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CD-ROM RPG, 애니메이션-성우 음성 지원 게임역사 한 획

[천외마경(1989)]유튜브(/watch?v=Z8vCRQGRXW0)

1989년 PC엔진용 게임으로 출시한 ‘천외마경’ 시리즈의 첫 작품은 ‘천외마경 : 지라이야(天外魔境 ZIRIA)’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일본에서는 인기가 많았지만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일본색이 강하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홍보하기에는 힘든 게임이었다. ‘천외마경’의 게임 내용은 ‘지팡구’라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지팡구는 일본을 뜻한다.

‘천외마경’은 세계 최초로 CD-ROM을 매체로 한 RPG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PC엔진 CD-ROM의 대용량이라는 매체의 장점을 최대로 살려 게임 내 애니메이션이나 성우들의 음성 지원 등으로 1990년대 초기 게임역사의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작품이다.

■ ‘천외마경’으로 PC엔진은 닌텐도-세가에 RPG로 밀렸던 아쉬움 달래줘

‘천외마경’ 시리즈 1편인 ‘지라이아’의 출시로 당시 PC엔진 유저들에게 닌텐도와 세가에 RPG로 밀리던 아쉬움을 한 번에 극복해주었다.

닌텐도 패미컴에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와 ‘파이널판타지’ 시리즈가 있었고 세가 메가드라이브에 ‘샤이닝 포스’나 ‘판타지스타’ 같은 RPG들이 있던 것에 비해 변변한 RPG 하나 없던 PC엔진 유저들은 쏘고 부시는 단순한 게임 말고 뭔가 수준 높은 게임을 갈구하던 중 ‘천외마경’이라는 걸출한 게임을 손에 얻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현재까지도 회자 될 정도로 아주 유명한 게임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색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와 PC엔진 유저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 등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임이기도 하다.

[천외마경(1989)]https://www.amazon.com/Need-Know-About-Marco-Polo-ebook/dp/B081V11F4L

‘천외마경’은 흔히 일본의 다른 말로 알려져 있는 ‘지팡구’라는 가상의 세계를 게임의 세계관으로 삼고 있지만 여기서 지팡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본의 모습이 아닌 서양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지팡구라는 평행우주론 같은 세계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지팡구라는 말의 유래는 오래 전 일본국(日本國)을 중국어로 ‘Rìběnguó(한어병음 기준 표기)’라 했는데 중국어의 한자를 발음기호로 표기하는 방식이 정식으로 정해지지 않았던 때에 가장 많이 쓰이던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에 따라 ‘지펀구(지팡구), Zipangu’라 했다.

지팡구라는 말은 당시 중국에서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서양에 처음으로 알린 이는 탐험가로 유명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였다. 마르코 폴로는 어린 시절 TV만화로도 유명했는데 아침 일찍 방송하는 만화 때문에 주말에 늦잠도 못 자고 비몽사몽 잠이 덜 깬 상태로 만화를 본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마르코 폴로. 사진=아마존닷컴 e북]

■ 원제는 ‘애니메이션 기행 마르코 폴로의 모험’

원제는 ‘アニメーション紀行 マルコ・ポーロの冒険(애니메이션 기행 마르코 폴로의 모험)’으로 일본 NHK에서 총 43화 분량으로 1979년 4월 7일부터 1980년 4월 5일까지 방영했던 인기 만화였다.

한국에서는 10년이나 지나서 MBC에서 1989년 10월 14일부터 1990년 3월 18일까지 일요일 오전 8시 30분에 방송했다. 현재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는 많은 팬들이 복원 요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NHK에서는 43화 분량 중에서 13화 정도 분량만 보존되어 있고 녹화 된 테이프를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NHK ‘발굴 프로젝트 통신’이라는 페이지를 보면 오랫동안 이 만화를 추억하고 있는 팬들의 요청으로 보존되어 있는 작품을 복원하려는 계획에 대해 나와있다.

[마르코 폴로의 모험. 사진=nhk 홈페이지]

어린 시절 추억의 작품이 자료 보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다시 복원되기 힘들다는 소식에 많은 팬들이 절망했다. 하지만 아직 자료 수집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복원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 팬들과 함께 아직도 마르코 폴로의 자료 수집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지팡구라는 말을 처음 서구 유럽에 알린 마르코 폴로 얘기를 하다 보면 누군가는 지팡구라는 말을 위대한 대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무스가 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왠지 더 연륜이 있고 오랜 역사 속에 인물인 것 같은 노스트라다무스는 1503년 12월 14일생으로 마르코 폴로의 1254년 9월 15일보다 한참이나 늦게 나온 인물이다.

거의 250년 먼저 마르코 폴로가 지팡구를 언급했다. 지팡구는 당시 서구 유럽에게 황금의 나라로도 알려진 신비의 나라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잘못된 기록으로 인해 서구 열강은 전설 속에 황금의 나라 지팡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했다.

■ ‘전설 속의 황금의 땅’ 그리고 금각사와 천외마경

현재 일본을 부르는 영문명 Japan(재팬)은 Zipangu(지팡구)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지팡구는 전설 속의 황금의 땅 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당시 ‘원나라에서 저 멀리 바다 건너 섬 나라에는 황금으로 된 절이 있다(금각사, 金閣寺)는 말을 듣고 절에도 금을 입혔다면 온 나라가 금이 많이 나올 것이다’라는 과대해석으로 검증도 없이 글을 남긴 것이 여태까지 지팡구는 황금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이유이다.

여기서 더 놀라운 부분은 정작 마르코 폴로는 일본에 간 적이 없다. (원래 서울도 가 본 사람보다 안 가본 사람이 더 잘 안다고..)

[황금의 나라의 절(금각사, 金閣寺)]https://jp.zekkeijapan.com/spot/index/1048/

금각사는 교토여행의 필수코스로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이다. 지금은 화재 사건으로 소실 된 것을 복원했지만 예전에도 금칠을 한 금각사는 굉장히 유명한 절이었다.

‘천외마경’은 이렇게 서구인들에게 환상의 섬으로 잘못 알려진 자신들의 나라의 고어인 ‘지팡구’라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이름 그대로 일본풍의 모든 것을 담았다.

당시 RPG들이 엘프와 드워프가 등장하는 중세 유럽 배경이나 판타지 세계관이었던 것들에 비해 일본색이 짙은 세계관을 선보이면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시리즈 첫 작품의 부제인 ‘지라이야(ジライア, 自来也)’는 ‘천외마경’ 게임의 주인공으로 후에 ‘천외마경’ 게임의 팬이었던 나루토의 작가 ‘키시모토 마사시(岸本 斉史(きしもと まさし)’는 자신의 작품 ‘나로투’에서 ‘천외마경’ 1편의 주인공 삼인조인 지라이야, 오로치마루, 츠나데의 이름을 전설의 닌자 삼인조의 이름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나루토 – 닌자 3인방]http://universoanimanga.blogspot.com/2013/06/os-sannins-lendarios.html

게임에서 등장한 캐릭터가 다른 작가의 작품에까지 등장하는 것도 흔한 사례는 아니기 때문에 ‘천외마경’은 더욱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나루토뿐만 아니라 여러 동인지에서도 게임의 캐릭터들이 차용되는 등 ‘천외마경’은 최근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이다.

PSP나 NDS 등 포터블 기기로 출시된 작품도 여러 개가 있다. 한국의 RPG는 아직까지도 서양의 캐릭터들이 주로 등장하는 것에 비해 자국의 전통을 살린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비록 세계화에 따르는 문제점 등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만 부러운 부분이다.

■ 일본 색채가 강한 게임 ‘천외마경’ 50만 장 판매...일본의 4대 RPG 주목

‘천외마경’ 게임의 내용은 주인공인 지라이야가 지팡구 세상에서 겪는 이야기들이 주요 스토리이다.

‘천외마경’은 RPG의 주류였던 판타지 세계관에서 벗어나 일본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지극히 일본적인 색채가 강한 게임이다. 당연히 일본에서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국내에서는 그렇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출시 당시 5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는데 50만 장이라는 수치는 다른 히트 게임에 비해 큰 수치는 아니지만 PC엔진 보급률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대단한 수치다.

PC엔진의 총 판매량은 580만대였는데 그 중 일본에서만 390만대였다. 비슷한 시기의 닌텐도 슈퍼패미컴은 총 4910만대의 판매량의 기록을 세운 것에 비교하면 거의 10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파이널판타지’ 시리즈가 패미컴 버전 1편이 52만 장, 2가 76만 장, 3가 140만 장이었고 슈퍼패미컴용으로 출시한 4편이 177만 장, 5편이 245만 장, 6편이 342만 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PC엔진에서 천외마경의 50만 장 판매량은 적은 수치가 아니다.

PC엔진 게임으로는 ‘도키메키 메모리얼’과 함께 ‘은하아가씨전설 유나’ 시리즈와 ‘천외마경’ 시리즈가 PC엔진 판매를 이끌어가는 게임들이었다.

[천외마경 - 주인공 3인방]http://www.medalfactory.com/pce/soft.php?r=699

■일본 도깨비 형상-일본의 요괴 캐릭터로 일본 유저 친숙함 선사

‘천외마경’에 등장하는 지라이야(ジライア, 自来也)는 불의 일족의 갈래인 두꺼비족 출신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닌자의 캐릭터를 차용했다. 지라이야와 함께 등장하는 오로치마루(オロチ丸, 大蛇丸)는 뱀족 출신이고 츠나데(ツナデ, 綱手)는 민달팽이족 출신으로 등장한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수리검을 사용한다던가 술법을 사용하는 등 일본 역사에서 실제 사건들과 신화적인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 게임의 재미를 극대화시켜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술법이라는 것은 지극히 동양적인 요소로 굳이 서양의 것과 비교한다면 마법 공격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술법과 마법은 미묘한 차이로 인해 일대일 의미적 교환가치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게임에 몬스터로 등장하는 적 캐릭터도 기존에 익숙한 서양의 몬스터들이 아니라 일본 도깨비의 형상을 했다던가 일본의 요괴들을 형상화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일본 유저들에게는 친숙함을 더했다. 하지만, 그것이 해외로 전파되는데 있어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해외의 유저들에게는 다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한 캐릭터에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천외마경]유튜브(watch?v=8HdZGBgSVF4&list=PLZzWiVDNbG__5UVJlScRS2nxpyD408OrS)

게다가 일본은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의 저조한 보급률은 ‘천외마경’의 해외 확장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8비트 콘솔 게임기 시절 거의 오랫동안 1위의 자리를 고수하던 닌텐도와 16비트 시절부터는 닌텐도의 SNES(슈퍼패미컴)와 세가의 제네시스(메가 드라이브)가 패왕의 자리를 두고 혈전을 벌이는 동안 만년 3위 이하였던 PC엔진은 보급률에 있어서 그 격차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신화적 소재를 주제로 일본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게임으로 시리즈 첫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시리즈화를 계획하고 3여년의 개발기간 동안 연인원 300명이 넘는 인원을 투입하여 출시한 시리즈 2편 ‘천외마경 : 만지마루’가 소위 대박이 터지면서 ‘천외마경’ 시리즈는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와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에 이어 ‘여신전쟁’ 시리즈와 함께 일본의 4대 RPG로 거론될 정도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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