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만에 E.T 졸속 개발 촉발...스마트폰 게임 시대서 ‘데자뷰’ ?

1980년대 반에서 좀 산다 싶은 아이들은 집집마다 디지털 장난감(오락기)이 있었다. 이 친구들의 인기란 지금의 한류스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간곡하게 애원하고 간절하게 요청하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 한 판 할 수 있어도 너무나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당시 친구들 집에 제일 많았던 게임기는 여러 업체에서 만들어서 이름이 전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중에서 TV광고는 물론 신문이나 잡지 등 활발한 광고를 했던 대우 ‘재믹스’가 기억난다.

■ 중산층 아이들의 디지털 장난감

부럽다 이놈들아!
팩을 꼽아서 하는 게임기를 가질 수 없었던 필자와 같은 서민층은 한때 유행했다가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을 찾기 힘든 ‘다마고치’ 같이 생긴 미니 게임기를 1년 내내 애원해야 겨우 한 대 가질 수 있었다.

그때 당시 가격이 6000원부터 1만5000원 정도면 1개 게임이 들어있는 미니 게임기를 살 수 있었다. 2만원 넘는 것들은 좀 더 그럴싸한 게임들이 있었다. 필자가 1년 내내 애걸복걸해서 손에 넣은 것은 1만2000원짜리 슈팅 게임이었다(하루 종일 똑 같은 패턴의 똑 같은 적기만 나오지만 이나마도 인기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특급 아이템이었다). 닌텐도의 게임보이는 한참 후에야 구경할 수 있었던 물건이었다.

이런 디지털 장난감을 소유할 수 없었던 궁핍한 친구들은 태엽으로 작동하는 장난감을 갖고 다녔다. 그 중에는 웬만한 미니 디지털 게임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도 있다. 야구 게임이나 수박 게임기 그리고 제일 인기 많았던 자동차 경주 게임들이 있었다.

■ 6개월만에 ‘졸작’ E.T 개발 ‘불매운동’ 게임시장 초토화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어느덧 집집마다 디지털 게임기 정도는 구비하고 살만하게 되었을 때 8비트 게임기들이 인기를 얻었다(그래도 필자는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1983년 필자가 아직 꼬꼬마 시절이던 그 당시 지구 행성 게임계에 난리법석한 일이 있었으니, 이를 두고 사람들은 ‘아타리 쇼크’라 부른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쇼크라고 했을까? 쇼크가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데, ‘쇼크사(Shock + 사(死)’라 불리는 상당히 글로벌한 듯 하지만 기이한 명칭의 사인(死因)도 있지 않은가? ‘쇼크사’ 하면 최근 침체기에 빠져 더 이상 다음 레벨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캔크사’ 게임이 생각난다.

여기서 얘기하는 ‘아타리 쇼크’란 게임 소프트웨어의 과잉 공급에 따라 질적인 품질 수준을 관리하지 못해 전체적인 품질 하락으로 소비자의 흥미가 광속의 속도로 떨어져 단번에 시장 수요가 실종되는 현상을 뜻한다. 이번 편에서는 그 비운의 주인공 ‘아타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물론 필자와 필자 친구들은 실물 아타리를 소유해본 적이 없었다.

아타리 게임기
아타리 게임기 얘기는 워낙 유명한 얘기이므로 굳이 필자가 다시 꺼낼 필요는 없을 듯 하지만, 갑자기 아타리 쇼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최근에 스마트폰 게임 시장을 보면서 ‘21세기 아타리 쇼크’가 재발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닌텐도 타산지석 ‘플랫폼에 대한 품질 엄격제어’ 승자
스마트폰 게임시대, 3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시들 위기

충격!의 원조
‘아타리 쇼크’ 사건에 중심에 있는 E.T 게임이다. 궁금하신 분은 E.T 게임과 아타리에 대해 찾아보시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사막에 묻었다는 얘기와 현재는 그것을 찾아다니며 발굴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 등). 무려 2500만 달러(원 아님)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E.T의 판권을 사들이는 패기까지는 좋았으나, 패기가 너무 넘쳐 개발할 자금을 남겨둘 생각을 못한 것이 문제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개발 기간으로 잡은 시간은 신병 훈련소 입소기간인 6주(이것도 요새는 줄지 않았나?)뿐이었다.

당연히 졸작(졸업작품 아님) 오브 졸작 걸출한 졸작이 되어버린 E.T 게임을 영화와 게임 광고 사진만 보고 기대감에 부풀어 주머니돈 털어 사들인 유저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유례없는 환불소동과 악평에 이은 불매운동으로 불길이 번져나갔다.

물론 E.T 게임 하나만으로 그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니고 그 동안 쌓이고 쌓인 것들이 언젠가는 터질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방아쇠 역할을 한 게 E.T 게임일 뿐이라 다소 억울함을 가질 수도 있겠다. 질적으로 떨어지는 게임들이 범람하던 시절이었지만 초기에는 그런대로 잘 팔려나가서 위기감을 느끼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의 한국영화도 거듭해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아마도 대충 만들어서 돈 벌 목적으로 당장에 수익에 눈이 어두워 질적으로 떨어지는 영화만 계속 만들었다면 한국 영화 시장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게임 시장도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그 신기함이 유지되어 출시만 하면 잘 팔려나갔지만, 어느 정도 안정기에 이르자 고객들은 자신이 지불한 돈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만한 돈은 과연 지불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부터 시작한 사건은 결국 게임 시장이 초토화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역사적인 사건을 ‘아타리 쇼크’라 부르니 한번쯤 역사 공부도 할 겸 찾아보기 바란다.

■ 후발주자 닌텐도 품질 인증제도 ‘타산지석’
게임업계에는 지구멸망이 차라리 나을 정도의 큰 타격을 입었지만, 후발주자였던 닌텐도는 이를 눈여겨 보고 타산지석의 예로 삼았다. 닌텐도 역시 아타리와 같은 수순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기에 닌텐도가 취한 정책은 바로 플랫폼에 대한 적정 품질 제어라는 카드였다. 소위 Check List라 볼 수 있는 것으로 이 정책은 비교적 쓸 만하게 여겨져 후에 소니와 MS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서드파티라 하는 게임기 제작 업체 이외의 게임 개발사들은 앞에서 정해진 Check List 항목을 준수해야 했다. 일례로 MS의 X-Box 게임기에 게임을 출시하려면 완성된 게임에 대해 MS의 Check List 인 TCR(Technical Certification Requirements)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 절차는 굉장히 까다롭기로 소문나 있고 검수과정에서 게임이 다운되는 버그라도 있으면 당연히 출시는 불가능하다. 이 TCR이라는 내용에는 게임 데이터 로딩 시간 및 UI 위치 정보나 버튼의 디자인과 그 버튼들의 기능적인 부분들은 물론 에러처리에 대한 방법과 메시지 표시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는 항목이 수 백개 이상 된다. 비슷한 것을 소니에서는 TRC(Technical Requirements Checklist))라 부른다.

이렇게 까다롭고 엄격하게 게임 소프트웨어에 대한 품질관리를 한 결과 아타리 이후 후발 콘솔게임 업체들이 제2의 아타리 쇼크를 겪는 것은 아직까지 나타나고 있지 않다. 물론 간혹 돈 주고 사기 정말 아까운 게임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게임 콘텐츠 자체의 재미적인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취향의 차이에 따른 경우이지 예전의 아타리 몰락과 같은 기준 함량 미달의 게임들은 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 21세기서 보는 범람하는 스마트폰 카피게임
최근 스마트폰 게임들이 인기를 얻고 매출 순위에 랭크되기도 하지만, 그 인기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다. 짧으면 3개월도 버티지 못 하고 길어도 6개월이면 시들해지는 것이다. 1년 이상 장수 하는 게임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필자는 아주 오래 전에 피처폰(스마트폰 이전 시대) 2D 게임 개발업체에서 게임을 개발한 적이 있었고 그나마 최근에는 iOS, Android 게임 개발 업체에서 게임을 개발한 적도 있다. 물론 현재는 가내 수공업으로 집에서 개발한다(돈 주는 사람이 없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데 그리 오랜 기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보통 아이폰, 안드로이드 기준의 미니 게임 같은 경우 짧으면 2~3개월, 길어야 6~8개월 정도의 개발기간을 준다. 물론 1년 이상 공들여 게임을 개발하는 모바일 게임 개발업체도 있다.

하지만, 자금 사정이 그나마 괜찮은 몇몇 상위의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영세한 업체에서 1년의 개발기간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 개발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PC온라인 게임 개발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의 소액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돈조차도 영세한 업체에서는 정말 피 같은 돈이기 때문이다.

기획은 사치..영혼을 담은 게임 개발 볼 수 없어 위기
예전에 해본 듯한 느낌의 게임들 쏟아져 나오기 시작

그러다 보니 빨리 만들어 런칭하고 다운로드 수를 단기간에 늘려 수익을 뽑고 금방 시들해지면 다음 게임을 빨리 만들고 다시 시들해지고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영혼을 담은 게임을 개발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빨리빨리 개발해서 빨리 수익 뽑고 다시 새로운 게임을 만들다 보니 게임 시스템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획 따위는 사치일 수밖에 없고, 어디선가 본 듯한 예전에 해본 듯한 느낌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몇몇 게임은 원판 개발업체에 라이선스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험하게 똑 같은 게임도 많이 있다. 최근 스마트 폰 게임 시장에 표절 시비가 붙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아마 지금부터가 ‘21세기 아타리 쇼크’가 오는 계기가 되는 시작점일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수준 이하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면 언젠가는 게임 유저들이 실증을 느끼고 지치게 되는 때가 오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때는 콘솔 게임이나 PC 게임 시장에서 반겨 주겠지만..

반대로 최근에 인기를 얻고 수익을 내는 게임 중에 몇몇은 정말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해서 개발한 흔적이 보이고 서비스 유지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게임들이 있는데, 그런 게임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한다.

■ 필자의 잡소리
콘솔 게임 업체들이 앞선 실패사례를 본보기로 극복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때 스마트폰 게임은 사실상 앱 스토어 기준만 통과하면 어렵지 않게 런칭이 가능하다. 실제로 필자가 아이폰용 게임을 몇 개 런칭했을 때도 애플의 리뷰(심사)는 특정 광고 배너의 위치나 버튼의 위치 등에 문제가 있을 때 Reject(런칭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큰 어려움 없이 런칭이 가능했다.

필자가 1주일만에 만든(만들었다고 하기에도 너무나 부끄러운) 게임도 바로 심사 뒤에 앱 스토어에 런칭되었다. 안드로이드 진영인 구글 스토어도 마찬가지로 그리 어렵지 않게 런칭이 되고 있다. 필자는 이 점이 염려스러운 것이다.

물론 국내 게임의 경우 국내 설정법상 제한 기준이 있지만, 엄격한 품질 관리라는 측면과는 많이 떨어져 있다. 게임에서 다루는 소재의 제한이 있을 뿐 UI/UX 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품질 관리에 대한 부분은 심사 기준이나 제한 요소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출시가 가능하고 수익 창출이 가능한 지금의 앱 스토어 시장이 장점도 있는 반면에 질적으로 떨어지는 소프트웨어들의 범람이 일으킬 장래의 위험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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