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라이트의 새 프로젝트 ‘인형의 집’, 세계적인 성공 거둬

[SIMCITY 3000]
https://imgur.com/r/SimCity/sFfoh3g

윌 라이트가 새로운 인형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MAXIS를 인수한 EA에서는 윌 라이트가 새로운 심시티 프로젝트에 몰입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미 윌 라이트의 마음은 심시티에서 떠나 있었다. 심시티 3000의 기본적인 시스템은 거의 정리가 완료된 상태였고, 윌 라이트 스스로도 굳이 자신이 심시티 3000에 투입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시티 3000 개발은 지금까지 해놓은 작업에서 변경된 부분만 작업하면 되는 일만 남아있었다. 3D에서 2D(정확히는 2.5D)로 변화 된 그래픽적인 부분의 처리와 몇몇 이벤트 추가에 대한 문제만 남아있는 상태였기에, 당장 윌 라이트가 없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정작 문제는 EA와 윌 라이트의 관계였다. EA입장에서는 거액을 주고 MAXIS의 대표 게임인 심시티의 가능성에 투자한 것이었고 심시티 게임의 핵심 개발자는 윌 라이트였다. 그런데 그 심시티의 핵심인 윌 라이트가 심시티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액을 주고 산 핵심 인물이 지금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EA는 일단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심시티 3000 출시가 있었다. 심시티 3000은 이미 몇 년이나 개발기간이 소요됐고 아직도 출시는 불투명한 상태였다. 엉망진창이 되었던 내부 로직은 싹 걷어내고 그래픽도 새롭게 다시 작업해, 처음 개발된 3D 구조의 심시티는 전부 제거했다. 이렇게 EA의 일정관리와 개발 방법에 따라 심시티 3000은 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출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심시티 3000의 개발 과정은 기존의 EA에서 행했던 강압적인 일정관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MAXIS는 심시티 3000을 개발하느라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고자 무리하게 출시일정을 앞당겨 잡았지만 EA에서는 제대로 된 제품을 출시하라며 출시 일정을 연기해줬던 것이다. EA 입장에서는 최대한의 배려와 포용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사들인 MAXIS가 심시티 3000 마저 흥행에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치명타를 입고 엄청난 자금과 함께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EA다운 비즈니스 방식이었지만, 굳이 고깝게 보지 않는다고 한다면 EA 입장에서는 MAXIS를 살리기 위해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해 최고의 게임상은 심시티 3000이 수상했고 판매 1위도 역시 심시티 3000이었다. 심시티는 그렇게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고 MAXIS 역시 인공호흡기는 떼어 낼 수 있었다.

[윌 라이트]
https://www.rockpapershotgun.com/2008/01/18/making-of-the-sims/

EA에서는 이런 상황에 당혹스러워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윌 라이트를 내 보낼 수도 없었다. 윌 라이트가 빠진 MAXIS의 심시티는 리차드 게리엇 없는 울티마였고 시드 마이어 없는 문명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윌 라이트는 이미 마스코트였고 심시티의 핵심 아이콘이었다.

속타는 EA의 심정이야 어떻든 윌 라이트는 이전 MAXIS의 경영진들에게도 퇴짜를 맞았던 ‘인형의 집’ 이라는 프로젝트를 홀로 진행하고 있었다. MAXIS를 인수하고 심시티 3000 막바지 작업에 정신 없던 EA에서도 어느 정도 숨을 돌리게 되자 주변을 정리하며 돌아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윌 라이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그의 사무실에 방문했던 뤽 베테렉(EA에서 MAXIS의 총괄로 보낸 관리자)은 ‘제이미 둔보스’라는 청년과 함께 인형의 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윌 라이트를 보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EA라는 회사에 속해있는 뤽 베테렉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면 지금 윌 라이트가 하고 있는 일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윌 라이트가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보고 EA가 MAXIS를 인수하려고 했던 이유가 단지 심시티라는 게임 하나에 불과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EA는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했고 대부분은 성공했다. EA는 이미 기존에 성공한 프로젝트를 사들여 사업화하는데 일가견이 있었지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일은 가급적 지양하는 추세였다.

지금 윌 라이트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철저히 EA의 매뉴얼에 철저하게 위배되는 것이었다. 뤽 베테렉이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윌 라이트의 새로운 프로젝트의 가능성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정책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뤽 베테렉은 인형의 집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윌 라이트에게 인형의 집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존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게임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성공시킬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뤽 베테렉은 뛰어난 경영자였지만 그 이전에 뛰어난 프로그래머이기도 했다. 그래서 윌 라이트와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뤽 베테렉이 윌 라이트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단순히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다면 애초에 이 프로젝트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EA에 불가 판정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뤽 베테렉은 윌 라이트가 심취해 있는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윌 라이트가 심시티를 개발 할 때 단순히 번뜩이는 생각만으로 게임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술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신빙성 있는 내용을 기획하며 개발한 게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심시티의 창시자이자 핵심 개발자였던 윌 라이트는 심시티 3000 개발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예 손을 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 심시티 시리즈에서처럼 주도적으로 개발을 진행하지도 않았다.

이제 윌 라이트는 거대한 도시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윌 라이트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도시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집이 화재 사건으로 소실 될 이후 윌 라이트의 관심사는 집 밖에 있는 거대한 도시가 아니라 집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주제로 바뀌어 있었다.

[ABM(행위자 기반 모델)]
https://www.anylogic.jp/use-of-simulation/multimethod-modeling/

윌 라이트는 심시티를 개발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 인형의 집 프로젝트에서도 다양한 학술적 지식을 탐구했다. 그 중에서도 ABM(Agent-Based Model)이라 불리는 ‘행위자 기반 모델(모형)’에 심취해 있었다. 행위자 기반 모델이란 복잡한 거시적 현상에 대해 현상을 일으키는 주체적 대상인 미시적 행위자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모델이다. 여기에는 영화로도 유명해진 ‘게임 이론’부터 복잡한 시스템과 컴퓨터 공학, 그리고 사회학과 다중 에이전트 시스템이나 진화적 프로그래밍 등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몬테 카를로 기법에 위한 무작위성을 도출한다. 보통 생태계에 있어서의 행위자 기반 모델은 ‘IBMs(개인 기반 모델)’이라고도 하는데, 개별 기반 모델에 따른 복잡한 현상의 모양을 재현하고 예측하기 위해 객체 모델간의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하는 내용을 기본 골자로 하는 게임을 구상하고 있었다.

[ABM(행위자 기반 모델)]
http://jasss.soc.surrey.ac.uk/14/3/7.html

윌 라이트는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라는 본인 스스로가 말하고 다닌 것처럼, 본인 스스로가 납득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게임을 개발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에 앞서 다양한 학술적 연구 자료를 조사했고 이에 대한 설명까지 듣자 뤽 베테렉도 더 이상 윌 라이트를 만류할 수 없었다.

뤽 베테렉은 최소한 지원은 못하더라도 방해는 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가급적 윌 라이트를 지원하는데 힘을 쏟기로 했다. 그리고 EA 본사를 찾아가 경영진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윌 라이트에게 새로운 심시티를 개발하라고 하는 것 보다는, 지금 윌 라이트가 하고 있는 전혀 다른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쪽이 EA의 입장에서도 큰 이득이 될 것이다라는 부분도 강력하게 어필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EA에서도 자신들이 믿고 보낸 뤽 베테렉이 저렇게 강경하게 지원하는데 힘을 쏟는 것을 보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윌 라이트는 정식으로 EA의 지원을 받아 인형의 집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개발 인원도 배정받아 30여명 가량의 개발팀이 지원됐다. 윌 라이트는 이제 자신이 오래 전부터 구상해왔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이미 시작하고 있던 프로젝트였지만 지금부터는 정식적인 지원과 함께 간섭과 방해 없이 본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정식으로 시작되면서 프로젝트의 이름이었던 ‘인형의 집’ 대신 게임의 이름을 정하게 되는데 이 게임의 이름이 훗날 역사에 명작 게임 반열에 오르게 되는 ‘심즈(SIMS)’였다.

[SIMS]
https://www.dba.dk/the-sims-1-til-pc-rollesp/id-1058251690/

심즈는 원래 심시티라는 가상의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SIM)’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것에 착안해서 ‘가상의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심즈(SIMS)’라 이름 지었다. 결과적으로 심즈는 출시 후 8년만에 전 세계 판매 1억장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달성해내며 최고의 게임으로 등극하게 된다. 심즈 게임은 처음 기획 발표를 할 때에도 MAXIS의 경영진의 반대로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EA에 의해서도 반대에 부딪혀 프로젝트가 좌초될 뻔했지만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세상에 등장하여 최고의 게임이라는 역전의 타이틀이 되었다.

[SIMS3]
https://www.target.com/p/the-sims-3-plus-supernatural-pc-game/-/A-17033471

심즈는 각각의 캐릭터가 개별적인 성격과 행동으로 서로에게 상호적인 작용을 해, 마치 우리의 인생살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게임은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기존에 없었던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가족은 물론 이웃과 함께 마을을 구성해 그 안에서 실제 생활과 같이 의류나 가구 등을 구입해 자신만의 집을 꾸미고 이웃을 초대하며 파티도 여는 등 윌 라이트가 생각했던 ‘사람’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었다.

심즈 게임은 본판 출시 이후에도 꾸준히 확장팩을 출시하여 ‘별난 세상(Livin' Large)’, ‘신나는 파티(House Party)’, ‘두근두근 데이트(Hot Date)’, ‘지금은 휴가중(Vacation)’, ‘멍멍이와 야옹이(Unleashed)’, ‘슈퍼스타(Superstar)’, ‘수리수리 마수리(Makin' Magic)’ 등 쉴 새 없이 확장팩을 출시하며 인기를 굳건히 했다.

2004년에는 심즈의 인기를 바탕으로 심즈2가 출시되었는데 출시 이후 그 해에 가장 많이 판매 된 게임으로 기록을 세우며’ 못 말리는 캠퍼스(University)’, ‘화려한 외출(Nightlife)’, ‘나도 사장님(Open for Business)’, ‘펫츠(Pets)’, ‘사계절 이야기(Seasons)’, ‘여행을 떠나요(Bon Voyagr)’, ‘자유 시간(Free Time)’, ‘알콩달콩 아파트(Apartment Life)’ 확장팩 외에도 8개의 아이템 팩을 추가발매하며 계속해서 인기를 쌓아갔다.

그 이후로도 심즈3, 심즈4 등 계속해서 시리즈가 발매되었고 현재는 전 시리즈 통틀어 전 세계에 2억장 이상의 판매기록을 달성했다. 엄청난 판매량만큼이나 다양한 플랫폼에 이식되었는데 기본적으로 PC버전 외에도 맥 OS버전과 플레이스테이션 및 엑스박스, 닌텐도 DS등 주요 플랫폼에는 전부 이식되어 플랫폼에 구애 받지 않고 심즈를 즐길 수 있다.

[SIMS4]
https://www.ea.com/ko-kr/games/the-sims/the-sims-4

심즈는 출시 이후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직업도 다양해졌다. 다양한 직업의 캐릭터를 키우면서 보다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게 되어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같은 느낌을 갖게 했고 이런 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에서 행할 수 없는 아쉬움에 대한 보답으로 대리만족에 대한 감성을 자극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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