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와 결별한 데이빗 존스와 DMA Design의 기나긴 여정

게임별곡 시즌2 [데이빗 존스 2]

지난 편에서 데이빗 존스의 닌텐도 진영 탈퇴 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도 딱히 대안이 있는 상태에서 배짱을 부린 것이라기보다, 개발자의 자유 표현 의지에 간섭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염증과 분노가 그에게 선택을 강요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David Jones]
이미지: 유튜브(/watch?v=qmC4267D-k0)

데이빗 존스를 말할 때 흔히 ‘전세계적으로 수천만장(이젠 1억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GTA를 만들고 2천만장 이상 판매된 레밍즈를 창조한 개발자’라는 표현을 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GTA’ 시리즈가 탄생하기 전까지 그가 겪었던 고초를 생각하면 아마도 치가 떨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의 생각과 점점 멀어져 가는 ‘GTA’ 시리즈에 대한 불만을 여러 번 인터뷰한적도 있다. 사실 ‘GTA’를 논할 때는 개발자 데이빗 존스를 얘기하기보다는 락스타 게임즈의 하우저 형제를 논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GTA’를 진짜로 만들어 낸 사람들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나란히 한 글자씩 정답게 샘과 댄 형제(샘 하우저, 댄 하우저)는 락스타 게임즈의 사장, 부사장으로 원래는 게임 개발 쪽에 관심이 있던 것이 아니라 힙합에 빠져 사는 형제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와 영화 배우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히 그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의 어머니 제랄딘 모팻(Geraldine Moffat)은 범죄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었고 두 형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범죄 드라마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흥미가 취향으로 발전되어 결국 ‘GTA’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범죄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였지만, 정작 아버지는 변호사였다(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뭔가 색다른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지 재즈클럽도 운영했다고 한다. 그렇게 법률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와 영화/드라마 배우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두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유복하고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고, 형과 동생은 런던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나왔을 만큼 전형적인 영국의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두 형제에게 그것은 너무나 지루하고 따분하고 너무나 뻔하디 뻔한 삶이었다. 지금도 평범하지 않지만, 그 때는 더 평범하지 않았던 두 형제에게 그런 삶은 곧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Sam Houser]
이미지: 유튜브(/watch?v=_Edsi4_d1A8)

결국 형 샘 하우저는 아르바이트로 BMG(베텔스만 뮤직 그룹)에 입사해 평소 그가 하고 싶어했던 음악과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했던 취미를 일로 하다 보니 너무나 흡족했던 나머지 1994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정식으로 입사해 BMG 인터렉티브에서 일하게 된다. 동생 댄 하우저는 그보다 2년 뒤인 1996년 BMG에 입사하게 되는데, 보통 형이 오라 하면 가야지 어쩌겠나 싶다(두 형제 사이에 실제 주먹 다짐이 오고 갔는지 권유와 설득을 가장한 어떤 회유와 협박이 오고 갔는지는 두 사람만이 알겠지). 어찌됐든 유복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잘 자라난 형제라도 발길질을 하고 서로 주먹질을 하는 짓을 했을 것 같다.

[Houser Brothers]
이미지: 유튜브(/watch?v=QjwaMivU2AU)

입사 후에 두 형제는 BMG 음반사에서 뮤지션들을 스카우트하는 일을 했었다. 하지만 뭔가 좀 해보려고 하기도 전에 BMG 인터렉티브는 1998년 테이크투인터렉티브(Take Two Interactive)에 인수되었다. 1998 년 3 월 테이크투인터렉티브에 주식 185만주(지분 약 16 %)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인수되었는데, 이 때 영국에 있던 BMG 직원들 상당수가 인수와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여기에는 샘, 댄 형제도 포함되어 있었고 두 형제는 새로운 회사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수여 받게 된다. 그것은 ‘영화 이상으로 흥행해서 돈을 벌 수 있을만한 게임’을 찾아오라는 임무였다(마치 진시황이 불로초 찾아오라는 얘기랑 마찬가지). 

그리고 그 일을 중추적으로 맡게 될 새로운 자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이 때 두 형제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락(Rock)음악을 따서 지금의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이름까지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서 지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했던 ‘음악’에 영감을 받아서 지었을 만큼 두 형제는 아직까지는 게임인이라기 보다는 음악인이었다.

[Rockstar Games]
이미지: (https://www.rockstargames.com/)

그렇게 진시황의 명을 따라 전 세계를 떠돌며 있지도 않은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것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대작 게임을 찾아 헤맸지만 두 형제의 눈에 들어오는 게임이 없었다. 그렇게 끝내 찾지 못 할 것 같았던 중에 마침내 데이빗 존스가 만든 ‘Race N Chase’라는 게임을 보게 됐고 두 형제는 이 게임을 보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것이 우리가 찾던 바로 그 게임이야!’ 닌텐도에게 대차게 까여 더욱 더 게임의 표현 자유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던 데이빗 존스에게 자유분방함을 떠나 그 이상으로 세상에 벽을 깨부수고 희열에 가득 찬 삶을 살던 하우저 형제와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Gremlin Interactive]
이미지: https://it.wikipedia.org/wiki/Gremlin_Interactive

하지만, 이들(데이빗 존스, 하우저 형제)의 만남이 있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을 거친 뒤였다. ‘GTA’가 아닌 ‘Race N Chase’를 만들고 있던 데이빗 존스는 닌텐도와의 타이틀 출시에 대한 불화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애초에 닌텐도 64에도 발매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Race N Chase’게임 개발도 난항을 겪게 된다. 결국 게임 이름까지 ‘GTA’로 바꿔 출시한 게임은 발매 후 100만장 판매량을 보이며 좋은 성적을 냈지만 영국의 게임 퍼블리셔였던 그렘린 인터렉티브(Gremlin Interactive)에서 DMA Design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회사의 운영구조가 크게 바뀌게 된다. 결국 DMA Design은 그렘린 인터렉티브에 최종 협상에서 420만 파운드에 회사를 인수당하게 된다. 

그렇게 그렘린 인터렉티브의 자회사가 된 DMA Design의 데이빗 존스는 이제 좀 한 숨 돌리고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로 다음 다음해인 1999년에 프랑스(영국의 적국?)의 게임회사인 인포그램즈(Infogrames)가 접근하기 시작한다. 

인포그램즈는 우리나라에서는 ‘남북전쟁’으로 유명한 회사다. 인포그램즈는 DMA Design의 모회사였던 그렘린 인터렉티브를 인수해버리게 되는데, 졸지에 자회사에서 손자회사로 전락해버린 DMA Design은 후에 다시 한 번 최종적으로 테이크-투-인터렉티브(이놈의 동네는 왜 죄다 인터렉티브야..)에 인수 당하는 처지가 된다. 이미 회사는 너덜너덜해졌고 주요 개발자는 진작에 떠난 상태였다.

[Infogrames]
이미지: 유튜브(/watch?v=Dwor0ziaHj8&list=PLiJs4SEJ9DOztIMA8esjCi0rbEBQ6D__2)

그렇게 DMA Design은 ‘레밍즈’ 개발 초기에는 Psygnosis에 유통을 맡겼다가 결국 1993년 소니(SONY)가 Psygnosis를 인수하면서 레밍즈에 대한 판권도 뺏기더니, 온갖 진통 끝에 만든 게임 ‘Race N Chase’은 DMA Design을 인수한 그렘린 인터렉티브(Gremlin Interactive)에서 판권을 가져갔고 그렘린 인터렉티브는 다시 인포그램즈(Infogrames)에 인수되어 족보가 꼬이기 시작하더니 다시 한 번 테이크-투-인터렉티브에 인수되면서 이러 저리 돌아가며 회사는 이미 너저분한 상태가 되었다.

[Take-Two Interactive]
이미지: (http://www.gamernode.com/take-two-interactive2k-games-e3-2012-company-spotlight/)

지금의 락스타 노스(Rockstar North)는 이전에 DMA Design이라는 회사가 이름이 바뀐 것 정도로만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은데, DMA Design에서 락스타 노스까지 오기까지는 이렇게 복잡하고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DMA Design의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이었던 마이크 데일리(Mike Dailly)의 개인 홈페이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The Complete History of DMA Design By Mike Dailly (http://www.javalemmings.com/DMA/DMA1_1.htm)에 가면 그들의 행복했던 초기 시절의 사진과 글들을 볼 수 있다. 

홈페이지 하단에는 Text © Copyright 2004-2006 By Mike Dailly All rights reserved. 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2006년까지를 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이야기는 1989년 DMA Design이 처음 만들어질 때쯤부터 1991년 ‘레밍즈’를 만들던 시절까지만 쓰여있다. 비어 있는 Chapter 5의 1992년부터는 이제부터 DMA Design이라는 회사가 본격적인 인수 대 혼란기를 겪기 시작하던 때이다. 아마 마이크 데일리 역시 처음 순수하고 젊기만 했던 그 시절에 열정으로 가득 찬 시절이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The DMA team in 1991]
이미지: http://www.javalemmings.com/DMA/DMA1_1.htm

그렇게 자신들의 영혼을 담았던 회사가 이리저리 돌려지다가 저 사진 속에 풋풋했던 친구들도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으로 하나 둘 제 갈 길을 떠났다. DMA Design은 더 이상 처음에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윗 사람들의 지시와 강요로 개발자를 갈아 게임을 만들어 내는 대규모 자본가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실제로 락스타 게임즈는 개발 환경이 열악하기로 소문나 있고 최근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의 경우에도 개발을 담당했던 초기에 락스타 샌디에이고 개발자들이 대거 퇴사한 이후 소송까지 이어진 경우가 있다. ‘맥스 페인 3’같은 경우도 결국엔 락스타 벤쿠버가 해체되어 버리는 등 인기 있는 대작 게임을 만드는 회사의 외형적인 규모에 비해 내부적인 마찰은 또 다른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레밍즈’에 이어 ‘GTA’ 초기 시리즈를 창시하고 전 세계에 초대작 인기 게임을 만들었던 데이빗 존스 역시 인수 과정에서 회사의 운영권에 관련된 경영 문제와 그 보다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자유 의지에 대한 외부의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계속해서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단지 모든 차량을 탈취하여 잠시나마 자신의 것인 듯 운전도 하면서(그것도 범죄이긴 하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결국엔 부와 명예를 이룬다는 것에서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표현의 자유 보다는 표현의 자극이 더 부각되면서 데이빗 존스와 마찰을 겪게 된다. 

결국 여러 가지 문제로 데이빗 존스는 ‘GTA’ 시리즈 2편을 마지막으로 락스타 노스를 떠나게 되고, 그렇게 ‘GTA’는 이제 하우저 형제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작자가 회사를 떠난 이상 두 형제는 아예 이 참에 더 화끈하고 강하게 만들어 보자는 투지를 불태우며 ‘GTA’는 새롭게 거듭나게 되었다. 그렇게 ‘GTA’는 더욱 더 폭력적이고 더욱 더 자극적이지만 무한의 자유도를 내세우며 승승장구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Dave Jones (2018)]
이미지: 유튜브(/watch?v=EH-TPLCnwU0)

데이빗 존스는 그렇게 락스타 노스를 떠난 이후 ‘APB(All Points Bulletin)’라는 게임을 개발한다. 이 게임은 ‘온라인 GTA’로 유명세를 탔고, 국내회사인 웹젠이 퍼블리싱을 하기로 하면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제작사인 RTW는 결국 300억이 넘는 개발비를 쏟아 붓고도 부진한 흥행으로 인해 청산 절차를 밟기도 했다.

이 때 거의 180명이 넘는 개발자가 정리해고되었는데, 30년전 DMA Design이 ‘레밍즈’를 만들던 영국의 시골마을 던디(DMA Design의 본사가 있던 곳)에 전 세계 게임업체들이 핵심 개발자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이 때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에서도 자사 직원 9명을 파견하기도 했고 액티비전 블리자드도 직원 6명을 파견하는 등 ‘GTA’ 급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개발자를 모시기 위해 시골마을에 몰려든 그들(경쟁사)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하니 심각한 상황이지만 웃음이 나기도 한다(맨인블랙 장면이 왜 생각나지?).

[APB (All Points Bulletin)]
이미지: 유튜브(/watch?v=ef3GPO67lTc&t=1372s)

‘APB’는 ‘GTA’ 이상으로 명작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데 여러모로 참 아쉬운 게임이다. 데이빗 존스는 이제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이지만 여전히 게임업계에서 활동하면서 다시 한 번 화려한 재기를 하며 부활을 준비 중이다. 부디 자유를 갈망하는 그의 의지에 다시 한 번 날개가 달리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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