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콘솔 게임기 XBOX로 콘솔전쟁 참전 선언

[Playstation 2]
이미지 – 유투브(/watch?v=xKv8BfgpUwA)

이미 온 세상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PS2)로 넘쳐나고 있었다. 최종 집계로는 전 세계적으로 1억 5400만대가 팔렸으니 웬만한 가정에 1대씩은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구매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여 서비스도 등장 할 만큼 플레이스테이션2의 기세는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1억 5400만대 이후 더 이상 집계를 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실제 판매 된 대수가 어느 정도 일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세간에 별의별 말이 다 떠돌았다. 그 중에서 가장 어이 없고 웃긴 이야기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주요 부품을 개조하면 군사용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2 칩셋을 개조해 유도탄 부품을 만든다는 소문에 테러 발생, 지원국에는 플레이스테이션2 구매를 불허한다는 신문기사가 나왔을 정도였다.

물론 어떻게든 억지로 만들면 실제로 유도탄 부품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굳이 플레이스테이션을 사서 개조하느니 해당 부품을 구매하는 게 낫지 않을런가? 테러 조직이 그 정도 부품 수입 능력도 없을 것 같지는 않다. 가장 최근에도 비슷한 뉴스들이 신문기사에 실리기도 했는데, 파리 테러 주범인 IS가 플레이스테이션4를 사용하여 메신저를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뉴스 기사들은 테러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의 성능에 대한 이미지만 더욱 더 신비롭게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이렇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가 출시 초반 대량 구매를 당하면서도 게임 타이틀이 절대 부족한 기근 현상은 계속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판매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은(유도탄이 아니라) 지난 편에 언급한 세가의 드림캐스트가 채택한 GD-ROM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가 채택한 DVD-ROM과 관련이 깊다. 표준 매체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인 두 회사의 저장매체 선택은, 그 이후 생사 기로의 순간에서 두 회사의 운명을 갈라 놓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

세가가 채택한 GD-ROM은 주문자 생산 방식의 한정 된 플랫폼에 쓰인 포맷인 반면, 소니가 채택한 DVD-ROM은 표준 저장매체로 지정되면서 하위호환성까지 범용적으로 지원했다. DVD 드라이브는 기존의 Audio-CD도 재생 가능할 뿐만 아니라 CD-ROM까지 지원하기에 당연히 플레이스테이션 1의 CD-ROM 타이틀도 구동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이 플레이스테이션2의 초반 타이틀 기근 현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소니가 DVD를 채택한 이유는 선견지명이라기 보다는(있기도 했겠지만) DVD 포럼의 창립 협회사이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업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DVD-ROM에 대한 산업확산의 필요성이 소니 그룹 전사적 차원에서 대두됐을 것이고, 자사의 콘솔 게임기 플랫폼이야 말로 즉시 적용시켜 볼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DVD포럼의 주요 업체들 중에는 히타치, 마츠시타, JVC와 같은 일본의 대기업 가전제품 업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톰슨(Thomson)과 타임 워너(Time Warner)와 같은 TV방송이나 영화 사업을 주로 하던 미디어 그룹이 속해 있었다. 그 당시 소니는 가전제품 사업과 함께 소니 그룹 산하에 소니 픽처스를 두고 영화 사업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히타치, 마츠시타, JVC는 익히 알다시피 플레이스테이션과 싸우고 있는 세가의 연합군들 아니었던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라.”

친구의 꼬임에 홀랑 넘어가 얼마 있지도 않은 재산 다 털어 넣고, 텅텅 빈 잔고액수에 돈도 잃고 친구도 잃어 본 분들이라면 절실하게 와 닿는 문구 일 것이다. 개인의 경우도 위험분산을 염두에 두고 투자대상을 고려하는데,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어본 굴지의 대기업들이 위험천만만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가의 연합군으로 참가한 히타치, 마츠시타, JVC는 세가에게는 하드웨어적인 지원을 통해 지원군의 행세를 했지만, 막말로 세가가 자기들 먹여 살릴 것도 아니고 회사 입장에서 한 곳에 집중 투자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었다. 때문에 뒤로는 소니의 DVD 포럼에도 참가해 차기 소프트웨어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했다. 그들에게는 세가가 승리하던 소니가 승리하던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결국 살아 남은 쪽에 맞춘 사업영역만 확보하면 될 일이었다(비가오면 우산을 팔고 해가 뜨면 짚신을 팔고).

게다가 히타치, 마츠시타, JVC와 같은 대기업 집단은 다양한 사업분야를 아우르기 때문에 단순히 반도체나 공장설비, 케이스 작업 등의 하드웨어 기반의 제조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쪽으로는 영상, 미디어 매체와 저장 매체와 같은 본질은 하드웨어지만 기반은 소프트웨어인 사업부도 당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이 손 잡고 일을 해야 할 대상은 누가 뭐래도 영상, 음반, 미디어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소니였다. 이들은 전쟁터에서 뒷짐 지고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상관없이 양 쪽에 무기를 파는 무기상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전쟁은 결국 당사자간의 피해만 양산하고 자신들은 그 피해의 범주에 속해서는 안 되었기에 세가에게는 하드웨어를, 소니에게는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며 협력하고 있었다. 냉정하지만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 세계에서 말하는 ‘협력’과 ‘상생’인 것이다.

이렇게 세가와 소니의 2차 전쟁에서 세가는 자신들의 주력 분야였던 기술 위주의 하드웨어에 승부수를 걸었고, 소니는 자사의 콘텐츠 기반으로 소프트웨어에 승부수를 걸었다. 이제 소비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전작 새턴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사활을 걸고 뛰어난 성능으로 승부를 걸어온 세가의 드림캐스트냐 아니면 영상, 미디어 분야에서 앞서고 있는 소니의 미래 가치를 두고 플레이스테이션2를 선택하느냐였다.

이런 고민을 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소니가 내건 특장점은 플레이스테이션2를 구매하면 플레이스테이션1 게임도 모두 할 수 있다라는 장점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플레이스테이션1과의 하위호환성을 지원하는 것 만으로 플레이스테이션2를 구매하기란 무언가 좀 부족했다. 정말 게임만 할 것이라면 당장에 가격이 한참 떨어진 중고 플레이스테이션1을 사도 됐기 때문이다. 언제 무슨 대작이 나올지 모르는 기대감 하나만으로 플레이스테이션2에 돈을 지불하기에는 당장에 즐길거리가 부족했다. 소니도 이 대목에서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에 딱히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개발중인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들은 아직 발매시기까지는 한참 남은 상태였고, 공백기를 메워줄 무언가 필요했다. 여기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잭팟이 터졌다.

[Matrix (1999)]
이미지 – 유투브(/watch?v=m8e-FF8MsqU)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였다. 디스토피아적인 사이버펑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는 ‘매트릭스’는 개봉 당시 연일 화제였다.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처럼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하는 꿈인지 현실인지에 대한 구분의 무의미함이 옳고 그름의 구분 역시 덧없는 욕망일 뿐이라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이도관지(以道觀之)의 경지에 까지 이르게 하는 영화 속 애매모호하고 혼돈스러운 내용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 내내 은유와 암시로 가득 찬 주인공들의 행동이나 대사에는 서양의 종교적 신앙과 동양의 철학적 소재들이 양립하며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를 만큼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도대체 ‘매트릭스’와 플레이스테이션이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상관이 있었다. 1990년대 말기에는 다양한 산업분야의 변화가 있던 시절이다. 그 중 급격히 변화하고 있던 산업분야 중에 하나는 영화산업 분야이다. 그 중에서도 ‘홈시어터’ 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기존에는 극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영화들이 집에서도 편히 볼 수 있도록 영상, 사운드 장비들이 대거 업그레이드 되고 구매가능 한 합리적인 가격대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DVD영화도 볼 수 있습니다.”

소니는 놓치지 않았다. 한때 ‘매트릭스’ DVD와 플레이스테이션2의 패키지 상품까지 등장 했을 정도로 ‘매트릭스’ DVD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초반 시장 확장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부모님에게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면 혼쭐이 났지만, 댁내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영화 재생매체인 DVD플레이어(기능이 지원되는 게임기)를 사자고 하는 것은 괜찮았다.

[음악에 DVD까지! (플레이스테이션2 TV CF)]
이미지 – 유투브(/watch?v=9na8iwJYNP8)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TV CF에서도 이런 내용을 적극 활용할 정도로 DVD 재생 지원 기능에 대해서 열심히 홍보했다. 일반적으로 홈시어터의 구성은 디스플레이, 미디어재생기, 음향기기 세 개의 유닛으로 구성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각 가정에 가장 많이 보급 된 가전제품 중 하나인 TV를 활용할 수도 있고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빔 프로젝터와 전용 스크린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미디어재생기의 경우 DVD플레이어를 활용할 수 있는데, 바로 여기서 홈시어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HOME THEATER]
이미지 – https://www.klipsch.com/home-theater

1980년대 ‘비디오’라고 불리는 VHS 방식의 자기 저장 테이프 매체는 동네마다 꼭 하나씩은 있었던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들을 통해 손 쉽게 대여 할 수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홈시어터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고 홈비디오라고 지칭되었다. 초기 비디오 시장에 JVC의 VHS 방식과 소니의 VETA 방식인가를 두고 벌어진 1차 비디오 표준 전쟁에서 JVC에게 참패한 소니는 이후 양상 기록 장치 표준매체에 심혈을 기울였다.

VHS 비디오 시장과 DVD 시장 사이에 걸쳐있는 것이 V-CD(Video CD)인데 일종의 과도기적 영상 포맷으로 352X240(NTSC)해상도로 약 83분 정도의 AV(Audio/Video)를 담을 수 있었다. 짧은 영화 한 편이 CD 1장에 들어갈 정도가 되었지만(긴 영화는 CD2~3장) VHS에 비해 특별히 나을 것 없는 해상도와 저장 공간 등의 이유 때문에 기존에 VHS 비디오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TV는 비디오 플레이어(VCR)를 연결해서 영화를 보고 컴퓨터에는 아쉬운 대로 VCD를 통해서 영화를 보는 정도였지만, 그것도 초기에는 PC의 사양 문제로 별도의 MPEG보드가 필요했다. 하지만, DVD가 등장하고 나서는 TV나 컴퓨터나 DVD급 화질로 영화를 볼 수 있었기에 점차 예전 비디오 테이프는 사장되고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됐다.

DVD는 VCD때와는 다르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초반 신혼부부의 혼수 품목에는 DVD플레이어가 들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우스갯말로 당시 결혼 준비중인 예비 총각들은 게임기를 혼수 품목에 넣는 것은 어른들이 보기에도 그렇고, 신부의 허락을 받기에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2를 DVD 플레이어라는 명목으로 혼수 품목에 추가하고 부가 기능으로 게임도 된다고 설득해 원하는 게임기를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그 당시 신부 측의 DVD 플레이어 품목과 신랑의 게임기 구매에 대한 갈등을 합일화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정말로 댁내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구원자였다. 이 때 플레이스테이션2는 우스개로 끝나지 않고 DVD 영화를 재생할 수 있는 DVD 플레이어의 대안으로 톡톡한 재미를 보았다. 플레이스테이션1 게임이 구동된다는 하위호환성에 더해, 한참 흐름을 타고 있던 DVD 영화들도 원활하게 재생이 가능한 플레이어 기기로도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당시 전용 DVD 플레이어 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의외로 잘 맞는 궁합이었던 것이다.

그 이전에는 돌비니 서라운드니 하는 말들은 전문가들에게나 해당하는 어려운 말들이었지만, 어느 새 5.1 채널이니 우퍼니 센터니 광출력이니 하면서 홈시어터 장비들이 각 가정 내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절묘한 DVD 영상 시대의 흐름을 타고 계속해서 판매량을 늘려나갔다. 이것은 마치 8비트 시절 닌텐도가 북미 시장을 개척할 때와 양상이 비슷했다. 닌텐도는 아타리쇼크로 침체 된 북미 콘솔 게임기 시장에 아예 이름부터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기기라는 뜻의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이라는 이름으로 콘솔 게임기 ‘패미컴’을 선보였고, 성공적으로 북미 시장에 진출했다. 이와 비슷하게 플레이스테이션2는 비록 이름은 변경하지 않았지만 DVD 플레이어의 부가 기능 들을 부각 시키면서 여러 갈래의 소비자 층을 공략했다.

그에 반해 세가의 드림캐스트는 딱히 공략할 계층이 마땅치 않았다. 정작 추후 확장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개방적인 주변기기 연결 기술을 먼저 선보이고 성능상 문제될 것도 없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아케이드 기판 못지않은 뛰어난 성능으로 게임기 자체로서도 훌륭한 하드웨어를 지녔고 자체 모뎀을 장착해 온라인 게임도 가능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기능을 살리지도 못했다. 홍보 역시 소니에 비해 부족하다 못해 소니의 과대광고에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이번에도 승자는 소니가 됐고 세가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 사업에서 영구히 철수한다는 치욕스러운 발표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세가의 꿈은 끝이 나는 듯 했다. 이것으로 게임기 시장에서 전쟁은 당분간 평화국면으로 접어드나 싶었다. 실제로 세가는 더 이상 가정용 콘솔 게임기를 개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뿌려놓은 씨앗은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곳에서 싹을 틔웠다. 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살아 있었다. 세가의 마지막 불씨는 바다를 건너 저 멀리 미국에서 불을 지폈다.

[호오.. 이것봐라? (빌 게이츠)]
이미지 – https://www.cnbc.com/2018/03/29/bill-gates-and-his-daughter-recommend-this-mystery-romance-novel.html

극동아시아의 섬 나라 일본에서 벌어지는 피 터지는 골육상쟁의 콘솔 게임기 전쟁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미국의 야심 가득 찬 사나이가 있었다. 바로 빌 게이츠였다. 이미 전 세계 PC의 대부분을 MS 로고로 장식하며 컴퓨터를 켜고 나서 끄기 전까지 하루 종일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 운영체제를 써야 하는 지구인들에게 빌 게이츠의 욕심은 성에 차지 않았다. Windows 95부터 PC사용자들은 PC게임을 할 때 2D 그래픽 구현을 위한 다이렉트드로우(DirectDraw), 3D 그래픽 구현을 위한 다이렉트3D(Direct3D), 음향 재생을 위한 다이렉트사운드(DirectSound), 키보드나 마우스, 게임패드 등을 제어하는 다이렉트인풋(DirectInput)등의 API 집합체인 DirectX를 반드시 설치해야 했다. 이전 DOS용 게임 개발과 Windows 전용 게임개발의 차이로 인한 개발의 어려움과 하드웨어 구성의 상이함에 따른 호환성 문제들 역시 DirextX의 등장으로 상당수 해결됐다. 하지만, 정작 고생은 자신들이 했는데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었고 DirectX는 그저 지원기능의 라이브러리 취급을 받을 뿐 이었다. 천하의 빌 게이츠 형이 이 정도에 만족할 리 없었다.

게임 시장은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 굴지의 IT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산업에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세가에서 드림캐스트를 개발하면서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에 MS의 Windows CE 운영체제를 공급하기로 계약하면서 게임기 사업에 발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도 빛은 세가의 드림캐스트가 볼 것이고 Windows CE는 단지 지원만 하는 역할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가의 드림캐스트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와 맞붙어 장렬히 전사했고, 이 과정을 태평양 건너 멀리 북미 대륙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빌 게이츠는 무언가 결심을 하게 된다.

“그까짓 것, 우리도 만들자!”

아니 PC 게임 돌아가려면 우리 운영체제 있어야 되지, 우리 라이브러리 있어야 되지, 다 우리 거 있어야 되는데 그것만 게임기용으로 바꿔도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정해진 콘솔 게임기의 이름은 XBOX(엑스박스)다.

[Xbox - Bill Gates Keynote]
이미지 – 유투브(/watch?v=3uqzXKMlB6U)

당시 출시 예정 발표자료를 보고 엑스박스의 스펙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기존의 콘솔 게임기에 비해 하드웨어 구성이 무언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소니나 세가, 닌텐도 등 기존 게임기들이 독자적인 규격의 프로세서를 사용한 것에 비해 XBOX는 인텔의 CPU와 엔비디아(nVidia)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탑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드디스크까지 내장되어 게임기인지 PC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서 발매 초기에는 소니가 처음으로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 진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윈도우 회사가 윈도우나 만들지 무슨 게임기냐!’ 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2000년 3월 난데없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 사업 진출에 대한 발표로 전 세계의 게임 시장이 술렁거렸다.

발표 초기에는 루머인지 농담인지 하는 반응이 있을 정도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SW)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회사다. 그런 회사에서 콘솔 게임기 하드웨어(HW)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다들 의아해 할만도 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키보드나 마우스와 같은 하드웨어를 만들긴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주변기기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콘솔 게임기는 말이 다르다.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을 새로 구축하겠다는 의미인데 마이크로소프트의 발표에 사람들은 반신반의 했다.

소니는 세가와 총력전을 벌이느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낌새를 눈치 챌 겨를도 없었고 가까스로 닌텐도를 밀어내고 제1왕국으로 왕좌를 굳건히 하는가 싶었더니 어느새 세가(SEGA)보다 더 무서운 상대가 나타나 버렸다. 이제 소니는 닌텐도나 세가와 같은 자국 기업들이 아니라 아메리카와 싸워야 했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이미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다국적 글로벌 IT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싸워야 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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