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시티’, ‘심어스’, ‘심앤트’ 등 ‘심’ 시리즈의 아버지

[MAXIS]
https://www.ea.com/studios/maxis

최근 들어 한국 게임산업에는 각종 규제나 제한에 따른 법령들이 계속 시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게임을 즐기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 이용 제한에 특히 그 규제가 맞춰져 있다.

e스포츠 강국이라던가 게임 문화 콘텐츠 강국이라는 수식어로 소개되는 한국은, 또 다른 반대쪽에서는 각종 규제나 제한으로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에 지극히 회의적인 사회 풍토가 조성돼 있다. 이런 경우, 왜 이렇게까지 극한의 상황에 치닫게 됐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최근 상위 랭킹을 자랑하는 게임들 중에는 지나친 선정성이나 폭력, 사행성을 조장하는 게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게임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여기 그 반대편에서 지나친 폭력성이나 사행성을 조장하지도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생산적인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윌 라이트(Will Wright)다.

윌 라이트는 1960년생으로 곧 환갑이 되는 최고참 개발자다. 윌 라이트는 EA의 자회사인 MAXIS(맥시스)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하다. 게임 업계 4대 크리에이터(윌 라이트, 피터 몰리뉴, 리차드 게리엇, 시드 마이어)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심시티’라는 게임을 아는 분들은 많을 것이다.

[MAXIS]
https://www.ea.com/studios/maxis

고전 게임 마니아들이라면 ‘심시티’, ‘심어스’, ‘심앤트’ 등의 심 시리즈 게임들을 많이 알 것이다. 또 고전게임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심즈’ 시리즈를 한 두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이 심 시리즈를 개발한 주인공이 윌 라이트다.

윌 라이트는 그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절친인 제프 브라운과 함께 1987년 MAXIS라는 회사를 세웠으나, 경영 악화를 이유로 1997년 EA에 의해 인수됐다. 인수 후에도 꾸준히 게임을 출시했음에도 불구, 계속되는 실적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2015년 EA의 결정에 따라 스튜디오가 폐쇄 된 비운의 회사이기도 하다. MAXIS는 윌 라이트가 개발한 심시티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로 윌 라이트는 심시티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이기 전에 이미 열광적인 게이머였다. 윌 라이트가 가장 열중했던 게임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라는 게임이 있었다. 이 게임을 해보고 자신도 이런 멋진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윌 라이트를 게임 개발자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

[Flight Simulator]
유투브(/watch?v=27szyA9mZ8Q)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주로 민항기(여객기)가 등장하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윌 라이트는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하면서 이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탈 것을 소재로 헬리콥터를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겨 8,000 라인이 넘는 코드를 직접 작성하며 그래픽까지 손수 작업하는 등 1인 개발자로서 ‘Raid On Bungeling Bay(반겔링만의 습격)’이라는 헬리콥터 슈팅 게임을 개발했다.

게임을 완성한 후 윌 라이트는 게임 개발을 완료하긴 했지만 개인 혼자서 유통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당시 다양한 채널의 통해 게임을 응모 받고 외부 제작 게임들을 유통하는 종합 업체/판매 업체로 발돋움 하기 위해 열정적이었던 브러더번드(지난편 게임별곡 참조) 본사를 찾아갔다.

브러더번드라는 회사는 정작 자사에서 개발한 게임보다 외부에서 개발한 게임을 유통하며 유명 게임이 된 경우가 많았다. ‘페르시아의 왕자(조던 메크너)’, ‘로드러너(더글라스 스미스)’ 등 대부분의 인기 대작 게임들은 브러더번드에서 직접 개발한 게임이 아니라 1인 혹은 소규모의 인디 개발자들이 직접 브러더번드를 찾아와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소개하고, 브러더번드 측에서는 당장 상업화에 필요한 몇 가지 제안사항을 제안해 수정 된 내용으로 출시한 경우다.

[Raid On Bungeling Bay]
유투브(/watch?v=YZudVNf7hN0)

윌 라이트는 혼자서 만든 게임이라고 무시당하지는 않을까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을까 하며 고민도 했다. 하지만 당시 자신의 게임을 유통시킬 방법은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된 시기도 아니었던 터라 딱히 마땅한 곳이 없었고 브러더번드에서 그나마 외부 개발자들의 게임들을 공모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터였다. 게다가 학력 부분에서도 그는 루이지애나 주립대학(LSU: Louisiana State University)에 입학했지만 컴퓨터와 기계공학 과련 된 학과만 이수한 채 졸업을 하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옮겼지만 이마저도 졸업을 하지 못한 서류상 고졸 출신의 1인 개발자였다. 그런 부분들이 그의 자존감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용기 내어 찾아간 브러더번드에서는 윌 라이트가 게임을 실행하고 설명도 하기 전에 게임의 첫 화면을 보자마자 계약을 제안했다. 다소 김빠지는 상황이긴 했지만 윌 라이트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그의 첫 게임은 브러더번드를 통해 출시됐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도 불법복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때라 3,000장 정도 밖에 판매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첫 게임에 3,000장 판매량은 1인 개발자의 첫 출발로 나쁘지만은 않은 수치였다.

그 정도에 만족한 윌 라이트에게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에서는 PC용으로 판매를 한 터라 불법복제로 판매량이 많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용으로 판매를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카트리지(롬팩)는 불법복제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미국보다 더 많은 판매가 이루어진 것이다. 무려 75만장이나 판매되었다는 소식에 윌 라이트 본인이 가장 놀라워했다. 그렇게 첫 게임부터 대박을 치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대 이상의 수익을 얻게 된 윌 라이트는 바로 다음 게임 개발에 대해 생각했다. 윌 라이트는 처음에 재미 삼아 만들어 본 게임이 얼떨결에 대 히트를 기록해버리는 바람에 경제적인 여유는 생겼지만 두고두고 후회했다.

윌 라이트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게임은 단순한 놀이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만큼 그의 첫 번째 게임은 완성에만 목적을 둔 부끄러운 흑역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쏘고 부수는 게임은 그가 생각하는 진짜 게임이 아니었다. 게임 안에는 파괴적 행위보다는 생산적 행위가 수반되어야 하고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반겔링만의 습격이라는 게임은 단순히 파괴에 집중하는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게임조차 개발하는 동안에는 최대한의 정성을 들였다. 단순한 슈팅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헬리콥터의 사실적인 움직임 구현을 위해 직접 헬리콥터 조종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것이다. 그렇게 취득한 자격증으로 직접 헬리콥터를 몰고 실제 게임에서 헬리콥터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지형은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생각하며 게임을 개발했다.

[Will Wright on the Future of Games | E3 Coliseum 2019 Panel]
유투브(/watch?v=SXY8kdqIVx8)

첫 게임은 그가 바랬던 진짜 게임이 아니었고 자신이 공들인 모든 시간이 헛헛했다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그는 게임 개발을 위해 직접 헬리콥터를 몰고 하늘 아래 마치 장난감들처럼 펼쳐진 도시를 보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장난감이나 프라모델을 좋아했던 윌 라이트에게 그것은 현실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모형과 같았다. 헬리콥터를 타고 상공에서 바라 본 지상의 세계는 그에게 마치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장난감이나 프라모델 세계 같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컴퓨터와 로봇, 기계공학 등에 심취해 있던 윌 라이트에게 그 모든 것을 접목시킨 새로운 놀이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바로 ‘심시티’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윌 라이트는 하나의 도시를 직접 만들고 배치도 자유롭게 하며 자신만의 마을을 만드는 것을 컴퓨터로 구현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뭔가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놀이도구를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하나의 작은 도시도 인구나 세금, 정치, 상업과 경제, 도로 및 교통 등 굉장히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었기 때문에 윌 라이트는 자료조사 시작부터 막막해졌다.

이때 그에게 구원처럼 발견한 책이 도시역학과 시스템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MIT 전자공학 교수인 제이 포레스터가 쓴 ‘도시계획 이론’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인간의 출생률과, 인구, 부동산, 각종 범죄와 공해 등 20여개가 넘는 요인으로 도시가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시뮬레이션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 윌 라이트가 구상하고 계획했던 도시계획의 게임이 바로 이 책 안에 담겨 있었다. 이미 1950년대에 이뤄진 연구발표 자료를 바탕으로 윌 라이트는 다시 한 번 컴퓨터로 구현하는 디지털 놀이의 대상으로 이 연구를 확장시켜 나갔고 드디어 6개월 정도의 개발이 끝나고 첫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SIMCITY (1989) - Mac OS]
http://socks-studio.com/2015/07/20/building-a-micropolis-simcity-in-1989/

도시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수 많은 책과 이론을 섭렵하고 실제 현장방문을 하며 다양한 의견과 자료를 수집한 그가 바라는 게임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게임의 내용은 한 도시의 시장(市長, Mayor)으로 취임하여 도시를 운영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을 직접/간접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기본적인 사회간접자본(SOC)으로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의 교통망과 전기, 통신, 상하수도와 같은 시설확충과 법제, 교육 등의 사회제도 등 실제 도시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디자인했다.

게임 이름은 지금 알려진 ‘심시티’가 아니라 ‘마이크로 폴리스’라는 이름이었다. 컴퓨터 세상에서 구현 된 작은 도시라는 의미였다. 윌 라이트는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게임을 들고 브러더번드를 찾아갔다. 이미 지난 첫 게임 반겔링만의 습격 때도 자신의 게임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봐 준 브러더번드가 아니었던가? 윌 라이트는 브러더번드를 찾아가면서 첫 게임을 들고 고민하고 긴장하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완벽한 게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브러더번드의 반응은 처음과 달리 아주 냉담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른 반응에 윌 라이트는 무엇이 문제인가 물었고 브러더번드에서는 간단하게 답했다. 바로 게임 자체가 문제였다. 윌 라이트가 새로 개발한 ‘마이크로 폴리스(후에 심시티)’ 게임은 명확한 목표와 보상이 없었다. 즉, 엔딩이라는 부분이 없었고 무한대로 계속해서 도시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어느 한계선에 달하면 성장이 멈추거나 도시를 파괴하고 다시 재정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는 언제쯤 게임이 끝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브러더번드는 명확한 엔딩 조건을 게임 내 적용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윌 라이트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다른 유통사를 찾아 다녔지만 그래도 꽤 후하게 쳐준다는 브러더번드 조차 퇴짜를 놓을 정도라면 세상 어디를 가도 받아 줄 유통사는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가면서 첫 게임의 수익으로 받은 돈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SIMCITY]
유투브(/watch?v=A54blk-ojA4)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자신의 애착이 담겨있는 게임을 선보였지만 모든 회사에서 냉소적인 반응과 조롱 섞인 충고를 들어야 했다. 아무래도 게임이란 무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깨거나 부수거나 쏘아대는 방식을 통해 점수를 획득하고 정해진 구간에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면 엔딩으로 이어지는 수순에 익숙한 당시 게임들과 비교해보면 마이크로 폴리스는 딱히 경쟁해야 될 대상이나 제거해야 될 대상도 없었다. 정치적인 승진이나 야망 같은 것도 담겨 있지 않았고, 정책 점수에 따른 보상이나 성공적인 도시 성장을 끝으로 화려한 엔딩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과는 맞지 않는 게임이었다. 반겔링만의 습격 게임으로 받은 돈도 이제는 거의 잔고가 남아 있지 않을 때쯤 윌 라이트는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윌 라이트(좌) / 제프 브라운(우)]
http://techsurff.com/maxis-an-american-video-game-developer/

그러던 어느 날 윌 라이트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심신이 지쳐가던 윌 라이트는 프로그래머들의 사교모임에서 제프 브라운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던 윌 라이트에게 사교 모임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지만, 제프 브라운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주최 한 파티에 참여했다. 어떻게라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윌 라이트였기에 도움이 될만한 곳은 여기저기 찾아 다니던 중이었지만 이 곳에서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될 줄은 윌 라이트 자신조차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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