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잊혀져진 게임’ 2018년 ‘랑그릿사 모바일’로 화려한 부활

[랑그릿사 밀레니엄(ラングリッサー)]https://thegamesdb.net/game.php?id=29521

시리즈 5편 이후 출시한 시리즈 6번째 ‘랑그릿사 밀레니엄’은 랑그릿사 골수 팬들에게 ‘랑그릿사의 숨통을 끊어 놓은 원흉’으로 지탄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은 개발진 입장에서 다소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랑그릿사’는 시리즈 대대로 인기를 얻고 있던 대표 시리즈 게임이었지만 ‘랑그릿사 밀레니엄’이 출시될 쯤에는 이미 예전과 달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어드벤처와 같은 고전 장르들이 점점 온라인 게임에 밀려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꼭 ‘랑그릿사 밀레니엄’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랑그릿사 밀레니엄’이 출시된 1999년은 사회적으로는 밀레니엄 버그 또는 Y2K라는 이름으로 온 세상의 컴퓨터가 자릿수 표기 오류로 인해 컴퓨터, 전산의 이상현상으로 핵미사일 기지의 전산 오류로 인해 핵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등의 뉴스가 연일 TV에 나오고 ‘스타크래프트’가 게임계를 강타하여 PC방의 출현과 급속한 확장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1999년 동아일보 사회면]동아일보 제공

현재도 ‘게임중독’이라는 말이 청소년들의 사회적 문제 현상으로 지목되며 찬반양론이 팽배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20년 전인 1999년에도 창소년들의 ‘인터넷 중독’이라는 것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21세기가 얼마 남지 않은 20세기의 마지막 년도 1999년에는 스타크래프트의 대성공과 PC방의 급속한 확장으로 예전만큼 콘솔 게임기의 인기가 높지 않았던 시절이다.

굳이 게임기가 아니어도 쉽고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고, 이미 ‘스타크래프트’는 게임의 대명사가 되어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잘하지는 못해도 할 줄은 알아야 하는 전공필수 같은 게임이었다.

혼자 하는 게임에서 여럿이 함께 경쟁하며 승부를 짓는 게임을 하는 것으로 시대가 변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출시한 ‘랑그릿사 밀레니엄’은 아무래도 예전만큼의 구매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웠다. 안 그래도 경쟁 기종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세가의 드림캐스트용으로 출시했던 것 또한 구매력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었다.

이미 콘솔 게임기 시장은 전통의 절대 강자 닌텐도에서 신흥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게임기가 지배력을 확장하여 굳건한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했더라면 판매량은 더 올랐을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용으로 출시된 것을 시작으로 세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끝까지 세가와 관계를 끊지 못하고 세가의 드림캐스트로 출시한 이유는 당시 ‘랑그릿사 밀레니엄’을 개발한 ‘캐리어소프트’가 ‘아틀라스(ATLUS)’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세가의 자금지원을 받게 되어 세가의 입김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틀라스(株式会社アトラス)’는 ‘진 여신전쟁’ 시리즈나 ‘페르소나’ 시리즈로 유명한 회사인데 오래 전부터 세가(SEGA)와는 혈맹 관계에 있는 세가 서드파티였다. 2013년 9월 세가 사미 홀딩스에 인수되어 세가 게임즈의 자회사가 되었을 만큼 아틀라스와 세가의 사이는 꽤나 돈독했고 그 아래에서 랑그릿사를 개발하는 ‘캐리어소프트’ 개발진은 아무래도 세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랑그릿사 2(ラングリッサー 2, Langrisser 2)]https://www.amazon.co.jp/

하지만, 문제는 플랫폼보다 다른데 있었다. 많은 유저들에게 일러스트로 각인되는 게임에 메인 일러스트레이터를 교체한 것은 오래 전부터 ‘랑그릿사’ 게임을 하던 유저들에게 심각한 부적응 사태를 일으켰고, 이것은 안 그래도 기울어가는 장르적 태생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1987년 첫 출시한 ‘엘시리드’에 이어 후속작 ‘가이아의 문장’과 ‘가이프레임’을 거쳐 1991년 ‘랑그릿사’가 되기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왔던 ‘랑그릿사’ 시리즈는 1편 ‘랑그릿사’(1991)를 필두로 ‘랑그릿사2’(1994년 출시), ‘랑그릿사3’(1996년 출시), ‘랑그릿사4’(1997년 출시), ‘랑그릿사5’(1998년 출시)까지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유의 일러스트와 별도의 일러스트북이라던가 책받침, 브로마이드 등 관련 상품들도 필수 구매 순위에 오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팬덤을 형성했다. ‘랑그릿사’는 낮은 클래스에서 시작해 게임을 거듭할수록 승급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점점 강해지는 캐릭터들을 운영하는 것이 게임의 재미였다.

[랑그릿사 3(ラングリッサー 3, Langrisser 3)]https://www.amazon.co.jp/

그러던 중 1999년 밀레니엄 시대를 앞두고 이름도 ‘랑그릿사 밀레니엄’이라 붙였던 시리즈 6편이 비운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시리즈 5편까지는 우루시하라 사토시가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맡았지만 시리즈 6편 ‘랑그릿사 밀레니엄’에서는 일러스트 작가의 전면 교체와 함께 대부분의 게임 시스템도 전면적으로 변경되어 ‘랑그릿사’의 정규 시리즈라고 하면 보통 1편부터 5편까지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정규 시리즈에서도 소외받는 ‘랑그릿사 밀레니엄’은 흥행 실패 이후 15년 동안 후속작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중간에 판권이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와중에 플레이스테이션2로 시리즈 3편이 출시되기도 했고 다른 플랫폼으로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새로운 플랫폼으로 출시한다는 떡밥은 있었지만 항상 마지막에 근거 없는 소문으로 밝혀지며 오랜 기다림에 지친 팬들에게 다시 한 번 비수를 꽂았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장장 15년간을 근신하며 조용히 고전게임 리스트에서만 존재하는 잊혀져 가는 게임이 되었다.

[랑그릿사 4(ラングリッサー 4, Langrisser 4)]

‘랑그릿사’는 시리즈를 이어가는 동안 굴곡이 심했다. ‘랑그릿사 1, 2’편까지는 메사이아에서 직접 개발을 했고 시리즈 3편을 개발하려던 때에 기존 개발진들이 퇴사하여 ‘캐리어 소프트’라는 게임 개발 회사를 세우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 메사이아는 주식회사 일본 컴퓨터 시스템(NCS)의 게임 사업부 브랜드였고 NCS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게임 개발 사업 부문을 정리하고 있던 NCS에서 ‘랑그릿사’의 핵심 개발진들이 퇴사하는 바람에 ‘랑그릿사’ 시리즈는 좌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NCS의 메사이아에서는 개발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퇴사한 개발진들이 세운 캐리어 소프트에 위탁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랑그릿사’ 시리즈의 출발선이라 볼 수 있는 ‘엘스리드’ 게임은 ‘랑그릿사’ 시리즈 1, 2편까지만 세계관을 공유하고 시리즈 3편부터는 전혀 다른 게임이 되었다.

메사이아에서 시작한 엘시리드부터 랑그릿사까지의 세계관 설정을 캐리어 소프트가 거부했는지 메사이아에서 제안을 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캐리어 소프트가 새로운 설정으로 이름만 '랑그릿사'를 갖다 쓴다 해도 메사이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랑그릿사 (ラングリッサー, Langrisser )]

https://twitter.com/ps3orakio/status/949032668686987264/photo/1

다만, 다행이라면 시리즈 3편 역시 기존에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우루시하라 사토시가 맡아서 진행했기 때문에 정작 게임의 시스템이나 세계관은 크게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랑그릿사 3’편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랑그릿사2’가 랑그릿사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개발사가 바뀐 ‘랑그릿사’ 3편을 두고 많은 기대와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차세대 기종인 세가 새턴용으로 출시된 ‘랑그릿사’ 3편은 북두의권의 켄시로,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국내판 – 우수한, 방의표)의 성우를 맡았던 카미야 아키라와 마법기사 레이어스,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의 성우인 ‘시이나 헤키루’, 쾌걸 조로,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드래곤볼GT 등에서 활약한 ‘시오자와 카네토’와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이노우에 키쿠코(베르단디 성우)’ 등 성우계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이것만으로도 이미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런 초호화 캐스팅 덕분에 랑그릿사는 기존의 랑그릿사 팬들과 애니메이션 성우의 팬들 모두에게 필수 구매 게임으로 지정되어 발매일만 손꼽아 기다리는 팬이 계속해서 늘어갔다.

 하지만, ‘랑그릿사’만의 고유한 팬들에게는 기존의 1,2 편과 이질적으로 달라진 세계관과 게임 시스템 때문에 상당수의 골수 팬들은 ‘랑그릿사 3’를 정통 계보에서 지워버리고 1, 2편만을 진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게 ‘랑그릿사’ 3편을 기준으로 ‘랑그릿사’는 기존의 팬과 신규 유입된 팬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기존의 팬들에게는 졸작이라 비난받았지만 시리즈 3편부터 시작한 신규 유저들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은 게임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뒤이어 출시한 랑그릿사 4부터는 판매량이 급감했는데 시리즈 3편에서 기존의 팬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결국 ‘랑그릿사 4’는 10만‘장 정도의 판매량을 끝으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시리즈 5 역시 비슷한 판매량으로 끝이 났다.

특이한 점은 시리즈 4편이 국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시리즈 1,2,3편은 PC버전으로 한글화 버전으로 출시한 반면 시리즈 4, 5편은 한글화 버전으로 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랑그릿사‘는 시리즈 3, 4, 5편과 시리즈 6번째 작품인 ‘랑그릿사 밀레니엄’을 끝으로 그 계보를 잇지 못하고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잊혀져가는 다른 게임과는 다르게 많은 팬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추억을 공유하고 자체 콘텐츠를 양산하며 ‘랑그릿사’를 추억하고 2차 창작물을 생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을 만큼 ‘랑그릿사’는 골수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러던 중 팬들의 기나긴 바람이 이루어진 것인지 2018년 ‘랑그릿사 모바일’이 발매되었다.

[랑그릿사 모바일]https://www.langrisser.co.kr/

특이한 점은 2018년 중국에서 제일 먼저 발매하고 차례로 대만 발매 후 2019년 1월 북미, 2019년 4월 일본, 2019년 6월 한국 순으로 발매했다는 점이다.

일본 게임이 중국과 대만에서 제일 먼저 발매를 했던 이유는 ‘랑그릿사’ 모바일을 개발한 회사가 중국의 게임 개발사 ‘ZlonGames’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랑그릿사’ 계보를 잇는 작품이지만 랑그릿사 5편 이후의 시간대를 다루고 있고, ‘랑그리사’ IP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으로 무엇보다 ‘랑그릿사’ 일러스트의 메인 작가였던 우루시하라 사토시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통 골수 팬들에게는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망작이라는 치욕스러운 평가를 받는 ‘랑그릿사 밀레니엄’이나 완성하지도 못하고 소문만 무성했던 ‘랑그릿사 슈바르츠’에 비해 확실히 나아진 모습으로 오랜만에 정통 계보를 잇는 게임이 등장하여 팬들을 즐겁게 했다.

한국은 2019년 6월에 출시했기 때문에 다음 달이면 벌써 출시 1주년이 되어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1주년 이벤트도 하고 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