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리 ‘브레이크 아웃’ 원조, 심오한 철학 담긴 '알카노이드' 마니아 열광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년 전쯤에 지구 행성의 한반도에 위치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당시 영유아 단계를 이제 막 지나 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는 초등 교육기관 ‘국민학교’에 적을 두고 낮에는 학업에 매진하며(하는 척 하며), 방과 후에는 각종 놀이 문화를 습득하고 전파하는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심취(心醉)해 있던 아날로그 향수 짙게 나는 추억을 간직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30년 전 추억을 얘기할 때마다 아, 그때로부터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던가. 하는 놀라움과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앞으로 다가 올 30년을 또 재미있게 지내면 되지 않는가.

3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알차고 열심히 놀았던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주로 구슬치기, 딱지치기, 오징어(우리 동네에서는 땅 바닥에 선을 긋고 하는 놀이 중에 ‘오징어’라는 게 있었는데, 이것도 동네마다 이름이 다른 모양이다) 등 제일 많이 하던 놀이들 중에 하나다.

여자 아이들은 주로 고무줄놀이를 했고(필자는 아직도 그 동작의 기준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밖에 날씨가 쌀쌀해지면 방 안에 모여 공기놀이나 실뜨기, 인형 옷 입히기(종이로 된 인형) 등을 하며 놀았다.

쥐불놀이나 자치기, 연날리기 등의 놀이는 시골에서 간간이 보이는 정도였다. 이제 대도시가 된 직할시(지금의 광역시) 등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놀이가 되어 가는 시대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놀이 문화 교체의 시작이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의 동네는 아직도 시골틱한 풍경의 아날로그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라 겨울만 되면 연날리기, 연싸움 등을 하느라 사기그릇이 온전하게 남아 있질 않았다. 멀쩡한 사기 그릇 하나 깰라치면 분노 게이지가 설정치 이상으로 솟구쳐 오른 어머니에게 빗자루로 두들겨 맞을 각오 정도는 해야 했다.

연싸움을 할 때는 연줄에 풀을 먹이고 사기그릇을 잘게 부순 조각을 바르는데, 그렇게 특수 아이템을 장착해야 상대방 연줄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상대방의 연줄이 끊어져 휭휭 돌아가며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면 마치 격추왕(Ace)이라도 된 것 마냥 우쭐해지는 기분이 든다. 지금의 게임 시스템으로 보면 일종의 ‘PvP’ 개념인데, 30년 전에도 우리들은 ‘PvP’ 라는 용어만 몰랐었지, 같은 개념의 놀이 문화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 디지털 놀이 문화에 충격을 받다
이렇게 아날로그 놀이 문화에 심취해 있던 필자에게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마주치게 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게임별곡] 연재 기사 초기에 말했던 ‘막내 삼촌 따라 다방간 사건’이다.

30년 전쯤에 필자의 막내 삼촌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사고뭉치(삼촌 죄송합니다)였지만, 군대에 간 뒤로 아주 멀쩡한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해병대 만세!). 아무튼, 그 당시 막내 삼촌은 다방에 드나드는 취미가 있었는데, 어느날 필자와 동반하게 된 것은 다방의 누님들이 어린 조카를 보면 귀엽다고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필자는 일종의 ‘밑밥’이었던 것이다). 막내 삼촌의 취지야 어쨌든 필자는 난생 처음(비교적 빠른 나이 5살)으로 간 다방에서 괴상한 기계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필자를 지금까지 게임과 함께 사는 인생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된 사건이 되었다(나이가 10살만 더 먹었어도 막내 삼촌처럼 기계보다는 사람한테 관심을 가졌을 것인데..).

지금 보면 굉장히 투박한 나무 궤짝 같은 곳에 디스플레이라고 하기에도 다소 민망한 브라운관 같은 것이 달려 있는 ‘벽돌깨기’ 게임이었다. 그 당시 다방 같은 곳에는 ‘벽돌깨기’ 게임 외에도 ‘스페이스 인베이더’ 같은 슈팅 게임이 있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필자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현장 답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확인을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응?)

■ 잡스의 ‘브레이크아웃’, ‘벽돌깨기’ 게임의 시작
‘벽돌깨기’ 게임 하면 보통 ‘알카노이드’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다. 실제로 이런 ‘벽돌깨기’ 스타일의 게임들(BreakOut-Style Game)은 1976년 발매된 아타리의 ‘브레이크 아웃(Break Out)’이라는 게임이 시초다.

‘브레이크 아웃’ 출시 이후로 비슷한 방식의 게임들이 출시되었다. 1976년부터 1980년대까지 비슷한 게임들은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되었다. 그 중에 제일 인기 있었던 게임 중에 하나가 바로 ‘알카노이드’ 게임이다.

[브레이크 아웃 : “내가 원조다!”]
지금의 ‘벽돌깨기’ 게임의 시초가 되었던 ‘브레이크 아웃’ 이라는 게임은 필자뿐만 아니라, 아마 전세계적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고 역사적인 게임이 아닐까 한다. 바로 이 게임을 개발했던 사람이 21세기 디지털 문화 혁명을 이끌어 낸 장본인 ‘스티브 잡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잡스’ 형님 혼자 한 것은 아니고, 영원한 그의 짝 ‘스티브 워즈니악’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아타리’에서 괴인 취급받으며, 인도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영화 ‘스티브 잡스’에 나온 것처럼 어떤 일을 계기로 새로운 게임 개발 일을 맡게 되고 거기에 스티브 워즈니악을 포섭하여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애초에 지급 받기로 했던 수익 배분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우정과 비즈니스는 별개라는 잡스 형님의 비즈니스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게임은 개발되었고 출시 이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 이후로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벽돌깨기’ 게임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스티브 잡스 : 게임 개발자 시절]
잡스 형님이 아직은 풋풋한 시절이었던 그 당시에는 S/W의 가격보다는 H/W의 가격이 기준이 되는 시대였다. H/W에 필요한 칩(Chip)의 개수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기도 했다. 기존의 하드웨어를 개선하고 훨씬 적은 수의 칩을 사용하여 ‘벽돌깨기’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스티브 워즈니악이 이 일을 맡기게 되었다. 천재 워즈니악은 훌륭하게 그 역할을 소화했다. 다만, 최초 계약 시점에서 기계에 들어가는 칩을 줄이는데 성공하면 칩 하나당 100달러를 받기로 한 얘기는 워즈니악에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잡스’형님은 750달러의 계약금 얘기만 하고 수익의 절반을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주기로 약속하여 프로젝트에 합류시켰다. 워즈니악이 만든 프로토타입은 최초 설계된 모델에서 42개의 칩을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42개의 칩을 줄이는데 받는 성공 수수료 4200달러 얘기는 워즈니악에게 하지 않았고, 초기 계약금 750달러에서 절반의 비용인 375달러만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도 전체 지불 금액인 5000달러를 잡스 형님이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말이 많은 부분이다. 어쨌든 워즈니악은 375달러만 받았다.
 

[스티브 워즈니악(좌) / 스티브 잡스(우) : 워즈니악 형 미안..]
전체 수익금에 대한 부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못내 미안했는지 잡스 형님은 1976년 4월 1일 역사적인 날 ‘애플(Apple)’을 창업하면서 워즈니악을 공동 창업자로 맞이하게 된다. 그 뒤로 이어지는 ‘애플2(AppleII)’의 성공 신화와 현재까지 디지털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애플 Apple’이라는 회사가 있게 된 배경에는 최초 수익금 분배의 미안함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브레이크 아웃’ 게임을 개발하면서 저비용의 컬러 구현에 대한 기술적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이 기술은 그대로 ‘애플2(Apple II)’에 반영되었다. 한때 최고 시가총액이 700조원을 넘기도 했던 시총 1위 기업의 애플이라는 회사는 375달러의 수익금 밑 장 빼기 기술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영화 ‘타짜’의 명 대사가 기억난다.

“첫판부터 장난질이냐?”

잡스 형님은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잡스의 고등학교 선배(5년 선배) 워즈니악은 아직도 IT 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영원한 엔지니어로서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벽돌깨기’ 게임이었던 ‘브레이크 아웃’에 대한 지불 금액 총 5000달러에 이르는 돈을 다 받았다는 얘기도 있고, 초기 계약금 750달러만 받았다는 얘기도 있어서 이 부분은 명확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고인이 된 지금까지도 ‘선(善)’과 ’악(惡)’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곤 하는 인물 중에 하나가 잡스 형님이 아닌가 한다. 대부분 ‘선’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쪽에서는 아타리가 계약조건을 어기고 750달러만 지불했다고 하며, ‘악’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쪽에서는 전체 수익금을 다 받았지만, 750달러에 대한 절반의 비용인 375달러만 ‘워즈니악’에게 주었다고도 한다.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그의 성격을 보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그는 이제 고인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문화 혁명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 ‘벽돌깨기’ 게임의 ‘백미(白眉)’ 알카노이드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비슷한 ‘벽돌깨기’ 게임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게임이 있었으니, 그 게임이 바로 ‘알카노이드(Arkanoid)’ 게임이다.
 

[알카노이드]
1986년에 타이토(TAITO)에서 개발한 ‘알카노이드’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벽돌깨기’ 게임이다. 어릴 적 오락실에서 한두 번은 다들 해보셨을 것이다. 보기에는 단순한 ‘벽돌깨기’ 게임이지만, 명작 게임 개발사 타이토는 이런 단순한 게임도 전혀 단순하지 않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지 이 게임에는 굉장히 심오하고도 철학적인 배경이 숨겨 있다.

주인공은 ‘알카노이드(Arkanoid)’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던 중에 정체 모를 누군가에 의해 우주선이 파괴되는 위기를 겪게 된다. 주인공은 다시 ‘베이우스(Vaus)’라는 우주선을 타고 위기를 탈출하고자 했는데, 주인공은 다시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 함정이 바로 우주공간의 ‘벽돌깨기’이며, 이 함정(‘벽돌깨기’)을 탈출 하고자 주인공의 모험이 시작된다.

위와 같은 배경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이 게임을 하면서 누구 하나 그런 내용을 알고 있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심지어 게임 이름 ‘알카노이드(Arkanoid)’가 우주선 이름이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알카노이드 : 벽돌깨기 게임]
즉, 이 게임에서 움직이는 바(Bar)는 그냥 단순한 막대가 아니라, 주인공이 타고 있는 우주선 ‘‘베이우스(Vaus)’인 것이다(그런데 우주선이 막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그래..).

‘알카노이드’ 게임은 특이하게 플랫폼에 따라 그 스테이지 수가 다르다. 콘솔 게임기인 패미컴 버전은 36스테이지까지 있지만, 업소(오락실)용 기판은 스테이지 수가 달랐다. 많았던가? 적었던가? 업소마다 세팅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36스테이지보다 많았던가 적었던가 했던 것 같다. 다른 게임처럼 이 게임도 엔딩이 존재하는데, 마지막 보스를 처치하면 주인공은 무사히 우주 함정에서 탈출하여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는 내용으로 엔딩이 나온다.

스테이지를 거듭할수록 당연한 얘기지만, 난이도는 점점 더 어렵게 구성되어 있고, 절대 깨지지 않는 금강석 같은 벽돌도 등장한다(동화 ‘아기 돼지 삼형제’ 중 막내 돼지가 아마 이런 벽돌로 집을 지었나 보다).

■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명작은 영원하다

30년이나 지난 게임이지만, ‘알카노이드’와 같은 게임은 아직도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다. 흐름에 따라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그 게임의 재미만큼은 영원하다.
 
‘벽돌깨기’ 게임은 게임 프로그래밍에 입문하는 초보 시절에 자주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만들기가 비교적 어렵지 않으며(물론 쉽지는 않다.), 게임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캐릭터 이동 처리, 키 입력 처리, 데미지, 충돌 처리, 점수 계산 등의 요소가 미니멀하게 집약되어 있기도 하며, 소스 라인은 대략 100~200여줄 내외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테트리스’ 게임과 함께 자주 만들어 보는 연습용 포트폴리오 과제로 많이 출제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게임으로도 여러 개가 출시되어 있다. 개인 작품으로도 수십 종이 있으며, 비교적 규모 있는 회사에서도 퀄리티 있게 탈바꿈하여 출시하였다. 역시 고전 명작 게임은 영원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필자가 쓰고 있는 [게임별곡] 지난 기사를 읽어 보면 스마트폰에 맞게 만들 수 있는 게임들이 여러 개 있다. (연재기사 광고 아님!)
 

[매일매일 벽돌깨기]
최근 게임답게 스테이지 구성이나, 아이템 구성, 보조 펫의 등장 등 다양한 재미 요소가 추가되어 있다. 최근의 게임들은 기존 극악의 난이도나 어렵게 게임을 풀어 나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게임의 큰 틀은 유지하되 비교적 쉬운 난이도와 아기자기한 구성을 통해 다양한 연령(주로 여성층)대의 진입이 활발한 것도 특징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고전 게임들이 최근 추세에 맞춰 재미를 더해 등장하는 일이 계속되었으면 하며 기존 게임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게임들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으면 한다.

■ 필자의 잡소리
다시 한 번 고전게임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진격 1942’부터 ‘벽돌깨기’까지 그 외에도 다양한 게임들이 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시 등장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게임의 재미를 찾는 본질에 충실한 게임도 있는 반면에 지나친 상업성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게임들도 있다는 것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 개발사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의 잦은 푸쉬 알림으로 게임을 즐기기보다는 메시지 처리에 시간을 쓰게 만들어 짜증을 유발하게 하거나, 인앱결제(유료 아이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스테이지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던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달달 볶아대야 하는 어긋난 ‘소셜(Social)’의 기능 덕분에 대인 관계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게임들을 볼 때마다 ‘추억’이 ‘추억’으로만 남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비교적 만들기도 쉽고? 볼륨도 크지 않은 간단한 게임이지만, 게임 하나로 30년의 역사를 추억해 볼 수 있고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스티브 잡스’ 형님의 손길도 느낄 수 있는 게임으로 필자는 요즘도 새로 나오는 ‘벽돌깨기’ 게임들을 할 때마다 1976년 발매한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게임이 스티브 잡스 자신 더 나아가 애플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해 보곤 한다. 오죽하면 아이팟에 ‘벽돌깨기’ 게임을 내장했을까.

부디 지금 있는 곳에서는 편안히 잠들기를.. 당신과 함께 한 40년 가까운 세월은 나에게도 특별한 추억이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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