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이 개발 선장되어 신분 상승...게임별곡 50회 ‘아껴둔 게임’ 목록

학교 다닐 때 세계사 과목을 조금 열심히 공부한 분들이라면 교과서에 실린 ‘대항해시대’라는 단어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게임을 접하고 이후에 한참 뒤에야 학교에서 ‘대항해시대’에 대해 배우게 되었는데, 그 부분을 심도 있게 배웠다기보다는 그냥 지나가는 문제에 답 하나 정도의 간단한 소개로 그쳐서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게임을 좋아하고 공부를 싫어하는 분들에게 ‘대항해시대’라는 단어는 단지 게임의 이름으로 기억될 뿐이지만, 조금이라도 공부를 한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역사적으로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의 항로를 개척하며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를 찾아다니며 탐험을 하던 때를 말한다.

물론 유럽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겠지만, 이 당시 노예무역을 통해 자본을 축척하던 입장의 반대에 있던 나라들로서는 기분이 달갑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

■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의 개막

하지만, 이런 어려운 얘기들은 게임얘기를 할 때는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하자(물론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나, 모른 척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아마도 [게임별곡]을 즐겨찾기에 저장해 두신 분들이라면 왜 이 게임을 이제서야 얘기하는지 궁금해 할 법도 하다(없으신가?).

이번은 [게임별곡] 50회차로 필자는 보글보글의 50판 타임머신처럼 50회 70회 100회 게임을 위해 아껴둔 게임들이 있다. 그 중에 첫 번째 게임이 바로 ‘대항해시대’이다. 남은 게임들도 어떤 게임들인지 대략 짐작이 가실 듯하다.

[역시 PC9801이 그래픽이 더 좋은 것 같다.]
처음에 필자가 접했던 시리즈는 1편 영문판이었다. 게임 이름이 ‘UNCHARTED WATER’이라고 쓰여 있어서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언젠가 친구가 ‘너 대항해 하냐?’ 물어봤을 때도 같은 게임을 하면서도 ‘아니? 그게 무슨 게임인데?’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지금 생각하니 괜히 부끄러워지네..).

비슷한 시기에 즐겼던 ‘코에이(KOEI)’의 게임들은 거의 영문판이었다. ‘대항해시대’ 게임은 끝끝내 한글판을 즐겨보지 못하고 영문판만 즐겼다. ‘대항해시대’ 1편은 1990년 코에이에서 출시한 게임이다. 사실 그 당시 한국에 정식 수입된 적은 없다. 어찌된 경로인지 영문판이 떠돌았다. 그렇게 전국적으로 영문 버전이 배포되게 되었다.

지금이야 ‘진삼국무쌍’ 같은 초마초액션 삼국지 게임으로 유명한 코에이지만, 그 당시의 코에이는 역사, 전략, 경영 등을 소재로 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잘 만드는 회사였다. 지금은 코에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합쳐진 회사 ‘테크모’의 이름을 더해서 ‘KT’ 라는 한국통신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다.

현재 이 회사는 사업상의 수익부진과 여러 가지 암울한 한국 시장의 이유로 인해 한국에서 철수한 상태다. 비록 잠깐이긴 했지만, 다시 예전처럼 한글판을 즐겼던 행복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의 캐릭터인 ‘관우’를 플레이하면서도 글자는 ‘일본어’가 나오고 ‘한국인’ 게이머가 존재하는 요상 망측한 동북아 3국의 화합의 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중국인 캐릭터가 일본어로 말하고 그것을 한국인 게이머가 즐기는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삼국지(三國志).. 게임을 하면서도 왠지 위화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자 이제 다시 일본어로 얘기하는 유럽인들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 밤새 항로를 그렸던 추억?
이 게임은 게임의 이름처럼 ‘항해’를 목적으로 한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넓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항해(航海)’도 그냥 항해가 아니라 ‘대항해(大航海)’이다. 항해를 위한 필수요소는 당연히 세계지도다. 정확한 지도가 없으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가 유령선에 승선하기 딱 좋다.

[‘대항해시대’ - PC9801 버전]
필자가 처음으로 1편을 접했을 때가 중학생 시절이었다. 그때는 영문판이었다. 잘 알지도 못 하는 영어를 찾아가며 국가 이름, 아이템 이름들을 정리하고 세계를 떠돌며 유랑하던 시절에는 주변에 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 게임보다는 오히려 ‘삼국지’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둘 다 코에이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이후에 2편이 나왔을 때 한글판이 나오면서 대대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물론 필자는 친구들이 영맹(英盲)이어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 당시 수학은 ‘정석’을 영어는 ‘맨투맨’이니 ‘성문종합영어’니 하는 것들을 다 떼고 온 친구들이었으니까..

어쨌든 2편 이후로 늘 학교에 가면 ‘대항해시대’ 얘기뿐이었다. 그 놈의 ‘세우타’항은 일반인은 거의 그 이름도 처음 들어볼 정도로 잘 모르지만, ‘대항해시대’를 즐겼던 분들이라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잘 아실 것이다.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이 1편부터 갑자기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기존의 게임에 비해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지식과 삶의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 있었겠지만, 이제 막 중등교육과정에 들어선 10대 청소년들에게 갑자기 주어진 망망대해는 재앙과도 같았다. 그 당시에도 저연령층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능숙하게 잘 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난이도가 쉬운 편에 속하는 게임은 아니다.

그 당시 같은 회사에서 출시한 ‘삼국지’ 시리즈의 경우는 그나마 ‘삼국지’ 소설을 통해 등장인물이나 역사적인 배경 또는 지명(地名) 등 게임에 등장하는 이름이나 용어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다가왔지만, ‘대항해시대’의 경우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갑자기 튀어나온 ‘레온 페레로’ 따위 알게 다 뭔가..

[아.. 막막하네. 어디로 가야되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의 경우 그래도 몇 번 침략 당하고 털리고를 반복하다 보면 게임의 시스템에 금방 익숙해지고 이를 갈고 병사를 모아 훈련시키고 만인의 적 동탁을 치기 위해 밤을 지새울 수 있지만, 이놈의 거 ‘대항해시대’는 일단 어떻게 항구를 빠져나가면 갑자기 망망대해가 펼쳐지는데, 여기서부터가 난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와 필자의 몇 몇 친구들은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밤새 연습장에 쓰라는 영어 단어는 쓰지 않고 항구도시 이름이나 항해술에 대한 비법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필자도 집에 찾아보면 그 때 썼던 항해일지가 어딘가에 있을텐데 있어봤자 진품명품에 나갈 것도 아니고 경매에 부친다고 누가 사갈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찾아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이 게임을 즐겼던 분들이라면 누구나 항해일지 한 권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 선장이 되면 알아야 하는 것들..
게임을 하면서 처음 보게 되는 용어부터 난해함이 증폭된다. ‘DUR’이 0이 되면 배가 침몰하게 되는데, 저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고, ‘C.C’는 화물의 총 적재량을 뜻하며, ‘T.F’와 ‘P.F’가 배의 운동성을 좌우하는 선회력과 추진력이라는 의미도 당연히 몰랐다. ‘CREW’ 정도는 간신히 사전을 찾아보니 ‘승무원-선원’ 이라는 뜻이 있어서 알 수 있었지만, ‘STO’ 가 화물 적재량이라는 뜻이라는 게 아무리 영한사전을 뒤져본들 나올 리가 없다.

[음.. 뭐라고 써있기는 한데? 뭐라고 쓴 거지?]
그냥 대충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다거나 친구들끼리 뜻을 유추해 보는 학회를 열어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어거지로 게임을 끌어나갔지만, 결국에 공략집이 나온 뒤에야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게임이 어려웠던 또 하나의 이유는 등장하는 ‘선박’과 ‘무기(대포)’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카라벨’ 이나 ‘갤리선’, ‘슬루프’, ‘다우’ 같은 배의 종류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타본 적은 더더욱 없으니 그저 게임 안에서 비싼 배가 좋은 배라고 생각하고 했을 뿐이다. 특히 어중간한 배는 잘못 샀다가 피눈물 쏟은 기억을 생각하면..

무기의 경우 대포만 해도 ‘대항해시대’ 2편에는 ‘캐논’, ‘데미캐논’, ‘캐논페드로’, ‘캘버린’, ‘데미켈버린’, ‘세이커’, ‘카로네이드’ 등이 등장하는데, 대포는 그냥 다 대포인줄 알았던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상세한 대포 분류는 머리를 쥐어뜯게 만드는 요소였다. 더더욱 불행한 것은 선박과 대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수상(船首像)’ 이나 그 밖에도 알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은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런 처절한 자기학습 끝에 드디어 무언가 가닥이 잡힐 것 같기 시작하면 이 게임은 이제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안내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거의 또 1년을 꼬박 이 게임을 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정말이지 대우 김우중 회장의 베스트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라는 책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이 게임을 떠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게임이 그렇다고 해서 필자에게 모진 시련과 고난만 주었던 것은 아니다. 이 게임을 하면서 정말 학교 생활이 즐거웠던 이유 중에 하나는 유일하게 게임 얘기를 하고 게임 내용을 공책에 끄적거려도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줄여서 ‘야자’라 불리지만 이상하게도 자율성은 없는 ‘야자’ 시간에도 새로운 항로 개척 및 지리 분석 등을 노트에 끄적끄적 적어내면 감독하는 선생님들이 지나가면서도 아무 말 없이 통과였다. 간혹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는 친구들에 비해 이상하게 세계사-지리 과목을 열심히 하는 필자를 조금 이상하게 보는 눈치는 있었지만, 크게 별 탈 없이 게임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 본격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는 게임.

[이 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공주와의 만남]
이 게임에서의 엔딩이 있다면, 그것은 신분상승의 꿈을 이뤄내는 것이다. 물론 끝끝내 공주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삼국지’ 게임처럼 괜히 잘못 튕겼다가 사신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경험했던 필자는 공주를 거절하면 목이 날아갈까봐 그냥 받아줬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왕은 주인공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데, ‘영토’와 ‘명예’, ‘공주’, ‘거절..’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여기서 ‘영토’를 제외한 어느 것을 골라도 왕은 다시 한 번 주인공 ‘레온 페레로’를 양자로 삼고 공주와 백년가약을 맺어주고 싶다는 제의를 한다. 물론 여기서도 거절을 할 수 있는데, 다행히 거절한다고 해도 목이 날아가거나 하지는 않고, 엔딩 장면이 조금 바뀔 뿐이다. 그런데 필자는 주변에 공주를 선택하지 않는 남자는 본 기억이 없다. 1편에서 마지막에 공주를 선택하고 신분상승의 꿈을 이뤄내어 호위호식하며 평생 잘 나갈 줄 알았지만, 곧 이어 등장한 2편에서 공주가 아줌마로 변한 것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역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어쨌든 게임의 스토리상 주인공 ‘레온 페레로’는 몰락한 가문의 자제로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뗏목 수준의 배 하나로 시작하여 해상왕이 되어 결국 공주와 결혼하여 공작의 작위를 되찾는 인간성공시대에나 나올법한 휴먼 드라마 같은 게임이다.

■ 필자의 잡소리
언젠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면서 필자는 여러 가지 게임이 떠올랐다. 그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게임은 ‘원숭이섬의 비밀’이었고, 해상장면에서 떠오른 게임은 ‘대항해시대’였다. 또한, 주인공 해적의 경우 ‘대항해시대’ 게임을 하면서 끝내 해적질로 하루를 소일거리하는 필자로서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다.

그 당시 ‘해적’의 이미지는 약탈과 살육 등의 악랄하고 포악한 죄인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최근까지도 빅히트를 기록하며 흥행하고 있는 ‘원피스’라는 만화를 통해 해적의 이미지는 다시 한 번 변신을 시도 중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얼마 전에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5’가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비록 한글화된 게임을 만날 수는 없지만, 일본어 하는 유럽인들을 보면 어떠한가.. 지나가다 길가는 해적이라도 보거들랑 인사 한 마디 전해달라. 아마도 필자일 것이다.

한경닷컴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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