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전자- 해태 유통, 가격의 문턱 못넘고 시장 철수한 비운의 주인공

[알파무역 - PC Engine]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a/PC_Engine.jpg

PC엔진(PCエンジン, TurboGrafx-16)은 한국에서도 유통된 적이 있었다. 대우전자와 해태에서 PC엔진을 수입해서 유통했는데 해태에서는 ‘바이스타’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유통했다.

당시 한국에서 게임기라는 것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예가 해태에서 PC엔진을 들여오면서 바이스타라는 이름으로 게임기를 담당하던 업무 부서가 해태전자 어린이문화사업부라는 곳이었다.

해태전자에서 유통하기 전에는 1980년대 후반 알파무역이라는 업체에서 직수입 판매를 하다가 대우전자에서 재믹스PC셔틀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유통되었다.

PC엔진은 국내에 알파무역이라는 곳에서 직수입하여 유통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대우전자에서 대우 재믹스 PC셔틀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하지만, 당시 게임기의 가격이 상당히 고가여서 일반 서민들이 자녀들에게 선뜻 선물로 사주기에는 쉽지 않았다.

광고표지에도 소비자권장가 45만 6000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1980년대 말에 45만 원이라는 돈은 웬만한 직장인 월급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당시 짜장면이 600~700원, 대학 등록금이 국공립 기준 40만~50만원 하던 시절이었다. 1990년 삼성전자 초호봉 급여명세서를 보면 월급이 73만원 정도였고 한국은행은 42만원 정도였다.

[1990년 공무원 급여]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a/PC_Engine.jpg

1990년 공무원 급여 테이블만 봐도 45만 6000원이라는 게임기 가격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가격임을 알 수 있다. 닌텐도의 패미컴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결국 가격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국내에 보급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빈 자리는 경쟁사였던 닌텐도의 패미컴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현대전자가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닌텐도의 패미컴과 그 복사품인 짝퉁 패미컴들이 넘쳐나는 동안 고가의 PC엔진은 일부 상류층의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닌텐도의 패미컴이나 슈퍼패미컴, 현대전자의 컴보이, 슈퍼컴보이,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 등의 게임기를 갖고 있는 친구들은 많이 봐왔지만 PC엔진 게임기를 가진 친구는 정말 딱 1명 보았을 정도였다.

PC엔진에는 훌륭한 명작 게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타이틀의 양적인 부분에서 닌텐도나 세가의 상대가 되질 않았던 터라 선뜻 고가의 PC엔진을 구매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가의 게임기를 사놓고도 즐길만한 게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PC엔진 Shuttle(셔틀)’은 1989년 1만 8800엔(약 21만 6,978.32원)이라는 가격으로 출시되었는데 대우전자에서 재믹스와 재믹스 수퍼V의 뒤를 잇는 기종으로 ‘재믹스 PC셔틀’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게임기이다.

[대우전자 재믹스V]http://www.ssg.com/item/itemView.ssg?itemId=1000040707032&siteNo=6004&salestrNo=6005

재믹스 PC셔틀은 기존의 MSX, MSX2를 재믹스, 재믹스 수퍼V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던 대우전자가 후속 기종으로 PC엔진 Shuttle(셔틀)을 들여온 것이다. MSX와는 다른 기종으로 당시 광고 문구에도 ‘더 이상 MSX가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하며 게임기의 모양도 아예 비행우주선과 같은 모양을 그대로 가져왔다.

기존의 CD-ROM을 포함한 세트가 너무나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에 CD-ROM을 제외한 본체 세트로 18만원에 판매했던 게임기이다(당시 재믹스 수퍼V는 13만 5000원) 해태와는 달리 대우전자에서는 ‘컴퓨터사업본부’에서 PC엔진 수입 판매를 총괄했다.

[대우 재믹스PC셔틀]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1402173446v

MSX기종을 재믹스라는 이름으로 출시하여 게임기사업을 통해 의외로 재믹스로 재미를 본 대우전자는 게임기 사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자신들의 재믹스 게임기의 본판이었던 MSX, MSX2는 이제 MSX TurboR(199)을 마지막으로 저물어가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후속기종 대체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콘솔 게임기 시장은 이미 닌텐도는 현대전자와 손을 잡았고 세가는 삼성과 손을 잡은 터라 마땅한 대상이 없었다.

재믹스는 1985년 대우전자에서 MSX규격을 기반으로 게임기를 만든 것으로 정식명칭은 CPC-51R이었다. 저물어가는 MSX시장에서 1988년 삼성전자는 세가와 손을 잡고 세가의 콘솔 게임기였던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삼성 겜보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왔다.

이에 맞서 현대전자에서는 1989년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닌텐도의 NES(북미판 패미컴)를 들여오면서 일본에서는 닌텐도와 세가의 게임기 전쟁이 한국에서는 현대와 삼성의 게임기 전쟁이 시작되었다. 게임기 사업을 현대와 삼성보다 먼저인 1985년에 시작한 대우전자에서는 갑자기 치고 들어온 현대와 삼성에 밀려 MSX기반의 재믹스 게임기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현대와 삼성이 손잡은 닌텐도와 세가는 너무나 막강한 상대였다.

[세가 메가 드라이브(좌), 닌텐도 슈퍼 패미컴(우)]

대우전자에서는 기존의 MSX 기반의 게임기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원했고 이미 그것들은 현대와 삼성이 다 가져갔다. 대우전자 입장에서는 닌텐도와 세가에 맞설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후에 LG도 게임기 사업에 뛰어든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재계서열 상위에 해당하는 대기업은 거의 전부 게임기사업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계서열 상위에 있던 대우에서는 계열사였던 대우전자에서 게임기 사업을 총괄했는데 닌텐도와 세가를 제외하고 일본의 게임기 업체 중 남아있는 것은 NEC의 PC엔진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PC엔진은 화려한 그래픽과 풀 보이스 음성 지원에 가격 또한 고가의 게임기다. 분명 닌텐도와 세가의 게임기와는 차원을 달리했고 당시에도 이런 분위기의 흐름상 새로운 대항마로 적합하다 여겨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NEC의 PC엔진말고는 달리 대체할 게임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들여온 PC엔진 셔틀이라는 게임기가 일본에서는 CD-ROM을 제외한 PC엔진의 염가판으로 출시되었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18만 원이라는 고가의 가격으로 책정되어 저가 라인은 재믹스 기종으로 유지하고 고급 상위 라인으로 재믹스 PC셔틀을 운영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었다.

비슷한 가격대라면 재믹스 PC 셔틀이 아니라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와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이미 본격적인 16비트 게임기 시장에서 대용량의 CD-ROM으로 특화된 PC엔진이 아니라 휴카드만 사용 가능한 염가판 8비트 PC엔진 셔틀로는 도저히 승부수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대우전자는 초기 한국의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재믹스라는 게임기로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을 선점하며 승승장구하다가 16비트 시절에까지 그 영광이 이어가지 못하고 PC엔진 셔틀을 재믹스 PC셔틀로 판매하면서 이어지는 실적 부진으로 인해 결국 게임기 사업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된다. 당시 대우전자의 선택이 어리석었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현대와 삼성이 이미 계약을 맺은 닌텐도와 세가를 제외하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해도 CD-ROM세트를 포함하는 구성도 생각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태 바이스타]유튜브(/watch?v=y0H8O0otfmA)

당시 PC엔진은 대우전자에서만 수입했던 것은 아니었다. 뜬금없이 ‘해태’에서도 NEC의 PC엔진을 ‘바이스타’라는 이름으로 들여왔다. 이미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이나 세가의 메가드라이브가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갑자기 저물어가는 PC엔진을 왜 들여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과는 역시 예상대로 시장 철수의 수순을 밟았다.

박스 패키지에 당당하게 ‘16비트’ 게임기라고 광고도 했지만 정작 원판인 PC엔진의 CPU는 8비트였기 때문에 CPU의 비트 수에 따라 형식 명칭을 정하는 관례에 따르면 바이스타는 엄밀히 말해 8비트 게임기다. 다만, GPU(그래픽 칩셋)가 16비트여서 그렇게 광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분히 타사의 16비트(현대, 삼성) 게임기에 맞서기 위해 자신들도 16비트 게임기라고 광고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태 바이스타]유튜브(/watch?v=y0H8O0otfmA)

해태에서는 대우전자의 재믹스 PC셔틀이 왠지 우주선 같이 생긴 모양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했는지 재믹스 PC셔틀과는 다른 모양으로 바이스타 게임기를 제조했다. 이는 일본판 PC엔진 셔틀이 아닌 북미 버전의 ‘TurboGrafx-16’을 베이스로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그런데 북미버전하고도 모양이 다르다).

굳이 들여와서 이미 망한 것을 왜 또 들여왔는지 모르겠고 모양만 바뀌면 다른 게임기가 되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시장 확보에는 실패했다. 결국 출시 1년도 되지 않은 1994년 1월 제품을 단종시켰고 그 이후로 더 이상 해태에서 게임기 사업을 진행한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도 의아한 부분은 처음 게임기 사업을 시작한 계열사는 해태전자가 아니라 해태제과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게임기 사업을 정리하고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해태제과에서 관리하던 게임기 관련 사업부는 1994년 7월 해태전자로 모두 이관되었고 일본에서 PC엔진의 세일즈 포인트가 대용량의 CD-ROM이었다는 점을 간파하고(빨리도 알아챘다).

해태 바이스타의 후속 기종으로 ‘해태 바이스타 CD’라는 이름의 게임기 사업을 준비했지만 이미 게임기 시장은 닌텐도와 세가의 양자대결 구도로 굳혀졌고 국내에서는 닌텐도와 손잡은 현대가 세가와 손잡은 삼성이 게임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터라 삼자대결의 구조는 더 이상 가망도 승산도 없는 싸움이 될 것이 뻔했고 해태의 경영실적 악화 등의 이유로 게임기 사업은 전면 취소 되어 전면적으로 철수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PC엔진 & PC-FX 퍼펙트 카탈로그]

PC엔진의 화려한 일대기는 여러 온라인 서점 등에서 ‘PC엔진 & Pc-FX 퍼펙트 카탈로그’라는 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PC엔진으로 출시된 유명 게임들부터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으니 게임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정독하면 좋을 듯하다.

비록 국내에서 PC엔진 게임기 사업은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결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그 역할이 끝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꾸준히 게임기 사업에 진출하고자 기업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였다는 부분은 생각할만한 부분이다.

국내에서도 굴지의 대기업이라고 칭송 받는 대기업들이 정작 자신들의 기술력과 브랜드로 게임기 사업을 한 예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에서 게임기를 들여와 이름만 바꿔 유통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국내 게임 사업은 PC기반의 온라인 게임이 주류를 이루면서 PC용 패키지 게임이나 콘솔 게임기 사업은 아예 진출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했다 해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적이 없는 상당히 편향되고 치우친 경향이 있는데 다양한 플랫폼과 하드웨어 제조를 꾸준히 하는 게임 선진국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