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비행시뮬레이션의 또다른 명가 다이나믹스의 출발

게임별곡 시즌2 [다이나믹스 1편]

■ 전투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의 라이벌

1980년부터 1990년대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게임 회사들이 있었다. 실제로 지금의 몇 배는 더 있었는데, 정말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던 시절이었다. 대부분 지금은 거의 사라진 PC 패키지게임 개발사들이다. 하지만, 이 회사들은 수십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통폐합되거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번 편에서는 그 중에 한 때 제일 잘 나가던 회사 다이나믹스(Dynamix)라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Dynamix]


지난 편에 소개했던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와 함께 다이나믹스는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의 양대 산맥으로, 수많은 명작 게임들을 만들어냈다. 물론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만 만든 것이 아니라 액션게임이나 어드벤처게임들도 다수 개발했다.

‘중국지심’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하트 오브 차이나’나 ‘라이즈 오브 더 드래곤’, ‘윌리 비미쉬의 모험’과 같은 게임을 본 유저들은 어드벤처 게임 개발사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 창업 당시 주로 출시한 게임들을 보면 ‘Stellar7(1982)’ ‘Arcticfox(1986)’ ‘SkyfoxII: The Cygnus Conflict(1987)’ ‘Abrams Battle Tank(1988)’처럼 무언가 ‘탈것’에 대한 게임들이 많았다. 그 이후로도 주로 지상이나 하늘에서 탈 것들에 대한 게임을 많이 개발했는데 이는 회사 창업 초기에 ‘Damon Slye‘이라는 개발자(디자이너, 프로듀서, 프로그래머 총괄)의 영향이 컸다.

[Penguin Software - STELLAR 7 (1982)]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File:Stellar7_AppleII_screenshot.png)
[Dynamix – STELLAR 7 (1992)]
(이미지: YouTube)
[Dynamix – Abrams Battle Tank (1988)]
(이미지:https://en.wikipedia.org/wiki/Abrams_Battle_Tank#)

  
그가 1984년 ‘Jeff Tunnell’와 함께 다이나믹스를 창업하고 제일 처음 개발한 게임이 ‘스텔라7’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텔라7’은 다이나믹스를 세우기 이전에 개발한 게임이고, 그 이후에 다이나믹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게임 타이틀의 개발사 이름을 다이나믹스로 변경했다.

그 이후로 ‘F-14 TOMCAT(1988)’이나 ‘A-10 Tank Killer(1989)’ ‘Red Baron(1990)’ ‘Aces of the Pacific(1992)’ ‘Aces Over Europe(1993)’처럼 명작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 당시 라이벌로 마이크로프로즈(게임별곡 전편 참조)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두 회사는 모종의 계약이 있었는지 신기하게도 출시 게임들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즈가 주로 현대전투기들을 소재로 게임을 개발했다면, 다이나믹스는 주로 2차세계대전과 같이 시대적으로 서로 겹치지 않는 분야에서 소재를 찾았다.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의 라이벌이었지만, 기종과 시대를 비껴서 서로 싸우지 않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 고전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다이나믹스라는 회사가 집중했던 분야 중에 하나가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들이다. 대부분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물론 현대전을 다룬 게임들도 출시했지만, 인기나 유명도로 따지면 2차 세계대전 게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Dynamix – Red Baron(1990)]
(이미지:http://www.mobygames.com/game/dos/red-baron-mission-builder)

 
다이나믹스라는 회사가 고전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으로 유명하게 된 시점은 ‘Red Baron’부터인데, 실존했던 인물 ‘붉은 남작(Red Baron)’을 모티브로 했다. 붉은 남작이라 불리던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은 독일의 유명한 에이스 중 한 명으로, 세계 제 1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유명했던 전투기 조종사였다.

공식적으로 80기의 격추 기록을 달성해 에이스 중의 에이스(Ace of Aces)라 불린다. 원래 처음부터 전투기 조종사는 아니었고, 기병대 출신이었다가 1916년에 본격적으로 전투기 조종사로서 활약했다. 불과 1년 뒤 1917년에 편대장이 되고 1918년 4월 21일 격추로 사망하는 동안 2년 남짓한 기간에 80기라는 격추기록을 달성해 독일의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그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대공 전투의 창시자이자 전투기 조종사들의 아버지라 불리던 그의 스승 오스발트 뵐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스발트 뵐케는 라이트 형제 이후 비행기라는 신문물이 단지 수송이라는 분야에 국한되어 있을 때, 태초에 공군이라는 개념과 대공전투라는 개념을 창시하고 성경의 10계명과 같은 ‘뵐케의 금언’이라는 것을 전파해 공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참고로 당시 뵐케의 라이벌이었던 임멜만은 후세에 ‘임멜만 턴’이라는 전투 비행 기동을 남겼다. 리히트호펜의 스승 오스발드 뵐케가 40기의 격추 기록을 남겼으나, 리히트호펜은 그의 곱절인 80기의 격추기록을 달성했다. 물론 그가 최고 기록은 아니다. 최고 기록은 2차 세계 대전 활약했던 에리히 하르트만(Erich Alfred Hartmann)으로, 352기 격추 기록을 남겼다.

에리히 하르트만 역시 붉은 남작 리히트호펜과 인연이 깊은데,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독의 연방군 공군에서 ‘제 17전투비행단 – 리히트호펜’ 비행단의 초대 비행단장이 됐다. 붉은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리히트호펜은 현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타고 다니던 붉은 색의 포커 삼엽기는 기동전사 건담 애니메이션에서 샤아가 타고 다니던 3배(포커 삼엽기) 빠른 붉은 색의 ‘자쿠’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모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 코르키의 스킨으로도 등장했다. 그 외에도 전투기에서 빨간색으로 유명한 무언가 나오면 대부분 그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 보면 된다.

[Manfred von Richthofen(1892~1918)]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Manfred_von_Richthofen)

 
지금까지 인류는 수없이 많은 전투를 벌였지만, 그 중에서도 하늘에서 싸우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남짓한 역사로 인류의 전쟁사를 비추어 볼 때 매우 짧은 기간에 속한다. 1차 세계대전 초기에만 하더라도 비행기라는 신문물은 단지 적국 지상군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정찰의 목적으로만 쓰였다.

당시 항공기는 지상에서 쏘아 맞추기 어려운 매우 번거로운 상대로, 지금으로 치면 위성정찰 정도의 개념이다. 점점 정찰기가 효용성을 지니게 되고 적국의 정찰기들 역시 아군의 머리위로 자유로이 날아 다니는 상태가 되자 비행기들은 총이라는 물건을 싣게 된다. 처음에는 조종석에서 상대방의 비행기에 권총이나 라이플을 쏘는 원시적인 형태의 전투였지만, 비행기의 프로펠러와 기관총을 결합한 ‘싱크로나이즈드 기어(Synchronized Gear)’라는 동조장치를 장착한 ‘포커 아인데커(Fokker Eindecker)’라는 비행기의 출현으로 공중전의 양상을 크게 바꿔놨다.

그 당시 신기술의 집합체였던 항공 전투기는 아군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많은 유명인과 유명한 일화를 만들어냈다.

[영화: Der Rote Baron (Red Baron)]

 
1차, 2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최신의 기술 집합체인 항공 전투기의 등장과 그것을 몰고 다니는 에이스들의 이야기로 화제거리가 됐다. 신문에는 전날 격추기록이 스포츠 중계처럼 발표되는가 하면 라디오에서도 연일 유명 에이스들의 전투 기록을 방송하기도 하는 등 전쟁의 참혹함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전 국민이 열광할 정도로 인기 있는 주제가 됐다.

물론 그 주인공인 에이스들 역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영웅으로 칭송 받으며 주요 행사에 초대 되는가 하면,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엽서나 우표가 발행되기도 했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건 기본이었다. 

이런 시절의 이야기들을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 같다. 1차, 2차 세계대전의 공중전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최근 ‘덩케르크 (Dunkirk, 2017)’까지 이미 수 없이 많이 영화화됐다. 붉은 남작 역시 예외 없이 영화로 만들어 졌는데, 붉은 남작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만 해도 몇 편이 넘는다. 

이렇게 유명한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든 것이 바로 다이나믹스의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 ‘붉은 남작(Red Baron)’이다. 국내에는 게임 출시 당시 솔직히 지금처럼 ‘붉은 남작’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지금도 많이들 모르는 것 같지만). 최근에나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졌지 그 당시에는 밀리터리 마니아들이나 아는 정도였다. 그래도 당시에 호화로운 칼라 그래픽의 공중전을 다루는 게임들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고 시대적으로도 1차 세계 대전의 프로펠러기를 다룬 게임들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희귀한 분야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1차 세계대전을 섭렵한 다이나믹스는 이제 2차 세계대전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다음 편에서는 2차 세계대전 공중전을 다룬 다이나믹스의 게임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 필자의 잡소리

[인사유명 호사유피 – 붉은 남작은 죽어서 그의 이름을 딴 비행대를 남겼다]
(이미지: 리히트호펜 비행대 마크)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은 불과 26세라는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가 남긴 영향은 아직까지 우리가 사는 세계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와는 크게 연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만큼 영향을 받은 나라도 없을 듯하다. 

전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한국 공군만 ‘빨간 마후라’를 사용하는데, 빨간 마후라(Red Muffler)는 한국의 전투기조종사들에게 영광과 명예의 상징이자 표상이다. 빨간 마후라의 기원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6.25 전쟁 당시 강릉의 제10전투비행단의 김영환 대령이 공군참모총장이었던 김정렬 소장(김영환 대령의 친형)의 집에 들었다가 형수가 만들어준 붉은 비단 머플러를 선물받았다는 것이다. 김영환 대령의 머플러가 정열과 불타는 애국심을 상징한다는 의미가 됐고, 전 공군이 빨간 비단으로 만든 천을 착용한 것이 유래라는 설이다. 이것이 가장 공신력 있는 설로 채택돼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김영환 대령은 붉은 남작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을 평소에도 흠모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에 붉은 남작과 같은 스타일의 모자와 장화를 신고 다녀 ‘멋쟁이 바론’이라는 별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도미교육을 위해 출장을 가는 길에 친형이었던 김정렬 공군참모총장의 집에 들렀다가 형수인 이희재 여사가 입고 있던 붉은 색의 치마를 보고 평소에 흠모하던 붉은 남작이 떠 올라 그 붉은색 치마 원단으로 머플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전투기를 몰고 다니며 공군의 영웅이 돾고 유명인이었던 김영환 대령의 빨간 마후라를 보고 그가 속한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조종사들이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전체 공군의 상징으로 확산됐다는 설이다. 

조금 더 재미없는 설 중 하나는 아군 조종사가 적진에 불시착 했을 경우 조난 구조 신호를 알리기 위해 멀리서도 잘 보이는 원색 계열의 빨간 마후라를 사용하게 됐다는 설이다.

참고로 김영환 장군(최종 계급 대한민국 공군 준장)은 6.25 전쟁 당시 가야산에 숨어 있는 북한군을 폭격하기 위해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으나 민족의 문화 유산인 해인사를 폭격할 수 없다며 명령을 어긴 적이 있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이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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