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진화한 ‘심시티’의 후속작, ‘심시티 2000’

[SIMCITY 2000 - Will Wright Interview “심시티는 그냥 게임입니다.”]
유투브(/watch?v=NcgV4YolDkg)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단 둘이서 창업한 자그마한 게임 가게 MAXIS는 윌 라이트의 심시티가 출시 된 이후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심시티의 인기는 마른 들판에 불이 붙듯이 번져나갔고 인기 게임 순위 1위는 물론 출시 된 이후로 거의 몇 년 동안 상위 게임 랭크에서 내려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전 게임 중에서도 이런 사례는 흔치 않았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심시티의 인기가 치솟게 되자 이제는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대두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시티의 개발자였던 윌 라이트는 기쁜 마음보다는 곤혹스러웠던 적이 더 많았다. 애초에 도시공학적인 논문과 연구과제를 기반으로 게임의 근간 시스템을 구성한 것이 심시티만의 장점이자 차별화 요소였지만, 반대로 이것은 치명적인 단점이 됐다. 세상은 심시티를 개발자의 의도와 달리 단순한 게임으로 취급하지 않고 무언가 정제된 고차원적인 학술자료를 기반으로 한 고도의 컴퓨터 프로그램 정도로 여겼다.

실제로도 많은 학술단체에서의 인터뷰 요청과 시스템 구성에 대한 문의가 끊이질 않았고 그 때마다 윌 라이트는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심정으로 단순한 게임이다라고 맞서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곧 잠잠해지겠지 하는 윌 라이트의 의도와는 달리 제멋대로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받아들이는 여러 학술단체와 사회단체에 시달리던 윌 라이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협상의 카드로 “현재 새로운 버전의 심시티를 개발 중이다”라고 말해버렸다.

지금 출시되어 있는 심시티는 이제 구형이 되고 새로운 버전의 심시티가 등장할 예정이며 여러분들이 제안하고 건의하는 모든 것들(나를 귀찮게 하는 것들)은 새로운 버전의 심시티에 추가될 예정이다라고 한다면 조금은 관심이 덜 해지겠지 하는 속셈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윌 라이트의 얄팍한 속셈과는 정 반대로 이전 심시티에 비해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이 쏟아져버렸다.

[SIMCITY 2000 - SNES]
유투브(/watch?v=nuTt_bYYXF8)

이미 아미가, 맥은 물론 IBM-PC를 비롯하여 콘솔 게임기용으로까지 다양한 플랫폼에 이식되어 있었을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이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출시일은 언제인가? 그렇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도시공학적인 요소가 어떤 것들이 포함되는가? 그 도시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나 공해 시스템은 어떤 연구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 그것은 실제 사례를 통해 입증 된 내용인가? 도심이 확장될수록 야기 되는 교통 시스템이나 오수처리 시스템 등의 사회환경적인 요소는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등등 이전 심시티에서 미처 다 구현하지 못했거나 사회의 실제적인 부분에 반영이 부족했던 부분들에 대한 집중공략이 이어졌다. 이 때 제일 난감했던건 윌 라이트 자신이었고 이제 제발 심시티에 대한 관심 좀 그만 가져줬으면 하고 바란적도 있었다.

[심시티 2000]
유투브(/watch?v=Td9fFF68ml0)

윌 라이트는 이제 물러설 곳이 없었다. 어떻게든 심시티의 후속작을 개발해야만 했고 자신이 세상에 뱉어놓은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사람들은 윌 라이트의 의도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심시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몇 백번을 말했는데도 들어 주지를 않으니 제일 답답한 건 윌 라이트였지만 사람들은 이 게임에서 도시공학의 현실적인 문제점과 이를 토대로 하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냄으로서 미래의 도시상을 연구하고 토론하고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윌 라이트가 했던 수 없이 많은 항변처럼 ‘이것은 절대 도시공학 교재라던가 도시설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저 도시를 건설하는 내용의 게임입니다’라는 말은 심시티를 해본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심시티라는 게임은 그 동안 자신들이 익히 알고 있던 ‘게임’이라는 틀에서 볼 때 뚜렷하지는 않지만 큰 범주안에서도 심시티는 분명 다른 게임들과 궤를 달리하는 게임이었다.

[심앤트 – “여러분 제발 심시티 그만하고 심앤트 해주세요.”]
https://www.amazon.com/Sim-Ant-Electronic-Colony-pc/dp/B000E31D04

사실 윌 라이트는 심시티 2000이 출시되기 전에 몇 가지 심 시리즈를 더 출시했었다. 개미를 주제로 하는 ‘심앤트(1991)’라던가 어찌보면 심즈와 연계점을 찾을 수 있는 가상세계를 주제로하는 ‘심라이프’ 등 다양한 심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이전 심시티를 서서히 잊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다른 심 시리즈가 아니라 바로 심시티의 후속편 이었다. 다른 심 시리즈가 심시티만큼이나 흥행에 성공했다면 곧 바로 심 시리즈의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구축되었을테지만 불행하게도 다른 심 시리즈는 심시티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이 당시 심앤트를 비롯해 심어스, 심타워, 심라이프, 심팜 등 ‘심(SIM)’자만 들어가면 되는 온갖 심 시리즈가 만들어졌지만 그 어느것도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 순 없었다. 심앤트는 게이머가 개미가 되어 직접 개미 세상에 참여하는 참신한 내용으로 각종 컴퓨터/과학 단체로부터 5점 만점에 5점을 받은 획기적인 게임이었지만, 판매량과 인기는 심시티에 비할바가 못 되었다. 사람들은 개미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 시장이 되고 싶어했다.

[심시티 2000]
https://www.origin.com/kor/ja-jp/store/simcity/simcity-2000

결국 윌 라이트는 심시트 후속편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고 이렇게 사실 반은 어거지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심시티(1989년 발매)의 후속편인 심시티 2000(1993년 발매)이다. 심시티 2000은 1편에 비해 출시일이 꽤 늦은 편인데 아마 반은 어거지로 만들어야 됐을 윌 라이트의 극도의 귀찮은 심정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심시티 2000은 윌 라이트의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전편에 비해 놀랍도록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큰 변화는 전편에서 채택한 탑뷰(위에서 아래를 직각으로 내려다 보는 방식)대신 쿼터뷰(위에서 아래로 45도 정도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보는 방식)방식으로 바뀐 점이다. 시점 하나의 변경만으로도 심시티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됐다. 쿼터뷰 방식은 탑뷰 방식에서 느껴지는 공간감과 사이드뷰(횡 스크롤)의 비주얼적인 부분을 결합하는 장점으로 주로 RPG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쿼터뷰 방식은 탑뷰 방식에 비해 그래픽 작업만 해도 단순 작업량만 따졌을 때 몇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오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심시티 2000은 전작에 비해 단순히 그래픽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운드 역시 대폭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는 내부적인 부분에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심시티 2000]
https://abandonwaregames.net/game/simcity-2000

바로 도시공학을 근간으로 하는 실제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고찰이 게임에 담긴 것이다. 도시를 확장하는데 필수불가결인 주택 공급지를 개발하기 위해 불도저를 투입해 숲을 밀어버리면 환경단체가 시위하는 모습이나 야유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던가, 세금과 관련된 주민들의 시정 요구라던가 하는 것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구현되어 있다. 도시의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찰서나, 교도소, 도시법령 등을 정비해야 하고 교육수준 관련해서는 학교와 대학교, 도서관, 박물관 등의 시설이 필요하다.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병원이 필수 요소이고 도시의 공해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가능한 무공해 발전소(태양열이나 수력, 핵융합 등)를 건설해야 한다.

비교적 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구획 정리나 연계된 시설에 따라 효율의 차이가 다르기 때문에 무턱대고 아무데나 마음가는대로 지었다가는 괜한 세금만 낭비하므로 주어진 환경에 맞게 세밀한 검토를 한 후에 건설 하는 것이 도시를 살리는 길이다.

심시티 2000에서는 아무렇게나 방치 된 시설로 인해 도시가 죽어가는 모습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까맣게 망가져 가는 도시를 보면 현실에서라면 당장 국회 청문회감일 수 있지만 다행히 게임에서는 청문회에 소환 되지는 않는다. 시장으로서의 직권으로 세율이나 경찰서, 소방서 등에 대한 예산도 집행 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연계된 각종 수치에 영향을 끼쳐 도시의 범죄율과 재난에 따른 손실 등을 제어/관리 할 수 있는 메뉴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실제로 미국에서는 많은 도시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모양을 거의 그대로 심시티 2000에서 구현해보고 발생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시 당국에 보고서 문건으로 제출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웃지못할 헤프닝이기는 하지만 이런 부분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갖은 외압과 질타를 받기도 했었다. “아니 도대체 우리 도시의 경찰서 배치가 이렇게 되어서 범죄율이 올라간다는게 말이 됩니까?”와 같은 질문에 그저 게임일뿐인 심시티의 개발자 윌 라이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딱히 뭐라고 답해야 할지?)

[심시티 2000]
유투브(/watch?v=DDQY3zGEbQU)

심시티 2000에서는 재난 시스템 역시 전편에 비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화재나 홍수, 태풍,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부가적인 시스템으로는 비행기나 헬리콥터가 추락해서 화재를 일으키는 사고도 발생한다. 또한 공항 주변에 고층 건물을 지을 경우 충돌 할 확률이 높다(서울에서도 한 때 비슷한 일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현실적인 재난 외에도 괴물이라던가 외계인이 침공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작에 등장하던 고질라 같은 경우는 저작권 문제로 삭제되었다. 외계인의 침공 같은 경우에는 경찰력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고 군대가 출동해야 하는데 군대를 유치할때도 시민들의 저항이 만만치않다. 시정에 문제가 있거나 환경에 변화가 발생하면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키는데 이 때 역시 화재와 같은 부차적인 재난이 발생한다. LA폭동과 같은 현실에서도 있었던 일들이 게임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런 재난과 관련하여 게임 내에서 발생 여부에 관한 옵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재난 없음’으로 설정하면 이런 재난들은 일어나지 않는 천국 같은 도시가 된다. 다만, 재난 옵션은 보다 현실감 있고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게임 내 미션과 같은 설정으로 게임의 난이도에 관련되어 있다.

이렇게 심시티 2000은 개발자 윌 라이트의 말에 의하면 절대 이 게임은 도시공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이전 버전에 비해서도 훨씬 더 세밀하고 정교한 도시공학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다.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도시공학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보다도 더 현실적이었던 이유는 일단 보여지는 그래픽적인 부분에서의 사실감과 게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오히려 더 현실에 가까운 사실감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내부에는 치밀하고 상세하게 구현된 사회전반의 여러 기술적 문제들이 함께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히 게임 정도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고 여러 지방 단체에서도 자신들의 도시환경 평가라던가 새로운 도시 구성에 앞서 미리 테스팅 해보는 용도로도 썼던 것이다.

물론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줄 만큼 신뢰성과 인지도를 얻었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해보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해보는게 뭐라도 하나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겠지만 심시티 2000은 게임 하나가 그전 단순히 게임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현실 사회에까지 진출하여 영향을 끼친 게임으로는 거의 유일한 게임으로 기록되었다.

[Stanisław Lem]
https://culture.pl/en/article/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전부가 아닌 심시티 2000게임의 개발자 윌 라이트는 이때쯤 스와니스와프 렘(Stanisław Lem)의 ‘the Seventh Sally’를 시작으로 그의 저서들에 빠져 있었다. 이 때 많은 영감을 얻어 심시티 내에서 생활하는 가상의 ‘심’들을 구상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후에 확장되어 ‘심’들에 관해서만 따로 게임으로 만든 것이 ‘심즈’라는 게임이다.

윌 라이트가 빠져 들었던 스와니스와프 렘은 폴란드 태생의 유명한 작가로 ‘솔라리스(Solaris)’, ‘사이버리아드(Cyberiada)’와 같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와니스와프 렘은 동구권을 대표하는 SF 작가로 처음에는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단편소설을 써야 했다.

스와니스와프는 그 특유의 해학적인 코드로 철학적인 주제를 블랙유머와 풍자로 풀어내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저서에는 최신의 기술 문명과 인간 지성 본질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그리고 상호 의사소통 및 이해의 불가능성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절망 등이 특유의 해학으로 우리나라에는 ‘솔라리스’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이기에 인간적인 관점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우매함에도 불구하고 일순간 전지전능하다 자만하고 오만한 그릇 된 존재로서의 인류의 모습을 곱씹어 볼 만한 내용들이 많다. 아마도 이런 작고 자그마한 인간으로서의 한 없이 초라함의 나락 끝까지 떨어지는 모습에 윌 라이트는 어질 적 자신이 갖고 놀던 장난감과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을 날며 반 겔링만의 습격 게임을 만들 때 발 아래로 내려다 보던 세상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윌 라이트는 거시적 관점에서의 인류를 뛰어넘는 지성체의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미시적인 부분에서의 도시공학적인 부분을 결합하여 심시티 2000 게임을 개발중이었다. 물론 심시티 2000에는 핵심 주제의 한계상 많은 것을 집어 넣을 수는 없었고 우주로의 진출이나 외계 생명체 정도의 장난기 섞인 콘텐츠 추가로 만족해야 했다.

윌 라이트는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만족할 줄 알았다. 더 이상의 욕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수준의 계몽을 원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심시티 2000은 정말 고루하고 따분한데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게임이 됐을 것이다. 심시티 2000이 출시되자 마자 역시나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기사를 쏟아내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윌 라이트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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