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RPG와 다른 ‘던전 앤 드래곤’ 뿌리에 둔 서양 던전형 게임

필자가 중학생이었던 시절에 새로운 게임을 건네받았는데, 그 게임이 ‘주시자의 눈’ 이라 번역 되어 불리던 ‘Eye of the Beholder’라는 게임이다. 처음에 글자를 대충 보고 한 동안 ‘주지사의 눈’이라고 알고 있었던 게임이다. 처음에는 ‘원숭이 섬의 비밀’에 나오는 ‘주지사’ 캐릭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도 ‘아놀드 슈왈제네거’ 아 이름 되게 어려운 아저씨 때문인가 꽤 오랫동안 필자의 기억 속에는 ‘주지사의 눈’ 이라고 남아 있었고, 아직까지도 ‘아놀드 주지사님’ 영화 볼 때마다 꼭 기억나는 게임이다.

현재 ‘아놀드’ 아저씨는 대선 출마를 준비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아놀드’ 아저씨가 대통령이 되면 ‘터미네이터 금지법’ 이라던가 이런 것을 만들지 않을까?

“내가 해봐서 아는데..”

자기가 한때 지구인 박멸의 로봇 역할을 맡았으니 첨단 기술의 잘못된 사용이 얼마나 큰 파국을 초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혀 신빙성 없는 얘기도 아니다 보니 아마도 미국 내 로봇 관련 사업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일이 발생해서 관련 업종이 줄줄이 하락세.. 하지만, 반대로 ‘착한 로봇 법’을 추진하여 로봇 산업이 호황을 맞게 될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시자의 눈 2 : 저 놈의 늑대가 늘 무서웠어.]
‘주시자의 눈’ 개발사인 ‘SSI’는 한때 잘 나가던 게임 개발사로 지금은 검색해도 새로운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RPG 게임들을 많이 개발했으며, ‘RPG 게임의 명가’ 답지 않게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도 많이 개발했다.

‘SSI’는 ‘제네럴’ 시리즈를 통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도 성공적으로 출시했으며, 실제로 ‘팬저 제네럴’을 처음 해보고 밀리터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신세계에 눈을 뜬 필자의 친구는 새벽까지 집에 가지 않고 필자의 집에서 매일 밤 ‘팬저 제네럴’을 하기도 했었다. 결국 얼마 못 가 성난 얼굴로 필자의 집을 급습한 친구의 어머니에게 머리채를 잡고 끌려가는 보기에 썩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긴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하고 필자의 집에서 게임을 했다고 한다).

또한 ‘SSI’는 국내 게임 업체에서도 만들 시도를 하지 못한 ‘6.25’ 전쟁 소재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Korea War’를 출시하기도 했다. 국내에 해 본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정식 수입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북’과 관련 된 내용은 다소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던 시절이었다(참고로 필자의 생일도 6월 25일이다).

[SSI : 팬저 제네럴 2]
■ RPG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준 ‘D&D’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외 RPG 게임으로는 ‘AD&D’ 룰에 따른 게임을 많이 출시하였는데, ‘AD&D’는 ‘D&D’의 확장 판으로 ‘D&D’는 ‘Dungeons and Dragons’ 라는 뜻이다. ‘D&D’에서 보다 확장된 것이 앞에 ‘Advanced’가 붙어서 ‘Advanced Dungeons and Dragons’가 되었다. ‘D&D’는 그 기원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게임에서는 나름대로 역사가 깊은 편이다. 'D&D’는 ‘Gary Gygax’의 'Chainmail’이라는 미니어처 워 게임에서 시작되어 캐릭터 성장과 장비(아이템)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일반적인 ‘RPG’ 게임들이 갖는 기본 특성을 만들었다.

그 당시 ‘Gary’가 만든 'Chainmail’ 이라는 게임은 게임 대회를 진행할 만큼 성공한 인기 게임이 되었으며, 그 게임을 보고 감동 받은 사람 중에 한 명인 ‘David Arneson’ 이라는 양반이 캐릭터 진행 방식이나 게임 구성에 참여하여 이후 ‘Gary’와 ‘David’이 둘은 ‘D&D’의 공동 개발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1974년 게임 업계에 ‘던전 앤 드래곤’ 이라는 게임이 발매가 되어 지금의 ‘RPG’ 게임들의 시조이자 기원이 되었다.

‘D&D’는 ‘TRPG’로 분류되는데, 이는 ‘Table Talk RPG’게임이라는 의미다. 쉽게 얘기해서 같은 테이블에서 게이머들이 게임을 진행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게임의 마스터를 맡는다. 그리고 게임 마스터는 현재 게이머들이 처한 상황을 말로 설명하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PC가 본격화되기 이전의 시절이었으므로, PC가 대신 해야 할 상황 처리나 게임 진행을 사람이 말로 진행했던 시절이었다.

이때 게임에 참여한 게이머들은 각자 캐릭터를 하나씩 맡아 행동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역할 수행극’이라는 의미에서 ‘Role(역할) Play(수행) + ing’ 가 되어 ‘롤플레잉’ 이라는 게임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게임을 진행하는 역할을 수행한 ‘게임 마스터(Game Master)’가 지금의 ‘GM’이다. 온라인 게임 세상에서는 의미론적인 부분에서 보통 ‘운영자’라고도 불리지만, 그 ‘운영자’를 지칭하는 말이 바로 ‘GM’이다(굳이 엄밀하게 분류한다면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얘기를 쓰자면 또 책 한 권이 나올 듯 하다).

최근의 실제 구인 광고 사례에서 보듯이 보통은 그 의미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 모집내용- 모집분야 (운영자) OOOO 게임 [GM(Game Master Support)]
와 같이 ‘운영자’를 ‘GM(Game Master)’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개발사에서는 게임 내 어뷰징 행위 단속이나 게임 패치 전후 안정화 작업 및 품질 보증(QA) 활동도 하는 등 ‘GM’으로서 역할에 맞게 조직이 구성되어 있고 그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하는 ‘GM’의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면 ‘TRPG’ 에서 시작되었다(그래도 게임 업계에서는 역사가 깊은 직업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한다).

시스템적인 부분에 영향을 준 것이 ‘D&D’라면 이 세계를 탄생할 수 있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반지의 제왕’의 원작 소설을 쓴 ‘J.R 톨킨’ 선생님이 있다. 앞에서 얘기한 ‘D&D’ 역시 소설 ‘반지의 제왕’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후 많은 게임들 역시 영향을 받았다.

■ 게임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태어나서 RPG 게임이라고는 ‘이스’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그리고 ‘파판’ 이라 불리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1,2,3), ‘파판’과 라이벌이었던 ‘드퀘’라 불리던 ‘드래곤 퀘스트’ 정도가 고작이었던 필자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정통 RPG 게임은 따분하고 지루하고 괴이하고 무성의한데다가 어렵고 복잡하기까지 어딜 봐도 정 붙일 구석이 없는 ‘하드 삭제 1순위’ 게임이었다.

하지만, 배운 사람들은 곧잘 한다는 말에 다시 도전하기를 여러 번.. 그렇게 게임에 억지로 정을 붙이던 첫 번째 게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참, 게임이 재미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 유지 목적으로 필요에 의해 게임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그런 것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게임이 하면 할수록 뭔가 빠져드는 매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존의 일본 ‘RPG’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게임 안에서 사실 내가 뭘 해야 될지도 몰랐고 어디를 가야 될지도 몰랐던 것들이 반대로 얘기하면 그것은 바로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죽어 가는 ‘윌리엄(멜 깁슨)’이 그토록 갖고 싶었고 절규하며 외치던 ‘프리덤~’ 이었다. 게임의 ‘자유’가 있다니, 지금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흔히 ‘자유도 높은 게임’ 등으로 표현하는 게임들은 그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 접했다가는 갈 곳을 잃고 헤매는 구천(九泉)의 떠도는 영혼이 될 뿐이다.

보통은 이때쯤에 마을 촌장님이 나와서 구구절절 딸이 납치된 얘기를 해주면서, 제발 딸을 구해 달라고 간곡히 애원하며 어디쯤에 가면 못된 놈 누가 있을 거라고 알려 준다던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눈을 떠보니 웬 묘령의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어쩐 일인지 나는 기억을 잃었다던가, 아니면 나를 구해준 그 여인은 지금 병을 앓고 있는데, 치유할 수 있는 약을 제조하려면 동굴 깊숙한 곳에서만 자라거나 절벽 끝에서 구할 수 있다는 신비의 약초를 캐 와야 되는데, 거기에는 역시 못된 놈들이 지키고 있어서 힘들다던가 하는 얘기가 나올 때쯤에도 아무도 나에게 어디를 가라는 둥, 뭘 가져오라는 둥 말을 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 시구(詩句)와 같은 탄식을 읊조리며 컴퓨터를 꺼버리기 수차례.. 그렇게 어렵게 게임에 억지로 정을 붙여 가며 지역 사회 소셜 커뮤니티에 동참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영어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게임을 하루에 1시간만 하는 것을 허용 받은 교내 엘리트 모임에 그렇게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 이 게임 덕분이기는 하지만, 이 게임 덕분에 영어 실력이 확 늘었다던가 하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냥 닥치는 대로 달려나가며 눈앞에 장애물이 보이면 쳐부수는 게임만 줄곧 하던 필자에게 어디를 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뭘 가져와야 할지도 모르는 ‘자유’는 단지 답답할 뿐이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 게임도 진정한 ‘자유도’를 말하기에는 본질에서 먼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돌발적이고 다소 난잡한 세계관에 갇혀 지내던 필자에게 일관성 있는 명확한 주제를 ‘자유’라는 기본 소재로 삼은 게임들을 접할 수 있게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든 게임이 이 게임이었다.

굳이 게임 내 ‘자유도’를 따진다면 ‘GTA’ 와 같은 게임이 진짜 ‘자유도’ 높은 게임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논할 부분은 아닌 듯하다.

■ 1인칭 시점의 RPG 게임에 빠져들다.
1인칭 시점의 RPG 게임은 그 뒤로도 나름대로의 인기를 구가하며, RPG 세계에서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울티마(Ultima)’ 역시 ‘울티마 언더월드’ 라는 게임이 나오기도 했다. 울티마 1편부터 9편까지 그리고 온라인 게임의 전설이 된 ‘울온(울티마 온라인)’까지 ‘울티마’의 세계에 빠져 살며 ‘로드 브리티시’를 찬양하던 필자에게 ‘울티마 언더월드’는 사실 외전 격의 성격이 짙었지만, 초기 출시부터 그 컨셉을 그대로 이어 나가 ‘울티마’와 함께 북미 RPG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통하던 ‘위저드리’ 역시 1인칭 시점의 RPG 게임이다.

1인칭 시점의 게임은 이전에 소개했던 ‘오퍼레이션 울프’라던가, ‘울펜슈타인 3D’같은 게임만 해봤던 필자에게 총알이 날아다니지도 않고, 어디 사과 하나 제대로 깎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조그만 과도 하나 쥐어 주고.. 이 무슨 망측한 게임이 다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이 1인칭 시점의 던전형 RPG 게임을 접한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위저드리]
막막함과 홀로 싸우기를 수차례, 늑대 하나 제대로 처치하지 못하고 죽고 또 죽고 하기를 반복하면서 전투를 진행하는 방법과 게임을 풀어 나가는 방법에 익숙해지자 그 때서야 게임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1인칭 시점의 RPG 게임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초보자가 입문하기에 적당한 난이도는 아닌 것 같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게임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될 만큼 기존의 다른 게임과는 다른 점이 무척 많다.

하지만, 그 재미를 이해하고 느끼게 되면 다른 게임이 시시할 정도로 심각한 중독성이 있는 게임이 바로 이 1인칭 시점의 RPG 게임이다. 무엇보다 시점이 1인칭이다 보니 화면이 바로 자신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며, 그 세계 안에서 살아 숨쉬는 몰입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 준다. 게임마다 특성이 있지만, 어떤 게임은 하루 동안 이동할 수 있는 체력의 한계가 있어서 체력이 고갈되면 야영을 해야 한다던가, 꾸준히 무언가 식량을 먹어야 한다든가 하는 등의 난이도를 상승시키는 요소들이 포함되기도 했다.

필자가 좋아했던 게임 중에는 ‘엘더스크롤’ 시리즈 역시 아끼는 게임 중에 하나인데, 최근까지도 그 시리즈가 이어져 오고 있는 장수 타이틀 중에 하나이다.

[엘더스크롤 5 : 스카이림]
■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서도 인기 '어려운 게임'
‘주시자의 눈’ 게임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나름대로 인기를 얻어 콘솔용 팩 게임으로도 컨버팅되어 출시되었다. 이런 게임들은 대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장르 중에 하나인데, 이런 류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D&D’, ‘AD&D’는 일종의 보증수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일단 믿고 시작하는 것이다.

[주시자의 눈 : SNES ROM팩 버전]
이런 던전형 RPG 게임들의 단점 중에 하나는 내가 현재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가 방향을 잃기 시작하면 빠져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잘 만들어진 지도 한 장 있고 현재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기능을 제공하면 괜찮지만, 오래 전에 출시한 게임들 중에는 그런 기능이 아예 없는 게임들도 있어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결국 게임을 접는 유저도 있었다.

또한, 게임 내에 무수한 퍼즐 요소와 기계 장치 등이 있어서 눈앞에 닫혀 있는 문을 열지 못 한다던가 열쇠가 필요한데, 열쇠를 어디서 구하는지 모른다든가 퍼즐을 풀어야 하는데 아무리 풀어도 풀리지 않는 퍼즐이라던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게임의 난이도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남아 있다.

예전에 어떤 게임인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지하 1층에 감옥에 갇히는 스토리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누가 와서 열쇠를 주고 간다든가 문을 따 준다든가 한다고 공략집에서 본 것 같았는데, 몇 시간을 기다려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간헐적으로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버그였다고 한다. 이렇게 게임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퍼즐과 기계 장치가 꼬여 있는 게임들은 자칫 버그로 인해 다음 단계 진입이 아예 불가능한 상태에 이를 만큼 위험한 요소이기도 하다(물론 대부분의 게임에서 그런 치명적인 버그는 없었지만..).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퍼즐을 풀 정도의 지능지수가 안 된다던가 하는 문제도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였지만, 필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식량’ 자원 조달의 문제였다. ‘주시자의 눈’ 게임 역시 ‘식량’ 이라는 요소는 게임 진행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요소였고, 체력 회복이 되지 않는 상황에까지 몰리면 결국 ‘Game Over’라는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성직자 스킬 중에 ‘식량’을 만드는 스킬이 있긴 했다.

[주시자의 눈 : 캐릭터 생성]
이런 던전형 RPG 게임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보통 ‘파티’를 이루어 게임을 진행하는 형식이 많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진행하는 외롭고 고독한 게임도 있지만, 대다수의 1인칭 시점의 던전형 RPG 게임들은 4~8인까지 조직적인 ‘파티’를 구성하게 된다. 게임 시작 처음부터 ‘파티’를 구성하기도 하고, 게임에 따라 중간에 합류하는 식으로 점차 인원을 늘려 나가는 식의 ‘파티’를 구성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아무렇게나 만들었다가는 게임을 한참 진행하고 나서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될 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힐링’ 계열의 마법을 쓰는 ‘마법사’ 캐릭터가 ‘파티’에 없는 경우 전투 진행에 아주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악으로 깡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해도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눈앞에 닫혀 있는 상자나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일 경우 전문 직업이 ‘도둑’인 캐릭터가 있어야 되는데, ‘도둑’ 직업의 캐릭터가 ‘파티’에 존재하지 않는다던가 하면.. (상자를 이빨로 물어 뜯어서 열 수도 없고..)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도둑’이면 쉽게 열 수 있는 상자를 ‘도둑’이 없다고 아예 열 수 없게 만들어 버리지 않고 어렵게 열 수 있더라도 다른 방법을 준비해 뒀다던가 하는 치밀한 기획이 있었겠지만, 예전에 만들어진 게임들은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한 게임들도 간혹 있다 보니 게임을 한참이나 했는데 다음 단계로 진입 할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을 입수하지 못 한다던가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캐릭터 생성 화면으로 돌아가면서 있는 욕 없는 욕 다 했던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이 게임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전 판에서 진행했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1편에서 만든 캐릭터를 2편에서 불러올 수 있고 3편에서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신규 생성도 가능하다. 하지만, 공들여 키운 캐릭터들에 정이 들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전 캐릭터를 불러와서 하는 것을 선택했다. 물론, 아이템이나 레벨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보통 이렇게 게임 데이터, 캐릭터를 다음 버전에서 쓸 수 있는 게임들은 주로 ‘OOOO.SAV’ 처럼 SAVE 파일을 이용해서 캐릭터를 이전했기 때문에, 세이브 파일 관리는 정말 중요했다. 인터넷이나 DB로 저장되는 온라인 시대도 아니었으니, 개인 PC에 저장 된 세이브 파일이 바이러스나 불의의 사고 등으로 훼손되면 복구 할 방법이 없었다(필자도 그렇게 모 게임의 1년치 세이브 파일을 날려 먹은 추억이 있다).

또는 친구들끼리 세이브 파일 주고받는 게 유행이기도 했는데, 이전에 잘 키워 놓은 친구의 캐릭터를 분양 받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조공으로는 되지 않았고 게임에 따라 시각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게임들의 경우에는 그 가치가 같은 무게의 황금에 이를 정도였다(세이브 파일에 무게가 있다면 말이지..).

■ 초기진입 높지만 맛들이면 치명적 매력

이런 류의 게임들은 초기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긴 해도 제대로 맛을 들이면 헤어나올 수가 없는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다. 현실 세계의 이루지 못한 꿈과 한풀이를 게임을 드나들며 또 다른 자신의 인생을 상상하면서 즐기다 보면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몇 시간 ~ 몇 주 정도면 끝판 왕을 깨고 다음 게임을 하고, 어느 순간 게임을 하는 것이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듯이 빨리 끝내고 다음 숙제를 하는 것처럼 반복적인 일상의 패턴이 되어 갈 때 만난 이 게임 덕분에 하나의 게임에 오래도록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하며 즐길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이후로 한 동안 영문 RPG 게임들에 빠져 지냈는데, 왜 그렇게 영문으로 된 게임을 열심히 했는데도 영어 실력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아직도 의문스럽다(NPC들 대화를 너무 대충 들어서 그런가 보다).

이런 게임들은 게임 내 주인공이 자신이기도 하지만, 신경 쓰고 다루어야 할 존재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들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게임으로 게임 안에 작은 ‘소셜(Social)’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 이외에 나와 함께 하는 누군가가 비록 캐릭터로 존재할 뿐이지만, 고되고 지친 하루를 마감하고 집에 돌아오면 하드 안에 잠자고 있는 나를 기다리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기도 했었다.

■ 필자의 잡소리
국내에서도 ‘RPG’ 장르의 게임들이 많이 출시되었지만, 대부분 중세 판타지 컨셉의 게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찬란하고 유구한 5000년의 역사는 게임 속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홍길동전 RPG 게임]
그래도 종종 ‘홍길동전’ 같은 한국적인 내용의 게임도 출시되긴 했었다. 물론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국내 게임 역사에는 1993년에 발매한 최초의 IBM-PC용 국산 RPG 게임으로 기록되어 있다(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인기를 얻었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1994년 작품).

최초의 국산 ‘상용’ 게임은 1987년 출시 한 ‘신검의 전설’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게임은 IBM-PC용이 아니다. 그래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개발자(남인환)가 만든 게임이라 하여 세간에 큰 이슈가 되었다.

지난 한국 게임 개발의 역사 속에서 한국적인 것, 한국만의 것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RPG’게임들 역시 서구의 것들이나 일본이 만든 판타지 세계관을 빌려 온 것들이 많다. 물론 이미 대중에게 익숙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것을 게임 속에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홍길동전’ 개발팀 여러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한경닷컴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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