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웠던 시절 32만장 대박..손에 쥔 것은 '쥐꼬리' 자체 유통 고민 계기

[Slicon & Synapse]이미지: 유튜브(/watch?v=AHz2ky-jng8&t=333s)

게임별곡 시즌2 [블리자드-‘길 잃은 바이킹’]

지난 편에서 블리자드라는 회사의 시작은 ‘실리콘 & 시냅스’라는 회사였다고 했다. 회사 이름은 현재 기준으로 봐도 금방 와닿지 않는 어려운 의미를 담고 있으며, 두 개골이 벗겨진 뇌가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로고를 사용했다(뭔가 의미가 확 와 닿을 것 같으면서도 섬찟한 느낌).

실리콘 & 시냅스는 같은 대학의 동문이었던 마이크 모하임과 앨런 애드햄 그리고 마지막 멤버 프랭크 피어스까지 학연으로 이어진 세 명의 친구들이 함께 공동 창업한 회사다. 세 명의 친구는 가장 최근까지도 현업에서 블리자드에 몸담고 있을 만큼 인생의 전부를 회사에 걸었다.

처음 회사를 창업하다 보니 창업 자금만으로는 금방 금고가 텅텅 비어버렸고, 다른 회사의 외주 하청 작업을 주로 하는 회사운영은 마이크 모하임이 원했던 회사의 모습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곰처럼 열심히 일만 해서는 늘 넉넉하지 않은 수입에 쪼들리며 하루하루를 고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 어떤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들의 작품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늘 가슴 한 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을 즈음, 세상은 점점 변하고 있었다. 실리콘 & 시냅스는 그 당시에 주로 콘솔 게임기의 이식 작업과 아미가PC용 게임 이식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레밍즈’를 개발한 DMA Design처럼 아미가PC의 몰락과 함께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아미가PC의 쇠락과 함께 외주를 요청하는 회사가 줄었기 때문이다.

[Slicon & Synapse]이미지: 유튜브(/watch?v=AHz2ky-jng8&t=333s)

그 당시 사운드와 그래픽 등의 멀티미디어 분야는 IBM PC 기종보다 아미가PC가 앞서 있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게임(엔터테인먼트)용 S/W를 개발하고 유통하기에는 아미가PC가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마이크 모하임 역시 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세상은 IBM이 빠르게 장악해 가기 시작했고 IBM이 표준 PC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IBM는 폐쇄적인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 개방적인 부품 호환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많은 서드파티들이 IBM 진영에 합류하면서 그래픽 카드부터 메인보드, 메모리는 물론 플로피나 하드 디스크와 같은 저장장치 그리고 CPU까지 거의 모든 부품을 조립하여 완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초기에 사용했던 ‘IBM PC 호환’ 이라는 말도 점차 사라져갈 정도였다(당시 필자가 쓰던 현대 솔로몬 286PC도 놀랍게도 인텔이 아니라 AMD CPU를 사용하고 있었다).

실리콘 & 시냅스는 창업 초기에는 돈도 안 되고 일만 고되고 남좋은 일만 시키는 이식(컨버전)작업 외주만 하다 보니 정말 회사는 말 그대로 입에 풀칠만 하던 수준이었다. 사실 풀칠조차 제대로 못 해서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녔다. 하지만 그 때에도 마이크 모하임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아미가 뿐만 아니라 닌텐도나 세가의 외주 작업까지 맡아 작업했다. 

이렇게 실리콘 & 시냅스는 창업 초기에 플랫폼이나 진영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루 종일 PC앞에 앉아 일만 하는데도 그들의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빚만 계속해서 쌓여가는 상황이었다. 이 때를 회고하면서 마이크 모하임은 한 인터뷰에서 그 때는 창업자 세 명이 돌려가며 신용카드로 직원들의 월급을 지급하느라 창업자들의 빚만 쌓여가는 암울한 시기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죠.]이미지: 유튜브(/watch?v=AHz2ky-jng8&t=333s)

매일매일 어딘가에 돈을 지불하기 위해 사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유통 회사 중 어느 한 곳에서라도 개발비 지불이 늦어지면 회사의 운영까지 위태로울 정도였죠. 종종 직원들 급료를 지불하기 위해 나와 앨런 애드햄은 개인 신용카드까지 긁어야 했습니다. – 마이크 모하임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버티던 중에 드디어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인터플레이(Interplay)라는 제법 규모 있는 회사에서 개발 제안이 온 것이다. 인터플레이라는 1982년에 브라이언 파고가 창업한 게임 회사로, 실리콘 & 시냅스가 창업한 1991년보다 10년 가까이 먼저 창업한 게임 업계의 대 선배였다.

이 회사 역시 창업 초기에는 유통을 직접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자신들보다 대형 회사였던 일렉트로닉 아츠(EA)를 통해 게임을 출시하였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는 말처럼 자신들이 점점 곰이 되어가는 것에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껴 1990년 무렵부터 직접 유통/배급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제 막 창업한지 얼마 안 된 신생업체였던 실리콘 & 시냅스가 인터플레이라는 회사와 연이 닿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터플레이의 창업자인 브라이언 파고가 바로 실리콘 & 시냅스의 공동 창업자인 앨럼 애드햄과 고등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이다(역시 세상은 학연! 지연!). 둘은 고등학교 친구 사이로 둘 다 고등학교 때 프로그래밍을 배웠던 절친이었다. 이 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앨런 애드햄은 종종 고등학교 친구의 회사인 인터플레이의 게임 개발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인터플레이라는 회사 역시 지나 온 길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회사다. 마이크 모하임은 한 때 실리콘 & 시냅스를 인터플레이가 인수해주기를 바랬던 적도 있었다. 인터플레이 역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여 인수에 대한 내용은 비록 성사 되지 못했지만, 그 만큼 두 회사의 사이는 앨런 애드햄의 학연을 바탕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다.

[The Lost Vikings]이미지: 유튜브(/watch?v=MXcKNu4JQt4)

그렇게 학연을 바탕으로 한 두 회사는 1992년에 출시한 ‘길 잃은 바이킹(The Lost Vikings)’이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각각 고유한 기술을 지닌 날쌘돌이 에릭과 뚱보 울라프 그리고 용맹한 밸로그 이렇게 3명의 바이킹이 액션과 함께 퍼즐을 풀어가며 출구를 찾아 탈출하는 게임이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온갖 다양한 종류의 바이킹을 다 집어넣자고 해서 무려 100명이 훨씬 넘는 아주 많은 바이킹들이 있었지만, 당시 메인 개발 플랫폼이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이었던 관계로 용량과 기술적인 제한 등으로 인해 결국 줄이고 줄여 3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고생 고생해서 ‘길 잃은 바이킹’ 타이틀 화면에 ‘Silicon & Synapse’라는 회사의 이름은 당당히 표기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손에 쥐어진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안 되는 수익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이 대박이 터졌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실리콘 & 시냅스의 손에만 돈이 별로 쥐어지지 않았다. 발매 이후 32만장이 팔렸는데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32만장의 판매량은 적지 않은 수치다. 그런데도 실리콘 & 시냅스에게 얼마 되지 않은 수익밖에 남지 않은 이유는 게임의 개발사가 실리콘 & 시냅스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배급사는 인터플레이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이 게임을 계기로 게임개발의 자신감을 얻은 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큰 자산이었다(라고 위안이라도 해야 속이 덜 쓰리다). ‘길 잃은 바이킹’을 개발할 당시 실리콘 & 시냅스, 정확히는 앨런 애드햄은 인터플레이와 수주 계약을 맺을 때 수익 분배 조건으로 4만 달러에 개발을 마무리 짓기로 협의 했다. 그런데 실제로 ‘길 잃은 바이킹’의 판매량은 앨런 애드햄이 4만 달러에 공급 계약을 할 때 추정한 6만개보다도 5배나 더 많은 32만개나 팔렸던 것이다(좀 더 과감하게 추정했어야지!).

[The Lost Vikings 개발팀]이미지: 유튜브(/watch?v=AHz2ky-jng8&t=333s)

게임은 흥행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사였던 실리콘 & 시냅스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유는 이 때 계약한 4만 달러라는 비용이 적은 비용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숨통을 트이게 할 만큼 넉넉한 금액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개발비용으로 받기로 한 4만 달러는 일시불로 지급되지 않고 수표로 지급되거나 이 수표 역시 결제 날짜에 맞출 때까지 자금 회전이 되지 않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리콘 & 시냅스의 공동 창업자들은 직원들의 급여나 사무실 운영 비용 등 돈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들의 신용카드를 돌려가며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The Lost Vikings – ‘아씨.. 개발비 좀 더 달라고 할 걸..’]
이미지: 유튜브(/watch?v=AHz2ky-jng8&t=333s)

이 당시에 마이크 모하임과 공동 창업자들은 게임을 개발하는 시간보다 돈을 빌리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그들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바로 지난 편에 언급한 것처럼 그들의 회사이름이 너무나 어렵고 이성적 사유나 직관에 의해서만 그 뜻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형이상적인 이름이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고생해서 만든 ‘길 잃은 바이킹’을 얘기하면 ‘아! 그 게임’ 하고 반기다가도, ‘그래서 회사 이름이 뭐라고요?’ 하는 투자자들의 질문에 ‘네, 실리콘 & 시냅스 입니다’라고 얘기하면 방금 전까지 반기던 기색이 금세 수그러들고 그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아무리 자랑스럽게 회사 이름을 얘기해도 그들은 그 뜻조차 이해하기 힘들었고 다음에 다시 찾았을 때는 여전히 회사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마이크 모하임은 회사 이름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회사 이름을 바꿀 것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래서 바꾼 이름이 ‘카오스 스튜디오’이다.

[회사 이름을 바꾸고.. (뭔가 흡족해 보인다).]
이미지: http://us.blizzard.com/en-us/company/about/b20/timeline.html

그렇게 입에 잘 붙지도 않는 실리콘 & 시냅스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던 중에 마이크 모하임은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데이비슨 & 어소시에이츠의 자회사로 편입하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시냅스라는 단어가 맘에 들었나 보다). 이 때 회사 이름을 기존의 어렵고 복잡한 실리콘 & 시냅스에서 그나마 양호한 카오스 스튜디오라고 짓게 된다. ‘시냅스’라는 단어는 몰라도 ‘카오스’라는 단어는 그나마 많이들 들어 본 단어였기 때문에 회사 이름은 약간 더 인식률 면에서 향상되었다(축하 드립니다!). 

하지만 고민 고민해서(안 그랬던 것 같지만) 지은 ‘카오스 스튜디오’라는 이름은 이미 뉴욕의 한 회사가 먼저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같은 이름이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 회사들은 이름이 같을 경우 많은 부분에서 공존하기 힘든 상태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선점 업체에서 소송이 이어졌다(게다가 상대는 뉴요커!). 

소송 이후 선점 업체에서 10만 달러에 회사 이름에 대한 사용 권리를 제안받았지만 10만 달러나 주고 살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마이크 모하임은 결국 다시 한 번 회사 이름을 바꾸기로 한다. 그렇게 여러 이름을 고민하다 회사 이름을 블리자드로 바꿨다. 그는 새로운 결심을 담아 회사가 블리자드라는 이름처럼 게임 시장에 매섭게 몰아치기를 바랐지만 그 뒤로도 회사는 별로 안정되지 않았다.

[드디어 ‘BLIZZARD’가 되었다.]
이미지: 유튜브(/watch?v=AHz2ky-jng8&t=333s)

회사 이름을 블리자드로 바꾼 이후로도 블리자드는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다. 1996년 7월에 CUC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에 블리자드의 모회사였던 데이비슨 & 어소시에이츠가 인수되면서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주인이 바뀐 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1997년에 CUC 인터네셔널이 호텔, 부동산, 자동차 렌탈 등 프랜차이즈 경영을 주업으로 하는 HFS사와 합병하여 또 다시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이 때 두 회사의 합병으로 센던트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지분구조와 회사 운영에 대한 문제로 정신 없던 와중에 또 다시 문제가 터졌는데, 1998년 CUC 인터내셔널이 회계 조작에 관여한 것이 밝혀져(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센던트의 주가가 폭락하며 결국 CUC 인터내셔널은 ‘킹스 퀘스트’ 시리즈로 유명한 시에라 온라인을 매각하였다. 당시 시에라 온라인은 블리자드와 하바스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1년 뒤 2000년이 되어 드디어 새로운 세기로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 비벤디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비벤디 유니버설의 자회사가 되었다.

비벤디가 하바스를 매수하면서 블리자드 역시 비벤디 그룹의 비벤디 게임즈 소속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2008년 7월 비벤디 게임즈가 액티비전과 합병하면서 드디어 현재의 모습인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될 수 있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블리자드의 고행 스토리는 홈페이지에 가면 상세히 볼 수 있다. 블리자드의 과거 모습을 보면 이름을 지키고 끝까지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끝까지 그들의 이름을 지키며 당당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회사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유명한 말에 빗대어 블리자드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블리자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여기저기 주인이 바뀌고 회사 구조가 바뀌면서도 블리자드는 자신들이 줄곧 생각해 왔던 게임에 대한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을 개발한다.

[BLACK THORNE]이미지: 유튜브(/watch?v=LFJRCXrecx8)

블리자드는 다시 한 번 인터플레이(그 놈의 지긋지긋한 학연)와 손 잡고 만든 ‘Black Thorne’라는 게임을 개발하기로 한다. ‘Black Thorne’이라는 게임은 당시에 전 세계를 강타한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을 자랑하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보고 우리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 위한 게임이었다. 게다가 칼 밖에 쓰지 못 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주인공의 손에는 ‘샷건’을 쥐어줬다.

필자도 고등학교 시절에 이 게임을 많이 했는데 그 때만 해도 블리자드라는 회사 이름은 생소한 이름의 회사였다. 

[Dangerous Dave in the Haunted Mansion]이미지: 유튜브 watch?v=XENaRuTEjsc)

필자에게 이 게임은 그냥 그래픽이 좀 더 좋은 ‘데이브 II’ 였다. ‘데이브 II’는 ‘위험한 데이브’라는 게임 시리즈 중 하나로, ‘둠’으로 유명한 존 카맥과 존 로메로가 만든 게임이다. 게임의 정식명칭은 ‘Dangerous Dave in the Haunted Mansion’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필자의 동네에서는 그냥 ‘데이브 II’로 불렸다. 전작인 ‘위험한 데이브’ 다음으로 많이들 해서인지 그냥 ‘데이브 II’ 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이 게임 역시 주인공이 산탄총(샷건)을 들고 좀비들을 소탕하는 액션 게임이다.

‘데이브’는 재미는 있었는데 그래픽이 때 아닌 EGA 16칼라 밖에 지원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그런데 ‘BlackThorne’은 수려한 256칼라를 자랑하는 게임이었고, 샷건을 쏠 때의 모션 역시 박력이 넘쳤기 때문에 필자는 집에 돌아오면 자주 했다. 그 이후로 나중에서야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접하고 게임을 만든 회사가 블리자드라는 것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보던 글자인데..’ 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세상을 평정한 블리자드는 ‘BlackThorne’ 시절만 해도 삼국지의 조조처럼 마초(馬超)와 한수(韓遂)가 기세 등등 하던 시절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의 조조밖에는 안 되었다(결국 조조가 이겼지만..).
 

[같은 이름의 ‘BLACK THORNE’]이미지: 유튜브(/watch?v=AHz2ky-jng8&t=333s)

재미있는 점은 ‘BlackThorne’을 출시하면서 또 한 번 지난 날의 악몽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북미는 ‘Black Thorne’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지만 유럽 쪽에는 전혀 다른 이름인 ‘Blackhawk’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는데 게임을 출시할 당시에 이미 같은 이름의 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오스 스튜디오 시절 상표권 소송으로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했는지 바로 이름을 ‘Blackhawk’로 바꿔서 출시했다.

공들여 개발한 ‘BlackThorne’은 초대박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인지도를 쌓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 게임 역시 제일 처음 등장하는 화면은 블리자드 아니라 인터플레이라는 남의 회사 이름이었고 자체개발하기는 했어도 자체적인 유통/배급을 하지 못 하는 것에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 때부터 블리자드는 더 이상 재주만 부리는 미련 곰탱이가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유통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으로 자신들이 개발하고 자신들이 유통하고 배급하는 첫 작품이 출시 된다. 그 게임이 바로 회사의 운명을 바꾸고 전 세계의 게임 산업의 흐름을 바꾼 ‘워크래프트’ 라는 게임이다.

(다음 편에 ‘워크래프트’편이 이어집니다.)

■ 필자의 잡소리

현재 ‘길 잃은 바이킹(The Lost Vikings)’ 게임은 블리자드 홈페이지에 가면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BlackThorne’ 역시 블리자드 홈페이지에 가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이렇게 무료로 배포할 줄 알았으면 그 때 사지 말고 25년을 기다릴 걸 그랬다. 그래도 아직 해보지 않은 분들은 지금은 거대하고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블리자드의 초기 풋풋했던 시절의 게임을 해보며 즐거움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