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BBLE BOBBLE’ 한글 번역...오락실 주인은 제왕 군림 추억

전설의 명작 게임 ‘보글보글’의 원작 명은 ‘BUBBLE BOBBLE’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는 ‘보글보글’이라 불렸다. 원문 그대로 발음 표기한 버블보블(일본어: バブルボブル 바부루보부루)도 아니고 굳이 한글화한다면 ‘방울방울’ 정도면 됐을 것 같은데, 대부분 ‘보글보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당시 청소년 지능계발이라는 국가 대업을 수행하던 오락실이라 불리는 곳에서는 주인 아저씨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권한이 바로 게임이름 내 맘대로 짓기에 대한 권한이었다. 원작이야 어쨌든 오락실 주인 아저씨 마음대로 지어진 게임이름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거기에 반론을 제시할 수 없었던 제왕과도 같은 주인 아저씨의 절대 권력 시절이었다.

■‘100만점 금지’아래는 ‘위반 시 전원 끕니다’

그 당시 비슷한 시기에 유행했던 게임 중에는 ‘Double Dragon’같은 게임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쌍용권’ 이라 적혀 있었다. 나중에야 다른 동네에 가서 알았지만, 그나마 쌍용권이면 양반 수준이고 동네마다 그 이름도 달랐다. ‘두 남자의 혈투극’ 또는 ‘복수혈전’ 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복수혈전은 나중에 영화 보고 지은 이름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대체로 전국적으로 ‘쌍용권’ 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였던 것 같다. 무소불위의 권력의 끝판왕격인 이름으로는 ‘쌍용호제’라는 이름도 있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홍콩 무협 영화의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오락실 주인 아저씨의 만행은 내 맘대로 이름 짓기에서 그치지 않고 게임마다 점수 제한선을 두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지금 소개하는 보글보글 게임의 경우 제일 많이 적용됐던 ‘100만점 금지’, ‘타임머신 금지’ 등이 있었으며, 항상 그 제한 명령서 밑에는 친절하게도 ‘위반 시 전원 끕니다’ 등의 무시무시한 경고도 붙어있었다.

지금의 청소년 셧다운제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무시무시한 법률이었고, 그에 반하는 자는 꺼진 전원으로 까맣게 변한 화면만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보글보글 게임 같은 경우는 운과 실력만 맞아 떨어지면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전기세 보존의 원칙 아래 이런 경고들이 등장한 게 아닌가 싶다(전기절약 캠페인의 애꿎은 희생양이 바로 우리들이었다).

▲ 보글보글-100판 끝판왕

■‘100판이 끝판’ 다시 첫판 난이도 상상불허
이 게임은 100판이 끝판이다. 하지만, 100판째 마지막 끝판 왕을 깨고 나면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끝판을 깨면 다시 첫 판으로 돌아가 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참 뒤에 나와야 될 ‘레이저’ 애들이 초기에 등장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철저하게 오락실 주인 아저씨 입장에서 배려된 레벨 난이도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보글보글 게임이 한창 유행할 당시 필자는 아직 국민학생(지금은 초등학교) 시절이었고 그때 게임 비는 50원이었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100원으로 게임비가 인상 됐다. 그때의 물가 상승 충격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처음엔 50원에 2마리(녹색, 파란색 공룡)가 같이 시작할 수 있었다. 나중에 100원으로 인상됐을 때는 녹색(1P) 공룡만 시작할 수 있게 변한 것이다. 50원에 2마리에서 100원 1마리는 실질적으로 4배의 체감수치다. 한 번에 4배나 인상된 게임비를 지출하느라 허덕이던 때가 생각난다.

▲ 보글보글 – 2P의 외침 “나도 꺼내줘!

그리고 더 악랄하다고 느낀 이유는, 보글보글은 녹색 공룡(1P)보다 파란색 공룡(2P)이 보너스 포인트가 더 많다. 보너스 생명 숫자도 그렇고 같은 실력이면 파란색이 더 유리했다. 100원 넣으면 녹색부터 시작되고, 파란색(2P)을 하고 싶으면 100원을 더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 좀 노는 쌈장 아래 ‘보글보글 카르텔’

녹색(1P), 파란색(2P)의 상이한 시스템으로 보통 1인이 50원에 2마리를 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왼쪽에 녹색(1P)은 버려두고 오른쪽에 파란색(2P)만 플레이를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생겨난 독특한 제도가 바로 ‘보글보글 카르텔’의 형성이다.

동네마다 게임 좀 한다는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일종의 멤버십 제도이다. 윗동네, 아래 동네, 길 건너 동네 등 오락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러 동네가 접해 있던 시절에 우리 동네는 그 당시 쌈짱 아이의 보호 아래 보글보글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보글보글 담당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사업적인 내용이 오고 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일이 쉽게 성사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난 운이 좋게도 보글보글 담당 동네에 속하게 되었다. 그 때 존재했던 동네들마다 담당했던 게임들은 50원에 2인이 가능했던 게임 위주로 ‘보글보글’, ‘스노우브라더스’, ‘이카리’, ‘트윈 코브라’ 등이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오락실에 입장하여 매장 관리를 시작으로 보글보글 기계 근처에 서성이고 있다가 돈을 갖고 계신 어르신(할렐루야! 구원자다!)이 등장하면 보글보글을 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두리번거리며 오락실을 서성이던 어르신께서 보글보글에 동전을 투입하는 순간 우리들의 친절한 사업 설명이 시작된다.

“이 게임은요, 2인용이라서 혼자서 두 개 다 못 하는데, 파란색이 보너스가 더 많으니까요. 제가 녹색 하면서 도와 드릴게요!”

이런 친절한 부연설명에도 불구하고 더러는 발길질로 응답해주시는 분도 계셨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자리를 따내면 무료로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막강한 사업권이 바로 이 보글보글 카르텔이었다. 물론, 이것도 세월이 흘러 “100원에 1인”으로 무자비한 게임비 인상정책에 따라 좋은 시절도 끝나게 되었지만.. (우리들의 생존권 보장하라!)

▲ 보너스 화면
우리의 역할: 동전의 은혜로움을 베풀어 주신 어르신께 이렇게 보너스를 많이 획득할 수 있도록 E, X, T, E, N, D 풍선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 지옥문 열리고 다이아몬드 보석 점수 획득
녹색 공룡(1P)은 이 보너스 수치도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녹색 공룡(1P)을 하면서 눈치 없이 계속 보너스 풍선을 먹어대면 그것은 일종의 파트너와의 관계정리를 암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염치 없는 행위는 때로 주먹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 만큼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행동으로 파트너와의 원활한 게임동반자 인생을 위해서는 신사의 예절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그리고, 정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과 아이템을 먹으면 같은 풍선만 중복되어 나오기 때문에 부연 설명을 통해 사과 아이템은 드시지 못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점수의 뒤 자리를 같은 숫자로 맞추는 것이다.

보글보글의 경우 기본적으로 공룡 입에서 풍선(거품)을 쏘아서 적을 가둔 후에 몸통박치기를 하면 터트리면서 과일 아이템이 나오는 어찌 보면 아기자기한 게임시스템이다. 이 기본 공격에 사용하는 거품은 그냥 터트릴 경우 10점씩 올라간다. 그런 거품에 독특한 점수 시스템이 존재했다.

뒤 자리 숫자를 같은 숫자로 맞추면 스테이지 종료될 때 모든 거품들이 과일 아이템으로 변한다는 것이다(이 시기에 바나나 한 송이는 무지막지하게 비쌌다. 지금의 바나나 한 묶음만한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인애플 역시 엄청 비싼 과일에 속했었고, TV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부잣집 도련님들의 호화로운 기호식품이었다).

생각해보면 눈 앞에 펼쳐지는 과일 세상에 세상 시름 잠시 잊고 눈으로나마 호강할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이었다. 50원짜리 동전 하나로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보글보글 개발자 분들에게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또 하나 보글보글만의 특이한 시스템으로는 생명을 한 마리도 잃지 않고 게임을 계속 하면 일명 지옥문이라 하는 게이트가 열린다는 것이다. 지옥문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는 온통 다이아몬드 보석 천지로 급격한 점수를 획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물론 100만점 금지 제한 조항에도 금방 가까워지게 된다. 또한, 50판까지 한 마리도 죽지 않고 게임을 진행하면 70판으로 자동으로 갈 수 있는 ‘인생 한 방’ 아이템도 존재했으며, 지팡이 타고 몇 판을 뛰어 넘거나 물약(병)을 먹으면 무지개가 핀다던가 하는 100만점에 급격히 가까워 질 수 있는 시스템은 여기저기에 있었다(제작사와 오락실 협회와 모종의 밀약이 있었던 게 아닐까?).

■ 오락실 드문 여성 유저들 편입 일등공신
이처럼 보글보글은 아기자기한 컨셉과 독특한 점수제 시스템 등으로 그 당시 오락실에 드물었던 여성 유저를 편입시켰다. 누구나 한 번 잡으면 최소한 50원 전기세 이상은 뽑아냈다는 느낌이 들도록 돈이 아깝지 않은 게임으로 인식되었다.

이 게임이 한참 유행을 타고 인기를 얻을 무렵 아마도 전국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서는 오락실의 유해성을 앞세워 탄압이 일기 시작한 때가 아닌가 한다. 필자의 학교에서도 오락실에 가는 불량? 청소년이라 하기에는 좀 어린 아이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실시했고, 이것은 비겁하게도 반 아이들의 무기명 제보 식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오락실이 불량 청소년들에게 편안히 느껴지는 안락한 휴양의 장소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따지고 보면 불량 청소년이 모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불량 청소년이 되도록 방치하고 바로 잡아주지 못 한 학교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필자가 이렇게 분개하는 이유는 바로 그 희생양 중에 한 명이 바로 필자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부산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었는데, 전학 와서 친구들과 빨리 친해지기를 바라는 우리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같이 동참시켜주자는 단순하고 순수한 의도로 오락실에 함께 가는 것으로 친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선생님께서 “어제 오락실 간 사람 다 알고 있으니 자진해서 손 들어라” 하는 믿기지도 않는 얘기에 부산에서 전학 온 그 친구는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의 블랙박스나 CCTV도 활성화 되어 있지 않은 시절에 선생님이 그것을 알 수 있을 리 없을 텐데... 너무나 정직하게 고발정신이 투철했던 그 친구는 본인의 숭고한 희생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쟤도 같이 갔었데요”라고 우리를 한 명씩 손가락으로 지명했다.

그 뒤에 얘기는 언제나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을 만큼 엄청난 ‘사랑의 매’를 맞은 기억이 난다. 다른 친구들은 10대 정도 맞았지만 필자는 그 몇 배를 맞아야만 했다. 그 전날 필자가 이렇게 맞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한 얘기 덕분에..

“아 요즘에도 오락실 가는 애들이 있나?“

평소에 위선적인 가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감추던 것이 거짓으로 들통나는 순간 얼마나 사회적인 체면과 위신에 타격을 받는지 몸으로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보글보글 게임을 생각하면 항상 그 뒤는 씁쓸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p.s :부산에서 전학 왔던 그 친구야. 이 글 보면 지난 날 다 잊고..
그래도 나한테는 연락하지 말아라!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gamecus.ceo@gmail.com

큐씨보이는?
‘게임별곡’을 집필하는 한 큐씨보이는 5세에 게임에 입문한 게임 경력 30년째 개발자다. 스스로 ‘감히’ 최근 30년 안에 게임들은 웬만한 게임을 다 해보았다고 자부하는 열혈 게임마니아다.

그는 직장인 개발자 생활 12년을 정리하고 현재 제주도에 은신 거주 중이다. 취미로 몰래 게임 개발을 한다.하루 중 반은 게임을 하며, 반은 콜라를 마시는데 할애하고 있다. 더불어 콜라 경력도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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