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시뮬레이션게임의 명가 마이크로프로스의 탄생

게임별곡 시즌2 [마이크로프로스]

■ 1980년대의 컴퓨팅 환경

최근에는 그래픽 기술로 실사를 방불케 하는 공중전을 재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실사는 고사하고 허상이라도 제대로 그려지면 다행일 정도로 그래픽 기술은 형편없었다. 그 당시의 PC라는 물건은 게임용이라기보다는 사람이 계산하기 어렵거나 복잡한 일들을 좀 더 편하게 대신 해주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 당시의 XT, AT라 불리는 컴퓨터를 구매하면 ‘로터스1-2-3’ 같은 번들 프로그램들을 줬는데, 지금으로 치면 ‘엑셀(Excel)’과 비슷한 수식 계산 프로그램이나 워드 프로그램들이었다. 당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1980년대 초반의 PC]
(이미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BM_PC_5150.jpg)

  
IBM이 인텔에서 생산한 8088 CPU를 사용하고 MS에서 제공한 MS-DOS를 운영체제로 사용하는 1981년 IBM-PC XT와 1984년 인텔의 80286 CPU를 탑재한 AT가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16비트 PC의 시대가 열리고, PC 게임도 이 때쯤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AT는 ‘286’, 그 다음 출시된 컴퓨터는 ‘386’, ‘486’ 등 ‘Pentium(펜티엄)’이 등장하기 전까지 숫자로 CPU 넘버를 PC 이름으로 부르던 이 시기가 PC 게임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시기인데, 일단 화면이 흑백에서 칼라로 바뀐 시절이다.

가정용 콘솔 게임기는 1980년대에도 컬러 TV에 연결해서 게임을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컬러 화면이었지만, PC의 경우는 XT 시절만 해도 거의 흑백(그래픽카드를 장착하고) 흑백 모니터가 전부였다. 몇몇 선구자들이 ‘EGA’ 보드를 쓰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 ‘허큘리스’ 보드에서 ‘VGA’ 카드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286’ 컴퓨터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드디스크(40MB)를 기본 장착하고 ‘VGA/SVGA’ 카드를 장착해 컬러 모니터 시대를 맞이했다. 물론 XT에도 20MB 하드디스크를 장착하는 일은 있었지만, 대부분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번갈아 끼워가면서 게임을 하던 시절이었다. 

필자도 XT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하다가 몇 년 뒤에 다시 AT를 구매하고 ‘SVGA’ 칼라 모니터에서 같은 게임을 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물론 초기 컬러 버전의 ‘원숭이 섬의 비밀’은 16칼라였다. 그 이후에 256칼라 버전도 나왔다). 

시각적인 변화 및 스토리지(저장장치)의 변화와 더불어 등장한 것이 사운드다. 기존의 PC는 삑삑거리는 비프음 밖에 내지 못했지만, ‘Adlib’이나 ‘사운드 블라스터’같은 사운드 카드들이 등장하여 게임기 못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1980년대 초반의 비행시물레이션게임]
(이미지: http://www.tradera.com/item/340860/255253125/spitfire-ace-microprose)

 
1980년대까지만 해도 PC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에 비해 ‘게임’ 성능에서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286 시대에 칼라 버전의 게임들이 등장하고 소리까지 갖추고 나서야 뭔가 게임을 즐길만한 상태가 됐다. 이런 암울한 시절에도 PC의 장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게임기에 비해 월등한 연산 처리 속도였다. 게다가 부품의 교체나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성능적인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PC가 게임기에 비해 갖는 장점이었다. 

가정용 콘솔 게임기와 PC의 CPU를 ‘8비트 급’이라던가 ‘16비트 급’이라던가 하는 식의 단순 비교로는 성능 차이를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 당시 8비트~16비트 시절의 PC 게임들을 보면 대체로 아케이드게임이나 RPG 위주로 많이 출시됐고, 전략시뮬레이션게임이나 비행시뮬레이션게임들은 거의 출시되지 않았다(물론 출시된 게임들도 있지만, 전체 발매 숫자로 보면 미미한 숫자).

간혹 8비트 시절에 출시된 PC 게임들 중에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었는데, 아마도 겉으로 보이는 그래픽에 비해 내부적인 연산에 중요도가 높은 게임들은 PC용으로 많이 출시됐던 것 같다. 같은 게임인데도 콘솔 게임기 버전과 PC 버전은 속도가 상당히 달랐었다.

물론 요즘에는 콘솔용 게임기들의 성능이 워낙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PC용 부품을 같이 쓰는 경우도 많아서 단순 비교에 어려움이 있다. 어쨌든 1980년대만 해도 PC는 확실히 처리 속도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그 점을 십분 활용한 게임들이 당시의 비행시뮬레이션게임들이었다.

■ 비행시뮬레이션게임의 명가 탄생

1980년대 처음으로 접한 비행시뮬레이션게임을 보고 한동안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비록 조악하고 엉망인 그래픽이었지만, 그래도 하늘을 날고 있는 무언가를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때쯤 만들어진 회사가 바로 1982년에 설립돼 비행시뮬레이션게임을 많이 만든 마이크로프로스(Microprose Systems)라는 회사다. 초기에는 창립자 빌 스텔리로 많이 알려졌지만, 시드 마이어가 공동 창립자다. 시드 마이어는 ‘문명’ 시리즈와 ‘레일로드 타이쿤’ 등 몇몇 유명 게임을 만들었다.

[1991년 출시 – 문명 (지금과는 많이 다른 느낌)]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Civilization_(video_game))


1980년대부터 1990년대가 마이크로프로스의 황금기였는데, 이 때 유명한 게임들 중 대부분이 전략시뮬레이션이나 비행시뮬레이션 게임들이다.

[‘마이크로프로스’ 출시 게임들]
(자료 참고: https://ko.wikipedia.org/)


아마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PC게임을 즐긴 분들 중에 ‘F-15 Strike Eagle’ 시리즈를 아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필자는 ‘F-15’시리즈와 ‘F-19’, ‘F/A-117’, ‘건쉽(Gunship) 2000’을 정말 열심히 했다. 특히 ‘건쉽 2000’을 할 때는 거의 1년 정도를 매일 밤 미션을 수행하며 ‘아파치’ 헬기를 몰고 다녔다.

‘아파치’ 헬기는 빠르게 공중 기동(회피 기동)을 하며 어느새 등 뒤로 날아가버리는 적기를 쫓기 위해 다시 화면을 돌고 도는 꼬리 물기 싸움을 하던 전투기와는 달랐다. 최대한 지형에 낮게 붙어서 적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적의 지대공 미사일에 당하지 않게 조심조심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서 언덕 뒤에 숨어 ‘헬파이어’ 미사일을 날릴 때의 긴장감, 목표물이 파괴됐을 때의 짜릿함에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건쉽 2000’ 무장 선택 화면]
(이미지: http://www.myabandonware.com/game/gunship-2000-163)

 
게다가 무장 시스템도 지금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어느 정도 밀리터리 지식이 필요했었다. 최대 탑재 수량도 정해져 있고 작전의 상황에 따라 등장하는 적군에게 사용한 무장을 잘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엉뚱한 무장을 잔뜩 싣고 가봤자 별 재미를 못 본다.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미션 브리핑 때 졸지 않고 잘 봐야 한다.

이렇게 게임마다 조금씩 밀리터리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마이크로프로스라는 회사가 ‘모의 군사 게임’ 제작사로 설립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는데, 회사의 창립자 빌 스텔리는 미국 항공대학을 졸업하고 전투기 조종사를 했던 공군 대령 출신이었다.

퇴역한 이후에는 미 국방성에서 근무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시드 마이어를 만나게 된다. 그는 미시간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시드 마이어와 군사적인 지식에 서로 공감하고 결국 손을 잡고 마이크로프로스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시드 마이어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출중한 능력이 있었다. 결국 내부 개발은 시드 마이어가, 회사 전반적인 운영은 빌 스텔리가 하는 방식으로 1500달러의 군자금을 자본금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처럼 사장이 어디서 주워들은 것도 아니고 직접 전투기 조종사를 하면서 대령까지 했던 파일럿 이었는데, 게임이 엉망으로 나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 단지 부족했던 건 당시 기술상의 한계로 인한 그래픽적인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실성 있는 현장감을 제공함으로써 진짜 전장 한복판에 놓여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 주는 게임들을 많이 만들었다.

[사장이 밀덕 – ‘빌 스탤리(Bill Stealey)’]
(이미지: http://www.atarimagazines.com/v3n7/SimulationAdventures.html)

 
설립 초기부터 확실한 업무 영역을 정했던 터라 초기에는 큰 마찰없이 승승장구하며 잘나갔지만, 사실 둘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 회사 설립 과정에는 어려움도 있었다. 시드 마이어는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드높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크리에이터로 칭송받고 있지만, 1982년만 해도 PC 게임 따위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 같다는 느낌에 빌 스텔리의 창업 제안에 망설이고 있었다. 그 때 만약 빌 스텔리가 어떻게든 설득해내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는 ‘문명’ 시리즈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둘이 창업하게 된 배경도 사실 좀 웃긴다. 당시 둘은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 호텔에서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호텔에 갔다가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되고, 새로 나온 비행 슈팅게임을 함께 즐기게 됐다. 그런데 평생을 전투기 파일럿으로 살았고 대령 출신의 자부심까지 있던 빌 스텔리가 일개 민간인 시드 마이어에게 연전연패 당했다고 한다.

대령 출신의 빌 스텔리는 전투기는 몰아본 적도 없는 시드 마이어에게 연승의 비결을 물었고, 시드 마이어는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프로그래밍이나 컴퓨팅 관련 기술과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기에 감동한 빌 스텔리가 모의 군사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시드 마이어에게 게임은 그냥 지금 단순히 즐기는 유희였다. 그는 언젠가 이 인기도 점점 사그라들고 대신 다른 무언가 재미있는 놀이거리가 생길 거라 생각했기에, 컴퓨터 게임 개발에 인생을 바치려 하지 않았다. 

군인 출신의 빌 스텔리는 포기하지 않고 결국 2주간(얼마나 들볶아댔는지) 설득 끝에 어렵게 회사는 깃발을 올리게 된다. 그런데 시드 마이어에게도 다른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아무리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대령 계급까지 지냈던 군인이라 해도 같이 사업을 하자는 제의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빌 스텔리는 단순히 군인으로서만 살았던 것이 아니라 당시 미 국방성(펜타곤)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펜실베니아 대학의 MBA학위까지 갖고 있었다. 뭔가 서로가 서로의 어른스러운 조건을 검토한 끝에 회사를 창립하게 됐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회사의 창업 이후 한 때 황금기를 누렸던 ‘전투 비행시뮬레이션’ 게임들의 개발 과정과 거기에 얽힌 비화들에 대해 알아보겠다.

■ 필자의 잡소리

집에 와서 “이제 나는 아파치 헬기를 몰고 적군을 소탕하러 간다!”고 당당하게 외치고 난 뒤에 암호표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건쉽 2000’ 정품 패스워드 입력 화면]
(패스워드 입력이 맞지 않으면 헬리콥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 우측 빨간색 파워 스위치)

 
당시 정품 게임들은 불법 복제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패스워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중 제일 간단한 것이 저런 방식의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다음 단계로 진입하거나, 아예 프로그램 실행 시작 때 패스워드를 입력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게임 시스템에서 실제 헬리콥터라는 주제에 맞게 계기판을 조작하는 느낌을 제공하는 패스워드 시스템으로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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