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 게임즈의 초기작‘레밍즈’가 없었다면 ‘GTA’도 없다

[Lemmings]
이미지: 유튜브(watch?v=JJ9CS0KUZvY)

게임별곡 시즌2 [락스타 게임즈]

아주 오래 전에 ‘레밍즈’라는 게임이 있었다. 도트 픽셀의 알아보기 힘든 형체의 사람 같은 캐릭터들을 무사히 골인 지점까지 살려서 보내야 하는 지극히 인본주의에 기반한 평화적인 내용의 게임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캐릭터는 사람 모양과 비슷하지만 사실 레밍(lemming)이라는 쥐를 모티브로 했다. 

나그네쥐라고도 불리는 레밍은 집단 자살로 유명한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놈들이다. 하지만 자연이 하는 일에 불필요한 일은 없다. 레밍의 집단자살은 레밍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사방으로 서식지를 찾아 돌아다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자연의 한 부분이다.

‘레밍즈’라는 게임을 해보면 캐릭터들에게 특정 명령을 내려주지 않으면 모두가 한 방향으로 무조건 직진으로 이동하다가 결국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줄줄이 추락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래서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희생양만을 남기고 나머지 생명은 전부 구출해 내는 것이 게임의 주된 내용이다. 살생이 주를 차지하던 시절에 정 반대인 공생을 위한 게임이라니, 필자 뿐만 아니라 ‘레밍즈’를 해본 사람이라면 다소 특이했던 게임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 게이머들이 ‘레밍즈’를 IBM PC(호환기종)버전으로 많이 접해봤겠지만, 사실은 1991년에 나온 아미가(Amiga) 버전이 시작이다. 

아미가는 1985년 코모도어에서 발표한 개인용 컴퓨터(PC)이다. 주로 모토로라 계열의 CPU를 사용한 제품으로 컬러 그래픽과 사운드 칩셋 등의 기본 장착으로 당시 일반적으로 쓰던 IBM PC호환 기종들과는 차별점을 두었다. 그것은 애초에 아미가라는 물건이 계획될 당시에 가정용 게임기로 계획된 제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3년 아타리 쇼크로 북미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박살나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자 재빠르게 가정용 게임기에서 개인용 컴퓨터 콘셉트으로 수정하여 발표하게 된다. 

[Amiga]
이미지: 유튜브(watch?v=XVZrL4k1los)

비슷한 시기 한국은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면서 교육용 PC로 XT(8086, 8088) 컴퓨터를 지정하게 된다. 아무래도 철저한 사무용 위주의 컴퓨터다보니 눈이 즐거운 컬러 그래픽이나 귀가 즐거운 사운드 칩셋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애들립과 같은 별도의 사운드 카드는 한참 후에 등장했다). 

하지만 아미가는 게임기다웠다. 1985년 최초로 발표한 ‘아미가 1000’에서 4096색의 컬러 그래픽과 스테레오 사운드를 지원했다. 실제로 같은 게임을 아미가 버전과 IBM PC버전을 비교해보면 아미가 버전이 그래픽과 사운드가 월등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드웨어 스펙에서 많이 차이가 있었다. 

[DMA Design (1987)]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Rockstar_North#/media/File:DMA_Design_original_offices.png

‘레밍즈’를 개발한 회사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DMA Design Limited’ 라는 이름의 회사였다. DMA Design은 창업 초기 주로 아미가 PC용 게임을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초기작 중에 하나가 바로 ‘레밍즈’라는 명작 게임이다. 

DMA Design은 ‘레밍즈’를 시작으로 ‘Oh No! More Lemmings(1991, Amiga, ST, MS-DOS)’를 출시하면서 연속 흥행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회사는 1990년대 중반기 이후 또다른 게임으로 인해 급격한 내부변화를 겪게 된다. 바로 온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은(덕에 대박 성공한) ‘GTA’다. 

‘GTA’라는 게임 자체는 그것을 권장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놀랍도록 정교한 자유도로 인해 무엇이던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덕분에 현실 세계에서 이루기 힘든 별의별 각종 범죄 행위를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가장 혹독한 표현으로 ‘살인 시뮬레이터’라고까지 불리기도 했었을 정도다. 그만큼 다양한 무기로 온갖 방법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될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게임 자체에서 권장하기보다는 순전히 그것을 접하고 즐기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문제다. 얼마든지 평화롭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게임 세상에서 살아갈 수도 있고 정 반대의 행동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게임에서 제공하는 자유도 자체가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빌미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선택한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GTA – 아직도 다양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지: 유튜브(https://gaming.youtube.com/watch?v=oCZgVGFwKo0)

참고로 필자 역시 ‘GTA’를 하면서 몇 달을 밤을 새며 별의별 창의적인 실험을 진행해보았는데, 그것을 현실과 착각한다면 인지 능력이 부족함에 원인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자유롭게 실험해 볼 수 있는 게임 자체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다소 억지가 있다. 

하지만 게임의 이름 자체가 ‘GTA(Grand Theft Auto)’이다 보니 잔혹함을 결정할 수 있게 만든 틀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참고로 GTA(Grand Theft Auto)라는 단어는 자동차 절도 범죄를 일컫는 속어다.

‘GTA’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첨예한 대립을 하게 할 만큼 민감한 주제를 담고 있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1997년 최초로 발표된 이후 벌써 20년 넘게 10편 이상 시리즈를 이어온 인기게임이다. 각종 언론 매체나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의 패러디도 자주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GTA’를 만든 회사는 ‘레밍즈’를 만든 회사와 같다. 평화로운 ‘레밍즈’를 DMA Design는 GTA게임을 개발한 락스타 노스(Rockstar North)의 전신이다. 1984년 영국에서 Acme Software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는 ‘David Jones’, ‘Russell Kay’, ‘Steve Hammond’, ‘Mike Dailly’에 의해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이 때 마이크 데일리(Mike Dailly)는 불과 14세의 소년이었다. 강산이 3번이나 변한 3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락스타 노스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다(어지간히 이사하기 귀찮은 모양이다). 

Acme Software 창업 초기에는 주로 아미가 PC용 게임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 아미가 PC는 나름대로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창업자인 데이비드 존스(David Jones)가 당시 Amiga 1000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존스는 락스타 노스가 있기 전 DMA Design과 그 전에 Acme Software 시절부터 활동하던 창업자로 ‘GTA’의 개발자이기도 하다.

[레밍즈 개발 시절]
이미지: http://www.javalemmings.com/DMA/Mags/MikesRoom_WithSteve.jpg

‘레밍즈’를 만들던 시절 DMA Design이라는 사명으로 바꿨는데, DMA라는 이름에 뭔가 거창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개발 당시 데이비드 존스(David Jones)가 쓰던 아미가 PC의 프로그래밍 매뉴얼에 적혀 있었던 DMA(Direct Memory Access, 직접 메모리 접근)에서 가져왔다. 

회사를 창업하기 이전부터 취미 삼아 여러 게임을 개발했고 회사를 창업한 이후에도 다행히 개발팀을 유지할 정도의 수익을 내면서 회사는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1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에 맞춰 ‘레밍즈’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레밍즈’는 전 세계에 1500만부 이상 판매되었고 ‘레밍즈’를 기점으로 DMA Design이라는 회사는 단번에 세계적인 게임 개발 회사로 우뚝 서게 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Oh No More Lemmings]
이미지: 유튜브(watch?v=rv8CNhAPheI&list=PLZ9NRdxIkENZbXX1ycXctZIyLLrnPym0k)

1991년 ‘레밍즈’를 시작으로 첫 작품이 인기를 얻자마자 바로 같은 해에 ‘Oh No!  More Lemmings’를 출시하고 1993년 ‘Christmas Lemmings’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바로 ‘Lemmings 2: The Tribes’와 ‘All New World of Lemmings’가 출시 되는 등 그 이후로도 시리즈는 다양한 플랫폼으로 꾸준하게 출시되었다. 하지만 정작 본가인 락스타에서 ‘레밍즈’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는 현재 ‘레밍즈’의 판권이 소니(SONY)에게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왜 엉뚱하게도 게임의 판권이 소니(SONY)에게 있는지 궁금해 하는데, 그것은 ‘레밍즈’를 퍼블리싱했던 Psygnosis라는 회사와 관련이 있다. 1993년 소니가 Psygnosis를 인수하면서부터이다. 그 당시 소니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Psygnosis를 인수하면서 48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인수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락스타 게임즈의 게임들]
이미지: 락스타 게임즈 홈페이지(https://www.rockstargames.com/games)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 게임 ‘레밍즈’를 만들어놓고도 정작 그 권리는 현재 타인에게 뺏긴 상태라 애써 낳고 기른 자식을 먼 발치에서 숨어 보면서 눈물 훔치는 비련의 주인공 같은 역할이지만 정작 락스타 게임즈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 한 번 시대를 풍미하는 새로운 게임들을 만들어 내고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본격 GTA시리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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