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볼레크리에이티브, 인공지능 적용한 연애시뮬레이션게임 개발

[신년 인터뷰] 볼레크리에이티브, 인공지능 적용한 연애시뮬레이션게임 개발 시선집중

"난 다른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한 적이 없어."
"그럼 이제 당신은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지요."

테오도르는 컴퓨터 운영체제(OS)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사만다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도 테오도르를 이해하는, 진짜 사람보다도 더 사람같은 존재다. 그녀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를 이해하고, 그를 잘 안다. 테오도르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사랑이다. 사람과 인공지능(AI)의 사랑을 다룬 영화 '그녀(Her)' 이야기다.

사만다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인공지능은 차근차근 현실화되고 있다. 전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통해 패턴을 익히고 학습하는 기술인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계학습)을 개발중이다. 애플의 개인비서 서비스인 '시리'나 구글의 가상 대화상대 '챗봇'이 그렇다. 인공지능을 실생활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정서적 교감이다. 인공지능은 값비싼 선물을 요구하지도, 자기가 잘못해놓고 도리어 화를 내지도, 기념일 챙길 것을 종용하지도 않는다. 바람을 피우지도,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지도, 친구와의 술약속을 데이트보다 우선하지도 않는다. 즉, 사람과의 관계에서 으레 발생하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피로와 감정싸움이 발생하지 않는다.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볼레크리에이티브(VoleR Creative)는 이 인공지능의 정서적 교감에 주목한 회사다. 가상현실(VR)기기 '오큘러스 리프트'를 만든 오큘러스의 공동 창업자이자 오큘러스 한국지사장을 지낸 서동일 대표가 2015년 9월 창립했다. 여기에 NHN, 넷마블, 네오플, 위메이드 등에서 근무했던 게임개발자들이 대거 합류하며 팀이 꾸려졌다.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VR 전문가인 서 대표가 만든 회사인만큼 VR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늘 꿈꿔왔던 아름다운 장소에서 꿈에 그리던 이상형과 대화를 나누는, VR과 인공지능을 접목한 콘텐츠인 '볼레 프로젝트'가 주무기다.

회사가 만들어진지 이제 4개월, 대략적인 밑그림이 드러날 시기다. 서 대표가 만들고 있는 콘텐츠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느 정도 완성됐는지, 서울 서초구 볼레크리에이티브 사무실을 찾아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꿈꾸던 곳에서 인공지능 그녀와 연애를

"쉽게 말해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이다. 사이버 여자친구라고 해야 하나?"

서 대표가 밝힌 볼레 프로젝트의 정체성은 게임이다. VR로 만들어진 환경 속에서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반다이남코가 VR게임으로 개발중인 '서머레슨'과 비슷한 콘셉트다.

'서머레슨'과의 차이점은 인공지능 탑재 유무다. '서머레슨'은 인공지능과는 거리가 먼 게임이다. 스토리 분기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액션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경우의 수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어떤 경우에도 게임 개발자가 의도한 범위 밖으로 벗어나지는 않는다. 마치 객관식 문제와도 같다.

반면 인공지능을 탑재한 볼레 프로젝트는 주관식에 가깝다. 어떠한 이야기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 게다가 대화 내용도 지극히 개인적인 맞춤형 이야기다. "배가 고프다, 무엇을 먹을까"라고 이야기를 꺼내면 "평소에 치킨 즐겨 먹잖아. 치킨 먹을래?"라고 대답을 하고, "오늘은 치킨은 별로"라고 하면 "그럼 족발은?"이라고 되묻는 식이다. 마치 진짜 친구나 연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맞춤화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자신의 개인 데이터를 습득하게 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데이터를 전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번거롭다. SNS에 가입해 몇 안되는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도 귀찮아하는 판국에, 하물며 수많은 데이터를 전달해야 하는 일이 썩 달가울리 없다.

서 대표는 "그래서 게임으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전달 과정을 게임의 퀘스트 형태로 만들어서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게끔 했다는 것. 이는 연애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택한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서 대표는 "일반적인 친구끼리는 개인적인 취향까지 자세하게 물어보지는 않는다"며 "적극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연애야말로 인공지능을 가르치는데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이기는 하지만, 성적 판타지를 충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반드시 이성친구일 필요는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말하는 동물이 될 수도, 또 외계에서 온 지적인 생명체가 될 수도 있다. 서 대표는 "MMORPG에서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캐릭터 커스터마이즈를 하듯, 캐릭터 디자인 툴을 제공해서 입맛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게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데모버전 2종 완성, 올해는 배워가는 단계

사실 볼레크리에이티브의 궁극적 목표는 게임회사가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게임을 택한 것일 뿐, 결국 게임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코어타깃은 게이머지만, 결국은 일반 대중들도 타깃의 범주 안에 넣을 생각이다.

인공지능과 연애를 하면서 축적되는 개인의 데이터는 다른 분야에서도 군침을 흘릴만큼 매력적이다. 가령 비오는 날에는 '치맥'을 선호하는지 아니면 '막걸리 파전'을 선호하는지, IT기기를 구입할 때는 '아이폰'을 선호하는지 아니면 '갤럭시'를 선호하는지 등은 가까운 친구나 연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귀중한 정보다. 이 정보를 얻은 누군가가 취향을 저격하는 상품을 제안한다면 실구매와 직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것이 곧 볼레크리에이티브의 가치가 된다.

서 대표는 현재 체험가능한 두 종류의 데모버전이 완성됐다고 했다. 하나는 인공지능 그녀가 여러 벌의 옷을 갈아입으며 사용자의 반응을 살피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루시'와 카페에 마주 앉아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두 버전 다 체험해봤다.

첫 번째 버전은 '서머레슨'과 매우 흡사했다. 인공지능이 옷을 입은 후 "잘 어울리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들어 의사를 표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초기 데모버전이다.

두번째 버전에서는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루시'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다만 영어만 알아듣는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버전이기 때문인데, 서 대표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영어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을 본격적으로 적용하지 않았다. 현재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무료로 배포하는 인공지능 기술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배워서 하나하나 만들어보는 단계다. 서 대표는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인공지능이 우리가 요구하는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는 게 올해의 과제"라고 답했다.


도전만이 성공을 부른다, VR 선구자 될 것

"스마트폰이 왜 필요한가, 인공지능과 대화하면 되는데."

서 대표는 스마트폰이 없어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스마트폰이 PC를 대체했듯, 인공지능이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PC 앞에서 VR기기를 착용해야 인공지능 그녀를 만날 수 있지만, 향후에는 같이 영화를 보거나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아직까지 VR과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해 섣불리 점치기에는 이르다. 볼레크리에이티브의 미래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하지만 남들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서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게임시장만 봐도 기존의 인기게임을 답습한 게임들 중 잘 된 것이 없지 않냐"며 "미지의 분야인 VR에 도전해 선구자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문화에서도 자유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서 "한국에도 재미있는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페이스북도 처음에는 하버드 기숙사에서 가장 예쁜 학생을 뽑기 위한 목적에서 탄생해 지금의 거대한 SNS가 됐다. 연애를 통해 쌓은 데이터의 가치만 보여줄 수만 있다면, 볼레크리에이티브의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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