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 온라인의 야심작, 잔잔한 교육용 어드벤처 게임

게임별곡 시즌2 [시에라 온라인 번외편]

■ 시에라 온라인의 번외편 - 에코 퀘스트

시에라 온라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킹스퀘스트’를 만든 회사로 기억되고 있지만, 왕 찾기가 아닌 뭔가 다른 것을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들도 많이 만들었다. 그 중에 필자가 좋아했던 게임은 ‘에코퀘스트’라는 게임이다. 뭔가 환경보호단체에서 후원받았을 것 같은 느낌의 게임인데, 출시 당시에 2만3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게임이라 중간에 재미없어도 본전은 뽑아야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한 게임이다. 당시 필자는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다른 어드벤처게임들보다 2000원이 더 싸서 샀다.
 

[Eco Quest – 바다 이야기라서 푸른 배경 화면]


게임은 바다의 생물들이 오염되어 고통받는 것을 보여주고, 바다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다같이 사는 지구에서 바다를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는 지극히 계몽적이고 친환경적인 내용을 담았다. 지금까지 했던 게임들에 비해 다소 지루하거나 느슨한 느낌이었지만, 돈이 아까워서 결국 끝까지 게임을 해봤다. 이 게임이 출시됐을 당시에는 오락실 게임 한 판이 100원 정도였는데, 오락실 기준으로 230판은 할 시간 정도는 해야 본전을 뽑는 셈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게임 플레이타임은 길지 않은 편으로, 오락실 게임 기준 230판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그래서 대신에 엔딩을 여러 번 봤다).

[Eco Quest – 돌고래가 말을 한다!]

 
이후에 출시 된 CD-ROM 버전에서는 음성 등이 많이 추가됐지만, 필자가 구매한 플로피 디스켓 버전에서는 용량의 제한으로 음성이 딱 한 번 나온다. 돌고래가 “I GOT IT”이라고 소리치는 부분인데, 당시만 해도 PC 게임들에서 음성 지원이 되는 게임들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와! 소리가 나온다!”하고 신기했었다(그 이후로는 돌고래가 한 마디도 안 함). 당시 필자는 저가의 애드립(Adlib) 사운드 카드를 쓰고 있었는데, 삑삑거리는 소리만 나오던 PC 스피커에서 음악만 흘러 나와도 신기하던 때에 음성이 나오니 굉장히 신기했었다.

[Adlib 사운드 카드]
(이미지: http://www.wavetable.nl/category/hardware/adlib/1_adlib1987/)

 

지금이야 음성 지원이 되는 게임이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었지만, 1990년대 초기만 해도 PC게임 중에서 음성이 지원되는 게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용량의 제한으로 인해 음성이 지원 된다고 해도 몇 마디 정도만 나올 뿐이었고, 나중에 CD-ROM이 대중화되면서 풀 음성 지원 게임도 등장하게 되었다. ‘에코퀘스트’ 역시 CD-ROM 버전에서는 풀 음성을 지원한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했던 ‘원숭이섬의비밀1, 2’도 플로피 디스켓 버전에서는 음성이 한 마디도 안 나온다. 원숭이 섬의 비밀 게임 역시 나중에 The Secret of Monkey Island: Special Edition 버전에 가서야 음성을 지원했다. 그만큼 게임에서 음성지원은 그 때 당시 신기한 일이었다. 필자에게 ‘에코퀘스트’는 처음으로 PC에서 사람처럼 말하는 음성을 듣게 해 준 게임이어서 더욱 각별히 기억에 남는 게임이 되었다.

‘에코퀘스트’는 시에라 온라인 특유의 몽환적이고 파스텔 풍의 그래픽으로 주인공 소년 ‘아담’의 바다 탐험기를 다루고 그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디서 봤더라?’하면서 끝끝내 떠오르지 않는 답답함에 괴로워하던 중 마침내 떠오른 그 장면은 필자의 막내 삼촌 방에 걸려 있던 한 장의 포스터였다. 바로 영화 ‘그랑블루’다.
 

[그랑블루 – 게임의 엔딩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지: https://www.google.co.kr)


돌고래는 오래 전부터 인류에게 꽤나 친숙한 존재였기 때문에 돌고래가 주인공/조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만 검색해봐도 수십 편이 나온다. 해양 생태계 보존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에코퀘스트’라는 게임에 왜 돌고래를 등장시켰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바다 생태와 인간이라는 주제를 넣으면 다음으로 들어갈 출연자는 당연히 돌고래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돌고래 관련 영화]
(이미지: https://www.google.co.kr)

 
하지만 게임을 해보면 ‘그랑블루’보다는 게임보다 늦게 개봉한 영화 ‘프리윌리(1993)’와 더 비슷한 것 같다. 영화 ‘프리윌리’는 1편이 흥행에 성공하는 바람에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시리즈로 제작 되어 4편까지 만들어졌다.
 

[Eco Quest – 대망의 엔딩]
(그랑블루 영화 포스터가 많이 생각나는데..)


비록 ‘프리윌리’ 주인공은 돌고래가 아니라 범고래지만, 범고래와 소년의 우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의 내용이 돌고래와 소년의 우정을 다루고 있는 ‘에코퀘스트’와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임을 느끼게 한다. 특히 수족관에 잡혀온 해양 생물(범고래)과 소년이 만나고, 소년이 범고래를 바다에 풀어주면서 겪는 이야기가 상당히 비슷하다. ‘에코퀘스트’를 하면서 ‘프리윌리’에 나왔던 주제곡 ‘Will you be there(마이클 잭슨)’이 떠오르기도 했다. 둘 사이에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겠지만 게임과 영화의 플롯이 상당히 유사함을 느끼게 한다.
 

[Eco Quest 1]
(이미지: https://www.scummvm.org/screenshots/sci/ecoquest/)


게임의 주인공 아담 그린(Adam Greene)은 환경 보호를 위해 생태 발명품을 개발하는 정부와 함께 일하는 10살 소년이다. 설정만 봐도 천재인 것 같다. 아담의 아버지는 Ecology Emergency Network(EEN, 생태 응급 네트워크)의 책임자로부터 캐러비안의 연안 산호초가 급속하게 죽어 가고 있으니 너무 늦기 전에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아담은 돌고래를 만나고, 바닷속 세계 수중 모험에 빠져든다. 돌고래 친구인 ‘Delphineus’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바다 생물이 사는 수중 도시인 ‘Eluria’를 발견하지만, 수중 도시는 인간의 쓰레기와 독에 오염되어 있다. 그리고 실종된 고래 왕을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게임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생소한 ‘환경 윤리’라는 내용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용 게임이다.

[Eco Quest 1 – 과하지 않은 퍼즐]
(이미지: https://www.scummvm.org/screenshots/sci/ecoquest/)

 
교육용 게임이어서 그런지 게임의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 지금까지 시에라 온라인의 다른 게임들에서는 숱하게 이 세상을 하직하는 장면이 등장했지만, 이 게임은 12세 미만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용 게임이어서 그런지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나온다거나 죽음의 심각성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나왔으면 뭔가 섬뜩한 게임이 됐을 듯…).

보통의 게임에서 등장하는 퍼즐은 머리가 쥐여 뜯겨나갈 정로도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서 쉽게 풀지 못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데 반해, ‘에코퀘스트’의 퍼즐은 상당히 쉬운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엔딩까지 게임을 진행하면서 크게 막히거나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이렇게 적절하게 조절된 난이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Eco Quest 2 – 이번엔 지상(열대 우림)으로 간다]
(이미지: https://www.scummvm.org/screenshots/sci/ecoquest/)


시리즈 2편은 지상으로 무대를 옮기게 된다. 시리즈 2편에서 아담에게 일을 시키는 조직은 전편에도 등장했던 EEN으로,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지 매우 궁금하다. 주인공 아담이 아마존 강을 따라 탐험을 하면서 원시 부족과 만나고, 신비한 숲의 비밀을 발견하고, 원시 부족인 ‘그로브 피플(Grove People)’이 걸린 병을 치유하기 위한 모험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 2편까지 제작될 만큼 회사에서는 뭔가 기대를 걸었던 것 같은데, ‘에코퀘스트’는 아쉽게도 2편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다른 퀘스트 시리즈(킹스, 스페이스, 폴리스, 래리)들이 보통 6편까지 출시된 것에 비하면 굉장히 짧게 생을 마감했다. ‘에코퀘스트’ 1편에서 바다를 다루고 2편에서는 지상(열대우림)을 다루면서 사실상 바다와 지상을 다 치유했으니 더 이상 할 게 없었을 것 같다.

저연령층 대상의 교육용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필자는 그래도 재미있게 했다(쉬워서 재미있었다). 특히 1편의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뭔가 뭉클함이 느껴지는 연출을 보고 감동받아서 몇 번이나 엔딩을 본 기억이 난다.

■ 필자의 잡소리
 

[짐 월스(Jim Walls)]
(이미지: 폴리스 퀘스트 게임)


시에라 온라인은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모험을 다루고 있는데, 다음 편 주제는 경찰을 주인공으로 하는 ‘폴리스퀘스트’라는 게임이다. 특이한 점은 게임의 메인 개발자(디렉터)로 실제 전직 경찰을 영입했다는 것과 게임 화면서도 실제 경찰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짐 월스(Hello. I’m Jim Walls라고 인사하는 양반)’는 전직 경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게임에 담아 경찰 소재의 게임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당시 미국의 경찰 관련 기관에서도 신입 경찰들에게 교육용으로 사용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찰 업무를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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