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EA스포츠’서 개발...종합 겨울 스포츠 게임 대명사

지금은 지구행성 최강의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불과 200년 전에는 아주 힘없고 나약한 식민지에 불과했다. 지금의 미국이 있기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시발점에 해당하는 독립전쟁에 영향을 끼친 사건 중에 하나라고 한다면, 1775년 3월 23일 버지아니주 리치먼드에서 열린 민중대회의 결의안이 아닐까 한다. 당시 미국의 독립혁명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의 연설 중 지금까지도 유명한 대사가 바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이다.

패트릭 헨리
다행히 그분의 초상화는 미국 법률 17조 1절 105항에 따른 미합중국 연방정부의 저작물로,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에 속한다(모든 저작권법 하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확인).

■ 스키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흔히 미국의 3대 연설문이라고 하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으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과 함께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평화 행진 연설’이 있다. 그리고 남은 하나가 바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친 페트릭 헨리의 연설문이다.

자료에 따라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어찌됐건 미국사회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슬로건은 꽤나 유명한 문장이다. 이렇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했을 때 게임 회사에서는 거기에 착안하여 ‘SKI OR DIE’라고 이름을 지었나 보다.

한국에는 ‘스키냐 죽음이냐’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던 게임이다. 다만 어감 상 ‘스키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한국에 소개됐던 이름 ‘스키냐 죽음이냐’는 마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외친 햄릿의 대사 같지 않은가? 아마도 이 게임을 출시될 때 국내 번역가가 햄릿을 읽었었나 보다.

필자는 ‘XT’컴퓨터에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를 사용하던 시절에 했던 게임인데, 처음 할 때는 흑백이었다가 나중에 컬러로 된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운드 역시 PC 스피커로 비프음으로 들었을 때는 사실 조금 짜증나는 음악이었는데, 후에 ADLIB 사운드 카드에서 들려오는 중후한 전자기타음이라니..

이 게임은 겨울 스포츠의 특성상 하얀 눈 배경이 많아서 화면 색감이 조금 단조로울 것 같지만, 그래도 겨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느낌이다.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스키라는 종목은 최근에야 많이들 타러 다니고 겨울 스포츠로 인기가 있지만, 필자가 이 게임을 하던 시절만 해도 서민들에게 스키라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하다 못해 강원도 대관령만 넘기에도 여러모로 힘든 시절이었다.

따지고 보면 골프라는 운동도 예전만큼 그렇게 귀족 스포츠로 군림하는 것 같지는 않고, 승마나 그밖의 여러 가지 고급 스포츠들이 최근에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비용도 저렴해지고 널리 전파되었다.

[한 번 뛰어볼까! 국가대표?]
스키라는 것도 아침에 강원도에 가서 스키 타고 점심 먹고 저녁에 서울에 도착해서 다음날 출근하는 친구들을 자주 볼 정도로 주위에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 비용도 예전만큼 비싸지도 않고(생각보다 싸다) 스키장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1970~1980년대만 해도 스키라고 하면 운동선수나 돈 많은 부잣집 자녀들이나 즐기는 스포츠인 줄 알았고, 필자와 같은 서민의 자녀들은 그냥 시골 할머니 집 마을 뒤 동산에 올라 쌀 부대 자루를 타고 지금의 눈썰매라 불리는 놀이를 즐기곤 했다. 이 게임은 그 당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스키라는 겨울 스포츠 종목을 14인치 작은 모니터 세상에서 게임으로나마 즐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게임이었다.

사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몇몇 종목을 제외하면 겨울 스포츠 약소국에 속한다. 추운 겨울로는 북유럽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사실상 겨울이 길고 춥고 험난한 나라 중에 하나인데 단지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육성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이 게임이 출시될 당시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그러니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멀게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게임에서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필자가 그 당시 즐겼던 게임 중에 비슷한 느낌으로는 ‘캘리포니아 게임’이 있는데, 특히 시리즈 2편이 재미있었다.

[캘리포니아 게임 2]
‘캘리포니아 게임’은 겨울 스포츠가 주 내용은 아니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뭔가 익스트림 스포츠 내용이라는 점에서 ‘스키냐 죽음이냐’ 게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출시된 시기도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캘리포니아 게임’에서는 그나마 제트스키 타는 게 조금 쉬웠다(게임 소재가 익스트림한 게 아니라 개임 조작이 익스트림하다).
[어떤 종목을 먼저?]
‘스키냐 죽음이냐’ 게임은 게임 이름처럼 스키장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인데, 특이하게도 여러 가지 미니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합 겨울 스포츠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스노보드 할프 파이프(SNOWBOARD HALF-PIPE)’ 게임은 스노보드를 타고 앞으로 가면서 좌우의 계곡으로 올라가 묘기를 부리면 점수를 얻는 게임이다.

주어진 시간 2분 내에 고득점을 내야 이기는 방식인데, 고 난이도 회전 기술을 3번 연속으로 사용하고 성공하면 마치 자신이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것처럼 엄청난 쾌감이 느껴진다(정말 ‘트리플 악셀’을 하면 그런 기분인지는 안 해봐서 모르겠다). 

[튜브 타고 내려오기 - INNETUBE THRASH]
‘인너튜브 쓰래쉬(INNETUBE THRASH)’는 튜브를 타고 내려오면서 포크나 다목적 칼을 들고 상대방 튜브에 바람 구멍을 내는 잔악한 게임이다. 왜 그런 상황이 존재해야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일 수밖에 없는 정말 이 게임 ‘스키냐 죽음이냐’의 이름을 제일 잘 표현해 주는 게임이 아닌가 한다.

그밖에도 ‘아크로 에리얼즈 (ACRO AERIALS)’라든가 ‘다운힐 블리츠(DOWNHILL BLITZ)’, ‘스노볼 블래스트(SNOWBALL BLAST)’ 등 많은 미니 게임들이 있다. 대부분 위험한 장애물이나 묘기를 통해 점수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점수는 심사위원들에게 점수를 받아 통계를 내는 방식인데,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성공했을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눈싸움 FPS – SNOWBALL BLAST]
미니 게임 중 ‘스노볼 블래스트(SNOWBALL BLAST)’는 필자가 제일 좋아했던 모드로 쉽게 말해 눈싸움 게임이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슈팅 게임으로 어떻게 보면 FPS 게임의 시초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한 겨울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을 눈덩이로 맞히는 게임인데, 최근에 출시되면 아동학대로 문제가 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게임 화면 속에서 지나가는 곰이나 스키 타는 사람 등을 맞추면 안 된다(현실 세계에서도 안 된다).

참고로 필자가 어렸을 때는 눈 속에 연탄재나 작은 돌을 넣어서 만들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큰일 날 일이다. 눈덩이 만들 때 눈 속에 아무런 첨가물을 넣지 말고 자연 상태 그대로의 것을 쓰길 바란다.

‘스노볼 블래스트(SNOWBALL BLAST)’ 게임 옆에 있는 ‘다운힐 블리츠(DOWNHILL BLITZ)’는 산꼭대기에서 장애물을 피해 산 아래로 내려오는 스키 게임이다. 장애물을 피하면서 곡예를 하면 점수를 받는 방식으로, 마지막 피시니(Finish)선을 지나는 시간까지 계산해 가며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필자는 중간에 계속 장애물 때문에 잘 안 되서 짜증이 많이 났던 모드다.

■ 필자의 잡소리
이 게임 ‘스키냐 죽음이냐’를 출시한 회사는 놀랍게도 ‘EA’ 이다.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EA’ 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원래 이름 그대로 길게 다 썼는데 원래 이름은 ‘Electronic Arts’ 이다. 게임 회사 로고도 네모 동그라미 세모 등의 도형으로 만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회사이름이 ‘EA’로 줄어들었다. 25~30년 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이미 스포츠 게임을 계속 만들어 온 회사이다.

물론 ‘EA’는 스포츠 외 다른 장르도 많이 출시했고, 또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SW도 많이 출시한 회사다. 아마도 스포츠 게임 개발부문만 엮어서 지금의 ‘EA SPORTS’가 탄생하게 된 것 같은데, 한 가지 장르의 게임 개발 일을 30년 이상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낀다.

[와 이 게임도 벌써 25년 전 게임이라니!]
지금처럼 현란한 그래픽을 자랑하지도 않았고, 실제 선수들의 데이터를 그대로 다 가져다 써서 라이선스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다는 둥,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풍속)까지 계산이 되었다는 등의 사실성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게임 안에서 평소에 즐길 수 없는 고급 스포츠를 직접 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정말 위험한 상황에 자칫 사고를 당할 수도 있지만, 게임 안에서는 10번을 넘어져도 100번을 넘어져도 일어서기 위해서는 단지 키 한번 더 누르면 된다는 것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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