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스의 황금기, 냉전시대였던 1980년대

게임별곡 시즌2 [마이크로프로스 2편]

이번주 게임별곡은 1980년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했던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마이크로프로스가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편집자주).

■ 1980년대의 국제 정세

게임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국제 정세를 얘기하는 게 이상할 수 있겠다. 1980년대는 전 세계가 둘로 나뉘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NATO’ 연합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이념과 체제의 대립으로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던 시기였다. 계속되는 군비 경쟁, 전 세계를 몇 번이나 엎어버릴 수 있는 핵 미사일의 시대, 그리고 스파이들과 국가간의 첨예한 신경전 등 1980년대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반공’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에 창립된 마이크로프로스는 자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의 군사 게임 개발을 지향하는 회사’로 어쩌면 시기상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게임들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반의 빌 스텔리]
(이미지: http://flashbak.com/personal-computers-in-the-1980s)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다이아몬드뿐”이라는 광고 문구처럼, 철옹성 같았던 국제 정세도 변했다. 1990년 10월 기적적인 독일의 통일로 동독이 탈퇴하면서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그 이듬해 1991년 4월 1일 마치 만우절 농담처럼 해체됐고, 사회주의 국가들간의 조약 자체도 유명무실해졌다. 

또한 ‘NATO’라 불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는 본래 사회주의 국가의 핵심 축이었던 소련에 대한 집단안전보장 체계였으나, 독일의 통일과 소련의 붕괴로 목적을 잃었다. 잘 나가는 미국을 중심으로 뭉친 서유럽국가들 연합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처럼 사라지는 것은 뭔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봤는지, 애초에 집단안정보장 군사동맹에서 국제 안정을 위한 정치기구로 싹 탈바꿈해버렸다.

[‘NATO’]
(이미지: https://ko.wikipedia.org/wiki/File:Flag_of_NATO)

 
즉, 지금의 ‘NATO’는 사실상 싸울 상대가 없는 셈이다(외계인 상대로나 싸우려나?). 2017년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가입된 회원국은 29개국이다. 

1980년대는 이렇게 두 진영간의 긴장감 속에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불안정한 시기였고, 유독 이 시기에 전쟁 영화나 핵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지구 멸망 같은 영화도 많이 나왔다. 

미국 자체로만 본다면 1980년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의 ‘레이건독트린(미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평화)’를 표방하던 시기였다. 경제회복을 위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정책도 국방력 증강 법안을 포함하고 있었고, 군비증강으로 재정 적자폭이 큰 폭으로 증가했을 때에도 레이건 대통령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은 이 시기에 리비아에 폭격기를 파견하기도 하고 그라나다를 침공하기도 하는 등 중미,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서 반공산주의에 앞장서 지원 정책을 펼쳤다. 1980년대 미 공군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는데, 전직 영화배우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타이틀의 레이건 대통령이 1940년대 2차 세계 대전에서 공군 대위로 참전했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생각한다.

■ 1980년대 하늘을 지배한 F-15

[1980년대 하늘의 최강자 – F-15 EAGLE]
(이미지: http://www.boeing.com/defense/f-15-eagle/)

 
이렇게 미국의 힘이 밖으로 뻗어 나가면서 그들의 힘을 뒷받침해 줄 만한 병기가 필연적으로 필요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1980년대 하늘의 최강자는 ‘F-15 EAGLE’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물론 필자는 미 해군의 ‘F-14 TOMCAT’을 더 좋아한다). 1972년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되고 1974년에 정식 생산이 들어갔으며 1970년대에 활약했다. 하지만 그 전성기는 1980년대로, 사실상 세계 최강의 제공전투기였던 탓에 소문도 무성하고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설의 병기였다. 

그 당시 필자가 보던 잡지에 따르면 미국에서 소련까지 한 번의 공중급유도 없이 날아가서 폭격을 할 수 있다는 등 추측과 기대와 과장으로 어우러진, 말 그대로 꿈의 병기였다. 1979년 이스라엘의 ‘F-15’가 시리아 공군의 전투기를 격추시킨 것을 시작으로, 이후 추가로 50여대의 추가 격추 기록을 달성하면서 ‘전설의 전설’로 이어졌다. 실전 배치 이후 2008년까지도 단 한 대의 손실 없이 104대의 적기를 격추시켜 104대0이라는 무패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었다. 현재까지도 ‘F-22’를 제외하면 크게 대적할 상대가 없다고 평가하는 군사 전문가도 있을 정도다. 

사실 최근 러시아나 중국의 군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확히 세계 2위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F-15’는 상위 클래스에 속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현재 우리나라 공군에도 있다! 그런데 일본에 더 많다).

■ 시대에 맞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의 탄생

1980년대는 전 세계가 군사력 집단으로 맞서는 첨예한 대립 속에 창과 방패처럼 서로를 겨누고 막아 낼 무기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개발되고 뉴스가 되던 시절이었다. 전설의 제공전투기 ‘F-15’는 이야깃거리로 충분한 소재였다.

[F-15 STRIKE EAGLE II]
(이미지: YouTube.com)

 
2차 세계대전 공군 대위 참전 출신의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 공군 대령 출신의 게임 개발사(마이크로프로스) 사장과 군사와 역사에 정통한 천재 프로그래머가 ‘F-15’ 게임을 만들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까? 전략시뮬레이션게임과 함께 비행시뮬레이션게임을 많이 만들었던 1980년대~1990년대가 왜 마이크로프로스의 황금기였는지,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시기와 환경이 갖추어진 때였기 때문이다.

‘F-15’ 게임은 이미 1985년에 1편이 출시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출시한 2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편으로 처음 접한 게이머보다는 아마 2편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스는 그 이전에 ‘F-19 스텔스 파이터’라는 게임도 개발했지만, 이는 소문만 무성한 전설의 스텔스 전폭기를 다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결국 ‘STEALTH FIGHTER 2.0’이라는 부제를 달고 ‘F-117A’라는 게임으로 다시 출시했었다.

[F-117A NIGHTHAWK (STEALTH FIGHTER 2.0)]
(이미지: YouTube.com)

 
‘F-117A’는 미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스텔스 공격기다(앞에 F가 붙었지만, 본격적인 전투기라기보다는 전폭기의 의미가 강하다). F-15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 양산기가 제작되고 1980년대에 본격 생산 체제를 갖추고 공급되었다. 이 게임 이전 타이틀이 ‘F-19’였던 이유는 실제 ‘F-117’이 비밀리에 진행 된 프로젝트였기에 외부에는 ‘F-19’라는 새로운 비행기를 개발하는 것처럼 속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프로스에서도 깜박 넘어가 ‘F-19’라는 게임을 개발했을 만큼 미 국방부의 눈속임은 치밀했다. 정통 군사 전문지로 통하는 ‘제인 연감’조차 1986년 당시에 ‘F-19’라고 기재했고, 유명한 군사 전문가 톰 클랜시조차도 그의 소설 ‘붉은 폭풍’에 ‘F-19’라는 이름으로 등장시켰다.

이렇게 세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 마이크로프로스는 그 첨단에서 화제거리를 뿌리며 언론을 장식하던 소재들을 놓치지 않고 바로 게임으로 개발해 출시했다. 잠수함이나 전투기, 폭격기, 탱크 등의 소재를 다룬 게임들을 주로 출시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들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 중반까지 마이크로프로스는 비행시뮬레이션게임의 명가로 손 꼽히는 회사 중에 하나였고, 그와 견줄만한 회사는 다이나믹스나 스펙트럼홀로바이트정도였으나 양적인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결국 1993년 마이크로프로스는 ‘팰콘 3.0’으로 유명해진 스펙트럼홀로바이트에 인수된다).

출시된 게임 중에 유독 비행시뮬레이션게임이 많았던 이유는 당연히 회사의 사장 빌 스텔리(공동 창업자)가 전투기 파일럿 출신의 전직 공군 대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다른 공동창업자였던 시드 마이어는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만 고집하는 빌 스텔리와 종종 의견 충돌을 벌이곤 했다. 사실 시드 마이어는 ‘문명’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 개발자고, 실제로도 그에게 맞는 게임들은 그가 개발에 참여하거나 총괄했던 ‘문명’시리즈, ‘해적(Sid Meier's Pirates!)’, ‘레일로드(Sid Meier's Railroads!)’, ‘레일로드 타이쿤(Sid Meier's Railroad Tycoon)’과 같은 게임들이었다.

마이크로프로스를 창업하고 처음으로 만든 ‘스핏파이어 에이스(1982)’라는 게임부터 그 다음 게임 ‘핼켓 에이스(1982)’, ‘솔로 플라이트(1984)’, ‘F-15 STRIKE EAGLE(1985)’ 등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은 시드 마이어가 원했던 게임이라기보다는 빌 스텔리가 원했던 게임에 가깝다. 마이크로프로스 시절부터 시드 마이어의 게임은 게임 타이틀 앞에 ‘시드 마이어의 OO’처럼 ‘Sid Meier's’라는 타이틀이 붙은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으로 나뉜다.

다음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시드 마이어의 게임 세상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 필자의 잡소리

숱한 화제를 뿌리며 비행 시뮬레이션 명가로 거듭나던 마이크로프로스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황금기를 거치면서 잘 나가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그 때는 소련도 붕괴되고 전 세계가 이미 화합의 장으로 가고자 하는 마당이라서 1980년대와는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비행 시뮬레이션을 만들겠다는 포부!]

 
줄기차게 때려 부수고 정복해야 할 상대가 있어야만 존재의 의미가 부여되는 최신의 공격 무기들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관심거리에서 멀어졌다. 이유 불문하고 최우선적으로 군비경쟁을 하던 시절도 아닌 만큼 더 이상 자고 나면 새로운 병기가 출시되던 세상도 아니게 되었다. 전투비행시뮬레이션게임 마니아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세계인을 위해서는 다행인 일 아닌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세상에 완전한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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