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카와 에구치-노가미...닌텐도 64로 20만 찍고 철수 계획 '대반전' 깜짝

[데즈카 타카시(왼쪽)와 미야마토 시게루(가운데)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

닌텐도의 4대 사장이었던 이와타 사토루(岩田聡)가 지금의 닌텐도 스위치 게임기와 ‘동물의 숲’ 게임이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개발의 주역에는 ‘데즈카 타카시(手塚 卓志)’와 ‘에구치 가쓰야(江口 勝也)’가 있었다.

‘동물의 숲’ 게임은 데즈카 타카시가 ‘닌텐도 EAD(Entertainment Analysis and Development)’부서의 본부장이던 시절 생각 없이 던진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부모가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 뒤에 아이가 플레이를 하면 게임에서 했던 일들이 아이의 게임 플레이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 게임은 만들 수 없나?”라는 말을 듣고 같은 부서에 소속되어 있던 ‘에구치 가쓰야’와 ‘노가미 히사시(野上恒)’가 그냥 별 생각 없이 데즈카 타카시가 지나가는 얘기로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게임의 기획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동물의 숲’ 게임의 시작이 세간에는 저렇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이 입장에서 담당부서 본부장이 한 말을 그냥 흘려듣기에는 좀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사단장 말한마디에 산을 깎아 골프장을 만드는 것처럼).

아무튼 ‘동물의 숲’은 사실 오랜 시간을 두고 사전에 치밀한 준비작업 없이 단순하고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데즈카 타카시는 닌텐도에서도 주력 게임들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까닭에 그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그냥 가볍게 흘려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데즈카 타카시-미야모토 시게루(가운데). 사진=닌텐도 홈페이지]

■ 미야모토 시게루의 오른팔, 데즈카 타카시 말 한마디가 탄생시킨 ‘동물의 숲’

데즈카 타카시는 오사카 예술대학 디자인과 출신이다. ‘마리오’ 시리즈와 ‘젤다의 전설’ 시리즈, ‘동물의 숲’ 시리즈 등 닌텐도의 주요 게임을 담당하며 사내에서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오른팔로 알려진 인물이다.

원래 데즈카 타카시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캐릭터 상품 제작 쪽에 진출하려고 생각 중이었다. 게다가 닌텐도에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게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문외한이었지만 대학 재학 시절 방학 기간에 아르바이트 삼아 ‘슈퍼 펀치 아웃!’이라는 복싱 게임에 참여한 이후 게임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1984년 23세의 나이로 닌텐도에 합류했다.

입사 1년만에 미야모토 시게루의 신임을 얻어 함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개발하고 그 게임이 소위 대박을 치면서 그의 명성도 한꺼번에 올라갔다. 그 이후 계속해서 ‘슈퍼 마리오’ 시리즈를 전담하면서 ‘젤다의 전설’까지 맡아 닌텐도의 최고참 개발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슈퍼 마리오’ 시리즈와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서 큰 활약을 했다고 해도 결국 미야모토 시게루의 그늘 아래 있었을 뿐이었고 그의 마음 한 켠에는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러던 중 ‘동물의 숲’ 개발에 참여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그의 스승 미야모토 시게루의 손길에서 벗어나 프로듀서로서의 이름을 알리게 된 게임이 되었다. ‘동물의 숲’은 처음 기획할 당시만 해도 닌텐도의 주력 기종이었던 닌텐도64의 새로운 확장 주변기기 ‘닌텐도64DD’용으로 출시할 예정이었다. 

[닌텐도64DD]

‘동물의 숲’ 초기 버전은 RPG로 기획됐었는데 지금과 달리 RPG로 기획했던 이유는 닌텐도64DD 주변기기의 대용량 기능과 온라인 통신 기능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닌텐도64DD는 닌텐도64 본체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목적의 확장 주변기기로 1996년 런칭 되었다. 하지만 2001년 2월 닌텐도64DD의 개발이 중단될 때까지 총 10개의 게임만 출시되어 상업적으로는 대실패를 하고 말았다. 닌텐도64DD는 닌텐도의 ‘버추얼보이’와 함께 닌텐도의 흑역사로 기록되며 그 실물을 본 사람도 거의 없을 정도로 상업적인 실패를 했다.

■ 에구치 가쓰야의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 게임으로 표현

‘동물의 숲’은 이미 내부적으로 닌텐도64DD의 시장 진출을 포기하는 내용에 따라 닌텐도64DD에서 닌텐도64용으로 변경되어 2001년 4월 14일 닌텐도 64용으로 출시했다. 플랫폼이 변경됨에 따라 처음 기획했던 내용의 대부분을 수정해야 했는데 특히 게임의 장르적 특성인 RPG 요소는 거의 대부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초 기획내용에 큰 핵심이었던 통신기능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주인공 캐릭터의 마을 하나에서 일어나는 NPC들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변경되었다.

던전과 마을을 탐험하며 수집과 채렵 활동을 통해 유저들간의 상호작용 하는 콘텐츠 요소는 여러 마을의 규모를 자신의 집과 마을을 발전시키는 내용으로 축소 변경되어 지금의 ‘동물의 숲’ 게임 시스템의 근간이 되었다.    

[에구치 가쓰야. 사진=닌텐도 홈페이지]

비록 처음 기획했던 실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대폭 축소되어 마을 안에 함께 살고 있는 동물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변경되었지만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 동물 친구들과의 대화는 상당히 즐겁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다른 게임과 같이 그냥 앵무새처럼 항상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반복하는 멍청한 NPC(Non-Player Character,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말수가 많지 않은 속 깊은 친구와도 같은 느낌이다(물론 말 많은 동물 친구들도 있다).

마을에 있는 동물 친구들과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돌아다니다 길거리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도 나눌 수 있다. 굳이 그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은 어찌 보면 불필요하게 과한 정보 전달이 될 수도 있고 불필요한 만큼의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딱 거기까지가 서로에 대해 불편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최적의 거리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동물의 숲’의 주요 게임 내용은 당시 게임을 기획하던 에구치 가쓰야가 아이들과 자주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게임으로 대신해 줄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의 해답이 담겨 있었다.

■ 에구치 가쓰야-노가미 히사시 두 사람의 첫 기획 사내 냉담한 반응

‘동물의 숲’ 게임의 주요 기획자로 참여했던 에구치 가쓰야는 후에 데즈카 타카시의 뒤를 이어 닌텐도 EAD의 감독이 되는 사람이다.

닌텐도에는 1988년 입사하여 ‘슈퍼 마리오 브러더스 3’의 게임 디자이너로 참여를 시작으로 2020년 현재에는 ‘동물의 숲(Animal Crossing: New Horizons)’ 총괄 PD로 활동하는 등 주로 ‘슈퍼 마리오’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 ‘동물의 숲’ 시리즈 등 닌텐도의 주요 게임에 게임 디자이너나 PD로 활동하면서 닌텐도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았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마리오’ 시리즈와 ‘젤다의 전설’ 시리즈를 통해 닌텐도를 지탱하고 있다면 에구치 가쓰야는 ‘동물의 숲’으로 닌텐도를 지탱하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스타 개발자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1세대 개발자의 은퇴를 끝으로 전설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닌텐도의 경우 1세대 원조 스타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를 필두로 그의 뒤를 이어 에구치 가쓰야와 같은 2세대 스타 개발자들이 현재 닌텐도를 이끌어 가고 있다.

[노가미 히사시. 사진=일본 itmedia]

 에구치 가쓰야와 함께 ‘동물의 숲’을 기획했던 노가미 히사시는 현재 닌텐도 EPD의 부본부장으로 1995년 ‘슈퍼 마리오 요시 알랜드’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게임 개발에 참여한 이후로 주로 ‘동물의 숲’ 시리즈에서 디렉터 및 프로듀서로 활동하였다.

‘동물의 숲’은 에구치 가쓰야와 노가미 히사시 이렇게 두 사람의 기획으로 시작된 게임 프로젝트였다. 처음 사내에 공개했을 때만 해도 임원진과 다른 팀의 개발자들의 냉담한 반응에 어찌할 줄 몰라 했다.

■ 20만장 찍고 철수 계획 대반전...귀여운 캐릭터가 여성 게이머에 폭발적 인기

처음 출시했던 ‘동물의 숲’ 게임은 닌텐도 64DD의 대용량 RPG 기획에서 닌텐도64용으로 내용을 대폭 축소하여 출시했다.

에구치 가쓰야와 노가미 히사시 자신들도 애초에 생각했던 게임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게임의 승산을 자신할 수 없었던 상황인지라 딱 개발비 회수의 손익분기(BEP)점인 20만 장만 찍고 철수하기로 했다.

그래서 첫 작품은 해외출시도 계획하지 않고 일본 내수용으로만 한정해서 2001년 4월 14일 닌텐도64 기종으로 출시했다. 그런데 하드 코어 게이머가 아닌 라이트 유저, 그 중에서도 여성 게이머들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에 게임을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초기 출시만 하고 버릴까 생각하고 있던 게임이 갑자기 판매량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닌텐도의 경영진은 조금만 더 팔아볼까 하는 마음에 8개월 만에 게임큐브용으로 ‘동물의 숲+’를 출시하면서 해외 버전으로 ‘Animal Crossing’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되었다. 

[게임큐브]

닌텐도의 게임큐브는 2001년 9월 출시한 닌텐도의 닌텐도64 후속 기종으로 닌텐도64가 일찌감치 사양길에 들어서자 대를 이를 후속 기종으로 만든 콘솔 게임기다.

닌텐도는 8비트 패미컴 시절과 16비트 슈퍼 패미컴 시절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을 세가와 함께 양분하던 시절에 호황을 누리다 닌텐도64때 세가 새턴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의 쟁탈전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최종 3293만 대의 판매기록을 끝으로 닌텐도64가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후속 기종으로 게임큐브를 출시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게임큐브 역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쉽지 않았고 닌텐도의 게임큐브가 출시될 쯤에는 이미 세가의 드림캐스트는 시장에서 철수한 뒤였다.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렇게 게임큐브는 전작인 닌텐도64보다도 한참 부족한 2147만대의 판매를 끝으로 시장에서 철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뒤에 출시하는 Wii와 NDS를 통해 직접적인 콘솔 게임기 경쟁을 피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출시한 Wii는 사실상 게임큐브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게임큐브의 스펙을 오버클럭 시킨 것이다. 뜻하지 않게 Wii가 전 세계 1억 대 이상 판매되면서 졸지에 게임큐브 소프트까지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실상 Wii는 게임큐브 게임기의 기본 스펙을 공유하며 부속부품들도 공유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와타 사토루, 에구치 가쓰야, 노가미 히사시(왼쪽부터]. 사진=닌텐토 홈페이지]

■ 닌텐도 게임기 ‘게임큐브’ 철수...Wii라는 걸출한 게임기와 ‘동물의 숲+’ 출시 대반전

이렇게 닌텐도의 게임큐브는 비록 시장에서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Wii라는 걸출한 게임기와 ‘동물의 숲+’ 출시를 통해 향후 동물의 숲이 시리즈로 이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게임큐브용으로 해외 출시된 ‘동물의 숲+’는 전 세계 315만 장이 판매되면서 다음 차기작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전 세계 315만 장이라는 판매 수치가 갖는 의미는 굉장히 중요했다. 처음 ‘동물의 숲’ 게임이 20만 장 판매되었던 것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하지만 초대박 게임들은 1억 장 이상 팔리기도 하고, 대박 게임들도 몇 천 만 장은 우습게 파는 것에 비교하면 초라한 수치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게임큐브라는 플랫폼을 고려했을 때 315만 장은 타사 플랫폼에 거의 3000만 장 이상의 판매량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닌텐도 최고의 대표 게임이었던 ‘슈퍼 마리오’도 게임큐브용으로는 고작해야 630만 장이 전부였고 ‘젤다의 전설’도 400만 장 정도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 다음으로 높은 판매량인 315만 장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동물의 숲’ 게임은 시리즈 작품으로 이어 갈 수 있도록 경영진의 결재를 얻어낼 수 있었다.

결국 게임큐브라는 콘솔 게임기 자체는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대신에 ‘동물의 숲’ 게임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던 셈이다.

만약 게임큐브용으로 출시한 ‘동물의 숲+’마저 실적이 저조했다면 ‘동물의 숲’ 게임은 더 이상 출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동물의 숲’은 고사의 위기를 넘기고 나서 ‘동물의 숲 E+’까지 출시하며 게임큐브 플랫폼 안에서 나름대로 할만한 게임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근근하게 잘 버티고 있었다. 

[일본보다 2년 뒤 출시했지만 돌풍의 주인공이 된 '놀러오세요 동물의숲']

 ■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일본보다 2년 늦은 한국 발매 ‘동물의 숲’ 원조까지 인기

그리고 바로 다음 작품이 한국에 최초로 정식 발매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을 알게 해준 원조이자 한국에서 가장 먼저 알려지고 많이 팔린 게임으로 순위에 오른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이다.

일본에서는 2005년 11월 23일 정식 발매하였지만 한국에서는 2년이나 늦은 2007년 12월 정식 발매되었다. 그 사이 해외 원판을 즐기거나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애타게 한글화를 기다리기도 했던 게임이다.

한국에서 ‘동숲’이라는 줄임말은 대부분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 게임부터가 원조일 정도로 한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동숲 시리즈’이기도 하다.

당시 소니의 PSP에 ‘몬스터 헌터’가 있었다면 닌텐도의 NDS에는 ‘동물의 숲’이 있다고 할 정도로 닌텐도DS 사용자에게 필수구매 품목 중에 하나였다.

2020년은 어떤가? '동숲' 신드롬은 코로나19 사태 속에 더욱 불타올랐다. 놀랍다..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Animal Crossing: New Horizons)’이 3월 한달에만 전 세계적으로 5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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