에 있던 ‘위메이드’ 사옥으로 찾아온 분이 바로 지금의 게임톡 편집국장이자 대표인 박명기 국장님이었다.

‘즐거운 인생, 게임처럼 신나게!’ 라는 꼭지 제목의 기사로, 당시 ‘할리 데이비슨’ 마니아였던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 힙합마니아 손창욱 대표(현 미투온 대표, 전 프리챌 대표) 같은 분들과 함께 인디밴드 출신 게임개발자로 소개되었던 기사였다.

[2006년 일간스포츠 박명기 기자의 기사 사진. 출처=일간스포츠]

꽤 오래전이지만 당시 인터뷰하던 장면들이 선명히 기억난다. 음악 전문 용어들이 많아, 궁금한 부분들을 물어보시며 열심히 받아적으시던 모습에서, 정말 성실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 6년 후인 2012년, ‘위메이드 지스타 라인업 발표회’라는 큰 행사가 있었다. 필자가 신작 게임들을 무대에서 소개하고, 기자회견을 가진 날이었다. 그때 낯익은 얼굴의 기자가 ‘게임톡’이라고 써 있는 명함을 주며 인사를 건네셨다.

행사 때문에 바빠서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예전 필자를 인터뷰했던 그분이 게임톡이라는 새로운 게임 웹진을 오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2년 지스타 기사 사진. 출처=게임톡]

그리고 2012년 지스타 전시장에서 박명기 국장님을 우연히 또 만나게 되었다. 그때 한창 ‘위메이드’가 모바일 게임으로 새롭게 비상하는 시기였기에, 많은 매체에서 관심을 가졌지만 공식적인 채널이 아니면 인터뷰를 피했다.

하지만 안면이 있는 분이어서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던 기억이 난다. 길지 않은 인터뷰였지만 사진도 찍어 주시고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몇 년이 다시 흘렀다. 2017년 말, 다시 음악을 시작하고 그에 대한 다짐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페이스북 친구였던 박명기 국장님이 전화를 했다.

사실 깜짝 놀랐다. 이제 나는 게임업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분과 사적으로 친분이 있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뜻밖에 먼저 연락을 해주시니 정말 반갑고 감사했다. 그리고  몇 달 뒤인 2018년 1월, 분당 정자동에 있는 필자의 작업실까지 인터뷰를 위해 찾아오셨다.    

[게임톡 창간 6주년 기획, 2018년 3월 3일 류기덕 PD 인터뷰. 출처=게임톡]

12년 전에 ‘인디 밴드 출신 게임 개발자’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하고, 지금은 반대로 ‘게임 개발자 출신 작곡가-프로듀서’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했다.

또다시 음악 관련 전문용어가 많았던 인터뷰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하나하나 물어보며 열심히 글을 쓰시는 모습에서, 12년 전 그 순간이 데자뷰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실 아직은 필자가 음악계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단지 예전에 몇번 안면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몸소 찾아와 인터뷰를 해주어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 뒤 가졌던 점심 식사 자리에서 한 가지 제안을 주셨다. “게임톡에 칼럼을 연재해보면 어떻겠느냐”라는 아이디어였다. 칼럼 제목도 멋지게 정해주셨다. ‘류기덕의 필소굿’.

사실 필자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예전 PC통신 시절이나 블로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잡담들을 썼던 것이 전부였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거기에 한가지 아이디어를 더해 주셨다. “연재하는 칼럼을 모아서 추후 책으로 출간해보자.”

작업실에 돌아온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지금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에 제안을 수락하고, 오랜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류기덕의 필소굿’ 칼럼 연재는 나에게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전문 칼럼니스트가 아님에도 이렇게 한 달에 한 번, 음악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생각들을 매체를 통해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비록 지금은 크지 않지만, 훗날 이 칼럼 연재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또한 내 인생의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인연의 소중함을 느낀다.

어느새 이 칼럼을 연재한지도 어언 9개월이 지났다. 조금 있으면 1년이다. 칼럼이 나갈 때마다 주변에서 재미있게 잘 읽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국장님이 나중에 책이 출간되면 지인분들을 초대해 조그맣게 파티를 열자고 하신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몇 달 글을 쓰다 보니, 이 또한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류기덕의 필소굿’. 부족하나마 앞으로도 더 좋은 칼럼을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PS: 최고의 게임 뉴스 ‘게임톡’ 창간 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글쓴이=류기덕 PD jadekeymusic@gmail.com  


류기덕 PD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데뷔하자마자 돌풍을 일으킨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1집에 참여했다.

이후 게임사 소프트맥스, 이오리스게임즈를 거쳐 위메이드에 입사해, 중국에서 20년 이상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2’ 그래픽 총괄을 맡았다.

이후 게임 PD로 17년 위메이드에서 맹활약하다 2017년 돌연 음악 PD이자 작곡가로 데뷔해 음악계로 돌아왔다. 현재 제이드 키 뮤직(Jade Key Music) 대표/음악 프로듀서, CJ E&M 음악 퍼블리싱 소속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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