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마이어의 해적’ 영감…KOEI 창업자가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

KOEI(코에이)는 우리나라에 ‘삼국지’ 관련 게임으로 유명한 회사지만 창업 초기에I는 삼국지 게임보다는 이것 저것 다양한 게임을 출시하는 회사였다. 정확히는 게임 회사라기보다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였다. 성인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하고 업무용 프로그램도 개발하는 등 창업초기 아직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았던 시기에 많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이 시기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출시한 대항해시대는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역사를 소재로 하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들과도 많이 달랐다. 대항해시대는 KOEI가 비슷한 시기에 출시했던 삼국지나 랑펠로, 원조비사, 신장의 야망 시리즈 등 다른 게임들과 비슷하게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장르 형태를 취하고는 있었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RPG의 요소를 갖춘 게임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색을 찾게 된다. 물론 영걸전과 같이 역사를 소재로 하면서 RPG 요소를 더한 게임들도 있긴 했지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대항해시대는 KOEI의 기존 전략 시뮬레이션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시리즈로 자리잡게 된다.

[시드 마이어의 해적!]
유투브(/watch?v=wL68uw_RQow)

대항해시대는 ‘시드 마이어의 해적(Sid Meier's Pirate!)’ 게임을 해본 KOEI의 창업자이자 핵심 개발자였던 ‘에리카와 요이치’가 해적 게임에 큰 감명을 받고나서 자신도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개발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출시하고 나니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무언가 달랐던 것 같다. KOEI의 대항해시대 게임은 오히려 원조 게임이었던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라는 게임보다 더 유명한 게임으로 자리잡았지만 그것은 일본과 한국에 국한된 얘기였다. 시드 마이어의 해적! 게임의 원조인 미국에서는 대항해시대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안다고 해도 시드 마이어의 해적! 게임의 아류작 정도로만 여겨졌다.

[대항해시대]
유투브(/watch?v=RUsjbHH_NlM&t=37s)

그래서 2편부터는 좀 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2편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대항해시대는 KOEI에서도 전혀 다른 시리즈로 점점 새로운 게임이 되어갔다. 대항해시대 1편은 한국에서 정식출시가 안 됐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PC통신망을 통해 입 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비록 정식출시는 아니었지만 1990년 초기에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게임으로 항상 국내 게임 인기 순위 TOP 10에는 대항해시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픽은 당시 게임 기준으로도 크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KOEI의 대표 간판 작곡가 ‘칸노 요코’의 배경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게임이었고 이후 대항해시대 OST는 게임과 별개로 따로 녹음해서 듣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 알려진 대항해시대는 영문판 버전이다. 한국어 출시는 정식출시가 아닌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본어 버전보다는 영어버전이 접근하기 수월했던 까닭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 한국에 알려진 KOEI의 게임들은 정식으로 국내 출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대부분 영문판 버전이 소개되었는데, 처음 KOEI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게임의 개발사가 일본인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일본어 원판 그대로 수입되었더라면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이나 접근성에 어려움으로 초기 삼국지 시리즈와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롯꼬 알렘켈]
유투브(/watch?v=RUsjbHH_NlM&t=37s)

시리즈 1편의 내용은 일찍 아버지를 여읜 포르투갈의 ‘레온 페레로(Leon Ferrero)’라는 이름의 소년이 ‘롯꼬 알렘켈(Rocco Alemkel)’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함대를 이끌고 무역과 전쟁을 통해 유명세를 얻고 결국 포르투갈의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다. 대항해시대 1편에 주인공과 함께한 롯꼬 알렘켈은 원래 주인공 아버지의 부하였지만 주인공과 함께 바다를 누비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알았다.

롯꼬 알렘켈은 매우 높은 수치의 능력치를 갖고 있는 캐릭터인데 시리즈 1편에 등장한 것을 계기로 전 시리즈에 등장하는 초 장수 캐릭터이기도 하다. 시리즈 2편에서는 조안 페레로와 함께 그의 부관이 되어 대항해시대를 이끌고 시리즈 3편에서는 라몬과 레온의 부관으로 등장한다. 시리즈 4편에서는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인물이 아닌 초상화로 등장하긴 하지만 어쨌든 잊지 않고 등장했다. 그리고 대항해시대 온라인, 시리즈 5편, 시리즈 6편까지 등장하는 정말 질긴 목숨의 사나이다.

[롯꼬 알렘켈]
유투브(/watch?v=PojYqQFELdY)

아마도 어린 소년이었던 주인공 레온 페레노는 롯꼬 알렘켈이라는 뛰어난 조력자가 없었다면 항해 시작도 전에 그 생을 마감했을지 모를 정도다. 롯꼬 알렘켈은 대항해시대 시리즈 전체를 통해 가장 우수한 항해사이자 조력자로 등장하며 뛰어난 실력으로 항상 주인공을 보필하는 최고의 파트너로, 어쩌면 대항해시대의 실제 주인공은 롯꼬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대항해시대 1편에서 게임의 최종 목표는 공주와 결혼하는 것인데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이 필요했다. 명성을 올리는 방법은 새로운 항구를 발견하거나 동맹 항구도시를 확장하거나 타국 함대와 전투를 해서 승리한 경우 그리고 국왕의 명령을 수행해서 성공하는 것들이다. 게임 초기에는 부족한 자본과 부실한 장비로 어려움이 많지만 어느 정도 항해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무역이나 전투를 통해 큰 돈을 벌 수 있다.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첫 항해에서 바람의 방향을 잘못 잡아 바다 한 가운데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식량과 물만 축내다가 게임이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 처음 바다에 배를 띄운 사람들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전체적인 난이도는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고 세계지리와 무역, 상업 활동에 대한 부분만 인지하면 너무나 재미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누비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게 열심히 항해와 무역을 했다.

[본격 인생 역전]
유투브(/watch?v=PojYqQFELdY)

한 동안 바다를 떠돌며 무역과 전투를 하다 보면 어느덧 게임의 엔딩이 다가오는데 공주와 결혼하는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주인공 레온 페레로는 아마도 붉은 머리의 주인공 중에는 아돌과 함께 가장 성공한 게임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대항해시대는 어떤 명령을 수행하던 간에 게임에서 가장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배(함선)인데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가장 저렴한 배를 타고 어렵게 무역을 시작하면서 돈을 벌어 점차 중형, 대형 급의 상선으로 교체할 수 있고 중고 함선도 살 수 있다. 물론 중고 함선을 사게 될 경우 인증 중고 함선이 아니기 때문에 과다한 수리비가 지출 될 수도 있다. (5년 10만 Km 보증 같은 건 없다). 무역에 필요한 함선은 조선소에서 직접 건조를 할 수 있는데 대항해시대 1편에서는 총 6종류의 배를 건조할 수 있다.

가장 기본형인 캐러벨 함선은 삼각 돛으로 항해하는 소형 범선으로 포르투갈에서 처음 개발된 함선이다. 소형이긴 하지만 역풍에 강하게 견디는 힘이 있고 속력이 빠르기 때문에 바람이 일정하지 않은 지중해 연안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해양왕 엔리케의 아프리카 서해안 탐사선 계획에 주로 사용된 배이기도 하기 때문에 당시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배였다.

배를 건조할 때는 배의 종류에 따라 삼각돛과 사각돛을 선택할 수 있는데 삼각돛은 선회력이 상승하는 대신 추진력이 하락하는 단점이 있고 사각돛은 추진력은 상승하지만 선회력이 하락하는 단점이 있어 두 종류의 돛을 모두 활용하는 배를 건조하는 것이 좋지만 문제는 건조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초기에 부족한 자본으로는 쉽게 얻기 힘든 배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진 원피스의 고잉 메리호도 바로 이 캐러밸에 속하는 함선이다. 캐러밸 함선은 본격적인 대항해시대를 알림과 동시에 대항해시대 초기에 가장 많이 사용된 함선이지만 바로 후에 등장하는 카락(Carrack)급 함선으로 점차 교체되었다.

[대항해시대1 - 함선]
https://namu.wiki/w/대항해시대:attachment/Uncharted-Water-Shipyard(2).jpg

카락(Carrack)은 주로 원양항해의 목적으로 대형에 속하는 범선으로 이후 등장하는 모든 대형 범선의 기초가 되었다. 삼각과 사각의 돛을 모두 사용하는 범선으로 역풍과 순풍에 모두 항해가 가능한 장점이 있고 계절풍을 타고 대양을 항해하는데 적합했기 때문에 대항해시대를 이루는 300여년간의 범선 제작에 기초가 된 기념비적인 배이다. 초기에는 300~400톤 정도의 규모였지만 점차 발전을 거듭하여 16세기 이후에는 1,000톤이 넘는 초대형급의 범선이 되기도 했고 그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활용성으로 본격 수송용이나 군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나오(Nao)라 불린 배는 카락의 파생형으로, 나오(Nao)는 스페인어로 배(Ship)를 의미하는 고어이다. 마젤란은 1519년 이 카락급 함선으로만 구성된 함대로 세계일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포르투갈에서는 나우(Nau)라 불렸다. 참고로 시드 마이어의 문명 게임 시리즈 5편에서는 포르투갈의 마리아 1세를 선택하면 고유 유닛으로 나우(Nau)라 불리는 카락 파생형 함선이 나온다. 이 나오나 나우라 불리는 배가 카락급 범선이다. 캐러벨급 함선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많은 자료에서도 캐러벨과 카락은 혼동되거나 서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많다.

이 카락을 기본으로 개량을 한 것이 갤리온(Galleon) 함선인데 카락과 갤리온은 외형상으로는 큰 차별점이 없지만 주 용도가 항해 수송용이 아니라 군용으로 설계된 것이 차이점이다. 갤리온은 기본적으로 보통 500톤급 이상이었고 2,000톤이 넘는 마닐라 갤리온급도 건조되었었다. 속도가 빠르고 적재량도 많았기 때문에 대형 상선으로도 많이 쓰였지만 가장 많이 쓰인 용도는 각 국가의 해군에 소속된 대형전함으로 사용되었다.

후에 이 갤리온 함선을 더 개량한 것이 전열함(戰列艦, Ship-of-the-line)이라 불리는 배이다. 전열함은 이름 그대로 더 많은 대포를 장착하기 위해 복층 구조로 층층이 쌓아 올린 모양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보통 대형 전열함은 3층 갑판이 기본이었다. 전열함은 대항시대 이후 17세기 서구 열강의 주력 전함으로 활용되었지만 18세기 이후 19세기 무렵 등장한 철갑선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현재에는 몇 몇 박물관이나 복각 된 배는 유람선과 같은 여행상품 목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https://kayaking.glupub.com/ship-replica-with-the-santa-maria-in-columbus-wake-world/)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할 때 항해에 나선 ‘산타마리아’호 역시 카락을 기초로 제작된 배였다. 콜럼버스의 카락(갤리온)은 가장 범용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많은 승무원과 물자를 수송하는데 넉넉한 공간을 갖고 있었고 항해 성능 또한 뛰어났기 때문에 원양 항해를 하는 무역선으로 활용하기에 좋았다. 큰 크기만큼이나 무기(대포)를 많이 탑재할 수도 있어서 본격전인 전투용 함선(군함)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대항해시대 1편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는 헤비 갤리온(Heavy Galleon)함선인데 대항해시대 게임 1편을 하던 당시에는 갤리온이 아니라 갈레온, 헤비갈레온이라 불렀다. 헤비 갤리온급 함선은 아무 때나 건조할 수 있는 배가 아니었고 조선소의 공업가치를 1,000이상으로 만들어야만 건조가 가능했다. 배를 건조할 때 탑재하는 대포의 종류도 세이커(Saker), 컬베린(Culverin), 캐논(Cannon)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데 사정거리와 파괴력이 포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므로 적절한 비율을 맞추거나 탑재할 대포를 선택하는데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캐논을 많이 장착) 그리고 배 앞머리에 추가로 장착하는 선수상 같은 경우에도 가격이 저렴한 것부터 가장 비싼 넵튠 같은 경우는 금화 32,000개가 소요되는 등 웬만한 배 값보다 비싸기도 했다.

[대항해시대2 - 함선]
유투브(/watch?v=JUBZGcUsLuY)

대항해시대 2편에서는 보다 다양한 함선들이 등장하는데 1편에서도 등장한 캐러벨(Caravel), 브리간틴(Bergantin), 나오(Nao), 카락(Carrack), 갤리온(Galleon) 외에도 지벡이나 피네스, 슬루프, 프리게이트, 바그, 쉽, 정크, 플랜더스 갤리, 베네치안 갤리어스, 철갑선 등 다양한 함선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대항해시대 1은 시드 마이어의 해적!을 참고해서 만든 게임이다 보니 KOEI에서도 그렇게까지 큰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인기에 시리즈 2편에서는 아예 선택 가능한 주인공 캐릭터도 6명으로 늘리고 등장하는 함선들도 다양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함선을 추가했다. 대항해시대 2는 1편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국내에서도 대항해시대를 1편 보다는 2편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대항해시대2는 한글화 되기도 했고 게임잡지의 별책 부록으로도 배급되어 1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다. 시리즈 1편에서 부족했던 부분들을 상당부분 개선하여 현재까지도 대항해시대 하면 시리즈 2편이 가장 팬이 많은 편이다.

[대항해시대2 – 카탈리나 에란초]
유투브(/watch?v=JUBZGcUsLuY)

선택할 수 있는 6명의 캐릭터 중에는 1편의 주인공 레온 페레로의 아들 조안 페레로가 등장하는데 그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카탈리나 에란초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붉은 머리 해적으로 1편의 주인공 페레로 가문에게 오빠와 약혼자가 공격 당해 살해 당한 것으로 오인하고 처음에는 조안 페레로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게임을 진행 하면서 점차 그에 대한 오해를 풀고 마지막에는 조안 페레로와 함께 그들의 숙적 마르티네스 후작의 함대와 함께 싸워 승리한 후 조국 에스파니아(스페인)로 복귀 하지 않고 해적으로 남아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당차고 멋진 아가씨로 등장한다.

대항해시대 2는 캐릭터가 6명이 등장하는 게임으로 지금에서는 별로 신기할 것도 없지만 당시만 해도 하나의 게임을 6명의 캐릭터 중에 누구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게임의 진행이 달라진다는 점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놀라운 시스템이었고 6명 전부를 다 해보면 각각의 캐릭터가 따로 또 같이 얽혀있기도 하고 당시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이유로 거친 바다로 뛰어들게 되었는지 알아가면서 게임의 재미는 배가되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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