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철도마니아 사로잡은 아트딩크의 철도경영 시뮬레이션

게임별곡 시즌2 [철도 게임의 명가 아트딩크]

■ 생소한 이름의 회사 ARTDINK

세상에는 유명한 게임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출시한 게임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회사들이 생각보다 많다. 1986년 4월 21일에 일본에서 창립한 아트딩크(ARTDINK)라는 회사도 회사 이름보다는 출시한 게임 이름이 더 유명한 회사다. 국내에는 ‘심시티’ 시리즈로 유명한 맥시스(MAXIS)라는 회사 이름으로 게임이 유통됐기 때문에 더 생소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현재는 맥시스도 EA에 흡수합병되어 그 로고를 보기 힘들다).
 

[ARTDINK社 공식 홈페이지]


회사 이름은 생소한데 꽤 생명은 길다. 아트딩크는 최근까지도 여러 가지 게임을 출시했다. 창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주로 시뮬레이션 장르에 집중하고 있다. 1986년 ‘지구방위군(The Earth Self Defense Force)’을 시작으로 몇 개의 주력 타이틀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는데, 필자는 ‘에이트레인(A-Train)’ 이라는 게임으로 이 회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주력 시리즈는 ‘A열차로 가자’ 시리즈, ‘아틀라스’ 시리즈, ‘루나틱 돈’과 ‘카니지 하트’ 시리즈다. 그 중에서 국내에 그나마 많이 알려진 게임은 ‘A열차로 가자’ 시리즈인데,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맥시스 로고를 단 ‘에이트레인’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됐다.

철도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통틀어도 몇 개 되지 않는다. ‘문명’ 시리즈로 유명한 시드 마이어의 ‘레일로드 타이쿤’, ‘트랜스포트 타이쿤’이나 그 후속격인 크리스 소이어의 ‘로코모션(Locomotion)’을 비롯해 손에 꼽는다. 이 중 ‘트랜스포트 타이쿤(Transport Tycoon)’의 경우 국내에서 SKC가 유통한 게임으로, 1994년에 시뮬레이션 게임의 명가 마이크로 프로즈(Micro Prose)에서 출시했다.  재미있게 했는데, 의외로 판매량은 좋지 않았는지 그 후속편들이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사실 도시 경영을 소재로 한 게임도 종류는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교통 및 운송수단을 주제로 한 게임은 좀더 마이너한 장르로, 철도를 주제로 한 게임들은 더 찾아 보기 힘들다. 그 중에서 가장 선조격인 게임을 꼽으라면 아트딩크의 ‘A열차로 가자’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1986년에 시리즈 1편을 시작해서, 그 이후로 꾸준하게 시리즈를 발표중이다.

[ARTDINK社 소개 동영상]

 
아트딩크는 2016년에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는데, 30주년 기념 동영상을 보면 그 동안 아트딩크에서 개발, 출시한 게임들과 회사의 이동경로(소재지 변경)를 보여준다. 역시 메인은 ‘A열차로 가자’ 시리즈로 안드로이드, 아이폰(아이패드) 버전으로도 출시됐었다. 유독 ‘A열차로 가자’ 시리즈에 애정이 많은 것 같아 보이는 이유는 현재 회사의 대표 이사(사장)인 나가하마 타츠로(永浜 達郎)가 ‘A열차로 가자’ 시리즈의 최초 개발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회사의 대표가 만든 게임이기 때문에, 가장 애정을 갖는 시리즈는 ‘A열차로 가자’ 시리즈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일본의 철도 시스템을 게임으로 만들다

나가하마 타츠로가 처음 아트딩크를 만들 때만 해도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를 만들려는 생각보다는 어셈블러(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제작하는 회사를 만들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동기 4명이 공동창업해 모토로라 CPU의 어셈블러를 제작하는 일로 시작했지만, 뭔가 더 수익구조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게임 사업에도 진출하게 됐다고 한다. 

‘ARTDINK’라는 회사 이름에는 여러가지 뜻이 담겼다. ‘ART’는 말 그대로 ‘예술, 작품’을 의미하며, ‘DINK’의 ‘DI’는 2라는 숫자를 의미하고, ‘NK’에서 ‘N’과 ‘K’는 공동창업자들을 가리킨다. 나가하마 타츠로에 ‘N’이 들어가는 것처럼 다른 공동창업자들의 이름도 ‘N’과 ‘K’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2명이 ‘N’으로 시작하고 2명은 ‘K’로 시작함). 이거 진짜로 회사 이름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요즘에 누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ARTDINK社 – A5]
(이미지: pc.watch.impress.co.jp)


회사의 대표 이사(사장) 나가하마 타츠로는 1953년 치바현에서 출생해 예술 학부를 졸업했다. 영화 조감독으로 시작해서 1986년에 아트딩크를 창업했는데, 벌써 30년이 넘게 장기 집권하는 중이다.

처음부터 회사 생활을 꿈꾼 것은 아니고 영화 쪽으로 장래 희망을 결정해놨지만, 어쩌다 보니 회사를 만들게 됐고, 또 어쩌다 보니 게임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철도 관련 게임을 고른 이유는 그 당시 PC의 열악한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할 정도로 현재의 철도 시스템이 구조적이며, 체계화된 시스템이 컴퓨터와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일본 내에는 수많은 철도 팬들이 있는 것도 시장성에 대해 생각해본 부분이었다고 한다.

초기 시리즈의 경우 지금의 시뮬레이션 장르라기 보다는 퍼즐 게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철로 개설만 가능하고 시점도 ‘심시티’ 초기 버전과 같이 탑뷰(위에서 내려다 보는 방식)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었다.

[A열차로 가자]
(이미지: http://www.artdink.co.jp)

    
지금의 시스템 기반을 확립한 것은 시리즈 3편이다. 기존의 1편과 2편이 퍼즐 게임에 가까운 시스템이었던 것에 비해 3편은 완전한 철도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시스템을 정립했다. 시점 역시 이 때부터 쿼터뷰(비스듬히 내려다 보는 방식)방식으로 변경됐고, 시리즈 최초로 해외 버전으로 출시됐다. 앞서 얘기한 맥시스라는 회사에서 1992년에 ‘A-TRAIN’라는 타이틀로 미국에 발매했다. 한국에서는 맥시스와 유통 계약을 체결한 SKC에서 출시했다. 

필자가 이 게임을 처음 했을 때 처음에 너무나도 황량한 대지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경 색이 변하면서 저녁에는 새들이 좁쌀만한 크기로 날아다니고(새 소리도 들렸다), 밤이 되면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집들에 불이 하나 둘씩 켜지다가, 새벽이 오면 다시 꺼지고 아침이 되는 등 시간의 흐름에 따른 주변 지형의 변화가 참 보기에 좋았다.

넋 놓고 화면만 바라보기도 했는데, 크게 긴장감이 있거나 불굴의 의지를 필요로 한다거나 있는 대로 지력을 짜내야 한다는 등 기존 게임과 딜리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그래서 한국에서는 흥행하지 못 했나보다).

[A열차로 가자 - 최근에도 열심히 만들고 있다.]

 
만약 한국의 게임 회사였다면 애초에 열차를 소재로 한 게임을 개발할 생각도 안 했을 것이고, 개발했다 하더라도 본전도 못 건졌을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철도의 나라 일본답게 철도 마니아들도 많다 보니, 회사를 운영하고 직원들 월급 정도는 주고도 남을 만큼 장사는 잘 됐나 보다. 최근에도 ‘A열차로 가자’ 시리즈는 계속 진행 중이고, 회사는 30년 넘게 문 닫지 않고 잘 살아 있다.
 
■ 일본의 철도 시스템

세상에서 제일 복잡하기로 유명한 것 중에 하나가 일본의 철도 시스템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일본도 국영기업에서 철도 시스템을 관리했지만, 워낙 철도망이 넓고 복잡하다 보니 점점 민영화로 전환하여 현재는 민영노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87년 일본의 국유 철도가 JR로 민영화 되면서 열차의 등급도 우리나라의 급행이나 보통 열차보다 더 세분화된 보통, 구간준급, 준급, 구간급행, 급행, 구간특급, 특급, 쾌속특급, 라이너 등 엄청나게 다양한 등급의 열차와 구간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철도 시스템 중 일부 (동일본 여객철도)]

 
한국의 서울 지하철 노선도 복잡한 편에 속하지만, 일본에 노선에 비하면 굉장히 심플하게 보일 정도다. 일본의 경우 국철에서 JR로 바뀌면서 7개사로 분사됐고, 대형사철만 해도 16개 회사가 있고 준대형사철도 6개나 있다. 그 밖에 중소형 사철을 포함하면 일본에는 총 200개가 넘는 철도 회사가 있다. 국유철도였던 일본 국철은 1987년 4월 1일부터 하나씩 분리됐 민영화 됐다. 각각 홋카이도여객철도, 동일본여객철도, 도카이여객철도, 서일본여객철도, 시코쿠여객철도, 규슈여객철도, 일본화물철도의 이름으로 7개의 회사로 나뉘어졌다.
 

[일본의 대형 사철 16개 회사들]


일본 철도 회사의 경우 철도 차량(열차)만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호텔, 기타 숙박업, 관광 상품, 자체 버스 노선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서 운영하기도 한다. 규슈의 호쿠오카에 있는 니시테츠(西鐵) 사철 회사만 해도 한국 서울 명동과 부산 서면에 ‘솔라리아 니시테츠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규슈를 기반으로 하는 JR 규슈 역시 해운업에 진출하여 후쿠오카에서 부산까지 국제 쾌속여객선을 운영하고 있다.

[도카이여객철도]
(이미지: http://jr-central.co.jp/)

 
일본은 사철간에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승객 유입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철도와 연결된 다양한 부대시설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코레일이나 서울교통공사(옛 서울도시철도)에서 일본 도쿄에 ‘코레일 호텔’을 만드는 것과 같다.

한국의 철도 길이는 총 3500km 정도다. 이에 반해 일본의 철도 길이는 총 2만km가 넘는다. 수송분담률 역시 한국 경부선의 경우 8%대에 머물고 있으나, 일본의 경우는 30% 가까운 수송 분담률을 기록중이다. 수송 분담률이 가지는 중요한 이유는 철도의 수송분담률이 도로의 자동차(화물차)로 전환되는 경우 교통 혼잡비용, 도로 신설 및 유지 보수에 관련 된 손실비용, 환경 오염 비용과 유류비용 등을 국가 사회적으로 조달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의 경우 철도 부채를 국가 기금으로 충당하는 등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 일본의 철도 도시락 문화

일본의 경우 기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여행상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각 기차역마다의 특산품(도시락)을 먹기 위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것을 ‘에키벤’이라 하는데, 에키우리벤토(駅売り弁当)의 줄임말로 기차 역에서 파는 도시락이라는 뜻이다. 

에키벤은 해당 노선의 지역 특산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철도는 어느 역을 가나 파는 건 비슷한 것 같고 기차 내부에서 파는 상품도 어느 기차나 특별한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반면 일본의 경우 기차역 특산품 도시락(에키벤)을 다루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도 많고, 매년 각 역마다 경연 대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매우 활성화돼 있다. 각각의 도시락은 지역의 특산품을 재료로 해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맛과 모양을 자랑하는데, 일본 전역에 2500종류 이상의 에키벤이 판매중이다(하루에 1개씩 먹어도 7년 가까이 걸린다).

[Eki-Bento (Ekiben) #1 Mizuho To Sakura]

 
한국의 기차역은 시간을 다투는 바쁜 삶의 현장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도시락의 맛과 멋을 음미하기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조리돼 간단히 허기를 채우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부산을 중심으로 도시락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는데, 한국의 도시락 문화는 기차역보다는 편의점을 기준으로 발전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천안 호두과자(대전에서 서울 가는 기차타면 천안쯤에서 꼭 호두과자 팔던데) 빼고는 기차 타고 전국을 누벼도 지역 특색에 맞는 품질좋고 맛좋은 도시락 문화를 아직까지는 경험하기 힘든 것 같다. 한국 전통의 맛좋은 음식들이 많은데, 보다 다양한 도시락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철도 도시락 본격 탐방기]
(이미지: https://www.amazon.com)

 
최근에는 일본의 기차역 도시락 문화를 다루는 만화도 나왔다. 일본에는 특히 음식 문화와 관련된 만화도 많은데, 한국에서는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도 사실 몇 개 안 된다. 여러 가지로 부러운 것들이 많지만, 기차역 특색 도시락 문화만큼은 지금보다 더 발전하면 좋을 것 같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의 관광객들에게도 각 역마다 특색 있는 도시락을 먹고 나서 스탬프를 찍으면 수료증을 준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 일본을 위한 철도 게임

[A-Train III]
(이미지: http://www.artdink.co.jp)

 
앞에서 얘기한 것 외에도 일본의 철도 시스템과 문화는 일본을 벗어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다져진 문화는 한국과도 다르고 중국과도 다르다. 일본은 일본 특유의 철도 문화가 있는데, 그런 이유로 ‘A열차로 가자’라는 게임은 일본 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크게 흥행한 적이 별로 없다.

일본 내에서는 인기가 많았지만, 미국 판매를 진행했던 맥시스의 경우에는 실제로도 첫 번째 실패사례로 꼽힐 만큼 미국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철도라는 시스템이 게임 안에 하나의 작은 분류로 등장하는 ‘심시티’ 같은 게임이 더 큰 흥행을 했다(대륙과 섬의 차이인가?).

반대로 일본에서라면 반드시 먹힐만한 소재가 철도다. ‘A열차로 가자’ 외에도 일본에는 다양한 열차 관련 게임이 있다. 타이토의 ‘전차로 Go’ 시리즈도 2017년에 20주년을 맞이했다. 그 밖에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나 영화 등 다양한 매체로 일본의 철도 시스템은 대중들에게 잘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이미지: A-Train III 메뉴얼)

 
게임에 등장하는 열차들이 일본에서 운용중인 실제 열차를 기반으로 한 점도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반대로 지나친 일본화로 세계화에 발목을 잡는 요소 중에 하나로 작용한 것도 아닐까 싶다.

미국에서도 철도를 소재로 한 게임은 몇 개 나왔지만, 오래도록 인기를 얻는 게임은 별로 없고 ‘트랜스포트 타이쿤’ ‘레일로드 타이쿤’ ‘OpenTTD’ ‘Simutrans’ 등의 게임들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시리즈가 계속해서 이어져 오는 게임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미국 게임들에서 철도는 단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교통 시스템 중 일부로 등장한다. ‘A열차로 가자’처럼 철도를 부각시키고 열차를 집중적으로 등장 시키는 게임은 흔치 않다. 아마도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하고 일본이기 때문에 흥행할 수 있던 게 아닐까. 

■ 필자의 잡소리

일본 고유의 독특한 문화 중에 하나라고 봐도 될 에키벤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지만 당장 2500종류가 넘는 것을 언제 다 먹어 볼 수 있을지 고민이다.

[엄청나게 다양한 에키벤]
(이미지: http://trendy.nikkeibp.co.jp/)

 
독특하고 깊이 있는 문화가 담겨 있는 철도는 일본 사람들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된 것 같다. ‘A열차로 가자’는 가상의 세계에서도 현실에서 느끼는 철도 문화의 즐거움을 상상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든 게임이 아닌가 싶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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