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들에게 10년에 한번씩 찾아온다는 불치병, 다양한 증세와 치료법

요즘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부쩍 선선해지면서 피부로 가을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괜히 울적하고, 뭘 해도 흥이 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빈둥거리고 싶기만 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친구에게 한탄을 늘어놓았다. 친구는 “게임해. 넌 게임 기자니까 게임하는 것도 일이잖아”라고 해결책을 제시해주었지만, 별로 게임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가을을 타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래도 기자는 게임에 집중력과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게임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 네이버 검색창에 ‘게임불감증’을 쳐보니 이것은 비단 기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이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번주 레알겜톡은 ‘게임불감증’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 게임불감증은 왜 찾아올까?

기자의 게임불감증 증세는 여러 가지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 가서 앉기까지 ‘결심’이 필요하다든지, 게임을 하려고 컴퓨터-게임기를 켜놓고는 실컷 인터넷 쇼핑만 하다가 꺼버린다든지, 뭘 해도 ‘아 뭐야, 이거 그거잖아’라며 쉽게 싫증을 낸다든지, 힘겹게 게임을 켠 다음에도 로딩 화면을 보고 그냥 꺼버린다든지, 접속을 하더라도 점프만 하다 끈다든지, 더 이상 게임에서 재미도 감동도 느낄 수 없다.

이밖에도 다른 게이머들은 새로운 게임을 구입한 후에 치트키나 모드를 찾는데 열중하고, ‘재밌는 거 없나’라며 게임을 잔뜩 쌓아두고도 습관처럼 되뇌거나, 뭔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는 찝찝한 기분이 계속되는 등 다양하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뭘 해도 ‘재미와 설렘’이 없어서 못한다는 것.

왜 이런 시련이 선량한 게이머들에게 찾아오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먼저 취미가 일이 되어버린 탓이 크다. 예전엔 전장 한 판을 뛸 때 ‘아 급장은 언제 쓰지? 물약을 지금 빨까? 기수를 살릴 수 있을까?’ 등의 1차원적인 고민만 했다면, 이제는 ‘이걸로 쓸 수 있는 재밌는 기사는 없을까? 스크린샷 찍다가 기수 죽으면 어떡하지?’ 등의 2차원적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일’이 되어버린 이상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 것. 덕업일치의 폐해다.

하지만 이는 생업이 걸린 특수한 경우고, 일반적으로는 쉴 새 없이 게임을 하거나, 게임 내에서 똑같은 것을 반복하거나, 비슷한 게임들이 공장에서 찍어내듯 쏟아지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손이 굳어지고, 먹고살기 바빠져 게임에 관심이 줄어든 탓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모바일 게임이 대세를 이루는 시점에서 볼 때, 이는 더욱더 가속화되는 것 같다.

■ “게임불감증은 10년 단위로 찾아오는 병”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솔직히 아직까지 기자의 불감증은 ed가 아닌 ing로 진행 중이라 확실한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에 기자보다 훨씬 오래 게임을 즐긴 골수 게이머들에게 물어본 결과, 뻔하지만 나름 효과가 있는 치료법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게임 안에서 평소 안 해보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다. 기자의 경우, PVP(사람끼리 전투)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바닥을 피하는 삶에 지쳤을 때다. 이후 PVP에서 부활하는 것에 지쳤을 땐 업적놀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중에는 혼자 ‘달라란 꼭대기에서 공중부양을 걸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등의 개인 기록 경신에도 재미를 붙였다. 익숙함 속의 새로움은 신선한 자극이 될 뿐만 아니라 집중력도 높일 수 있다.

애정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옛날에 비해 요즘은 게임을 구하기 매우 쉬워졌다. 클릭 한 번이면 1년 365일 매일매일 다른 게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애정이 가벼워진 것 같다. 쌓아둔 게임이 있다면 하나씩 공략하며 깊이있는 플레이를 즐겨보는 것도 좋다.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같이 하는 것도 강력 추천이다. 하지만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한 방법은 잠깐 시간을 두고 다른 취미를 즐겼다가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게임불감증을 걸리는 사람은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고(혹은 지금까지 할애해왔거나) 있다. 20년 넘게 게임을 즐긴 한 게이머는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병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게임불감증은 조금 더 다양한 삶을 즐기라는 일종의 신호일 수도 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게 된 기자는 요즘 요리에 취미를 붙여 어려운 난이도의 저녁 식사를 즐기며 요리 숙련도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토마토를 재배해달라는 푸시에 ‘겁나 귀찮게 하네’라며 지워버렸던 SNG 게임이 종종 생각나기도 한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문구)가 있다. 게임불감증이 불쑥 찾아온 게이머라면 키보드와 마우스, 스마트폰과 게임 패드는 잠시 내려두고 색다른 취미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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