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벤처게임의 양대산맥 시에라온라인의 탄생

게임별곡 시즌2 [시에라온라인 1편]

■ 어드벤처게임의 부흥을 일으키다

한 때 이 땅에는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게임이 있었다. 지금도 아예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전 1980~1990년대의 향수를 간직한 어드벤처게임은 거의 없다. 느릿느릿하고 골똘히 생각하고 잠시 한 눈도 팔았다가 화장실을 다녀오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낮잠도 한 숨 잘 수 있었던, 시간이 멈춘 듯 정지된 화면을 오래도록 주시할 수 있는 게임은 현재 찾아보기 어렵다. 잠시라도 한 눈 팔거나 전투 도중 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King’s Quest V]
(이미지: YouTube)

 
필자 역시 공중전을 다룬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생사가 일촉즉발에 달린 긴박함이 있는 게임들이나 타이쿤 류의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좋아했지만, 가끔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너무 신경을 써서 잠시 쉴 곳이 필요했다. 현실 세계에서 그런 쉴 곳을 찾는 것이 제일 좋았겠지만, 고작 중학생의 나이에 그런 현실의 도피처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다시 PC 앞에 앉아 즐겨 찾았던 곳이 어드벤처 게임들의 가상 속 세계였다.


1980~1990년대는 유독 RPG나 어드벤처게임들이 많았다. PC기반의 게임들이 아무래도 콘솔게임이나 아케이드게임에 비해 빠른 그래픽 처리나 그 밖의 여러 가지 하드웨어적인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긴박하지 않고 조용조용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류의 게임들이 유독 많았다. 최근에는 그 경계가 무너진 것 같지만, 그 당시만 해도 콘솔게임, 아케이드게임, PC게임들은 그 장르나 성격이 분명히 달랐다. 간혹 콘솔게임이나 아케이드게임이 PC용으로 컨버전되어도 이식 퀄리티는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King’s Quest II (1987)]
(이미지: YouTube)

 
그래서 이런 PC용 어드벤처게임들이 오락실(아케이드)에 나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 때 코에이(KOEI)의 역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3’가 오락실에 잠깐 나왔긴 했다. 하지만 그 어마무시한 코인 투입량 때문에 곧바로 철수한 것을 보면 아무리 좋은 게임이라고 해도 장소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 보니 어드벤처게임들은 콘솔게임기나 PC와 같이 집에서 느긋하게 동전 투입을 생각 안하고 즐기는 게임으로는 제격이었다. 이렇게 집에서 즐기기에 제격인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은 80~9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당시 시장에서는 어드벤처게임의 양대 산맥이 있었다. 바로 루카스아츠의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와 시에라온라인의 ‘킹스퀘스트’ 시리즈이다.

시에라온라인이라는 회사는 1979년 켄 윌리엄스와 로베르타 윌리엄스라는 부부에 의해 탄생했다(최근 인디게임 세상에서 부부 개발자가 유행하던데 이미 1979년에 그 시초가 있었다). 처음엔 회사 이름을 ‘On-Line Systems’라고 했다가 동네 뒷산 이름인 ‘시에라’를 따서 ‘시에라 온라인(Sierra On-Line)’으로 결정했다(필자가 지었다면 한라산온라인?).

처음에 게임을 먼저 개발해보자고 제의한 것은 부인이었던 로베르타 윌리엄스였는데, 남편의 애플II 컴퓨터에 설치된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Colossal Cave Adventure)’라는 게임을 보게 된 게 계기가 됐다. 그 게임에 빠져들면서 자신도 그런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콜로설 동굴(Colossal Cavern)’은 실제로 미국의 켄터키에 있는 거대한 동굴로, 워낙 유명한 동굴이다 보니 게임으로도 만들어진 모양이다.

[King’s Quest II (1976)]
(이미지: https://forum.quartertothree.com/t/classic-game-club/)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는 어드벤처 게임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로 어드벤처게임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며 어드벤처 게임 양산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게임이다. 개발자인 윌리엄 크라우더(William Crowther)는 자신의 딸을 위해 이 게임을 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저 그런 보통의 아빠는 아니었고, 인터넷의 원형인 ‘알파넷’의 개발자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취미로 동굴 탐험을 즐기곤 했는데, 실제로 자신이 탐험했던 맘모스 케이브 국립공원의 콜로설 동굴을 모델로 삼아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를 개발했다. 역시 뭐든지 실제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지, 텍스트 위주의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성 있는 묘사로 인해 게임을 먼저 즐기고 실제 동굴을 탐험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원래 게임 이름이었던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는 지금 필자가 타이핑 하면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꽤 길었다고 느껴졌나보다. 그래서 보통 이 게임을 줄여서 ‘모험(Adventure)’이라고 불렀는데, 결국 이 줄임말이 게임의 장르인 ‘어드벤처(Adventure)’가 됐다.
 
■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의 시초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는 이 게임을 발견한 사람들로 하여금 장래에 어드벤처게임 개발의 꿈을 안게 하고, 어드벤처게임의 부흥기를 일궈내게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MIT에 재학중이던 팀 앤더슨, 마크 블랭크, 데이브 레블링, 브루스 다니엘이 만든 던전을 탐험하는 어드벤처 게임 ‘조크(Zork)’도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의 영향을 받았다. 지금 소개할 시에라온라인의 어드벤처게임들 역시 그 시초는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였다.

세상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시에라온라인의 윌리엄스 부부는 자신들이 즐겨 하던 게임을 더욱 재미있게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기존의 텍스트 위주의 어드벤처 게임이 아닌 새롭게 그래픽을 입힌 게임을 기획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래픽 기반 어드벤처게임의 시초라고 불리는 ‘미스터리 하우스(Mystery House)’다.

[Mystery House (1980)]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Mystery_House)

 

[Winchester Mystery House (1884)]
(이미지: https://ko.wikipedia.org/wiki)


게임의 이름은 미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Winchester Mystery House)’에서 따왔다. 이 건물은 160개가 넘는 방이 있는 빅토리아 시대 양식의 대저택으로, 윈체스터 가문의 상속녀인 사라 윈체스터가 영매의 말을 듣고 가문의 저주를 풀기 위해 1884년 건축을 시작해서 무려 38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사를 했다.

하지만 1992년 완성하고 나서부터 기이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저택에는 벽난로가 47개, 침실이 40개, 계단이 40개, 부엌이 6개, 승강기가 3개, 지하실이 2개, 욕실이 13개가 있는데 특이한 것은 문을 열면 벽이 나타난다든가 계단을 올라가면 그 끝에 천장으로 막혀있다든가 하는 식의 기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2009년부터는 인터넷에서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라는 별칭으로 네티즌의 관심을 끌고 있는 13곳의 명소 중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스터리 하우스’는 빅토리아 대저택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살인 사건들에 대한 풀이 과정을 담은 게임이다. 현재 기준으로는 조악한 그래픽 수준이지만, 당시의 게임들이 주로 텍스트 위주의 명령어 입력 방식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히 놀라운 게임이었다. 당연히 게임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 게임 하나로 시에라온라인은 차기 게임을 개발할 충분한 자금을 얻게 된다. 

[시에라온라인의 창립자 – 윌리엄스 부부]

 
그 당시 이 게임이 얼마나 이슈였는지는 당시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직접 “애플II에서 이런 멋진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이 게임의 성공으로 인해 개발자였던 윌리엄스 부부는 ‘미스터리 하우스’를 발매했던 온라인 시스템즈라는 회사를 인수한다. 또 요시미테 국립공원 남쪽의 시에라 네바다 언덕 아래 코스골드라는 마을에 집을 사면서 회사 이름도 동네 뒷산에 이름인 ‘시에라’를 따서 시에라온라인으로 바꾸게 된다. 

‘미스터리 하우스’는 당시 기준으로 1만5000카피가 판매됐고,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6만달러가 넘는 돈이 되었다(1980년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부부는 애초에 게임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이 돈이 될까 싶은 생각에 낮에는 본업에 충실하고 일과 시간 이후나 주말에 시간을 할애해서 게임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게임이 대박이 났고, 4만달러 정도의 수입만 생겨도 게임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싶던 부부는 그 4배인 16만 달러라는 수익을 얻는 바람에 본업을 버리고 게임 개발을 본업으로 삼게 된다. 

[킹스 퀘스트: 유어 레거시 어웨이츠 - 16년만에 부활]

 
하지만 자신들이 꿈꾸는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던 부부에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회사가 유명해지면서부터 여기저기서 투자제의가 들어오게 되고,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외부투자를 받아들인 것이 문제의 화근이 되었다. 투자자(자본의 간섭)들은 시에라온라인이 성능 떨어지고 전용 게임기라는 인식이 부족한 PC보다는 콘솔게임기로 게임을 만들기를 제안했다. 
보다 큰 꿈을 위해 모든 힘을 다 해 회사를 키우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엄청난 양의 게임 카트리지들이 재고로 쌓이고,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렇게 1984년 회사는 파산직전에 놓여 있었다. 

[시에라온라인 – 킹스퀘스트 시리즈]

 
주변 모두가 시에라온라인은 곧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다 죽어가던 회사를 살려낸 기사회생의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킹스퀘스트1(King's Quest 1)’다. 1984년 시리즈 1편을 시작으로 2015년 ‘킹스퀘스트: 유어 레거시 어웨이츠’까지 그 시리즈가 이어져온 장수 게임 중에 하나다(물론 중간에 긴 휴식 시간이 있었다). 회사의 운명을 바꿔놓고 전 세계 게이머들의 인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게임 중에 하나로, 고전게임 마니아 분들 중에 이 게임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음 편에는 본격적인 킹스 퀘스트 시리즈 탐방기가 이어진다.

■ 필자의 잡소리

비록 요즘 세상에는 보기 힘든 장르가 됐지만,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들과 그 꿈을 함께 하고픈 사람들은 존재하는 법이다. 시에라온라인의 강력한 라이벌 중에 하나였던 루카스아츠의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의 개발자 론 길버트와 게리 위닉이 20년 만에 팀을 이루어 ‘팀블위드 파크’라는 어드벤처 게임을 개발했다. ‘미스터리 하우스’나 ‘매니악 맨션’과 비슷한 느낌으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게임이다.

[팀블위드 파크(Thimbleweed Park)]

 
그래픽이나 UI 구성이 과거 20~30녀 전에 ‘원숭이 섬의 비밀’ 초기 시리즈를 생각나게 한다. 잠시 추억에 잠기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과거 시에라온라인과 루카스아츠는 쟁쟁한 경쟁자이자 협력자였고 시장을 지탱하는 양대 산맥이었다. ‘풀 스로틀’의 개발자 팀 샤퍼가 한 말에 의하면 시에라온라인의 윌리엄스 부부는 당시에 자사의 게임 ‘킹스퀘스트’ 시리즈의 판매량이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였던 루카스아츠가 더 유명한 것이 늘 불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루카스아츠는 유명세에 비해 늘 시에라온라인의 게임들보다 판매량에서 뒤처지는 것이 신경 쓰였다고 하니 그 둘은 서로의 성공을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부러워했던 셈이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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