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게임기 XBOX

[XBOX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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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제패하고 군왕에 등극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니는 더 강한 상대의 도전을 받았다. 아니 강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상대였다. 회사의 이름은 작고 부드럽지만(MicroSoft) 이름과는 딴판으로 온 세상을 자신들의 운영체제(Windows OS)와 오피스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웹 브라우저 시장까지 장악한 회사. 컴퓨터를 켜고 끌 때까지 하루 온 종일 그들의 제품을 사용해야 되는 PC시장의 지배자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전이었다. 왕좌의 게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미 전 세계의 콘솔 게임기 시장을 장악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를 상대로 게임의 본고장이었던 미국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현재는 가장 강력한 우방 중 하나이고 무역교류가 활발한 국가들이지만, 한 때는 전쟁을 치렀던 민감한 관계다. 그렇게 싸웠으면서도 결국 비즈니스 세계는 그것과는 별개였다. 일본은 전후 복구사업의 성과로 1970~80년대 경제호황기를 통해 넘치는 유동성으로 미국의 부동산과 기업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이 때 일본의 경제침공에 대해 느끼는 미국인들의 불안과 경계심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됐다. 주요 영화에서 항상 악질적인 동양인의 역할은 일본인이 맡았다. 미국의 경제와 산업 등 이미 많은 분야에서 ‘Made in Japan’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제’니 ‘독일제’니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일제’라고 하면 일단 품질이 인정받는 보증수표와 같은 문구가 됐다. 그렇게 일본의 산업/공업 제품은 ‘Made in Germany’와 함께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정교함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의 게임기 시장이 붕괴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아타리 쇼크’라 명명된 이 사건으로 미국의 게임 시장은 거의 전멸 직전까지 이르렀다. 이 틈새를 파고 들어 닌텐도나 세가와 같은 일본의 게임기 회사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비록 합작법인 형태나 ‘닌텐도 아메리카’, ‘세가 아메리카’와 같은 미국의 지사를 통해서 사업을 진행하긴 했지만 어차피 본질은 일본인들의 회사였다.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남의 땅에서 자기네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면서 게임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던 것이다. 이제는 그 자리를 ‘소니’라는 가전제품 업체가 차지했고 이제 미국에서 콘솔 게임기와 게임 시장은 예전의 본고장이었던 자부심 보다는 일본에 대한 부러움과 질시만이 남아 있었다. 닌텐도의 8비트 게임기 NES가 미국 땅에 상륙한 이후로 콘솔 게임기 시장은 매년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도 게임 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다.

그렇게 일본 회사에게 콘솔 게임기 시장을 내준지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 때 빌 게이츠가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 이름으로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선포와 함께 전미 대륙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도 쇠락해가는 PC 게임 시장 보다는 날로 확대되어 가는 콘솔 게임기 시장을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X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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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GDC에서 공식 발표를 통해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 진출을 선포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당시 발표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2001년 5월 시연을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XBOX는 동시대의 절대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던 플레이스테이션 2에 비해 성능적으로는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주었다. 주요 부품도 일제 보다는 국적이 미국인 회사들이 모였다.

하지만 성능적인 우위는 바로 생산단가로 직결됐고 XBOX는 가격적으로 상대방에게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당장에 구동 가능한 게임 타이틀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시장을 선점한 상대방에게 들이댈 이점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상대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넘쳐나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가격할인을 단행했다. 과거 플레이스테이션 1이 세가 새턴과 치열한 가격 할인 정책으로 한 쪽이 아사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다시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시장에 진출했던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았다.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회사가 한 둘이 아니다. 시작이 미약하니 그 끝도 심히 미약했다. 콘솔 게임기 시장은 미약한 회사들이 함부로 덤빌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창대한 회사가 덤벼들었다. 그것도 자고 나면 어제보다 더 많은 돈이 쌓이는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전 세계 굴지의 글로벌 IT 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가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 한 대가 팔릴 때마다 손해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물량을 공급했다. 제조원가를 따진다면 거의 무상 보급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게임기가 탄생했다. 생긴 것도 미사여구를 생략하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인들답게 투박하고 두툼하게 생긴 XBOX는 사실 세상에 나오지 못 할 뻔 하기도 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콘솔 게임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내부에 2개의 팀을 운영했다. 한 팀은 Windows를 탑재한 PC와 같은 모양의 게임기를 준비하고, 다른 한 팀은 아예 PC와는 다른 모양으로 새롭게 디자인한 게임기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초대 XBOX 책임자 중 한 명인 Ed Fries의 증언).

하지만, 모양만 다를 뿐 둘 다 운영체제는 Windows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빌 게이츠와는 달리 XBOX 개발팀은 자사의 Windows를 탑재하기보다는 별도의 전용 OS를 탑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고 이 사실을 최종 회의 때까지 빌 게이츠에게 비밀로 했다고 한다(말해봤자 화낼 게 뻔하니까). 결국 회의 시간에 이를 알게 된 빌 게이츠는 노발대발했고 옆에 있던 스티브 발머까지 나서서 개발비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그런 짓 하라고 돈 주는 줄 알아? 라고 했을 것 같다).

그렇게 내부에서도 핍박 받고 설움 받던 XBOX 개발팀에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홈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진출하자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개발팀은 다시 한 번 혼신의 힘을 다해 처음 그들이 계획했던 대로 게임기에 쓰일 전용 OS(물론 Windows 기술 기반)를 탑재한 XBOX를 출시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사장될 뻔한 XBOX는 최종 260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선전했지만, 경쟁자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가 1억5000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보인 것에 비해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이것은 패배나 다름없었다. 당시 갓 출시된 XBOX는 PC와의 차별점이 없다는 인식으로 거의 모든 집에 한 대씩은 있는 PC에 비해 월등히 나은 점이 없었다. 오히려 저장용량과 성능에 확장성 부분에서 PC보다 떨어지는 문제로 많은 이들이 구매를 꺼린 이유도 있었다. PC와 유사한 구조를 채택해 개발자들로 하여금 손쉽게 XBOX 플랫폼에 정착하고 게임 이식을 쉽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처럼(미국도 이런 속담이 있나?) 첫 출시한 게임기로 세상을 평정하리라고는 빌 게이츠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더욱 더 자금을 쏟아 부으며 콘솔 게임기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 XBOX를 선보이고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나갈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1998년 세가의 드림캐스트에 탑재 한 Windows CE로 간접적인 진출을 했었다면 이제는 직접적으로 콘솔 게임기 시장에 진출했다. 이전에 패배한 드림캐스트는 세가의 콘솔 게임기였지만 가장 중요한 운영체제는 자사의 Windows CE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도 그것은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고 이제 더 이상은 소니에게 질 수는 없었다. 원가절감이나 비용회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영업이익이니 순익이니 하는 지표 따위는 단지 숫자에 불과했고 일단은 시장에 정착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한대 팔릴 때마다 적자가 나면서도 끝없이 물량을 공급했고 그렇게 XBOX는 판매 개시부터 마지막 생산중단까지 단 한번도 수익을 내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매년 XBOX로 인해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끈질기게 버텼다. 당시 XBOX의 손실액을 보면 2002년 11억 달러, 2003년 11.9억 달러, 2004년 12.2억 달러 등 매년 1조원이 넘는 손실을 입으면서도 계속해서 생산 했다. 그렇게 2001년부터 2009년 3월 2일 생산중단까지 거의 10조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건재했다. 세가와 닌텐도와는 체급부터가 달랐다. 소니도 그 정도까지 자금 손실을 입으면 버티기 힘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그 동안 들이부은 돈이 얼마인데 이제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의 물러서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Windows 팔아 번 돈으로 XBOX에서 까먹으면서 버티고 버텨나갔다.

하지만 자신들의 눈으로만 바라 본 세상은 자신들에게만 맞는 법이다. XBOX는 북미와 유럽에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지만 아시아에서는 거의 절망적인 성과만 보였다. XBOX는 북미에서만 1600만대를 팔았고 유럽에서 600만대를 팔았다. 총 2600만대 중에 2200만대를 북미와 유럽에 팔았고 나머지 400만대가 전 세계 판매량이다. 일본의 경우도 XBOX 출시 이후 1년간 거의 30만대 정도 팔았을 뿐이다. 서양인을 기준으로 한 무지막지하게 큰 게임패드도 문제였다. 나중에서야 아시아인들의 불편함을 알게 되어 패드 크기를 수정했을 만큼 글로벌 런칭에 무감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에 비한다면 절망적인 패배였다. 하지만, 난데없이 나타났다가 난데없이 사라진 닌텐도의 게임큐브 덕분에 체면치레는 했다.

[XBOX 360]
이미지 - https://www.amazon.com/Xbox-360-Console-Video-System/dp/B000AXFKGQ

그리고 2005년 11월 22일(북미 기준) XBOX 360이 출시됐다. 유럽과 일본에서도 같은 해 12월에 출시되었고 한국은 그 보다는 몇 달 뒤인 2006년 2월 24일 출시되었다.

이번에는 소니의 대응이 늦었다. 플레이스테이션 2의 후속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 3는 경쟁자인 XBOX 306보다 1년이나 늦게 나왔다. 2006년 11월 11일 일본 출시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는 그 보다 한참 뒤인 2007년 6월에서야 정식 출시됐다. 판매량 기준으로는 전 세계 약 8000만대로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수치이지만 XBOX 360 역시 전 세계 8470만대를 팔았기에 이전 세대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것은 소니가 원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소니는 지금까지의 성공으로 콧대가 높아져 있었고 어쩌면 자신들이 최초로 콘솔 게임기 시장에 문을 두드리던 그 때를 잊었던 것 같다. 플레이스테이션 1 초기에 전자제품이나 팔던 회사가 무슨 게임기를 만든다는 말인가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았어도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결국 승자가 됐던 소니였다. 하지만 소니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프로그램 회사가 무슨 게임기를 만든다는 말인가 하며 다소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을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 2로 이미 승기를 잡은 소니는 XBOX에 비해 훨씬 여유 있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선수를 빼앗겼다. 다음 차세대 기종인 XBOX 360과 플레이스테이션 3 중에 XBOX 360이 먼저 출시되었다. XBOX 360의 개발팀에는 세가의 북미 지사장이었던 피터 무어도 합류했다(끈질긴 세가).

[Peter Moore – 두고 보자 소니..]
이미지 - https://www.liverpoolecho.co.uk/sport/football/football-news/who-new-liverpool-peter-moore-12667130

피터 무어는 한 때 드림캐스트를 실패하게 한 원흉으로 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후에 그것이 오해로 인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피터 무어는 스포츠 브랜드 리복 임원을 비롯해 세가 오브 아메리카 의 북미 지사장(대표)을 거쳐 XBOX 360 프로젝트가 진행 될 때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부서 부사장과 XBOX 부문 수장을 맡았다. 그 뒤로는 EA에서 스포츠 부서 부사장을 거쳐 EA 그룹 COO(Chief Operating Officer)를 역임하고 현재는 리버풀 FC의 CEO로 활동 중이다. 피터 무어에게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넘지 못한 장벽이자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으로 남아 있었다.

[PlayStation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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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다급해졌다. 원래 출시일은 XBOX 360의 출시일에 맞춰서 2006년 봄으로 잡혀 있었지만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출시되는 바람에 초기 시장선점을 놓쳤다. 출시 당시 공식 판매가는 각각 499(20GB 모델)달러와 599(60GB 모델)달러였다. 거의 1년을 질질 끌어온 덕에 기다리다 지친 극성 고객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드디어 출시하는 날이 왔고 전량 재고 소진으로 플레이스테이션 3이 eBay에 올라오자 2000달러에도 낙찰될 정도였다.

플레이스테이션 3의 초기 제조 단가를 보면 20GB 모델의 경우 805.85달러로 책정됐다. 그리고 60GB 모델의 경우 840.35달러로 책정되었지만 늦어진 출시 일정에 따라 시장 진입의 문제가 되어 실제 출시 가격은 각각 499달러와 599달러로 책정했다. 한 대 팔릴 때마다 250달러의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결국 2007년 결산에서 소니는 게임 사업에서 적자를 보게 되는데 영업손실 2323억 엔으로 한국 돈으로 2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거대 제국 마이크로소프트는 1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고도 버티고 있었지만 아무리 천하의 소니라 해도 그 정도 돈을 쓸 수는 없었다.

플레이스테이션 3의 하드웨어 스펙을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CPU다. 셀 프로세서(Cell Processor)라 불리는 이 CPU는 파워PC 기반의 64비트 3.2GHz RISC 마이크로프로세서인데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와 IBM, 도시바가 공동 개발했다. 그런데 여기 IBM이라는 회사가 참여했다. GPU는 NVIDIA와 손을 잡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360에 경쟁하기 위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 진영에 IBM과 NVIDIA가 손을 잡았다.

IBM은 미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진 회사다. 아주 오래 전에 IBM의 PC에 운영체제 공급 계약을 하면서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될 수 있었던 기반을 마련했다. 전 세계에 퍼진 IBM PC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가 설치됐다. 이 MS-DOS도 자체 개발한 것은 아니었고 Q-DOS를 구매해 손을 본 것이지만, MS-DOS는 IBM이라는 거대 공룡을 등에 업고 손 쉽게 운영체제(OS)시장을 석권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문자로만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던 MS-DOS의 불편함이 재기되었고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운영체제는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기반의 운영체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두 회사는 차세대 운영체제 개발에 합의를 하고 공동개발에 들어갔는데 그 비운의 운영체제가 OS/2다.

[OS/2]
이미지 - https://arstechnica.com/information-technology/2013/11/half-an-operating-system-the-triumph-and-tragedy-of-os2/3/

IBM은 자신들이 설계한 하드웨어 사양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급하는 운영체제 따위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업체로 교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세상은 MS-DOS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고 OS/2의 개발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 사활을 걸고 임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겉으로는 IBM과 협력해야 할 단계였기 때문에 OS/2개발에 착수하는 척 했지만, 실제 메인 프로그래머들은 자신들만의 운영체제인 Windows 개발에 배치되었다.

[Windows 3.0]
이미지 - https://arstechnica.com/information-technology/2013/11/half-an-operating-system-the-triumph-and-tragedy-of-os2/3/

그렇게 Windows가 완성되어 갈 수록 IBM과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개방형 스펙을 지닌 IBM PC의 태생적 문제로 여러 회사에서 IBM PC와 같은 PC를 만들 수 있게 됐다. CPU는 인텔이나 AMD에서 공급받으면 되고 나머지 하드웨어 역시 각각의 제조업체들이 있었고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공급받으면 IBM PC와 똑같은 PC 환경이 만들어졌다. 때문에 예전에는 컴퓨터 판매 광고에 “IBM PC 호환”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PC는 IBM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렇게 컴팩이나 중소 업체들이 점점 PC 제조 및 판매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PC의 수요가 늘어갈수록 덩달아 MS-DOS의 매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충분해진 자금력으로 IBM에게 더 굽신 거릴 필요가 없었고 OS/2 개발에 손을 떼고 만다. 현재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배신(?) 행위에 대해 엄청난 비난과 질타가 이어졌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언제나 그랬듯이 비즈니스의 프로다운 면모를 보이며 독과점 법이나 반독점 법들을 유유히 피해가면서 때로는 시간을 끌기도 하고 때로는 개별 분리 판매 정책을 펼치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OS와 유틸리티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그렇게 OS/2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철저히 버림받았고 IBM 단독으로 OS개발을 이어 나갔지만 결국 OS/2는 쓸쓸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이 때의 일로 극도로 분노한 IBM은 한동안 마이크로소프트와 냉랭한 관계가 이어졌다. 사실여부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행간에 떠도는 말로 이 때 얼마나 화가 났는지 전 세계 모든 컴퓨터 키보드에 다 있는 Windows키가 유독 IBM의 노트북에서는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중국 레노버로 넘어간 뒤로는 윈도우 키가 생김).

[IBM TP 노트북 – 윈도우 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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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과거 역사를 알고 현재의 비즈니스 세계를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물론 굴지의 거대 공룡 기업 IBM이 고작 그런 유치한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복수심을 담아 Windows 키를 삭제하고 콘솔 게임기 사업에서도 소니와 협력한 것은 아니겠지만 전혀 상관없다고 하기에도 지난 날 두 회사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NVIDIA 역시 마찬가지로 XBOX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한 관계였지만 XBOX 360 때는 소니와 손을 잡았다. 플레이스테이션 3에는 NVIDIA의 리얼리티 신디사이저(Reality Synthesizer=RSX) 500 MHz GPU가 탑재됐다. NVIDIA는 그래픽카드 시장을 ATI와 함께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그래픽 전문 업체로, 이전 플레이스테이션 2를 노리고 출시한 XBOX에 GPU를 제공했었다. 그런데 판이 바뀌고 XBOX 360 때는 상대편인 소니와 손을 잡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에 칩을 제공했다. 물론 XBOX 360은 NVIDIA가 아닌 AMD(ATI)그래픽 칩셋을 탑재했다.

그렇게 NVIDIA가 노선을 갈아탄 결정적인 이유는 과거 XBOX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와 NIVIDIA간의 분쟁이 원인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가 한참 생산 중이던 때에 NVIDIA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고 그 대가로 1300만 달러의 가격 인하와 함께 생산 수량 제한 해제를 요구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NVIDIA의 분쟁은 거의 1년간 지속됐고 2003년 2월 6일 두 회사가 분쟁 조정에 성공하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분쟁 조정에 성공한 것이지 감정 조정에도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NVIDIA는 이미 XBOX 개발 이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와 치열한 신경전이 있었다. 결국 두 회사는 쓸쓸한 결말만 남기고 헤어지게 되었고 이렇게 멀어진 두 회사는 서로가 서로의 경쟁사를 끌어들이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NVIDIA 대신 ATI를 선택했고 NVIDIA는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360과 대적할 상대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를 선택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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