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마이어의 철학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 반영된 명작

게임별곡 시즌2 [마이크로프로스 4편]

■ ‘문명’의 탄생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성공’이란 무엇인가? 와 같이 정답 없는 영원한 숙제와 같은 질문에 수많은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만인에게 통용될만한 정답은 없는듯하다. 비슷한 예로 ‘게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확실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문명’ 개발자인 시드 마이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게임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는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a game is a series of interesting choices)"이라고 말했다.
 

[Sid Meier’s Civilization]
(이미지: http://www.mobygames.com/)


그 스스로가 생각하는 게임에 대한 정의에 맞는 게임들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그의 사명이자 철학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철학이 반영된 게임이 바로 ‘문명’인데, 이 게임을 하는 게이머는 끊임없이 고민하며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인류의 장엄하고 기나긴 역사 속 주인공이 된다. ‘문명’은 어릴 적부터 이미 세계 역사와 인류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대학 전공 역시 역사학을 선택했던 시드 마이어가 아니라면 만들지 못했을 게임이다.

[Sid Meier’s Civilization]
(이미지: https://thelatenightsession.files.wordpress.com/)

 
하지만, ‘문명’도 처음부터 방대한 볼륨을 자랑하는 게임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간단한 구성을 갖추고 시작할 예정이었다. 애초에 ‘문명’을 만들 때 구상했던 핵심 키워드는 ‘역사, 인물, 전쟁’과 같은 함축적인 단어였고,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단편적인 화면에 구성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시드 마이어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윌 라이트의 ‘심시티’라는 게임이었다. 물론 ‘심시티’에서 바로 ‘문명’을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시드 마이어는 ‘심시티’를 통해 게임의 또 다른 측면을 보게 됐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집중했던 군사 게임(전투비행시뮬레이션 포함)들처럼 실제 상황이었다면 대단히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내용이 아닌,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내용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개발하게 된 게임이 ‘시드 마이어의 레일로드 타이쿤’이다. ‘심시티’가 도시 전체의 광범위한 부분을 넓게 다루고 있는 게임이라면 ‘레일로드 타이쿤’은 그 중에서도 철로를 이용한 교통과 회사 경영에 집중해 범위는 좁지만 내용은 깊은 게임이다. ‘레일로드 타이쿤’에서 확신을 얻은 시드 마이어는 바로 다음 작품에 착수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역사적인 게임으로 등극한 ‘문명’이다.


■ ‘문명’의 발전

[Sid Meier’s Civilization]
(이미지: https://thelatenightsession.files.wordpress.com/)

 
‘문명’을 만들 때 ‘심시티’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확실하다. 시드 마이어는 ‘문명’을 개발하면서 그가 즐겨 하던 보드 게임(동명 ‘문명’이라는 보드 게임)과 ‘7개의 황금도시’ 등의 게임들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문명’이라는 간단한 단어 하나에 담겨 있는 수많은 주제들을 정리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단순하게만 정리해도 ‘정치, 경제, 군사, 전쟁, 외교, 역사, 종교’ 등의 굵직한 타이틀이 정리되었고 그 중 하나의 주제로만 게임을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저 모든 것을 하나에 담으려다 보니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망작이 나올 판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랜 고심 끝에 시드 마이어는 ‘4X 시스템’이라는 것을 기본 설계에 주안점으로 삼았다. ‘4X 시스템’이란 ‘탐험(Explore), 확장(Expand), 개척(Exploit), 점령(Exterminate)’의 4개의 주제로 이뤄져 순환적인 구조로 반복되면서 게임 내에서 발전하고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복잡하고 방대한 인류 역사의 흐름을 단 4개의 키워드로 정리해 낸 것이다. 

‘문명’은 단순히 상대방과의 경쟁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게임의 내용은 계속해서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적으로는 보편성과 개별성을 띠고, 외적으로는 전파성과 수용성을 지니는 문명의 특성을 게임 안에서 탄생과 발전의 과정을 통해 경험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문명끼리의 모방을 통한 발전에 있어 제일 중요한 전파적 촉진 매체는 상호 문명간의 ‘교류’라는 시스템인데, 이것을 평화적인 방법의 ‘외교’나 폭력적인 방법의 ‘전쟁’을 통해 쟁취하고 흡수할 수 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단순히 게임을 조작하는 게이머의 입장에서 게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놓인 시간의 흐름(역사)에서 문명 교류의 진행과정을 고찰하는 관찰자 입장으로 게임을 지켜 볼 수 있다는 점도 ‘문명’의 흥미로운 점이다.

[‘문명 VI’ – App Store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이미지: https://itunes.apple.com/us/app/civilization-vi/id1123795278?mt=12)

 

이렇게 인간 사회를 관통하고 지배하는 문학, 예술, 종교, 학문, 사회구조, 제도, 법률, 군사, 외교 등 총체적인 내용을 ‘문명’으로 만들어내면서 시드 마이어는 게임업계 ‘3대 크리에이터’, ‘위대한 게임 개발자’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추앙받고 있다. 현재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문명’ 시리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계속해서 시리즈가 출시될 예정이다.

‘문명’은 시드 마이어 스스로가 말한 게임의 정의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는 정의에 부합하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으며 명작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초 개발사나 현재 개발사 등 소속이나 모양은 계속해서 변했지만, 언제나 그 중심에 시드 마이어가 있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문명 VI’ – App Store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이미지: http://www.trustedreviews.com/reviews/civilization-6)


‘문명’의 가장 최근 버전인 6편은 2016년 10월 21일에 출시돼 발매 2주 만에 100만장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 게임이다. 25주년 기념작이기도 한 6편은 PC GAMER(미국)의 평점 100점 만점에 93점이라는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인류의 문명이 오랜 시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간 것처럼 ‘문명’ 역시 25년을 거쳐가며 꾸준히 발전해 가는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문명’이 발전해 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 필자의 잡소리

[Sid Meier’s Civilization – 개인적으로 필자가 제일 좋아하던 III편]
(이미지: https://thelatenightsession.files.wordpress.com/)

 
‘문명’에는 다양한 한국의 왕들도 등장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광개토대왕을 다루는 역사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 동양의 알렉산더라고도 불리는 광개토대왕은 1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20년 넘는 시절을 정복 전쟁을 펼쳤으며 거의 패배한 적이 없는 정복군주였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문명’에 등장했던 다른 왕들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문명’에서 한국은 DLC(추가다운로드콘텐츠)로 등장하곤 한다. 아쉬운 점은 언제나 기본팩으로 등장하는 국가들보다 뒷전이라는 점이다. 기본팩에서 한국이 빠져 아쉬운 마음보다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한국의 역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이 더 먼저가 아닐까 싶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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