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가 설정한 추억을 토대로 AI가 학습해 나가는 게임

[Will Wright]
https://ejunkieblog.com/2019/03/13/career-highlights-will-wright/

심시티 시리즈와 심즈 시리즈에 이어 스포어까지 연달아 유명 게임을 개발한 뒤로 윌 라이트는 세계 3대 크리에이터로 이름을 올렸다. 보통 게임 업계에서 3대 크레이에터라 하면 윌 라이트와 울티마, 윙커맨더 시리즈를 만든 리처드 게리엇 그리고 문명 시리즈의 시드마이어를 꼽는다. 세계 3대 게임 거장(크리에이터)을 얘기할 때 항상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갓 게임의 대부 피터 몰리뉴까지 해서 4대 크리에이터라 하기도 하고 3대 크리에이터 중에는 저 4명 중에 3명이 들어가 있다.

윌 라이트와 같은 게임 업계 거장들의 공통점은 명성과 기간에 비해 많은 게임을 만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잘해야 1~2개 작품). 본편의 개수는 얼마 안 되지만 연속해서 시리즈로 이어질 정도로 잘 만든 게임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게임 중에서 시리즈로 나오는 게임은 전체 게임의 10%가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90% 이상의 게임은 단편으로 출시했거나 시리즈로 기획했어도 2편 이상 이어진 경우가 거의 없었고 지금 알려진 유명 게임 개발자의 작품들 대부분은 시리즈로 이어지는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세가(SEGA)나 남코(NAMCO), 캡콤(CAPCOM), 코에이(KOEI), 반다이 등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주요 회사에서 만든 게임들은 시리즈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국산 게임들은 시리즈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패키지 게임이 주력이던 1980~1990년대 몇 개의 슈팅 게임이 시리즈로 제작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시리즈 작품이 없었고 온라인 게임이 주력으로 바뀐 시절에도 과금형 게임 몇 개만 시리즈로 이어졌을 뿐이다.

[SPORE]
https://embed.ted.com/talks/lang/ko/will_wright_makes_toys_that_make_worlds

국내의 경우에는 윌 라이트와 같이 수십 년을 두고 하나의 작품을 시리즈로 만들어 볼 수 있는 환경적인 요인이 갖추어 지지 않은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정으로 간단하게 말하기에는 힘든 것이 현재 국내 게임 업계의 현실이기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다행히도 윌 라이트는 한국 게임 업계가 아니라 미국의 게임 업계에 있었고 한국보다는 나은 사정으로 다양한 작품을 시도해 볼 수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성공한 시리즈 작품도 여러 개가 있었다. 하지만 자본에 휘둘리고 자본에 간섭받고 자본에 지배받는 자본주위에 특화된 종속성의 특성으로 천하의 윌 라이트도 그가 몸담고 있던 MAXIS라는 회사나 그 회사를 인수한 모기업 EA의 자본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시티 시리즈와 심즈 시리즈로 이미 입지를 굳건히 하고 스포어 시리즈까지 출시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윌 라이트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결국 자본에 의한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EA를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Stupid Fun Club]
https://ejunkieblog.com/2019/03/13/career-highlights-will-wright/

2009년 4월 EA를 퇴사하여 그가 한 일은 새로운 회사 ‘스투피드 펀 클럽(Stupid Fun Club)’을 창업하는 일이었다. 회사 이름처럼 재미있는 일이라면 거기에 모든 것을 거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었다. 스투피드 펀 클럽은 윌 라이트의 본업이었던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 TV 프로그램과 인터넷, 장난감 등 새로운 IP(지적재산권)등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회사였다.

기존에 대형화된 자본주의 산업체제에 염증을 느꼈던 윌 라이트는 이번에 새롭게 창업한 스투피드 펀 클럽이라는 회사에 대해 몇 가지 기준을 정했다. 첫 때는 회사의 규모를 30명 이하로 유지하되 프로젝트에 최대한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초기 창업멤버로는 기존에 MAXIS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 12명이 참여했다.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를 ‘Entertainment Think Tank’라 부르며 ‘Play Industry(놀이 산업)’을 위한 일을 한다고 했다. 자본의 지나친 간섭과 강요에 의해 자신들의 의지가 휘둘리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창업 자본의 일부는 EA에서 지원받았고 EA는 현재 Stupid Fun Club의 지분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Stupid Fun Club에서 개발한 아이템 및 컨텐츠를 활용한 게임개발 및 출시에 대한 권리도 보유하고 있다(왜 EA를 나간거지?).

[Stupid Fun Club]
유투브(/watch?v=tcnocMeaNqk)

결국 EA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EA에 몸담고 있었을 때와는 달리 훨씬 광범위하고 제한 없는 분야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인 탈출이었다. 별 시답잖은 장난감 같은 것이나 만들고 있지만 본인들 스스로는 그 재미에 푹 빠진듯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쓸모도 없는 장난감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 유형에 국한되어 제한 된 아이디어만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윌 라이트는 장난감 박람회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자신의 뜻이 확고함을 드러냈다. 본인 스스로도 게임이라는 제한 된 미디어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준으로 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의 ‘놀이’라는 산업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한 산업 범위 안에서의 직군을 벗어나 산업간의 창조적인 연결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간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대상을 찾고 있는 중인데 언제나 실습에 앞서 이론을 연구하기를 좋아했던 윌 라이트답게 Stupid Fun Club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는 MIT교수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의 ‘Convergence Culture’라는 책에 푹 빠져있었다. 그리고 SF소설가겸 미래학자인 부루스 스털링의 ‘마네키 네코’도 참고자료로 하고 있다.

[Convergence Culture]
https://www.amazon.com/Henry-Jenkins/e/B000AP71SE/ref=dp_byline_cont_book_1

헨리 젠킨스의 책 ‘Convergence Culture’는 미디어 컨버전스와 참여문화, 집단 지성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언뜻 보기에는 어려운 주제 같지만 미디어 제작자들의 권력과 소비자들의 권력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윌 라이트가 Stupid Fun Club을 창업할 때 게임 산업이라는 하나의 미디어에 속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재미를 찾아내 미디어간 경계를 허물고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주제를 찾고 있는 과정에서 이 책을 봤을 때 쾌재를 불렀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현재의 미디어 제작자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예측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책으로 뉴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그 중에서도 미디어 제작자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알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헨리 젠킨스는 MIT 인문학부 교수이자 미디어 비교연구 프로그램의 창시자로 대중문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담아 10여권의 책을 저술한 저명한 학자이다. 특히 ‘팬, 블로거, 그리고 게이머’ 와 ‘바비 인형에서 죽음의 전투까지: 젠더와 컴퓨터 게임’ 이라는 책은 윌 라이트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윌 라이트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세상이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낯설고 흥미진진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SYNTERTAINMENT]
https://pitchbook.com/profiles/company/59105-44

윌 라이트는 Stupid Fun Club 외에도 ‘Synentertainment(신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도 만들었는데 ‘Andreessen Horowitz’와 전 일렉트로닉 아트의 최고 경영자 ‘John Riccitiello’를 포함하여 투자자로부터 500만 달러를 모아 새로운 스타트 업인 Syntertainment를 공동 설립했다. 이 회사에는 그의 아내 ‘Anya Wright’도 직원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저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과 벤 호로위츠 (Ben Horowitz)가 운영하고 있는 벤처 펀드를 포함한 투자자들이 투자를 했다. 초기 창업자금 500만 달러를 투자 받는데 마크 안드레센과 벤 호로위츠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외에도 다른 업체에서의 투자도 이끌어 냈다.

[Co-Founder & CEO – Will Wright]
https://pitchbook.com/profiles/company/59105-44

회사의 내부정보 자료를 보면 투자자에 ‘Andreessen Horowitz’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Andreessen Horowitz는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과 벤 호로위츠 (Ben Horowitz)가 공동 창업한 미국의 IT 벤처 투자 전문 회사이다. Andreessen Horowitz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그루폰, 스카이프, 징가, 오큘러스, 깃허브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회사들에 벤처 투자를 통해 큰 수익을 거두었는데 윌 라이트의 새로운 회사에도 투자를 한 것이다.

[Andreessen Horowitz]
https://news.bitcoin.com/horowitz-capital-big-things-bitcoin/

EA를 퇴사한 이후 새로운 벤처를 설립하고 다시 또 다른 회사를 세우면서 유명 벤처 투자 기업으로부터 투자도 유치하는 등 윌 라이트의 명성에 맞는 횡보를 이어갔지만 사실 그렇다 할 차기 작품이 나오지 않아 윌 라이트를 아는 사람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지켜봤었다.

그러던 중 2015년 5월에 드디어 그의 새로운 작품이 출시되었는데, 사진 편집 작업을 통해 링크를 엮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THRED’라는 앱이었다. 그의 전문 분야인 게임은 아니었지만 새로 회사를 창업하면서부터 미디어간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는 그의 말처럼 게임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의 앱을 출시한 것이다. 자신의 살아왔던 인생의 이야기들을 콘첸츠 제작에 활용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착안하여 새로운 앱을 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실험적인 작품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게임 개발자가 사라지는가 싶었지만 2018년 드디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Proxi(프록시)’라는 게임을 들고 나왔다.

[Proxi]
https://www.proxiai.com/

그의 새로운 게임 Proxi는 거의 10년만에 처음 나오는 윌 라이트의 게임이다. 그래서인지 게임 타이틀 소개화면에도 ‘A new game from Will Wright’라고 써 있다. Proxi라는 게임은 윌 라이트와 ‘카멘 샌디에고는 어디에(Where in the World is Carmen Sandiego)’시리즈로 유명한 ‘Lauren Elliott(로렌 엘리엇)’이 함께 참여한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로렌 엘리엇은 게임 산업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에듀테인먼트 게임(교육용 게임) 분야에서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의 공동 디자이너로 윌 라이트와는 1984년 윌 라이트의 첫 게임 ‘반 겔링만의 습격’ 게임 때 만나서 알게 된 사이이다.

당시 브러더번드에 재직중이던 로렌 엘리엇은 윌 라이트가 들고 온 첫 작품 ‘반 겔링만의 습격’ 게임의 프로젝트 관리자였다. 처음에는 브러더번드의 관리자와 외주 게임 개발자로 만난 사이로 그 이후에도 윌 라이트와 로렌 엘리엇은 윌 라이트가 MAXIS를 창업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왔다. 처음 만난 때로부터 무려 37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교류한 사이가 되어 다시 한 번 2018년 새롭게 Proxi 라는 게임을 개발하는 중이다.

[Proxi]
https://www.proxiai.com/

이들의 게임이 다시 한 번 얼마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바꿔놓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심시티로 대성공을 거두고 심즈 시리즈에 이어 스포어 시리즈까지 연달아 연타석 홈런을 날린 뒤로 EA를 퇴사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잊혀져 가나 했는데 다시 게임업계로 돌아와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윌 라이트를 아는 분들이라면 그의 게임이 또 어떤 철학을 담아낼지 벌써부터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다.

Proxi 게임은 윌 라이트의 전문 분야인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이다. 심시티가 도시를 주제로 한 시뮬레이션 게임이었고 심즈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시뮬레이션한 게임이었다면 스포어는 세포(생명의 근원)에서 우주시대까지의 진화와 문명을 다룬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는데, Proxi의 주제는 ‘추억’이라고 한다.

플레이어가 설정한 추억과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AI(인공지능)가 학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비어있던 기억 공간에 자신만의 추억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콘셉트의 게임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2019년 가을 공개 예정이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은 나와 있지 않다. 부디 윌 라이트의 새로운 게임으로 다시 한 번 그의 그 동안 잊혀졌던 그의 공백이 채워지길 바라며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기대가 된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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