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남북전쟁’ 배경, 초원-강-황무지 맵 "기병대 무적 유닛"

1989년이면 아직 세상은 16비트(Bit)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가정 내 PC 환경은 주로 XT라 불리는 컴퓨터들이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그 다음에 출시된 제품이 보통 ‘AT’ 컴퓨터라 불리던 ‘286 PC’다. 그 뒤로 이제 ‘386 PC’, ‘486 PC’ 등이 출시되었고...

그 당시 필자는 현대 솔로몬 286 AT PC를 소유 중이었다. 대기업 ‘현대’에서 만든 PC이다 보니 자잘하게 주는 번들 소프트웨어나 매뉴얼 등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의 엑셀 프로그램과 같은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줬다. 아직 국민학생이었던 필자에게 ‘포도’라든가 ‘사과’를 입력하고 가격을 입력하고 합을 계산하는 것들은 필요도 없었고 왜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구석에 버려두었다.

‘비지칼크’ 안 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 당시 구입했던 ‘현대 솔로몬 286 PC’는 ‘삼성 알라딘 PC’와 라이벌 관계였다(후에 삼성은 ‘알라딘’ 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매직 스테이션’으로 갈아 탐). 그 당시에는 현대, 삼성, 대우, 금성(지금의 LG) 등의 대기업이 PC를 판매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LG도 컴퓨터, 특히 노트북 분야에서 잘 나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현대, 삼성이 제일 잘 나갔던 시절이었다.

[문교부 인증 : 지금의 ‘교육부’는 그 당시 ‘문교부’라는 이름을 썼다.]
그래도 ‘GoldStar(금성)’ 시절에 TV나 PC 등 가전제품 쪽에서는 나름대로 인지도가 높았다. 지금도 노트북 시장에서는 삼성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기업 업체로 남아 있다. 예전처럼 현대나 대우는 특별히 PC, 노트북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 않다. 참고로 현재 필자는 문서 및 프로그램 개발 작업의 목적으로 LG 노트북 ZD360-GD60K 기종을 눈여겨 보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 또는 새해 선물로 누가 제발 한 대만 선물해 줬으면 좋겠다(부탁 드립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 아직은 16비트 시절의 이야기
[으와! 그러게.. 286이 80만원이나 하다니!]
필자가 갖고 있던 현대 솔로몬 286 PC는 기존의 흑백 모니터와는 다르게 컬러 모니터를 지원했다. SVGA(Super-VGA)라고 하는 무려 800 X 600의 광활한 해상도를 지원하는 그래픽 카드를 탑재하고 있었다(뭔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본체를 뜯어보고 알았지만, CPU에 AMD 라는 글자가 써있는 것을 보고 당연히 CPU는 ‘Intel’만 있을 줄 알았던 필자에게 이건 뭐지? 하고 한참이나 CPU가 어디 있는지 찾았던 기억이 난다(Intel 글자가 안 보여!). 그때는 AMD가 그렇게 유명할 때도 아니었는데, AMD CPU를 탑재하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기도 하다. 삼성전자(삼성컴퓨터)에서는 PC를 생산하고 삼성전관에서는 샘트론(SAMTRON)이라는 이름으로 모니터를 생산하고 있던 그 시절에.

AT(286) 컴퓨터는 이제 막 보급을 시작하고 그 후에 얼마 안 있어 386 PC라는 괴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최고의 PC는 AT(286)이었다.

[그 당시 필자에게는 꿈의 PC - 지금의 벤츠 AMG를 바라보는 심정..]
무려 145만원이라는 가격의 386 PC는 패기 있게 모니터도 별도 가격이다. 그때 당시에 145만원이라는 돈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겠지만, 1990년에 등장한 또 하나의 꿈의 머신 ‘스쿠프’ 자동차 가격이 600만 원 정도 했다. 600만 원이라는 가격도 그 당시 선뜻 구매하기는 쉽지 않은 가격이었다고 보면, 145만원이라는 PC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종종 길거리에서 보이기도 하는데 굉장히 반갑다. 필자도 원래 ‘스쿠프’에 꽂혀서 길거리에서 보일 때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저 차를 사야지!’라고 다짐하곤 했는데, 실제로 어른이 되었을 때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같은 계열이라고 볼 수 있는 ‘티뷰론’ 차를 타고 있다(이것도 97년식).

모니터를 포함하면 컴퓨터 3대 값으로 차를 한 대 살 수 있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것도 당시 인기 있는 쿠페 차량을 탈 수 있는 가격이라고 보면 그 당시 상위 기종의 PC들이 얼마나 비싼 가격이었는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그 당시 대학생 형아들의 꿈의 자동차 – 현대 스쿠프]
■ 컴퓨터 학원 최고의 인기 게임 ‘남북전쟁’
필자가 다니던 컴퓨터 학원은 원장님이 유일하게 AT(286) PC를 사용하고 나머지 교육용은 전부 XT(8086, 8088) 컴퓨터였다. 물론 모니터는 흑백 모니터였고, 그 당시 컬러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원장님 정도의 권력과 사회적 체면이 있는 분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였다.

1시간에서 2시간 정도의 BASIC언어 프로그래밍 교육이 끝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보통은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라는 의미에서 주어지는 시간이었지만, 순순히 학원의 의도를 따를 생각은 없었던 우리들에게 그 시간은 서로의 게임을 주고받으며 즐기는 소통의 시간이었다.

그때 했던 게임들 중에 제일 재미있게 했던 게임 중 하나가 바로 ‘남북전쟁’ 게임이었다. 2인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PC 1대에서 2명이 즐기는 게임으로 학원 입장에서도 테이블당 고객 유입 숫자가 많으니 PC 10대 가지고도 20명이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했던 것 같다(1인용 게임 하고 있으면 은근히 뒤통수가 따가웠다).

1989년 ‘Infogrames’에서 출시한 ‘남북전쟁’ 게임은 남과 북, 지금의 대한민국의 전쟁을 다룬 소재가 아니라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도 중국의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부터 일본의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なんぽくちょうじだい)’에 이어 미국의 ‘남북전쟁’과 한국의 ‘남과 북의 전쟁 (6.25)’까지 ‘동’과 ‘서’는 수평적인 개념이고 ‘남’과 ‘북’은 수직적인 개념이라 그런지 몰라도 유난히 ‘남’과 ‘북’은 치고 박고 치열한 싸움을 많이 했던 것 같다.

[Infogrames]
그 당시에는 비교적 생소한 로고였지만, ‘Infogrames’는 1983년 프랑스의 리옹에서 설립한 역사가 꽤 깊은 회사다. 지금은 프랑스 게임 회사하면 ‘유비소프트(UBISoft)’가 유명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두 회사가 프랑스 게임 업계의 쌍두마차라 불릴 만큼 기세가 대단했다. 참고로 회사 이름도 영어식으로 ‘인포그람스’로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로 ‘안 포그램’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다고 하는데 필자는 제2외국어가 독일어 전공이라 잘 모르겠다.

사업 초기에는 꽤나 잘 나가던 회사로 보통은 회사 이름을 잘 모르는 분도 많겠지만, 아타리(ATARI)는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2001년에 ‘Hasbro’의 게임 부분을 매수하여 ATARI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뒤로 2003년에 게임 개발-판매 부문을 아타리로 옮기고 뉴욕을 거점 삼아 북미 진출에 힘을 쏟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상황이라 큰 재미를 못 봤다.

1980~90년대에 잘 나가던 회사는 한때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의 명가 ‘Microprose’부터 ‘Accolade’와 같은 게임 명가들을 매수하는 등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유럽 최대의 게임 회사로 군림하기도 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실적이 악화되고 별다른 큰 흥행 게임이 없어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 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이 ‘Infogrames’ 회사도 알게 모르게 대작 게임들을 많이 갖고 있고(대부분 매수한 회사들 제품), 이래저래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회사라 이 회사에 대한 얘기만 써도 책 한 권 정도는 쓸 수 있을 듯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게임 회사들 얘기를 다루는 [회사별곡] 코너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듯하다.

[저 엉덩이에 X침을 놓을 수 있었던 것 Infogrames]
게임을 시작하면 게임 난이도에 관련된 설정을 선택할 수 있다. 인디언의 출현이라든가 자연재해(날씨) 피해, 보급과 연도(1861~1865년)를 선택할 수 있다. 비록 학원에서는 흑백으로 보았던 화면이지만, 집에는 필자도 AT(286) PC에 SVGA 모니터가 있었다. 원래는 256색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지만, ‘남북전쟁’ 게임은 ‘EGA(16컬러)’까지만 지원했다. 그래도 ‘허큘리스’나 ‘CGA’로 보던 것보다는 100배 낫다.
[그냥 돌격하지 말입니다?]
전투를 진행하는 맵은 초원 같은 맵과 가운데 강이 흐르고 다리가 있는 맵, 그리고 황무지 같은 맵으로 총 3가지 타입이 있었다. 이 게임은 그 어떤 게임보다 ‘선빵’의 중요성이 큰 게임으로 포병으로 먼저 적군의 포병을 박살내지 않으면 무참한 살육 끝에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포병과 같은 병과는 매 턴마다 특정 조건에 따라 보급을 받게 되는데, 적군보다 더 많은 포병을 가질수록 게임에 유리하다. 반대로 적군보다 적은 포병일 경우는 굉장히 불리한데 동시에 한 발씩 밖에 못 쏘는 아군의 포병으로는 동시에 3발씩 날아드는 적군의 포탄을 이겨낼 방도가 없다. 하지만, 이 게임이 재미있고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방법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빠빠바빠 바빠 바빠 빠빠바빠빠~’ 하면서 기병대 돌격 나팔소리(Cavalry charge)와 함께 돌격하는 기마병은 한 번 휩쓸고 자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만큼 강력한 유닛이었다. 공격키가 ‘스페이스 바(Space bar)’ 였나 ‘엔터(Enter)’ 키였나 그랬는데, 돌격하면서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려야 했기 때문에 종종 학원 선생님의 호출을 받기도 하였다. 이때 주의할 점은 보병이나 포병을 향해 전면으로 돌격하는 것은 영화에서 주인공들이나 하는 짓으로 함부로 그랬다가는 적군 앞에 도착하지도 못 하고 공중에서 분해될 것이다.

위 아래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적군의 포격-총격을 피해 최대한 적군과 수직선을 맞추는 지점에서 훑고 지나가면서 공격 키를 연타해야 적군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그 때의 쾌감이란, ‘로한의 기마대’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점점 다가오는 적군의 기마대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아군의 보병들 앞에 전의를 상실하고 ‘이 판 나가리요~’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돌격! 앞으로!]
그렇다고 기병이 무조건 최고인 것은 아니고 일단 한 번 돌격을 시작하면 멈추질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강에 빠져 죽든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기도 했었다. 평지와 같은 맵에서는 위아래로 이동하면서 적군을 향해 돌격하는 게 가능했지만, 강이 있는 맵에서는 그대로 돌진했다가는 강에 빠져 수장(水葬)되기 때문에 다리로 건너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다리 말고도 화면 위쪽에 있는 얕은 물가로 건널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맵에서는 적군의 포병이 항상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다리를 노리는 척 하다가 적군의 기병대가 화면 위쪽으로 이동하려고 하면 잽싸게 아군의 포병도 화면 위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적군의 기병대는 전멸이다. 왜냐하면 다시 다리로 이동하려고 아래로 내려갔다가는 줄줄이 강에 빠져 익사하기 때문이다(기억하라! 기병대는 무조건 돌진이다. 멈추거나 후퇴가 안 된다). 이러한 맵 구성으로 인해 서로간의 심리전이 상당했다. 때로는 죽음을 불사하고 다리를 통해 적진으로 돌진하기도 했는데, 포병의 사냥감으로 최고의 재미를 선사해 줄 뿐이었다. 운 좋게 살아남아도 몇 안 되는 기병대는 보병의 총격에도 힘 없이 쓰러지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황무지의 결투]
이 맵도 강이 있는 맵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있는 다리와 화면 아래에 좁은 길목으로만 건널 수 있게 되어 있다. 초반에 포병 ‘선빵’으로 승세를 장악할 수 있는 맵이다. 잘못해서 기병대 돌격이 되면 줄줄이 절벽 밑으로 낙사(落死)하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다리와 좁은 길목은 적군의 포병과 보병이 지키고 있다. 초반 ‘선빵’을 어떻게 날리는가에 따라 치열한 전투의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서로 전투 초반에 서로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누가 먼저 포격을 시작하는가, 누가 먼저 기병대 돌격을 시작하는가에 따라 전세가 역전되기도 했다.

변수가 있다면 포병과 같은 경우 거리를 조절하면서 포탄을 날릴 수 있는데, 발사 키를 짧게 치면 바로 앞에 포탄이 떨어지고, 키를 오래 누르고 있으면 게이지가 차면서 사정거리가 길어진다. 거리 조절을 잘 못하면 아무리 막강 포병이라도 돌진해 오는 기병대를 상대로 살아남기 힘들다.

이 게임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렇게 미니 게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열차를 탈취하는 것과 깃발 찾으러 가는 게임 등이 있었다. 게임 속 게임으로 이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게임 전체 맵에서 기차역이나 항구를 점령하고 있으면, 증원 부대가 지급되기 때문에 그 땅을 노리고 치열한 전투를 하기도 했었다. 단순한 땅따먹기 게임이 아니라 어느 지점을 선점하고 있는가에 따라서도 전세의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항구 지점은 늘 뺏고 뺏기는 치열한 싸움이 일어났다. 전략적인 선택과 전술적인 운용이 게임의 승패를 가름하는 게임이다.

[아씨.. 패배..]
■ 필자의 잡소리
이 게임은 단순하게 치고 박고 싸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형의 이점을 살려 증원 부대를 받기도 하고 병과에 따라 그에 맞는 운용으로 전술을 펼쳐야 승리를 할 수 있는 등 게임 내내 생각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긴장감이 있었다.

역시나 명작 고전 게임답게 스마트폰 게임으로도 출시되었으니 옛 기억을 더듬어 다시 한 번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남의 나라 노예 제도를 둘러싸고 이렇게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이 게임의 재미만 생각하면 별 것 아닐지 몰라도 어느 나라는 이렇게 노예 해방을 문제 삼아 역사적인 전쟁까지 벌이면서 종국에는 노예를 해방시켰지만(물론 남과 북의 상업 기반과 문화의 차이가 배경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천즉천(一賤崱賤)하다는 이유만으로 조선시대 한때 전체 인구의 60%이상이 노비 신분이기도 했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순조(1801년) 때 공노비를 해방시켰고 1886년 고종 때 노비 세습제의 폐지를 명한 이후 1894년에 문벌과 반상을 폐지하며 공노비, 사노비를 완전히 폐지할 것을 명함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신분제의 폐지와 함께 노비 제도 역시 완전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물론 오래 된 노비 제도의 관습으로 제도 폐지와 함께 노비 라는 신분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사회적으로 대우를 인정받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노예 해방도 마찬가지다. 또한 고려시대 광종 때 시행했던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은 노비 제도 자체를 폐지한다기보다는 원래 노비가 아니었으나, 전쟁 포로 또는 빚 때문에 노비가 된 자들을 노비 이전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주는 현재의 개인회생(個人回生)제도와 비슷한 개념의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무려 1000년이나 더 오래 전에 이런 일을 했다는 것 또한 놀랍다.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과 조선의 노비 제도 폐지(1886~1894)는 시기적으로 볼 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나라는 그것을 전쟁을 통해 수많은 피를 흘린 뒤에 이루어 냈고 또 어느 나라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필자는 우리의 그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학교에 다니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단지 세계사, 국사 시간에 시험 문제 정답을 위한 답안 작성에 필요한 내용으로 배웠던 것이 안타깝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 오마바는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투쟁을 선언했던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2007년 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 143년만에 미국의 44대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다. 해방 이후로도 150년 가까이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그들에게도 이 게임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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