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하나로 조작 ‘알보병’의 게임...오밀조밀 손맛 ‘아비규환의 잔혹’ 물씬

인터넷으로 ‘일빵빵’이라고 검색해보니 꽤 많은 자료가 나와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필자가 ‘일빵빵’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군대의 주특기 번호 중 ‘소총수’를 지칭하는 것인데, 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광고 자료들이 나왔다.

이 ‘일빵빵(100)’이라고 하는 것은 군대에서 주특기에 따른 번호를 부여한 것으로 ‘100’은 ‘소총수’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이것은 굉장히 오래 전의 일이다. 그 사이 4자리 숫자로 바뀌었으나 최근 다시 6자리로 바뀌었다는 소문도 있다. 너무나 자세한 내용은 군사기밀이라 더 이상 공개할 수 없음을 이해바라며..

비교적 최근에 쓰였던 4자리 주특기 번호에 따르면 ‘1111’ 주특기번호는 ‘소총수’이며, ‘1114’ 주특기 번호는 ‘60mm 박격포’, ‘1123’은 ‘106mm 무반동총’ 등 군대에서 맡게 되는 역할에 따라 주특기 번호가 부여된다. 군대에는 온갖 병과와 보직이 존재하는데, 필자도 군대에 가서 그렇게 많은 병과와 주특기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사회에 존재하는 웬만한 직업은 거의 다 있다). 물론 이 주특기 번호도 최근에는 다시 변경됐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과거 ‘일빵빵’이라 지칭되는 ‘소총수’는 육군에서도 기본 중에 기본인 병과다. 군대에 입대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은 거의 대다수가 이 병과-주특기에 속하게 된다. 혹자는 ‘알보병’ 이라고도 하던데, 그 숫자가 많은 만큼 희소성이 덜해서 에픽템이라던가, 유니크템 취급을 받지 못 하는 노말템 정도이다. 그래서 ‘땅개’라 하면 보통 육군에서도 이 보직을 가리키는데, 해군은 ‘물개’라 하여 서로 치고 박고 싸우던 것도 젊은 날의 혈기왕성한 때 일이다. 육군이면 어떻고 해군이면 어떤가? 같이 젊은 시절 고생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다 같은 젊음인데..

필자가 갑자기 군대 얘기를 꺼낸 것은 중학교 시절에 ‘캐논포더’라는 게임을 접해보고 필자가 군대에 가게 되면 역전의 용사처럼 저렇게 군 생활을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군대에는 온갖 직업이 존재한다. 다 총 들고 최전방에서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군대에 가서 알게 되었다. 특히 친하게 지냈던 PX병, 이발병, 보일러병, 테니스병, 정훈병과 친구들은 그 시절 참 힘들어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들이 ‘땡보’라 놀림 받을 만큼 군대에서 놀고먹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친구들도 기본적인 훈련은 다 같이 받고 그래서는 안되지만, 만에 하나 전쟁이 나면 총 들고 나가서 국가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마찬가지다.

■ 아뿔싸! 게임 이름에 속았다
처음에는 게임 이름이 ‘캐논포더’라고 해서 ‘포병’이나 ‘대포’가 게임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게임을 해보니 이건 영락없이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알보병’ 그 자체였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에 배운 영어라고는 ‘Hi, Jane?’ 정도의 간단한 인사말 정도였는데, 게임의 이름인 ‘Cannon Fodder’에서 ‘Fodder’이라는 단어가 ‘사료, 먹이, ~의 밥’이라는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다. 즉, 이 게임의 이름을 직역하자면, ‘대포의 먹이’ 정도가 되겠다(무식한 것이 죄다).

실제 영어사전에는 ‘총알받이’라고 되어 있다. 말 그대로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군인들은 추풍낙엽(秋風落葉)과 같이 적의 포화에 쓰러지는 보병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꽤나 슬픈 작품이다(군인정신이 나약하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정신이 강해도 맨 몸으로 포탄은 못 이긴다).

[캐논포더? 포병 게임인가?]
필자도 군 시절에 기갑부대에 견학을 갈 일이 있었는데, 기갑부대의 전차(K-1 Tank)를 보고 그 앞에서 서서 한 동안 말 없이 사색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이런 놈들이랑 싸우면 어떻게 이기지?’ 하는 생각에 소총 하나 달랑 들고 전장에 나설 운명을 생각하니 온몸에 힘이 쫙 빠질 만큼 일개 보병의 무력함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 전차를 향해 맨몸으로 돌격하는 무모한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상대비교에 의한 좌절감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전쟁의 꽃이자 결국 점령지에 깃발을 꽂는 것은 보병이다’라는 말처럼 오늘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보직과 주특기에 상관없이 모두가 고마운 존재들이다(2년 길지만 또 지나보면 금방 갑니다. 그 안에서 최대한 멋지게 살다 나오기를..).

■ 막 하는 게임이 아니다 "순간 실수하면 무덤 직행"
게임을 시작하면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간달프가 마차를 타고 폭죽이라도 쏴줄 것 같은 호빗 마을 같이 경치 좋은 전원의 풍경이 펼쳐지지만, 저 곳은 단순한 언덕이 아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저 언덕에 전우의 무덤이 하나씩 늘어간다.

[아직은 묘가 하나도 없다.]
줄줄이 열 맞춰서 걸어 나오는 주인공들.. 얼핏 보기에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의 모습만 보고 밝고 경쾌한 게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여기저기 피와 살이 터지는 아비규환의 잔혹한 게임이다. 게임의 난이도 또한 낮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순간 판단을 실수하면 바로 무덤으로 직행이다. 턴 방식 게임처럼 조용히 사색하면서 한 수씩 두는 게임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게임이다 보니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우스 한 번 잘못 움직였다가는 가끔 부대 전체가 몰살당하기도 한다. 스테이지에 따라 재도전에 이은 재도전을 통해 간신히 클리어하는 어려운 곳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단순하거나 쉽게만 진행되었다면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 중간 중간에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한 난이도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도전욕구를 자아낸다. 최근의 스마트 폰 게임들이 집중하는 ‘중독성’이 바로 사람들의 도전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아무런 생각 없이 돌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 생각해서 미리 세운 계획에 따라 이동 경로와 공격 방법을 정해서 움직이게 된다. 물론 내키는 대로 막 해도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지만, 스테이지에 따라 심사숙고해서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쉽게 클리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캐릭터가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횡 스크롤인가 종 스크롤인가를 나누던 시기에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전체 맵 속에서 길 찾기 같은 정글의 미로에서 헤매다 보면 액션 아케이드 게임 속에 퍼즐적인 요소가 도입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레벨을 어떻게 이렇게 잘 구성했나 싶을 정도로 잘 만든 게임이다.

[포성이 울리고 한 송이 꽃이 피었네. 평화의 사신처럼..]
처음 한두 판은 쉽게 깰 수 있지만, 스테이지가 거듭될수록 난이도는 어려워진다. 어렵다고는 하지만, 필자도 엔딩을 몇 번이나 봤기 때문에 극악의 난이도까지는 아닌 듯하다. 최근 이슈가 됐었던 ‘플래피 버드(Flappy Bird)’ 정도의 난이도는 아닌 듯 하다.

■  오밀조밀함이나 손맛 짜릿, 속 찬 게임 바로 딱
이 게임은 출시 당시에도 최상의 그래픽이라든가, 섬세한 묘사 같은 것을 특장점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 당시에 흔했던 VGA 256 컬러이지만, 해상도는 상당히 낮았다. 그 당시 모든 게임들이 이렇게 해상도가 낮았던 것도 아니고 ‘캐논포더’ 게임이 출시됐던 당시에도 이 게임보다 고해상도를 지원하는 게임들은 많이 있었다.

처음 게임을 해보고 낮은 해상도에 기대감도 낮았지만, 게임을 하다 보면 사실 높은 해상도나 미려하고 섬세한 그래픽은 부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도 있지만, 그 반대의 말도 많이 있다.

[그 당시에도.. 모자란 그래픽]
외형의 겉모습이야 잠시뿐이고 오래가는 것은 결국 내실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게임은 바로 딱 그런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게임 시스템의 오밀조밀함이나 손맛이 느껴지는 타격감은 그 당시 출시됐던 여타의 게임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요소였다. ‘전략 시뮬레이션’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거의 아케이드 게임에 가까운 내용이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마구잡이로 진행하는 게임도 아니었다. 게임 내에서 진급 이벤트도 존재하였고, 이것은 생존해서 귀환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에 ‘12시 방향 정찰 보내러 간 SCV 한대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마인드로는 게임을 진행하기 힘들다(물론, SCV도 끝까지 살아서 돌아오면 좋지만..).

무기 시스템 또한 단순히 소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션에 따라서 수류탄이나 로켓포 등을 쏠 수 있다. 물론 개수에 제한이 있어서 이것 역시 마구잡이로 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잘 생각해서 쏴야 한다. 게임의 내용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위험한 임무를 부여받아 결국 완수해내고 무사 귀환하는 병사들의 전투를 그리고 있지만, 게임의 진행은 마우스 하나로 가능할 정도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전사한 전우들은 언덕에 묘비로 남게 되고, 저 멀리 신병들이 다시 줄줄이 줄을 이어 입소하고 있다. (아련한 광경이다..) 아까 보였던 꽃은 바로 이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꽃이다.

이 게임은 PC 도스 버전 외에도 아미가, 아타리, 제네시스, 슈퍼 닌텐도, 게임보이, 3DO, PSP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되었다. 출시된 플랫폼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의 인기가 있었다는 증거다. 필자는 PC 도스 버전으로 게임을 했는데, 언젠가 우연찮게 아미가 버전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사운드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PC 버전과는 확연히 다른 월등한 사운드를 지원하고 있다.

그 당시 PC는 ‘Adlib’ 사운드 카드가 막 쓰이기 시작할 무렵이고 잘해야 ‘MIDI’ 음원을 지원하네 마네로 시끄러웠던 시절에 아미가 버전에서는 보컬(노래)이 흘러나왔다. 지금에서는 ‘아미가’ 역시 추억의 기종이다. 21세기인 요즘에도 ‘아미가’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주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기종이 아닌 것이 아쉽다. 이미 ‘아미가’는 1987년에 마우스 입력장치와 ‘GUI’ 개념을 도입했으며, 3D 그래픽이 가능했다. 그리고 무려 4096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 당시 IBM-PC 시장의 상황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만한 사양이다. 어쨌든.. 그 당시 ‘아미가’용으로 출시된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그래픽과 사운드는 보장할 수 있었다.

■ 필자의 잡소리
시리즈 1편을 접한 이후로 그날부터 쉬지 않고 시리즈 2편의 엔딩까지 달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낮에는 학교에서 몇 달간 졸음과 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함께...

[언덕에 묘비가 늘어가고 있다.]
이 게임은 오랜 기간 상당히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이고, 마우스 하나만 가지고도 게임을 할 수 있었을 만큼 조작이 단순했다. 지금의 원 터치 진행 방식의 게임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스마트 폰 게임에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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