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첫 출시, 이후 30년 10여종 ‘장수 타이틀’ 우뚝
하늘을 휙휙 날아다니며 펑~하고 연막탄을 터트리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늘 천장 속에 숨어있다가 주인이 명령하면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충직한? 닌자들의 영화나 만화를 보고 자란 필자에게 어린 시절 닌자는 “나도 한 번?” 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고, 실제로도 많은 닌자 무기를 만들어냈던 경력이 있다.
■ 닌자가 되고 싶었던 아이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필자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실의 출입문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교탁도 나무로 되어 있었다(지금도 그런가?). 교실 출입문과 교탁은 견습 닌자들에게 너무나 유혹적인 타겟이었고 여기에 닌자 표창을 던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기도문이나 불경을 외워야 할 만큼 강력하고 매혹적인 그 자태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하지만, 더 이상 쑥과 마늘을 먹는 인내를 감당할 수 없어 동굴을 뛰쳐나갔던 호랑이처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느새 우리는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출입문이고 교탁이고 눈에 보이는 나무판이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여지없이 표창을 날려댔고 빡! 빡! 소리 내며 박히는 표창은 내 안에 있던 그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나도 모르게 표창에 영혼을 팔았던 것처럼 우리들의 정신 상태는 그러했다.
어느 날부터 이상하게 무언가에 찍힌 듯한 자국이 나 있는 출입문을 발견한 선생님이 주모자 검거에 나서기 전까지는 무척이나 행복한 닌자 라이프였지만, 그 뒤에는 엄청난 고문과 체벌이 이루어졌다. 물론 필자가 제일 많이 맞았음은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엉덩이를 몽둥이로 수 십대를 맞으면서도 필자는 ‘이것은 닌자가 적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 비밀을 발설해서는 안돼’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입을 꾹 다물고 참아냈다(하지만, 진짜 아팠다. 닌자는 정말 강인한 정신력이 없으면 되기 힘든 것이다).
당연히 그 동안 제조했던 필자표 닌자 표창은 전부 압수당했고, 견습 닌자(구매고객)들의 부모님들이 소환 당했으며, 그 뒤에 대규모의 환불소송이 이어져 한 동안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던 악몽 같은 기억이 난다. 결국 필자는 닌자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한 동안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방황을 하던 차에 정신과 멘탈의 치유장소(오락실)에서 새로운 닌자의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시노비’ 게임이다.
■ 새로운 닌자의 꿈이 나타났다.
시노비 게임은 오락실에서도 많은 닌자 지망생들이 아낌없이 동전을 던져 주었지만, PC용으로도 널리 전파되었다. XT-허큘리스 조합의 원시 PC환경 시절에 암암리에 전파되어 너도 나도 시노비 게임을 PC로도 즐길 수 있었으나, “그러라고 사 준 컴퓨터가 아닐텐데?” 하는 부모님의 따가운 눈총이 버겁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컴퓨터 학원 등록비는 일단 용돈으로 내는 것이 아니었으니, 용돈은 고스란히 남겨둘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컴퓨터 학원은 게임을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시간 정도의 수업을 받고 나머지 시간은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해 보거나 다음 날 배울 것을 연습해 보라고 만든 연습실에서 게임을 했던 것이다.
아마 다녔던 학원 중에서 유일하게 집에 빨리 가고 싶지 않고 되도록 오래 머물고 싶었던 학원이 컴퓨터 학원이었을 것이다. 학원에서는 연습실에서 게임을 한다고 해도 사실 중요한 고객(돈줄)이었던 우리에게 함부로 뭐라고 하지 못했다. 우리들 또한 그런 어른들의 비즈니스 세계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고객)는 학원에 돈을 내고 학원은 나에게 게임을 할 여건을 마련해 주고” 하는 상부상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Win-Win 전략이었다.
시노비 게임은 이 게임을 시초로 1987년 ‘시노비(Shinobi)’라는 타이틀로 출시되었다. 그 뒤로도 줄줄이 타이틀을 출시하여 무려 10여종이 넘는 타이틀을 출시하였다.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꾸준히 출시하여 무려 30년에 가까운 장수 타이틀 시리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여전히 기억에 남고 제일 재미있게 즐겼으며 ‘시노비’ 하면 떠오르는 게임은 바로 이 최초의 시노비(1987)게임 이다.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참신한 아이디어도 돋보였으며, 게임 진행 방식 역시 무리하게 번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은 쉽고도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실제로 표창 던지기 보너스 스테이지는 단 한 명의 닌자도 놓쳐서는 안 되는 긴장감 있는 게임 내 게임이었다. ‘보너스’ 스테이지이기 때문에 게임 진행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전원 클리어를 하지 못 하면 게임 내내 찜찜한 기분이 들게 했다. 전원 클리어(All Clear)를 하면 위에서 부채가 살랑살랑 내려오면 축하를 해 준다. 진짜 닌자의 “혼”이 있는 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바로 이 보너스 스테이지 전원 클리어에 달려있었다.
■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명작의 멋을 살리지 못 하고..
하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아스트랄함을 느끼게 하는 게임 컨셉으로 기존의 원조 시노비 팬들에게 ‘닌자’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영점을 다른 데 잘못 잡은 게 아닌가? 하는 당혹스러움과 아쉬운 느낌을 들게 하기도 했다.
물론 필자만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 당시 팩을 구매했던 필자의 친구들 역시 바로 중고팩으로 팔아버리고 다른 게임으로 갈아탔다. 원조 시노비 게임만큼 소장할 만큼의 가치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반대로 너무나 재미있다고 한 친구도 있었지만, 그 친구도 이 게임 보다는 ‘닌자 가이덴’ 게임을 더 좋아했었다.
■ 닌자를 소재로 한 영화, 게임들
시노비 게임 외에도 닌자를 소재로 한 게임이나 영화는 많이 출시되었다. 당연히 닌자라는 소재가 시노비 게임에서 만들어낸 고유한 것이 아니므로 여기저기서 쓴다고 이상할 것은 없지만, 때로는 그 멋을 살리지 못 하고 망작이 된 작품들도 많이 있었다.
한때 오락실에서 나름대로의 인기를 구가하던 ‘닌자 가이덴’ 게임. 최근까지도 계속 시리즈화 되어 출시되었다.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올드 게이머들도 많이 구매하여 즐기고 있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타이틀이다.
도대체 몇 개의 단어를 합친 네이밍인가 싶은 이 게임 역시 오락실에서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명작이다. 4인용을 지원하는 흔치 않은 게임이었다. 당시 오락실은 1P(1인용)게임이 대다수였고 2인용 게임도 많이 출시되었으나, 이렇게 오락기계 2대를 이어 붙여서 4인용까지 지원하는 게임은 많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 4인용 게임들은 서로 잘 모르는 4명이 게임을 하기에 뭔가 쑥스러웠는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친구 4명이 한 번에 하지 않는 이상 4인 플레이를 보기는 쉽지 않아서인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필자가 제일 좋아했던 닌자 키즈 4인용. 4명이 함께 하면 두려울 게 없도다. 인술(忍術)의 극치를 보여주는 게임으로 정말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연출력에 반했던 게임이다. 특히 주문을 외울 때 음성과 포즈를 따라하는 게 한 때 유행이기도 했다(물론 필자의 학교에서만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참고로 필자는 빨간 닌자(화염 공격)를 제일 좋아했다.
앞에 소개한 게임 외에도 수 없이 많은 닌자 소재 게임들이 있지만, 필자의 기억에 제일 많이 남아 있는 게임들만 소개했다. 위 게임들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제대로 다루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그 외에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최신 기기에 가까울수록 최신 그래픽을 선보이지만, 재미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단지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물론 이 게임이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화려한 그래픽과 연출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게임들을 볼 때마다 최신 기기의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냈다 같은 광고를 하면서도 정작 내용의 깊이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닌자를 소재로 한 게임 중에서 제일 핫(HOT)한 게임 중에 하나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멋진 게임도 있다. 만약 공공장소에서 주위의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이 게임을 당당히 즐길 수 있다면 당신은 “용자”라 불려도 좋다.
얼핏 “어른들의 게임”으로 오해 받을 수 있지만, 사실 단순한 시각적 보상만을 제공하는 게임은 아니다(실제로 18금 게임이긴 하지만). 맵 중에 “오징어 소녀”가 침략했던 해안가 풍경이 떠오르는 맵도 있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참 좋은 게임이다. 참 잘 만든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컷 신 등에서 낯뜨거움을 감내하기 어려운 게이머들은 쉽게 손을 대기 어려운 게임이기도 하다.
비슷한 퀄리티의 그래픽으로 드퀘나 파판 풍의 RPG게임이나 하나 만들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게임이다. 그만큼 게임 내 그래픽은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아침 출근 시간 지하철 2호선 사당에서 강남까지 가는 구간에서 부위별 파손이 되는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스킵 버튼을(스킨 연타 게임인가?) ‘진삼국무쌍’ 시리지를 해 본 게이머라면 쉽게 적응할 수 있고 재미 또한 대단하다. 게다가 교복, 속옷 등으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속옷이 무려 98개.. 더 이상 언급은 자제하겠다.
■ 필자의 잡소리
닌자라는 소재는 분명 일본의 고유한 것이지만,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에서부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좋은 캐릭터다. 게임은 물론이고 영화로도 다수가 제작되어 “닌자” 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어떤 느낌의 캐릭터인지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때로는 악역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선의에 편에 서서 정의를 수호하기도 하며 때로는 단순한 수하가 되어 대사 한 마디 없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자국의 역사적인 내용을 현세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다듬고 가공하여 훌륭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반대로 한국의 그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아쉽게도 한국의 고유한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캐릭터는 거의 없다. 이제 겨우 김치나 불고기, 한복과 같은 것들이 TV 드라마의 힘을 업고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기간 다듬고 간직하여 후세에 널리 전해줄 수 있는 멋진 캐릭터들을 많이 발굴했으면 좋겠다.
게임을 할 때는 그저 재미있기만 했고, 재미만 있으면 그게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에 이르니 그 재미있는 것들이 모두 옆 나라 일본의 것이 대다수였고 정작 우리가 간직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