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기자의 e스팟] '황제' 임요환이라는 독배

"그분은 우리를 늘 시험에 들게 하십니다." 여기서 '그분'은 스타크래프트 황제 임요환이고, 우리는 60만 명 팬클럽을 비롯한 누리꾼들이다.
 
올시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 리그에서 공군 에이스팀은 13개팀 중 꼴찌를 했다. 그런데도 공군은 싱글벙글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지난 4월 3일 창단된 공군팀은 비록 8명의 프로게이머 출신 전산 특기병으로 구성돼 있지만 2승도 힘들다던 예상을 깨고 무려(?) 6승을 했다. 또 잊을 만하면 짜릿한 승부를 펼치며 돌풍을 일으켰다. 어느새 SKT·KTF·CJ와 함께 최고 인기팀이 되었다.
 
임요환이 뜨면 시청률도 초대박, 방청객도 초만원이었다. MBC게임에 따르면 프로리그 평균 시청률이 0.350%인데 비해 공군팀 경기의 평균 시청률은 0.525%로 1.5배에 육박했다. 임요환이 나서면 온라인 생중계 서버도 다운되곤 했다. 곰TV에서 밝힌 프로리그 전기 VOD 조회수의 1~6위까지를 휩쓴 것도 임요환의 경기였다. 이러니 가히 '임요환의 공군팀'이라 할 만하다.
 
최근 만난 공군팀 관계자는 "적어도 에이스팀은 공군 내 안티가 없다. 게임 있는 날이면 장병들이 농구·축구 등 체육을 안 해 걱정이다"며 엄살을 부렸다. 또 공군팀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공군 선호가 자연스럽게 늘고 있다며 희색을 감추지 않았다. 공군팀의 인기에 자극받아서인지 해군은 e스포츠팀 창단을 내부적으로 확정짓고 협회에 절차를 밟고 있다.
 
e스포츠 경기장에 공군복 차림의 장병들도 등장했다. 어느날부턴가 공군복은 물론 머리가 짧은 사복 차림의 전역병도 하나 둘씩 끼어 있었다. 전역 후에도 공군팀을 응원하러 경기장으로 직접 찾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전역병의 군대 사랑 콘텐트까지 바꿀 정도로 한국 e스포츠 판은 임요환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반면 낭패인 건 그의 전 소속팀 SKT다. 단지 그가 빠졌을 뿐인데 2005년 전·후기 우승에다 통합 우승까지 거머쥔 '트리플 크라운'과 지난해 통합 준우승의 영광을 뒤로 하고 전기리그 8위로 곤두박질쳤다. 그가 실력으로서뿐만이 아니라 그만큼 크고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지난 10~12일 열린 서울 e스포츠 페스티벌에서도 그는 팬들을 시험에 들게 했다. 협회 등록 256명의 프로게이머들이 모두 출전한 대회였다. 그가 1회전에서 탈락하자마자 팬들은 앞다퉈 자리를 떴다. 대회도 갑자기 맥이 쑥 빠지더니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나무가 크면 그만큼 그늘도 크다던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임요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큰 한국 e스포츠계에 그는 축배이자 독배이기도 하다. 흥행마술사인 황제가 대안 부재라는 덫을 쳐놓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팬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되레 9월 시작되는 후기리그에서 임요환이 또 어떤 마술을 부려 시험에 들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하는 눈치다.

박명기 기자 일간스포츠 2007년 8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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