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한 운영진 정리해고, 만들었던 코드 전량 폐기처분

[SIMCITY 3000]
https://www.imdb.com/title/tt0320467/mediaviewer/rm2914248192

MAXIS를 거액의 자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인수한 EA에게는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었다. MAXIS는 이미 망해가는 회사였지만, 다른 심 시리즈를 모두 갖다 버려도 심시티 하나만 제대로 건지면 투자금 이상의 수익을 뽑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MAXIS를 인수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제는 거대한 회사로 바뀐 EA의 관리자들 눈에는 MAXIS의 방만한 경영과 계획적이지 않은 개발 일정들, 그리고 여기저기 새어나가며 낭비되는 예산집행들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EA의 눈에는 MAXIS가 여태까지 회사가 망하지 않고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일단 무엇보다도 정비작업이 시급했다.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다른 개발팀은 모두 정리했다. 당장 호흡조차 곤란한 위급환자가 손발이 따로 놀고 있는 형국이었다. MAXIS 입장에서 볼 때는 점령군의 무자비한 숙청이었겠지만, EA입장에서는 당장 제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기에 양자간의 이해는 상충할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개발자들이 MAXIS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EA에서는 점령군의 사령관으로 ‘뤽 바틀레(Luc Barthelet)’라는 관리자를 보냈다. 1997년 뤽 바틀레는 EA의 명령을 받고 MAXIS의 총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뤽 바틀레는 35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미 EA에서 산 마테오 스튜디오의 총괄을 맡고 있었고 이후에 EA의 CTO겸 기술 사장을 겸하고 유니티(Unity), Unity Technologies 클라우드 서비스 팀 총괄 책임자가 될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다.

[Luc Barthelet]
https://blogs.unity3d.com/es/2018/12/21/faces-of-unity-luc-barthelet/

뤽 바틀레가 MAXIS에 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회사의 이익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프로젝트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1억2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사들인 회사에서 자신들의 방향에 맞지 않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것을 두고 볼 회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MAXIS의 직원들은 점령군 EA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라고 본인들만 생각) 이제 와서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이래라 저래라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이 영 못마땅했던 것이다. 거기다 상대는 관료주의가 팽배하고 사업적인 면에서는 냉철하고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EA였다.

뤽 바틀레 또한 서로간의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에서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무리한 강수를 두지 않고 회유와 설득으로 시작했다. 뤽 바틀레는 각 개발팀을 돌며 일일이 설득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과 이대로 아무런 변화 없이 프로젝트가 진행될 경우 앞으로 MAXIS라는 회사가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MAXIS의 어느 개발팀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MAXIS의 개발팀원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점령군의 강압적인 체질개선 과정에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Luc Barthelet]
https://alchetron.com/Luc-Barthelet

결국 뤽 바틀레는 EA에 최종 보고서를 올렸고 몇 개월 동안의 설득 작업에도 별 진전이 없자 EA에서는 최후 통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지금까지 MAXIS 회사를 방만하게 운영해온 경영진과 임원들이 정리해고되었다. 그리고 회사의 대외적인 업무 처리를 제대로 담당했어야 하지만 기대 이하의 실적을 내고 있던 마케팅 팀도 함께 정리되었다. MAXIS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살벌한 ‘피의 숙청’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MAXIS에서는 이판사판 될 대로 되라 하는 식으로 유명 게임을 따라서 똑같이 베껴 만드는 팀도 존재하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디아블로’ 짝퉁 게임을 만들던 개발팀도 이 때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잡다한 게임을 만드는 개발팀들 역시 대거 정리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처음부터 EA가 가지려 했던 심시티 3000 개발팀뿐이었다. 그렇게 심시티 하나만 보고 MAXIS를 인수했던 EA는 막상 심시티만 남겨놓고 보니 이제는 심시티 3000을 제대로 만들 사람이 없었다.

사실 심시티 3000은 심시티의 개발자였던 윌 라이트조차 반대했던 프로젝트였다. 윌 라이트는 심시티 3000의 프로토 타입 기획제안서를 보고 현존하는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전달했다. 하지만 MAXIS의 경영진, 정확히는 투자 자본의 간섭에 휘둘리는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기울어가는 회사를 살려야만 했고 그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이 심시티 3000 개발이었다.

누구보다도 심시티를 아끼고 사랑하는 건 윌 라이트 자신이었음이 자명하고, 그 어느 누구보다 새로운 버전의 심시티를 개발하고 싶어할 사람도 윌 라이트였다. 하지만 그런 윌 라이트가 보기에도 초기 심시티 3000의 개발 계획은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 수준이었기 때문에 MAXIS의 경영진에게 자신의 결론을 전달했지만 이 제안은 묵살되었다. MAXIS는 이제 심시티의 창시자였던 윌 라이트가 아니라 투자자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냉엄한 비즈니스 세계의 현실을 맛본 윌 라이트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이 공들여 했던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심시티 3000 개발에도 회의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심시티 3000은 투자자들을 위한 게임이 되어 버렸고 개발팀의 개발자들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억지로 작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와중에 EA가 MAXIS를 인수했고 EA에서 MAXIS의 총사령관으로 파견한 뤽 바틀레는 지금까지 개발된 심시티 3000의 시연 버전을 보고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었다. 뤽 바틀레가 보기에 망작도 이런 망작이 없었다. 풀3D로 구현하고 있던 심시티 3000의 개발팀에게 왜 되지도 않는 풀3D를 고집하냐고 물었을 때 어느 누구도 이것이 왜 풀3D로 기획됐는지 말하지 못했다. 그저 요즘 게임들이 3D가 대세이니까 그냥 3D로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 뤽 바틀레는 심시티 3000은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결국 나머지 단추를 다 채워도 엉망인 옷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금까지 채운 단추를 다 풀어헤치고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채우는 수 밖에 없었다. 뤽 바틀레는 모든 상황을 정리하여 EA에 전달했고 EA에서는 생각보다 엉망인 MAXIS의 내부상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A에서는 루시 브래드쇼(Lucy Bradshaw)를 긴급 파견했다. 루시 브래드쇼 역시 심시티 3000의 결과물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결국 심시티 3000은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코드를 전량 폐기처분하고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일 필요한 사람은 윌 라이트였다. 하지만, 윌 라이트는 이미 회사의 배신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투자자들에 휘둘려 진행되었던 심시티 3000에 신물이 나 있는 상태였다. 윌 라이트는 이제 심시티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고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Lucy Bradshaw]
https://www.gamingcypher.com/simcity-straight-answers-from-lucy-bradshaw/

윌 라이트조차 손을 놔버린 심시티 3000을 소생시키기 위해 EA에서 긴급 파견한 루시 브래드쇼는 당장 심시티 3000을 개발할 인력들을 충원하기 위해 기존 개발팀들을 정리하고 심시티 3000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심시티 3000과는 별도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개발자들과 충돌이 생겼고 결국 끝내 타협하지 못한 개발자들은 퇴사를 선택했다.

MAXIS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혼란한 시절이었다. 어제까지 함께 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는 것을 지켜 보면서 남아 있는 직원들도 마음이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자신들 역시 잔류하느냐 이탈하느냐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회사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침체되었고 도저히 예전과 같은 활기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살아 남은 사람은 살아야 했고 남은 인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심시티 3000 개발팀이 꾸려졌다. 기존에 있던 심시티 3000의 모든 자료는 폐기처분 하는 등의 EA의 강압적인 일정관리가 개발자들의 원성을 샀지만 결국 심시티 3000은 원래의 것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심시티 3000은 EA의 체질개선 이후 출시 판매량 500만장이 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만약 그대로 되지도 않는 풀 3D 심시티 3000이 출시되었다면 스트리트 오브 심시티의 악몽이 재연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도 정작 심시티의 창시자이자 핵심 개발자였던 윌 라이트는 철저히 표류하고 있었다. 윌 라이트는 심시티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와 따로 노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것만큼 창작자에게 괴로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때는 윌 라이트가 인생 최대의 변곡점이 되는 큰 사건을 경험한 뒤이기도 했다.

[오클랜드 화재 사건 - 항공사진]
https://web.archive.org/web/20080528155342/http://asapdata.arc.nasa.gov/images/OaklandFire.jpg

1991년 10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큰 화재 사건이 발생했었다. 당시 2843채의 가옥이 불타고 150여명이 부상 당하고 25명이 화재 사건으로 숨지는 등 미국에서도 큰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때 제일 먼저 화재 사건으로 전소 된 집 중에 하나가 윌 라이트의 집이었다. 윌 라이트는 다행히 큰 인명피해 없이 가족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지만 자신의 보금자리가 까맣게 잿더미가 되어 있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오클랜드 화재 사건은 1991년 이후에도 최근 2016년에 대화재가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1991년 윌 라이트의 집이 불에 탄 오클랜드 화재 사건에는 시속 100Km에 이르는 강한 바람까지 불어 화재진압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의 화재로 19일부터 20일 이틀 만에 15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주변에 있는 디아블로 산맥에서 발생하는 ‘디아블로 바람(Diablo Winds)’이라 불리는 뜨겁고 건조한 북동풍은 주기적으로 가을 시즌에 발생하는데 화재가 발생한 1991년 10월 19일이 딱 그 때였다. 이 때 불어 닥친 디아블로 바람의 영향으로 불길은 더욱 거세게 번져나갔고 이 바람이 멈추고 나서야 23일경에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이 때의 화재사건으로 윌 라이트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잃은 것을 잃은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 안에서도 무언가를 얻기를 바랐다. 그 결과물 중에 하나가 이듬해 출시한 심시티 2000에 재난 시나리오 중에 하나로 오클랜드 화재 사건이 포함된 것이다.

[SIMCITY 2000 - fire in Oak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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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안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불길이 번지는 산을 바라보면서 윌 라이트는 저 불길 안에서 타 들어가는 자신의 집을 보았을 것이다. 당시 화재 진압이 여의치 않아 많은 사람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었지만, 윌 라이트는 게임상에서라도 누군가 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진압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윌 라이트는 누구보다도 가족을 소중하게 챙기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얘기치 않은 화재로 인해 잿더미가 되어 버린 것을 보고 처음에는 망연자실했다. 자신과 이웃 동료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하며 소중한 보금자리를 지키지 못한 자책과 슬픔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단지 ‘화재’라는 키워드 하나로 재난 시스템이 가동되는 심시티의 세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심시티 게임 안에서의 화재 사건은 도로를 파괴하고 가옥을 파괴하면서 불길이 번져나가는 것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압한 화재사건은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현실에서 파괴되는 가정 중에 하나가 곧 자신의 집이 되어버린 순간 무언가 머리를 세게 내리친 것만 같았다. 그들 역시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윌 라이트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들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을 하게 된 것이 오클랜드 화재사건이었다.

화재사건으로 인해 윌 라이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자동차가 이미 불에 녹아 형제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고 가구와 소품들 역시 모두 불에 타 사라져버렸지만 가족들은 무사했다.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자신의 삶이었으며 그와 함께하는 가족이었다. 그들 모두가 무사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심시티 게임 안에서 너무나도 가볍게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정리되어 사건 제압에 희생양으로 사라지던 수 많은 집들을 떠올렸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생산적이고 창조하는 것에 의의를 두어 심시티라는 게임을 개발했지만 그 안에서도 파괴 행위는 여전했던 것이다. 그것도 거대한 도시를 그려가면서 개인들이 살아 숨쉬는 가정(HOME)의 아픔이나 슬픔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뭉개질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쉽게 뭉개지는 희생양 중에 한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아끼던 물건들은 화마에 휩쓸려 모두 잿더미로 사라진 것을 본 순간 윌 라이트에게는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른바 ‘인형의 집’이라는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인형의 집 프로젝트는 평소 윌 라이트의 딸이 갖고 놀던 인형의 집 장난감에서 유래된 이름이었다. 윌 라이트가 심시티를 처음 계획할 때 역시 상공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내려다 보던 마을이 장난감처럼 보이고 그것을 마음대로 갖고 노는 것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윌 라이트의 딸이 갖고 놀던 인형의 집이라는 장난감을 게임처럼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형의 집]
https://www.mumzworld.com/en/tooky-toy-mega-pink-doll-house

게임 안에서라면 소중한 가정이 화재로 인해 잿더미가 되는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고 얼마든지 자신의 마음대로 꾸며볼 수 있는 재미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계획은 윌 라이트에게 화재로 잃은 것들에 대한 보상으로 매우 적절한 과제이기도 했다.

윌 라이트는 심시티 2000에 화재로 인한 내용을 게임 내에 재난 시나리오(오클랜드 화재 사건)로 첨가했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화재로 잃은 것들과 잃음으로 인해 얻은 것들을 교훈 삼아 다시 한 번 새로운 창작에 대한 욕구가 솟구쳐 올랐다. 이번에 기획한 내용은 기존에 만들었던 심시티와 같이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면서 도시 생태계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 안에 살고 있는 개개인들의 가정(Home)으로 기준을 변경했다. 심시티 게임이 도시가 먼저 존재하고 그 도시 안에 각 가정, 상가, 병원과 같은 소규모 집합체가 구성되어 가는 게임이었다면 이번에는 가정이 있고 그런 가정들이 모여 도시를 형성하는 시작 출발점이 완전히 반대로 된 모습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여 새로운 게임에 대한 계획안을 MAXIS 경영진에게 제안했지만, MAXIS의 경영진들은 도대체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집 안에 가구나 옮기면서 노는 게임을 누가 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 프로젝트 제안을 거절했다. 당연히 개발에 대해 지원을 받을 줄 알았던 윌 라이트는 당혹스러워 했다. 심시티 게임을 만들 때에도 ‘이런 (엔딩 없는) 게임을 누가 합니까?’라는 세상의 편견과 비난에 결국 자신이 직접 MAXIS라는 회사를 세웠는데도 똑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MAXIS는 이제 자신이 세운 회사가 아니라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는 영리 집단일 뿐이었다. MAXIS의 경영진들이 보기에 윌 라이트의 새로운 게임은 이미 현실 세계에서도 충분히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굳이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을 누가 게임 안에서 하려고 할지에 대해서는 윌 라이트 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감각적으로 무언가 될 것 같은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사실은 윌 라이트 자신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경영진들에게 더욱 강하게 어필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렇게 윌 라이트의 새로운 프로젝트였던 ‘인형의 집’ 은 누구의 지원도 없이 표류하게 되었지만 윌 라이트는 시간 날 때마다 인형의 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만, 회사 일이 우선일 경우에는 회사 일에 매진했는데 화재사건을 겪은 뒤 인형의 집 프로젝트를 생각한 뒤에도 여전히 심시티 2000은 개발해야 했기 때문에 인형의 집은 회사 일이 우선이 될 때마다 잠시 미뤄두곤 했다.

그러던 중에 회사의 운영권이 EA에게 넘어갔다. 이제 MAXIS는 MAXIS 단독으로 무언가를 진행하거나 결정 할 수 없는 EA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고 EA에서는 이 꼭두각시를 조종할 사람으로 뤽 바틀레와 루시 브래드쇼를 보냈다. 회사의 경영권이 EA로 넘어간 뒤에 오히려 윌 라이트는 한결 홀가분해졌다. 더 이상 MAXIS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개발 일정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기존의 MAXIS 경영진들과도 작별이었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된 윌 라이트는 다시 인형의 집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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