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스타일 게임 주로 만들었던 일본 게임회사 DATA EAST

[오락실 가면 많이 보던 로고]
이미지 – 유튜브(/watch?v=HQGt02bE_ag)

일본 게임 회사인 DATA EAST는 회사 이름에 EAST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아 동양의 회사 같지만 많은 분들이 미국의 게임회사로 알고 있는 회사다. 출시하는 게임이나 캐릭터의 스타일 등이 딱 봐도 북미의 그것(!) 같은 스타일의 게임이 많았기 때문이다. 회사 이름은 이미 미국에 Data West라는 회사가 있어서 동양(일본)에도 비슷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Data East’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정작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East(동부)가 아니라 West(서부) 바다 건너에 있는데 말이다. 

DATA EAST는 1976년 창업해 2003년까지 존속했던 게임회사로 총 150여개의 게임 타이틀을 출시했었다. 정식명칭은 ‘株式会社 データイイト’로 후쿠다 테츠오(福田 哲夫)가 설립한 일본의 게임 회사다. 하지만 설립 자체가 비디오 게임 개발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업 분야를 영위했는데, 그 중에는 버섯 재배라던가 음이온발생기 같은 전혀 맞지 않는 분야도 있었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아케이드 게임 장치에 저장 장치를 자기 테이프로 사용하여 교환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에 DATA가 붙었다. 사업 초기에는 메달 게임 (メダルゲーム)과 같은 파칭코 아케이드 기기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시장은 이미 세가(SEGA)와 코나미, 남코, 타이토와 같은 쟁쟁한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북미에 진출해 1979년에 미국 사업부인 DATA EAST USA를 설립하고 ‘Astro Fighter’라는 게임을 시작으로 북미 스타일에 맞는 게임들을 개발했다.

[Midnight Resistance]
이미지 – 유튜브(/watch?v=jDemH0VZ3n4)

국내에는 ‘미드나이트 레지스탕스’라는 게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회사다. 1980년대 오락실에 가면 이 게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조이스틱이 기존 게임들과 다르게 8방향 루프 레버 방식이다 보니 고장이 잦았고 특정 방향으로 조종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오락실 주인아저씨와 면담이 많은 게임이기도 했다. 이 게임을 하면서 조이스틱이 고장 나면 바로 오락실 주인 아저씨를 부르지 않고 최대한 게임을 할 수 있는데 까지 하다가 거의 게임오버 되기 직전쯤에 ‘아저씨 이거 안 돌아가요!’ 하는 영악한 아이들도 있었다(조이스틱 고장일 경우 돈을 돌려주든가 고치고 나서 한 판 다시 새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루프 레버 시스템]

기존의 게임들은 막대사탕같이 생긴 조이스틱으로 360도 전 방위 회전이 가능하지만 ‘루프 레버’라 불리는 이 조이스틱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한 칸씩만 돌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방향 전환을 하면 딸칵 딸칵 하면서 한 방향씩 움직이다. 이 루프 레버 시스템은 급박한 상황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마구 돌리다 보니 아무래도 고장이 잦을 수 밖에 없었다. 특정 방향으로 안 돌아간다든가 한 쪽 방향으로만 돌아가서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8방향을 다 돌리고 나서야 제 자리로 온다든가 하는 문제 등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미칠 듯이 환장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었다.

[Karate Champ]
이미지 – 유튜브(/watch?v=Az308iZZClc)

‘미드나이트 레지스탕스’ 같은 게임 이전에는 아마 고전게임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Karate Champ’라는 게임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DATA EAST는 유통을 맡았고 개발한 회사는 Technos Japan이라는 회사이다. Technos Japan은 DATA EAST와 인연이 참 깊은 회사 중에 하나인데 Technos Japan에서 개발한 게임들 중에 DATA EAST라는 글자를 같이 볼 수 있는 게임이 많다. 이는 DATA EAST의 직원이었던 쿠니오 타키, 타카시 한야, 다케오 하기와라 3명이 회사를 나와 따로 만든 회사이기 때문이다. 

사장이었던 쿠니오의 이름을 딴 게임 ‘Kunio-kun(쿠니오군)’시리즈로 유명해진 회사이지만 설립 초기에는 DATA EAST와 작업을 많이 했었다. 그 때 개발한 ‘가라데 챔프’라는 게임이 Data East Usa를 통해 북미로 출시됐다. 한참 동양적인 신비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있던 서양인들에게 이미 쿵푸라는 익숙한 소재가 있었기에 동양의 격투/무술 소재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었다. 국내에서도 어린 시절 이 게임을 ‘가라데’라는 이름으로 오락실에서 해봤던 분이 많았을 것이다.

Technos Japan이 개발한 게임 중에 ‘Tag Team’이라는 북미 프로레슬링 게임은 닌텐도 아메리카가 라이선스를 갖고 Data East Usa가 유통을 했던 게임이다. ‘가라데 챔프’ 역시 닌텐도 아메리카가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고 Data East Usa가 유통을 맡았다. 또 ‘RENEGADE’는 타이토가 유통을 하고 닌텐도 아메리카가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쌍용권’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더블드래곤 1, 2’ 역시 닌텐도 아메리카가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고 ‘River City Ransom’이나 1981년 설립부터 1996년 폐업하기 전까지 개발한 게임들을 보면 80% 이상이 벨트 스크롤 액션 게임이나 WWF 레슬링 같은 액션 게임들이다. 

당시에는 닌텐도 아니면 세가의 8비트, 16비트 게임기들이 콘솔 게임기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케이드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는 두 회사 중에 하나와 계약을 맺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Technos Japan의 게임들 역시 대부분 라이선스를 닌텐도 아니면 세가가 갖고 있었다. Technos Japan은 그 당시 갓 시작한 회사였기 때문에 회사의 규모나 재정적인 부분, 영업망 등이 현저히 부족한 상황을 인지하여 주로 다른 게임 업체와 유통이나 판권 계약을 맺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본가였던 DATA EAST와 깊은 관계를 맺긴 했는데 사실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Technos Japan이 Data East를 독립하고 따로 나온 이유 중에 하나는 DATA EAST라는 회사의 다소 특이한 문화 때문이기도 한데 복장제한이나 엄격한 근태관리뿐만 아니라 두발 제한까지 있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특이한 회사였다. Technos Japan과 DATA EAST는 막장 소송 건으로 좀 사이가 뒤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 때 한솥밥 먹던 사이였기 때문에 사업 초기에는 원활한 업무협조가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Bad Dudes VS Dragon Ninja]
이미지 – 유튜브(/watch?v=2pu1I9_zisg)

DATA EAST는 그 악랄한 사무환경의 특이성만큼이나 만드는 게임들 역시 특이함의 범주를 벗어날 정도로 괴상한 게임들이 많았다. 게임의 전체적인 스토리라던가 캐릭터 설정 등에 있어 기존의 게임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선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괴팍하고 특이한 게임들이었다. 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특이점이 되어 한 때 DATA EAST의 게임들은 회사이름을 줄인 DECO(Data East Corporation)와 게임(Game)의 합성어인 ‘데코게’라는 장르적인 트렌드를 형성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드래곤닌자’와 같은 게임만 하더라도 어느 날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닌자들에게 납치를 당하고(여기서부터 뭔가 스토리가…) 결국 정예 비밀요원이 등장한다. 보통은 정예 비밀요원이 대통령을 구출하는 내용으로 전개되겠지만, 여기서도 정예 비밀요원은 대통령을 구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에게 대통령을 구출하라는 말만 하고 사라진다(아니 왜 자기가 안 하고…). 그리고 결국 주인공들은 납치된 미국의 대통령 구출에 성공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은 주인공들에게 햄버거를 사준다. 끝. 이게 게임의 스토리다(집이라도 한 채 주지 햄버거가 뭐야).

[Captain Silver]
이미지 – 유튜브(/watch?v=8FL-e9Mc4cI)

DATA EAST 게임들은 이런 식으로 좋게 말해서 ‘아주 독창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별 거지 같은 내용으로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유명했다. ‘캡틴 실버’와 같은 게임만 해도 중년의 가이브러시(원숭이섬의 비밀 주인공)같은 해적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게임은 적과 한 번만 몸이 닿아도 바로 게임이 끝나버리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게임의 내용 역시 DATA EAST답게 별로 개연성 없는 주제로 끝나는데, 주인공이 해적들을 소탕하며 보물을 차곡차곡 모아 재물로 신분을 매수하고 엄청난 부자가 되어 결국 공주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다(그나마 상식 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넘어갈만한 스토리).

[Atomic Runner Chelnov]
이미지 – 유튜브(/watch?v=Xr6C5vX5YxM)

Nuclear Man, The Fighter라는 부제를 달고 출시된 ‘Atomic Runner Chelnov’는 당시 오락실에서도 많이 하던 게임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냥 달리면서 점프도 하고 적에게 레이저 빔도 쏘고 부메랑도 던지는 액션게임인줄 알고 했던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게임의 내용을 알고 보면 기겁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게임의 스토리를 보면 평범한 광부였던 주인공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핵폭발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그 뒤에 방사능의 영향으로 특수한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 각성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게임의 배경 역시 체르노빌 원자력 연구소를 배경으로 이미 방사능에 오염 당한 각종 기괴한 생명체들이 등장한다. 당연히 해당 내용은 러시아는 물론 일본 내에서도 경고를 받았는데 콘솔 게임기 버전으로 이식할 때는 내용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로 치면 ‘Atomic Runner Hukusima’라는 이름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주인공이 새로운 능력을 얻어 오염된 다른 생명체들을 쳐부수는 게임이 출시됐다고 가정해보면 언론이나 환경단체 등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짐작이 갈 것이다.

[WWF WrestleFest]
이미지 – 유튜브(/watch?v=zWuD8oYIys4)

DATA EAST의 게임들은 이렇게 약간은 정신 줄을 놓은 듯한(?) 콘셉트가 특징이다. 그 당시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게임의 본 줄거리나 내용이 어차피 크게 와닿지도 않았고, 게임의 인트로 화면에서도 후딱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뭔 내용인지 일일이 읽어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락실에 가면 자리에 앉자마자 동전 넣고 빨리빨리 시작 버튼 눌러서 쓸데없는 화면 보내기에 바빴지 차분히 앉아서 그 화면을 읽고 있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싶다(게다가 거의 영어!). 

그래서 그 당시에 DATA EAST의 게임을 하던 우리들에게는 그 어떤 줄거리도 자세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것 또한 DATA EAST의 게임들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제대로 내용을 알고 했으면 어이 없어 했을 것 같은데, 사실 그 당시에는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의 줄거리와는 별개로 게임의 타격감이나 액션 장면들이 제법 퀄리티가 높았고, BGM이나 효과음 역시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신경 써서 만들었기 때문에 게임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충분히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DATA EAST의 게임들은 워낙 게임의 줄거리나 스토리, 캐릭터의 설정 등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한 때 DATA EAST의 게임들을 게임의 조작과 같은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캐릭터 스킨이나 배경화면만 변경하고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새로운 게임으로 만드는 시도가 있었다. 일본의 아마추어 게임 동호회에서 만든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멋진 게임이 되어버렸다라는 전설적인 소문도 있다(제대로 정신차리고 만들면 잘 만들 수 있는 회사인데…).

[Captain America and The Avengers]
이미지 – 유튜브(/watch?v=JBRZkOfEKgM)

하지만, 가끔은 이상하게도(?) 정상적인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 극장가의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이미 오래 전에 DATA EAST에 의해 게임으로 개발된 적이 있었다.

DATA EAST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기술을 활용해 만든 게임으로 레드 스컬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정예 어벤저스 멤버가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너무나 정상적인 스토리에 이거 진짜 DATA EAST가 만든 게임 맞나 싶기도 하지만, 이미 원작이 있기에 아무리 DATA EAST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다행인가). 이 게임 역시 특이한 시스템으로 인기가 많았다. 평지에서 시작하는 일반적인 액션 게임으로 시작하다가 우주와 같은 스테이지에서는 횡스크롤 슈팅 게임처럼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DATA EAST가 좋아하는 그 놈의 8방향 시스템이 여기에도 들어있다. 점프 중에 8방향으로 이동이 가능하며 이 때 커맨드에 따라 다양한 모션이 연출된다. 일반 공격과 특수 공격을 시전할 수 있는데 아이언맨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이 공중 연계 공격 때문이었다. 공중에서 원거리 공격을 사용해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Captain America and The Avengers]
이미지 – 유튜브(/watch?v=JBRZkOfEKgM)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비전,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호크아이 이렇게 4명이었는데 당시에 저 캐릭터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91년 출시한 ‘캡틴 아메리카 앤드 디 어벤져스(Captain America And The Avengers)’라는 게임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당시에 이 게임은 하는 사람들만 하는 게임이었다. 지금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콘텐츠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금의 어벤져스라는 컨텐츠의 대중적인 인기와 비교해보면, 약 30년 전에 출시한 이 게임은 지금만큼의 인지도는 없었다.

왜냐하면 30년 전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북미 스타일의 미국인 아저씨들이 나오는 게임으로 배트맨이나 슈퍼맨, 로보캅 등의 히어로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고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조금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마블 팬들이 들으면 난리 나겠지만 정말로 30년쯤 전에는 캡틴아메리카나 아이언맨 보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더 유명했다(국내기준). 그 당시에도 마블의 팬이라면 잘 알았겠지만 영화나 게임의 소재로 더 많이 등장하고 알려진 것들은 DC쪽 캐릭터들이었기에 아무래도 인지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Captain America and The Avengers]
이미지 – 유튜브(/watch?v=JBRZkOfEKgM)

게임 인트로 화면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유명한 대사 ‘Avengers Assemble’을 들을 수 있다. 1991년 게임에서 다시 영화에서 듣기까지 무려 28년이 걸렸다. 아마도 당시에 DATA EAST가 지금의 어벤져스가 이렇게 큰 인기를 끌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면 좀 더 게임 개발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그 때만해도 정말 이렇게까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그래도 게임의 내용은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게 만들어져 있다. 아직 못 해본 분들은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감상하고 이 게임을 한 번 해보시길 권한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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