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라이트, ‘심시티’ 가능성 알아본 제프 브라운과 회사 설립

[Jeff Braun]
https://maxis.fandom.com/wiki/Jeff_Braun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프로그래머들의 사교모임에 참여한 윌 라이트는 파티에서 만난 제프 브라운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티에는 참석했지만 워낙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의 윌 라이트였기에, 그가 먼저 상대방에게 접근해서 살갑게 말을 이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날 역시 윌 라이트가 아니라 제프 브라운이 참석한 손님들을 돌아가며 가벼운 인사와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윌 라이트와 대면하게 되었다. 혼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윌 라이트는 갑자기 나타나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게 불편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제프 브라운에게는 스스럼 없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었다. 둘의 대화는 길어졌고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던 중, 어느덧 대화 주제는 윌 라이트 자신이 최근 개발중인 도시건설 게임에 관련된 얘기로까지 이어졌다.

윌 라이트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도시계획 게임 ‘마이크로 폴리스’가 워낙 많은 업체에서 문전박대 당하고 게임업계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게임은 게임 같지도 않은 게임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얻어서 풀이 죽어 있던 터였다. 때문에 자신의 도시계획 논문을 주제로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얘기를 가급적 밖에서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제프 브라운이라면 들어줄 것만 같았고 편한 마음으로 제프 브라운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프 브라운은 처음부터 끝까지 윌 라이트가 하는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었고, 윌 라이트가 제이 포레스트(Jay Wright Forrester)의 ‘도시계획 이론’이라는 책까지 섭렵하며 게임 개발에 공을 들인 사실을 듣자 본능적인 직감이 발동됐다.

[Urban Dynamics]
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Urban_Dynamics.html?id=69JYAAAAMAAJ&source=kp_cover&redir_esc=y

사실 윌 라이트는 도시계획 게임을 개발하면서 이전에 출시한 반겔링만의 습격이라는 게임으로 벌었던 돈을 거의 탕진한 상태였다. 이 날도 그저 근처에서 파티를 한다고 하니 먹을 거나 얻어 먹을 심산으로 참여한 것이지 그 자리에서 비즈니스적인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제프 브라운의 첫 인사에 윌 라이트는 자신이 프로그래머이며 반겔링만의 습격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첫 게임이 어느 정도 유명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제프 브라운은 바로 흥미를 보였고 “그럼 요즘에는 뭘 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윌 라이트는 최근 도시계획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나 개발 중이라는 말을 했고 제프 브라운은 윌 라이트에게 더 자세히 듣고 싶다라고 관심을 보였다.

[Urban Dynamics]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Forecasting-urban-dynamics-with-mobility-logs-by-Shimosaka-Maeda/e21de5adc59c2d8dc09446b114bdf1f9628e3e72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그 뒤로 몇 시간을 이어졌다. 그리고 윌 라이트가 자신이 개발중인 게임 화면을 보여주자 제프 브라운은 ‘굉장히 멋지다!’라고 감탄했다. 이 말 한 마디에 윌 라이트는 그 동안 받았던 냉소와 조롱이 생각나 눈물이 날 뻔했다고 나중에 밝힌 바 있다.

윌 라이트는 그저 자신의 게임 얘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호응까지 해주는 제프 브라운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 현재까지도 친구 사이로 지내는 영원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제프 브라운은 윌 라이트의 게임 얘기를 듣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해보자고 윌 라이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모멸과 멸시만 받아오다가 진심으로 자신을 알아봐주고 자기가 만든 게임의 가능성을 제대로 봐 준 사람이 나타나니 윌 라이트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1인 개발자로서 브러더번드를 통해 게임을 출시한 경험이 전부였던 윌 라이트에게 게임 회사를 창업하자는 제안은 너무나 거창하게 들렸다. 자기 수준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제안이라 처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결국 제프 브라운의 간곡한 설득에 감화된 윌 라이트는 제프 브라운과 함께 그의 아파트를 본점으로 하는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기로 했다.

그 회사의 이름이 바로 ‘MAXIS’이다. 일설에는 SIX(6) AM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얘기도 있었지만 제프 브라운은 회사 이름을 지을 때 정한 규칙이 있었다. 회사의 이름은 5~7글자 정도로 짧아야 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야 하며, 기억하고 쉽고 부르기도 쉬운 이름이어야 했다. 그리고 회사 이름에 ‘AX’ 나 ‘Z’ 또는 ‘Q’를 포함해야 했다. 결국 여러 개의 이름을 생각하던 중 제프 브라운의 아버지가 제안한 ‘MAXIS’ 라는 이름이 최종 결정되었다.

[제프 브라운 (좌) / 윌 라이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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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윌 라이트와 제프 브라운은 그들의 새로운 회사인 MAXIS의 공동 창업자로 다시 도시계획 게임을 손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게임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윌 라이트가 처음 도시계획 게임을 기획하면서 붙인 이름은 ‘마이크로 폴리스’ 였다. 장난감 세상 속 작은 도시 같은 것을 생각하며 붙인 이름이었지만 컴퓨터 관련 장비 업체가 이미 같은 이름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이름을 구상 중이었는데, 윌 라이트의 동료가 게임 속 화면에 있는 가상의 사람들을 심즈(Sims)라고 부르던 것에 착안하여 심시티(SimCity)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나중에 출시하는 심즈 게임 이름도 여기서 착안됐다).

회사를 창업하긴 했지만 바로 게임을 출시할 수 없었다. 시장에 맞게 여러 가지 내용을 수정하느라 윌 라이트와 제프 브라운은 게임을 출시하기 전까지 제프 브라운의 아파트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며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다. 그런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1989년 드디어 심시티가 출시되었을 때 반응은 놀라웠다. 초기에 여러 유통사들이 이런 엔딩 구조가 없는 게임은 팔리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게임은 입 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출시한 불과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벌써 3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리고 있었다.

[일본의 신문 보도 - 심시티]
https://www.pcgamesn.com/simcity/simcity-nes-will-wright-shigeru-miyamoto

흔치 않은 대기록이었고 윌 라이트 자신조차도 생각지 못한 어마어마한 판매량이었다. 그 해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 무려 24개가 넘는 상을 휩쓸기도 했고 심시티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언급됐다. 비록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시티(Simcity)였지만, 사회적 관계에 따라 게이머의 행위가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에 그치는지, 가상사회와 가상공동체를 구성하는지에 따라 실제로 이용자가 경험하는 게임의 내용이 실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연구보고문건도 만들어질 정도였다.

오히려 당황스러워 한 쪽은 윌 라이트였다. 그는 비록 연구논문을 기반으로 하여 게임을 개발했지만 적어도 자신 스스로는 이것이 단지 ‘게임’일뿐이라고만 생각했고,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문제는 게임을 게임으로 보지 않고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많다 보니 게임에 대한 악평과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왜 실제와 다른 현상이 발생하는지 실제에서도 과연 이렇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질문들을 수 없이 받을 때마다 윌 라이트는 제발 게임을 게임으로 봐달라고 간곡히 호소해야 할 정도였다. 심시티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이제는 각 학계에서 연구 대상이 되는 훌륭한 사회, 심리학 실험의 도구가 되었다.

[직교 그리드 형태의 도시 구조]
https://earth.google.com/web/@36.35406644,127.38750103,52.10994922a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구 대도시에도 주로 보이는 직교 그리드(Rectangular Grid)형태는 가장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 도심디자인이다. 18세기 토마스 제퍼슨의 "Checkerboard Town" 디자인이 그 기원으로 그리드 디자인은 단위면적 당 수용하는 주택과 인구밀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낭비되는 공간이 없이 많은 주택을 건설 할 수 있는 구조이다. 또한 일자로만 도로를 쭉 연결해서 이으면 되기 때문에 심시티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만드는 도시 디자인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원형 스프롤(Circualr Sprawl), 막다른 골목(Cul-de-sac) 구획 방식 등 심시티 게임에서 이런 다양한 실제 사례를 실험해 보는 일이 많았다.

[우리나라도 했었다. – 내가 꿈꾸는 (친환경도시)서울 만들기]
EA 코리아 홈페이지

미국에서는 실제로 시장 선거에 심시티 게임이 사용되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1990년 미국 프로비던스에서 시장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시장 후보자들을 모아놓고 게임 심시티를 해서 시장 후보자들이 만들어 낸 도시의 결과물을 공표하는 기획이었다.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니 너무 심각하게 심시티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심시티의 개발자 윌 라이트의 얘기와는 상관없이, 결국 심시티 게임으로 좋은 결과를 낸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게임 안에서도 잦은 실수와 원활하지 않은 시정을 한 시장 후보자들은 낙선했다.

이 일을 계기로 심시티는 더욱 더 사회적인 현상으로 부추김 당했고 심지어 학교 교육에서까지 교재로 활용할 정도였다. 윌 라이트는 이것 떄문에 별도로 학교 교재로 활용하기 위한 ‘교육용 심시티’ 버전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연일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과 기사에 오르내리는 일을 겪으면서 윌 라이트는 ‘내가 만든 것은 정밀한 실험도구가 아니라 게임이다’라고 일축했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시티는 계속해서 유명해지고 있었다. 결국 온갖 비방과 비난은 다음 번 심시티를 개발할 때 최대한 수용하고 참고하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수그러들었다.

[미야모토 시게루(좌) / 윌 라이트(우)]
https://www.pcgamesn.com/simcity/simcity-nes-will-wright-shigeru-miyamoto

이렇게 심시티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자 PC용 버전에서 가정용 콘솔 게임기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는데, 그 중에서도 닌텐도와의 만남은 그에게 또 한 번의 운명적인 기회가 되었다. 닌텐도의 패미컴 버전으로 이식되어 심시티 게임이 출시될 때 윌 라이트는 마리오의 아버지이자 닌텐도의 기둥인 미야모토 시게루를 만나 게임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닌텐도 패미컴 - 심시티]
https://www.buy-digital-products.com/category/hackernews/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크리에이터로 꼽히는 사람들 중에 피터몰리뉴와 리처드 게리엇, 윌 라이트와 시드마이어가 꼽히는데, 어디까지나 서구의 기준인 듯 한 이 크리에이터 4대 천왕조차도 미야모토 시게루에 대한 동경과 존경심은 각별하다. 아타리 쇼크로 인해 거의 사멸하다시피 한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을 다시 살려낸 장본인이자 언제나 비폭력적인 게임 내용임에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게임 개발자로 유명한 미야모토 시게루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윌 라이트조차 사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임 개발자이자 존경하는 개발자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윌 라이트의 꿈이 자신이 개발한 심시티라는 게임을 통해 이루어졌다. 윌 라이트는 게임을 개발하는 일 중에 무엇보다도 자신이 동경하던 미야모토 시게루와의 만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부분 덕분에 일에 큰 자긍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만끽하고 있던 윌 라이트는 게임 개발에 자신감도 얻고 수익도 생기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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