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 주도 NEC 홈 일렉트로닉스서 개발한 비운의 게임기 PC엔진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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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게임기란 무엇일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판매 수치로만 따진다면 제일 많이 팔린 게임기가 성공한 게임기일 것이고 생존 기간으로 따진다면 현재까지도 범용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게임기가 성공한 게임기일 것이다.

이를테면 닌텐도의 NDSL이나 스위치와 같이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람들이 즐겨 찾고 X-Box(엑스박스)나 PS(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게임기들이 지금의 성공한 게임기의 자리에 올라있다.

하지만, 단순히 판매수치나 생존기간을 떠나 많은 사람들에게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게임기들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PC엔진(PC Engine, PCエンジン)’이라 불리는 콘솔 게임기다.

PC엔진은 이름에 ‘PC’와 ‘엔진’이 들어가 있어 언뜻 이름만 들으면 게임기하고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데 보통 약칭으로 ‘PCE’라 불린다. PC엔진은 1987년 10월 30일에 허드슨의 주도로 NEC 홈 일렉트로닉스에서 개발한 게임기다. 발매 당시 2만 4800엔(약 28만 423.52 원)이라는 다소 높은 가격으로 당시 경쟁기종이었던 닌텐도의 패미컴이 1만 48000엔(약 16만 7349.52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높은 가격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PC엔진 자체의 하드웨어적인 성능이나 소프트웨어의 퀄리티에서 비교 우위의 차이가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두 배 정도의 가격은 보다 널리 보급되기 위한 시장 확대에 저해요소가 되었다.

PC엔진은 기본형 PC엔진 외에도 ‘PC-KD863G’, ‘X1 트윈’, ‘PC 엔진 셔틀’, ‘PC 엔진 코어그래픽스’, ‘PC 엔진 슈퍼그래픽스’, ‘PC 엔진 GT’, ‘PC 엔진 코어그래픽스 II’, ‘PC 엔진 듀오’, ‘PC 엔진 LT’, ‘PC 엔진 듀오-R’, ‘레이저 액티브 PCE 팩’, ‘PC 엔진 듀오-RX’ 등 다양한 변형기종을 출시하며 당시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을 독주하던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패미컴)을 견제하기 위해 출시한 게임기였다. 하지만 NEC의 기대와는 달리 저조한 성적을 내며 세월의 흐름과 함께 조용히 사라져간 비운의 게임기가 되었다.

PC엔진 사용된 주요 칩 중에 CPU는 6502 커스텀을 사용하고 그래픽 처리는 HuC62 칩셋을 사용했는데 그래픽 처리에 사용 된 C62칩은 허드슨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칩이었다. 닌텐도의 패미컴 서드파티였던 허드슨은 패미컴용 게임을 출시하는 동안 패미컴의 하드웨어적인 성능의 한계를 체감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게임들이 패미컴으로 이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허드슨은 언젠가는 닌텐도와 작별을 해야 할 것에 대비하여 패미컴 버전으로 ‘너츠 앤 밀크’와 ‘로드러너’를 출시하여 벌어들인 돈을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게임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 중 2억엔(약 22억 6004만 원)의 개발 비용을 쏟아 부어 자신들의 염원을 담은 C62 칩을 완성했다.

C62라는 이름은 허드슨의 경영자이자 철도 마니아였던 쿠도 유지와 쿠도 히로시가 나고 자란 고향 홋카이도의 하코다테 본선 증기기관차 형식명에서 따왔다.

[C62형 증기기관차]유튜브(/watch?v=AbpdWGdISco)

C62형 증기기관차는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은하철도 999’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기관차와 같은 기종이다. 아니 반대로 '은하철도 999'의 999호는 실존하는 일본의 'C62형 증기기관차'의 모델에서 디자인을 따왔다.

C62형 증기기관차는 원래 D52형 증기기관차 모델을 개조하는 형태로 총 49량이 만들어져서 1948년 처음 등장한 이후 1971년까지 사용되었다. C62형 증기기관차의 앞머리에는 ‘C62 1’부터 ‘C62 49’까지 총 49량의 각 개별 기관차를 의미하는 일련 번호가 적혀 있다.

일본에서는 현재까지도 보존되어 있는 C62형 기관차를 종종 '은하철도 999'를 컨셉으로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참고로 '은하철도 999' TV판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999호 기관차는 초기 형식번호 1부터 49까지 실존했던 기관차의 계보를 잇는다는 의미로 ‘C62 50’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인 ‘마쓰모토 레이지(松本 零士)’의 젊은 시절 실제 C62형 증기기관차를 타고 도쿄에 갔었던 체험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 '은하철도 999' 기관차의 설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C62형 50번째 증기기관차]유튜브(/watch?v=K5O0xzDpV_A)

참고로 극장판에서는 C62 48이라는 현존했던 증기기관차의 형식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1973년 주식회사 허드슨(株式会社ハドソン, Hudson Soft Company, Limited)을 창업한 쿠도 유지와 쿠도 히로시 형제 역시 어린 시절 이 증기기관차를 타고 다닌 추억이 있었다. 자신들의 새로운 게임기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은 형상을 상상하며 게임기에 쓰일 핵심 칩 이름으로 C62라고 붙였던 것이다.

두 형제는 자신들이 새롭게 만들 게임기에 무언가 '은하철도 999'와 같은 우주적 기운이 가득 담기기를 염원했을지도 모르겠다.

허드슨은 C62칩을 생산하기 이전에 닌텐도의 1호 서드파티의 지위를 얻고 서로 돈독한 사이로 지냈지만 계속해서 닌텐도의 패미컴 게임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닌텐도 패미컴의 8비트 게임기로서의 성능적 한계를 실감하게 되어 결국 닌텐도와 결별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던 중 게임기 사업에 진출하려고 준비중인 NEC와 뜻이 맞게 되어 시대를 앞서간 걸출한 게임기 PC엔진을 만들게 된다.

PC엔진 게임기의 발매는 NEC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하드웨어 설계나 CPU, 그래픽 칩 등의 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 등 거의 모든 일을 허드슨이 했다. 그렇게 출시된 PC엔진은 전 세계 580만대 중 일본에서만 390만대를 팔았을 정도로 의미 있는 판매량을 기록하긴 했지만 전 세계 6191만대, 일본에서만 1935만대를 판매한 닌텐도의 패미컴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닌텐도 패미컴 : 반게링 게이(Raid on Bungeling Bay)]유튜브(/watch?v=kkE-0QajMts)

참고로 이 당시 허드슨이 발매한 닌텐도의 패미컴 게임 중에는 '심시티', '심즈' 시리즈로 유명한 윌 라이트의 생애 최초 출시 작품인 ‘Raid on Bungeling Bay(반 겔링만의 습격)’이라는 게임을 출시한 저도 있었다.

이 외에도 ‘로드러너’, ‘봄버맨’과 같은 초 인기 게임들을 출시하면서 닌텐도의 패미컴 시장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쌓아갔지만 허드슨의 창업자였던 쿠도 형제는 늘 자신들이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게임들을 보며 자신들만의 게임기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PC Engine]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a/PC_Engine.jpg

그렇게 허드슨의 야심 찬 첫 게임기는 ‘PC 엔진(PC Engine, PCエンジン)’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등장했다. 초기 흰색의 첫 모델은 휴카드(HuCARD, ヒューカード)라는 IC카드 형태의 롬 카트리지 방식을 지원하는 게임기였다.

미쓰비시와 함께 공동 개발한 휴카드는 휴대보관이 용이하도록 신용카드 크기(85mm X 54mm)의 크기로 제작되었다. 휴카드는 미쓰비시의 계열사였던 ‘미쓰비시 플라스틱(Mitsubishi Plastics, Inc.)’에서 개발한 저장 매체로 이전에 MSX용으로 개발했던 BeeCard를 개량한 것이었다.

[BEE CARD]사진출처= generation-msx

BEE CARD는 MSX에 별도의 어댑터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저장매체로 허드슨 BEE CARD 어댑터를 통해 MSX에 사용할 수 있었다. MSX용으로 ‘야구 열풍(Baseball Craze)’, ‘스타포스’, ‘스타솔저’, ‘코나미 푸얀(KONAMI の プ ー ヤ ン)’같은 게임들이 출시되었지만 범용적으로 널리 쓰이진 않았고 MSX의 세대교체와 함께 사라졌다.

이러한 타입의 저장매체는 테이프와 플로피 디스크와 같이 불법복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던 매체에 비해 소프트웨어의 복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으로 롬(ROM)타입의 저장매체로 개발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단가를 맞추기 힘들다는 부분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였다.

[허드슨 로고]

BEE CARD라는 이름은 허드슨의 로고에 꿀벌 캐릭터를 의미했다. 허드슨이라는 회사의 이름도 사실 열차와 관련된 것인데 쿠도 형제 중 쿠도 유지는 유명한 철도 마니아였다.

C62형 기관차를 유독 좋아했던 그는 PC엔진의 주요 칩셋 이름도 C62로 이름 지었을 만큼 C62형 증기기관차를 좋아했는데 회사 이름 허드슨도 C62형 증기기관치의 차륜배치인 ‘4-6-4 허드슨’에서 따온 것이다. ‘4-6-4’는 4개의 전륜과 6개의 구동륜 그리고 4개의 후륜으로 구성된 기관차의 휠 배열을 의미한다.

NGR 클래스 H 4-6-4T, SAR 클래스 C2와 같은 증기기관차의 4-6-4 배치는 1911년 처음 도입되어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북미에서 널리 사용된 형식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프랑스 인도, 영국, 독일 등 전 세계에서 사용된 이 형식의 기관차는 1947년 일본 국영철도를 통해 처음 일본으로 들여왔다.

철도 마니아였던 쿠도 형제는 어린 시절 힘차게 달려가는 거대한 쇳덩이를 보며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자랐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자신들의 회사 이름을 허드슨이라 지었다.

그런데 허드슨이라는 회사 이름은 창업자가 좋아하던 기관차에서 따온 이름인데 난데없이 꿀벌 캐릭터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기관차와 꿀벌이 무슨 연관관계인가 하는 궁금증을 갖는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허드슨은 1973년 쿠도 형제가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아마추어 무선 관련숍으로 출발한 회사였다. 지금의 소프트웨어 회사 이미지는 1970년대 후반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작을 시작한 뒤부터였는데 창업초기 아마추어 무선 제품들을 취급하는 숍을 할 때 홋카이도의 아마추어 무선 번호가 8(はち)이어서 발음이 벌(蜂, ハチ)과 같아 꿀벌 캐릭터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기관차의 이름을 따오고 꿀벌 캐릭터로 자신들의 회사를 만든 쿠도 형제는 허드슨이라는 이름으로 닌텐도와 패미컴용 BASIC을 개발하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BASIC언어를 개발하던 중에 닌텐도의 주력 사업이었던 게임 소프트웨어에 눈을 뜨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및 유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BEE CARD등을 통해 MSX의 저장매체 사업도 시작했었지만 본격적인 게임 소프트웨어 유통업이라기보다는 BEE CARD판매 활성화를 위해 게임을 담아서 팔았을 뿐이었다.

[PC Engine DUO]

NEC와 함께 자신들이 개발한 C62라는 새로운 칩으로 게임기를 설계할 때 저장매체로 HuCARD가 채택된 것은 이미 미쓰비시와 이전에 BEE CARD라는 공동업무를 진행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HuCARD는 이전 BEE CARD를 개선한 것이긴 했지만 2메가비트(바이트 아님)라는 용량의 한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후에 4메가, 8메가 등의 용량 확장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R-TYPE과 같은 게임을 출시할 때도 전편과 후편으로 출시하는 사태에 이르러 결국 대용량을 지원할 수 있는 CD-ROM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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