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EI, 콜럼버스-마젤란 등이 활약한 해양 역사를 게임 ‘대항해시대’ 담다

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는 말은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대항해시대란 유럽에서 시작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하는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등의 항로를 개척한 항해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대를 일컫는다.

이 시기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사이자 탐험가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페르디난드 마젤란’등이 활약한 시기이기도 하다.

삼국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유명한 KOEI는 삼국지나 신장의 야망과 같은 육지가 아닌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을 새로 출시했다.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은 실제 역사인 대항해시대를 배경으로 대양을 누비며 항해와 무역 그리고 탐험을 하는 내용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의 영문 이름은 ‘Uncharted Waters’였는데 지금은 ‘Uncharted(언차티드)’라고 하면 다른 게임이 더 유명하지만 당시의 Uncharted는 대항해 시대에 붙어 있는 단어였다. Uncharted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와 같은 뜻인데 게임의 이름처럼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바다(Waters)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해도에 표시되지 않은 미지의 탐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차트(Chart)라는 단어는 해도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래 지도는 영어로 맵(Map)이라고 하지만 해도(바다 지도)는 차트(Chart)라고 불린다. 의사들이 환자의 기록을 볼 때도 차트라고 하기도 하고 프리젠테이션에 사용하는 도면이나 표를 부를 때도 차트라고 하는데 바다의 지도를 부를 때도 차트라고 한다. Uncharted는 해도에 표시 되지 않은(탐사되지 않은)지역을 의미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Chart(해도)]
http://www.hellenicaworld.com/Portugal/Literature/CRaymondBeazley/en/images/map13.jpg

영문 이름은 ‘Uncharted Waters’이고 일본과 국내에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고 알려진 이 게임은 아마도 그 당시 유일하게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의 학업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 게임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세계사 시간에 각 국가들의 위치나 도시 이름들과 같은 지리적 정보와 무역상품이라던가 주요 수출품 등에 대한 정보를 게임으로 배운 친구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국가들의 위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솔직히 모로코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조차도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대항해시대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세계사 지도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나눠주는 ‘사회과 부도’가 요긴하게 쓰였다.

당시 학교에서 배포하던 사회과 부도는 교과서의 목록에는 포함되었지만 정작 실질적으로 수업에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가끔씩 지도 정보라던가 그래프 통계 자료들에 대한 참고자료로 활용 될 뿐이었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굳이 이 책이 없어도 학교 생활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을 정도였다. 지금 보면 정말 중요하고 귀한 자료들이 많은데 학교에서는 찬밥 신세였던 비운의 교과서였다.

[대항해시대]유튜브(/watch?v=PojYqQFELdY)

하지만 이 미운 오리새끼 같이 찬밥 취급 받던 사회과 부도가 정말 금쪽 같은 대우를 받으며 귀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대항해시대 게임을 할 때였다. 당시 학생 신분으로 세계사 지도와 주요 항구 도시 정보라던가 국가별 주요 수출품 등에 따른 자료를 구하기에는 쉽지 않았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PC통신 시절 이런 자료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바로 사회과 부도였다.

아마도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에 칠판에 나와 세계 지도를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주문에 당황하지 않고 슥슥 그려 나갈 수 있는 친구들이라면 학창시절에 대항해 시대 게임을 엄청 열심히 한 친구 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학교 교과서에는 단 몇 줄로 지나가 버리는 별 거 아닌 내용이기도 하고 수 많은 암기 단어 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시험 성적의 비중 역시 무시해도 좋을 만큼 비중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항해시대라는 말은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겠지만 이미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하고 있던 친구들에게는 정말 게임과 현실이 연결되는 하나의 구심점이자 놀라운 발견의 이야기 거리가 되기도 했다.

[포루투갈]https://ko.wikipedia.org/wiki/포르투갈

교과서에는 큰 비중이 없지만 인류의 역사에 있어 대항해시대는 자연에 굴복하지 않고 거친 바다를 건너 당당하게 맞서 싸우며 인류의 기상으로 이룩한 위대한 업적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유럽의 작은 변방국가 포르투갈이 먹고 살길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포르투갈은 농지도 척박하고 유럽의 끝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육로를 통한 중개무역과 같은 상업과 해상무역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었지만 이미 지중해나 북해, 발트해 등의 주요 요지는 유럽 본토의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해상무역을 통한 무역을 생각한다면 유럽의 다른 강대국이 차지하고 있던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바다에 접하고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나라의 이름도 라틴어의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서쪽의 항구’라는 의미인데 유럽의 서쪽 끝에 위치한 변방의 작은 소국이 포르투갈이 처한 현실이었다.

다행히 포르투갈은 서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대서양과 바로 아래 아프리카 대륙과 맞닿아 있어 해상진출에 용이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당시의 항해술은 근거리 위주의 항해만 가능했고 항해기술이나 선박의 규모 등에 있어 본격적인 장거리 원양항해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아프리카 대륙은 그 당시 유럽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고 굳이 아프리카를 돌아서 항해 할 일이 별로 없었던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 포르투갈은 어떻게든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해야만 했다.

[범선]https://wallpapersafari.com/old-ship-wallpaper/

대항해시대가 시작될 즈음에 유럽에서 최고의 무역교재는 사치성 기호식품 중에 하나인 향신료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향신료는 육로를 통해 인도에서 아라비아로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이동되는 머나먼 길을 타고 처음 출발지에서 물건을 싣고 마지막 도착지에 닿았을 때에는 엄청나게 부풀려진 가격으로 값비싼 사치성 품목이 되었다.

하지만, 당장 육로로 진출하고자 해도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앞에 스페인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일의 중대함만큼 포르투갈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존망이 신항로 개척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항로 개척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포르투갈은 국가적 차원의 재정 지원이 이루어졌다.

기존에 유럽에서는 바다에 큰 배를 띄워 보내도 거친 파도와 풍랑에 좌초되기도 하고 해적이나 이민족과의 전투 등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자본 회수가 쉽지 않았던 까닭에 주로 육로 개척을 우선시했고 실크로드라는 무역길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에 따라 국가의 부를 축적하는데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유럽 본토에서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로 개척의 권력싸움에 포르투갈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꽉 잡고 있었던 지중해 무역 독점권에서도 밀려난 포르투갈은 결국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아직 신경 쓰지 않았던 아프리카 대륙의 진출을 위해 바로 아래 있었던 모로코 침공을 시작했다.

[엔리케 왕자 - 발견기념비]https://ko.wikipedia.org/wiki/발견기념비

대항해시대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연표를 말할 때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보통은 1415년 포르투갈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에 세우타를 거점으로 함락한 것을 시작으로 한다.

당시 포르투갈의 아비스 왕조의 왕자이자 비제우의 대공이었던 ‘엔히크 왕자(Infante Dom Henrique)’는 특히 해양진출에 대한 업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국내에선 엔리케, 엔리크 왕자로 알려져 있다). 본인이 직접 항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를 개척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많은 역사자료에서 ‘황해 왕자 엔리케’ 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1414년 이제 막 20살을 지나 21살의 엔리케는 부왕 죠앙 1세(후안 1세)와 함께 지브롤터 해협에 있던 모로코의 항구도시 ‘세우타(seuta)’를 공략하는 전쟁에 참가하여 이듬해 1415년 8월 점령에 성공했다. 엔리케 왕자는 포르투갈의 왕 후안1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어지는 항로 개척에 헌신했다.

그 다음 세대에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의 아프리카 희망봉 개척이나 인도항로 개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항해 왕자라는 칭호를 수여 받으며 포르투갈 리스본에 대항해시대를 기념하는 ‘발견기념비’를 세울 때 맨 앞쪽에 엔리케 왕자가 서 있다.

여기에는 브라질을 발견한 탐험가인 ‘헤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나 최초의 세계 일주를 기록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나 최초로 아프리카 희망봉을 항해한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인도양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등 항해의 기원에 있어 역사적으로 위대한 33인의 인물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33인의 위대한 인물들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것이 대항해시대를 열었다고 인정받는 엔리케 왕자이다.

[대항해시대]유튜브(/watch?v=PojYqQFELdY)

1415년 포르투갈의 모로코 세우타 항구도시 점령을 시작으로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서 무려 300여년을 장식한 대항해시대는 유럽의 입장에서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고 새로운 문물을 발견하는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말이지만 반대로 식민지나 탐험대상지의 입장에서는 침략과 약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태평양의 존재 조차도 몰랐던 유럽에서 처음으로 인도와 아메리카 사이에 태평양이라는 존재를 발견한 시기이기도 하며 포르투갈을 선두로 뒤이어 뛰어든 스페인과 함께 영국과 네덜란드도 대선단을 이끌고 식민지 개척에 활발한 활동을 한 시기이기도 하다.

대항해시대는 300여년의 기간 동안 거의 모든 국가와 바다를 발견하고 더 이상 탐험할 대상이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끝나게 되었는데 단지 새로운 발견의 시도가 종료되었을 뿐이고 그 이후에는 이미 발견한 국가나 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내륙의 진출을 통한 약탈과 지배가 시작되었다. 유명한 마야 문명이라던가 잉카 제국, 아즈테크와 같은 것들이 멸망한 이유도 대항해시대를 통해 대양으로 정복과 탐험에 나선 스페인 제국에 의해서였다.

세계사에 있어서는 유럽과 신대륙들의 본격적인 해상 항로를 통한 교역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반대로 신대륙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식민화와 약탈과 지배, 그리고 노예라는 불편한 시각이 함께 존재한다. 단지 게임을 즐길 때는 뭔가 위대하고 멋져 보이는 ‘대항해시대’ 라는 말은 철저하게 지배자, 점령자 입장에서 쓰인 말이다.

이렇게 양극의 불편함이 공존하는 단어였기 때문에 최근에는 교과서에도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중국에서도 일본과는 달리 ‘지리대발견’ 또는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용어를 썼다가 최근에 ‘신항로 발견’이라는 말로 바꾸었다. 원래 대항해시대는 ‘Age of Discovery(발견의 시대)'라는 말이지만 이를 일본에서 번역할 때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고 한 것을 한국이 그대로 갖고 온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최근 교과서들은 대항해시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신항로 개척’과 같은 말로 바꾸는 추세이기도 하다.

대항해시대가 단지 용어상의 문제로 불편함을 느끼는 쪽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한국과는 그렇게 큰 관계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항해시대를 통해 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아시아와 아메리카로 개척하는 과정에서 포르투갈은 일본에 조총과 카스텔라, 담배 등을 전파해주기도 했다.

[행주대첩도]출저 : 문화재청

그리고 일본은 그 조총을 앞세워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켰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전쟁에 가장 큰 희생을 치르게 한 무기가 조총임을 생각해 봤을 때 포르투갈이 직접적인 임진왜란의 원인이 아닐지는 몰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분명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원대한 꿈과 기상만으로 망망대해 바다를 누비는 꿈을 꾸며 게임을 했던 학창시절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역사의 여러 연결점에서 극단적으로 편을 나누어 생각해봤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면 그 중에 우리는 분명 피해자 쪽에 속하는 입장일 것이다.

아마도 일본은 피해자라기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에 가깝기 때문에 같은 ‘대항해시대’를 받아들임에 있어 거부감이 별로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네 역사를 살펴본다면 사실 우리에게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기에 이런 내용을 정확히 알고 게임에 대한 소개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대항해시대라는 말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같은 이름의 게임까지 얘기하다 조총을 앞세운 일본과의 임진왜란까지 너무 멀리 돌아간 느낌이긴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간접적이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사실이고 우리는 그 피해를 입은 피해자이기도 하다. 게임의 재미 여부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역사 속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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