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창립자들 의견충돌… 회사명 떼고 개발자 이름 넣기로

게임별곡 시즌2 [마이크로프로스 3편]

■ 동상이몽

드디어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의 최강자가 된 마이크로프로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공동 창업자인 시드 마이어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고 있었다. 시드 마이어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은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이 아니었다. 기종만 다르지 내내 같은 게임처럼 화면에 계기판만 보이고,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눈 앞에 보이는 적기와 공중전을 치르는 게임을 더 이상 만들 의욕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파란건 바다요 녹색은 땅이다.]
(이미지: http://forum.4pforen.4players.de/)

 
그가 진짜로 만들어 보고 싶은 게임은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하늘에서 싸우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무대를 바다로 옮겨 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이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Sid Meier's Pirates!’ 이라는 게임이다. 국내에는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게임은 다른 게임 개발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대항해시대’시리즈도 바로 이 게임을 보고 만들어졌다. 당시 코에이(KOEI)는 ‘삼국지’ 시리즈와 같은 전략시뮬레이션게임을 주로 개발했는데,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를 배경으로 장군 또는 왕이나 황제가 되어 천하를 정복하는 게임들이었다.

1987년 발매된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라는 게임을 보고 충격을 받은 코에이의 게임 개발자들은 천하를 정복하기만 하는 기존의 게임에서 바다를 누비며 전 세계를 탐험하는 새로운 항해 게임을 개발하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대항해시대’ 1편은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정도였지만, ‘대항해시대2’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지금쯤 중년이 된 분들 중에 이 게임을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듯 하다.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 아니었다면 역사적인 게임이 만들어지지 않을 뻔했다. 

다시 마이크로프로스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공동 창업자였던 빌 스탤리의 생각은 시드 마이어와는 달랐다. 빌은 현재 잘 하고 있는 분야(전투비행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모의 군사 게임들)에 계속 집중해서 회사를 키워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대항해시대’ - ‘해적’보고 만들었어!]
(이미지: YouTube)

 
마이크로프로스가 점차 안정되어가고 규모가 커지자, 공동창업자 빌 스텔리와 시드 마이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서로 달라지게 됐다. 이런 경우는 초기의 불안정하고 자본금이 취약한 스타트업들이 어느 정도 매출이 발생하고 자본이 유입되면서 회사가 안정화되고 난 후 보통 겪게 되는 문제다. 안정을 추구하는 그룹과 그것을 ‘정체’로 여겨 새로운 시장 진출을 추구하는 그룹으로 나뉘면서 내부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 ‘시드 마이어’의 탄생

회사가 원하는 방향과 개인이 원하는 방향이 다른 상태에서, 게임 개발 문제를 두고 결국 한동안 공동 창업자 둘은 냉랭한 사이가 됐다. 시드 마이어의 고집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빌 스텔리는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어차피 시드 마이어는 결국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것이고, 회사에서는 아직 시드 마이어가 필요하다. 그럼 절충안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들이 있으면 회사 이름보다는 시드 마이어의 이름을 앞에 넣어서 출시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것이 ‘시드 마이어’ 시리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드 마이어의 해적’, ‘시드 마이어의 레일로드(Sid Meier's Railroads!)’, ‘시드 마이어의 레일로드 타이쿤(Sid Meier's Railroad Tycoon)’ 같이 게임 이름 앞에 ‘시드 마이어’가 붙은 게임들이다.

[내가 시드 마이어다!]
(이미지: http://www.gamersglobal.de/)

 
시드 마이어가 마이크로프로스를 창업하고 처음으로 만든 ‘스핏파이어 에이스(1982)’부터 계속해서 만들어 온 게임들이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아니면 모의 군사 게임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비화가 있다. 빌 스텔리가 적극적으로 시드 마이어를 믿고 응원해 주었기 때문에 타이틀 앞에 ‘시드 마이어’의 이름을 달고 출시할 수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있다. 

빌 스텔리는 개발자라기보다는 사업가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실제 그의 전공도 경영학과 같은 회사 운영 전반에 걸친 사업 쪽에 맞춰져 있었다. 애초에 시드 마이어가 현재 잘 나가고 있는 시장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개발한다고 제안했을 때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제안을 수용한 것은 전적인 신뢰라기보다는 사업적인 수완이 발휘된 것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회사 이름이 아닌 개발자 이름으로 출시했다가 잘되면 회사 이름도 얹혀 가고, 게임이 망하면 회사는 그저 유통 배급만 한 입장이니 크게 손해 볼 일은 없겠다 싶은 생각도 있었다는 것이다.

[F-15 STRIKE EAGLE II]
(이미지: http://www.uvlist.net/game-43379-F+15+Strike+Eagle+II)

 
게다가 시드 마이어는 이미 ‘F-15 II’ 게임의 개발자로 유명해져 있었다. 어차피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시드 마이어’라는 이름도 알고 있고, 그가 만든 게임이 잘 되면 회사 입장에서도 큰 손해는 아니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정작 당사자만 알고 있겠지만, 문제는 시드 마이어의 게임이 성공했다는 점이다. 전투비행시뮬레이션이나 군사 게임들로 인기 있는 회사에서 갑자기 바다 위에 해적이라니…. 결국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빌 스텔리는 시드 마이어가 만들어 보고 싶어한 게임 이름 앞에 지금까지는 유례없는 개발자 이름을 단 게임을 출시하기로 했고, 그의 사업적인 제안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라는 게임은 그렇게 시작됐고, 대학 시절부터 늘 마음 속에 있던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관련된 내용을 게임으로 만든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도 시작됐다. 특히 ‘시드 마이어의 문명’은 출시하자마자 6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시드 마이어’라는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어찌됐든 회사입장에서는 손해 볼 장사가 아닌 것이 입증된 것이다.

■ ‘문명하셨습니다.’

한 때 ‘문명하셨습니다.’ 라는 말이나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말들이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유혈사태는 후에 합성이라고 밝혀짐). 유독 ‘문명’ 시리즈에서 간디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원래 게임에서 간디는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처럼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간디의 공격성 수치는 제일 낮은 값인 ‘1’로 설정되어 있었다.

[전설의 게임 ‘문명’]
(이미지: http://www.pcworld.com/)

 
문제는 정치 성향에서 ‘민주주의’를 선택하면 모든 군주의 공격성 수치가 ‘-2’ 낮아지게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간디의 경우 원래 ‘1’ 이라는 값에서 ‘-2’를 더하면 ‘-1’이 되어야 하지만, 컴퓨터 데이터 변수 처리의 문제로 스택 언더플로우 현상이 발생하여 ‘255’가 되어 최고의 공격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는 ‘비(非)폭력주의자’ 였지만 패왕 ‘Be 폭력주의자’가 되어버린 간디의 슬픈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세상에 간디가 핵을 쏘다니, 상식을 파괴한 간디의 폭력 성향은 간디에게 핵 한 방씩 맞아 본 분들은 다들 공감하실 듯 하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는 ‘3대 타임머신’ 게임이라 불리기도 한다. 시간을 달리는 악마의 주문인 ‘FM HOMM CIVILIZATION’ 중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3대 악마게임’ 또는 ‘3대 타임머신 게임’이나 ‘이혼사유 게임’ 등으로 불리는 ‘FM(풋볼 매니저)’, ‘HOMM(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과 함께 ‘ CIVILIZATION(시드 마이어의 문명)’은 한번 손을 대면 1년이라는 시간도 금방 흘러가기 때문에 ‘타임머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 때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자주 사용되던 ‘문명하셨습니다’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외부와의 단절된 삶을 살며 ‘문명’이라는 게임에 몰두해서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는 것을 빗댄 것이다. 여기에 ‘운명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차용해 ‘문명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 이렇게 여러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마력을 지닌 게임을 만든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 개발일대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필자의 잡소리

[Be 폭력주의자 간디]
(이미지: http://media.equityarcade.com/)

 
각종 커뮤니티에 회자되었던 간디의 폭력성은 희화화되고 여러가지 변형된 버전의 유머로 승화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잘못된 데이터 처리를 수정할 수 있었던 개발자들은 간디의 의외적인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 뒤로도 시리즈가 계속될 때 마다 수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현재도 ‘문명’ 시리즈에서 간디는 초반에 처리하지 않으면 상당히 힘에 부치는 ‘Be 폭력주의자’로 ‘힘이 곧 정의, 힘 없는 평화는 공허한 외침’을 몸소 실천하며 방심한 유저들에게 핵폭탄을 날리고 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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