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학생들을 공부하게 만든 브러더번드의 교육용 게임

[카멘 샌디에고]
유투브(/watch?v=dL-13NZAXuE)

브러더번드의 게임 중에는 전편에 소개했던 ‘윙스 오브 퓨리’와 같이 국가간 첨예한 정치논리에 민감한 소재를 다룬 게임들도 있지만, 국제정세와 관련된 소재를 다룬 게임도 있다. 바로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다. 1985년 ‘Where in the World is Carmen Sandiego?’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이 게임은 보통 ‘카멘 샌디에고’라고 불렸다.

이 게임은 게임 속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카멘 샌디에고’ 도둑을 검거하는 게임이다. 형사출신의 탐정 역할이 게이머가 해야 할 일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게임이 사실은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전부터 카멘 샌디에고는 출시 할 때 컴퓨터 관련 잡지에 게임이 아닌 ‘Education(교육)’ 항목에 속해 있었다. 누가 봐도 게임이지만 브러더번드는 이것을 게임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어 볼 수 있는 ‘Gamification(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장르의 일환으로 생각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보통 일상생활에서 배우고 익혀두면 언젠가는 쓸모 있을지 모르나, 배우는 과정 자체가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하기에 인간 군상들이 좋아하는 게임적인 요소를 결합한 무언가를 지칭하는데 쓰이곤 하는데, 이미 35년전에 이런 생각을 해냈던 것이다.

[카멘 샌디에고]
유투브(/watch?v=dL-13NZAXuE)

1985년에 이미 게이미피케이션이라니 뭔가 선견지명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게임을 만든 목적 자체가 미국 학생들(한국으로 치면 중학생 정도)의 지리 교육을 위해 개발을 위탁받아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지리 교육은 당연히 따분하고 단순한 암기과목이라 여겨졌던 것에 탈피하고자 게임적인 요소를 덧입힌 것이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게임을 해보고 재미에 빠져든 것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어른들도 세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지능적인 추격전에 빠져들어버렸다.

지금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각종 퀴즈쇼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인간들의 지적 호기심과 자신의 지적 능력을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아주 잘 부합된 프로그램들처럼 카멘 샌디에고 게임 역시 인문/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지식이 요구되었다.

지금이야 궁금하거나 잘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바로 컴퓨터나 핸드폰을 이용해 인터넷을 통한 간단한 정보수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처음 출시된 1980년대만 해도 인터넷은커녕 PC통신 모뎀조차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도서관이나 현인을 찾아가야만 했고 실제로도 이 게임을 위해 도서관에서 해당 도서를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미국 이야기). 예를 들면 인구 85만명 밖에 안 되는 ‘코모로(Comoros)’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는 고사하고 그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분이 많을 것이다. ‘모로니(Moroni)’는 코모로의 수도라는 설명과 한 때 프랑스에 점령되었던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설명만 가지고서는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코모로는 1886년 프랑스가 점령하여 해외 식민지로 삼아 아직도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으며 1975년 독립하여 현재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작은 섬들의 연합 국가다.

[카멘 샌디에고]
유투브(/watch?v=dL-13NZAXuE)

범인을 잡으러 가는 길에 코모로에 대한 정보를 얻었지만 도대체 여기가 무슨 나라이고 이전 단서와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추리를 하려면 코모로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과 부도 같은 세계 지리에 관련 된 책과 백과사전과 같은 참고도서가 필요했다. 이렇게 게임을 통해 인문/사회 지식을 쌓아갈 수 있도록 구성된 게임이 ‘카멘 샌디에고는 어디에’ 시리즈의 핵심이었다.

[코모로]
구글맵(https://www.google.com/maps/place/코모로)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이 대충 어디쯤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발표가 있을 만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 밖의 일은 전혀 무관심하거나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정도는 알아도 그 옆에 붙어있는 ‘마다가스카르’라는 섬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나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져서 최근에는 마다카스카르 라는 지명이 낯설지 않지만,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분도 많았다. 지금도 마다가스카르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물며 그 사이에 껴 있는 작은 점 하나만한 코모로를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코모로의 수도가 모로니라는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카멘 샌디에고]
유투브(/watch?v=dL-13NZAXuE)

카멘 샌디에고는 학창시절 아무리 졸음을 쫓아가며 외우려고 해도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역사, 지리, 사회, 인문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들을 요구하는 게임이었다. 이 때문에 게임을 하기 위해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이 필요했고 이 자체가 하나의 학습효과로 이어졌다. 기존에는 학교에서 내준 방과 후 숙제를 할 때나 필요했던 두껍고 재미없는 백과사전이 게임을 하기 위한 자료 조사용으로 그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된 셈이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어우러져 하나의 게임 안에 녹아 든 사례 중 가장 우수한 사례로 꼽히고 있는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는 계속해서 그 시리즈가 Education(교육)이라는 카테고리로 출시되고 있다. 지금도 미국의 많은 초등, 중등학교에서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활용되고 있다. 카멘 샌디에고는 어릴 적 학창시절에 한 번쯤 해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서 게임 이외에도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더욱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카멘 샌디에고]
유투브(/watch?v=dL-13NZAXuE)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는 세계 각지를 돌며 정보를 수집한 후 범인을 검거해야 하는데 그 동안 수집 한 정보를 정리하여 컴퓨터를 통해 신원조회를 하면 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다. 이 때 정확한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일부 정보만 입력하면 단순조회 밖에 되지 않고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야 해당 용의자를 검거할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된다.

돌아다니기만 하면 정보가 쌓이고 그대로 신원조회를 해서 범인을 검거하는 비교적 쉬운 루틴인 것 같지만, 막상 게임을 해보면 생각 외로 시간이 촉박하다. 세계 각지를 이동할 때마다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무작정 막무가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정해진 기한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한다. 이러한 시간 소모 시스템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렇게나 이것 저것 막 눌러보는 식으로는 게임 진행이 어렵고 자연스럽게 깊은 사고가 필요함을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게임의 기본 적인 틀은 최소한의 정보로 다음 단계를 진행해 빠른 시간 안에 범인을 잡는 것을 통해 진급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도 오를 수 있는 보상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한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 재미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멘 샌디에고]
유투브(/watch?v=dL-13NZAXuE)

해당 목적지에 도착해도 아무데나 막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는 건 자유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이 이동 할 때마다 시간이 소요된다. 모든 곳을 다 돌아보고 모든 정보를 다 수집하면 검거하지 못할 범인이 없겠지만 목적지에 도달하여 이동할 때에는 신중히 결정해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정해진 기간을 넘기지 않아야 범인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쓸데없는 말만 하는 사람도 있으니 어디에 가서 정보를 수집할지 지금까지의 단서를 조합하여 신중히 결정해야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목격자나 정보원들의 말을 잘 들으면 그 안에 해답이 있다. 예를 들면 최근 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도둑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크로네(Krone)’ 환전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데 그럼 다음 목적지가 정해지는 것이다. ‘크로네’라는 화폐단위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에서 사용하는 화폐 단위이다.

크로네 정보를 입수한 후에 이동할 수 있는 목적지는 몬트리올, 런던, 오슬로가 나오는데 런던은 당연히 영국의 수도이고 영국은 화폐단위로 파운드를 쓴다. 몬트리올은 캐나다의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인데 캐나다는 캐나다 달러(Canadian Dollar)를 쓴다(참고로 캐나다 수도는 ‘오타와’다). 마지막 남은 오슬로가 노르웨이의 수도이고 노르웨이에서 쓰는 화폐단위가 바로 ‘크로네’이므로 다음 이동 경로 목적지는 오슬로를 선택해야 한다. 괜히 런던에 갔다가는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범인이 도주할 기회만 주게 되므로,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정확한 목적지에 가야 다음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것이다(지금에야 유럽이 통합되어 유로 화폐단위를 쓰지만).

이렇게 단서 하나에도 각 나라의 위치나 수도 이름, 화폐 단위 등 다양하고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백과사전이 필수였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PC통신도 안 되던 시절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도서관 밖에 없었고, 도서관에 비치된 수 많은 참고도서를 찾아보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는 플레이어 스스로 알아서 정보를 습득하고 지식을 습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게임의 본 목적이었고 그 목적은 충분히 초과 달성한 셈이다.

[카멘 샌디에고]
https://www.netflix.com/kr/title/80167821

최근 2019년부터 카멘 샌디에고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카멘 샌디에고’의 이름을 ‘카르멘 산디에고’라는 이름으로 바꾸어놓았다. 내용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대도녀를 꿈꾸는 주인공 카르멘 산디에고의 활약상을 그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시작하여 유명해진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는 브러더번드의 창업자 형제인 Doug Carlston과 Gray Carlston의 여동생인 Cathy Carlston의 작품이었다. 패션 마케팅을 전공한 Cathy는 브러더번드에 합류하여 교육, 영업, 마케팅 부서를 전담했는데 그녀의 활약으로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를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선정하여 교육기관에 납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Cathy는 기존에 게임회사로만 각인되어 있었던 브러더번드라는 회사의 이미지를 교육 활동에도 중점을 두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개발 및 유통, 판매회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를 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소개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지리와 역사,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지식을 배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그녀의 설득에 감화된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카멘 샌디에고를 ‘교육용’이라는 전제하에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됐고 카멘 샌디에고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Carmen Sandiego Day를 지정해서 기념할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구글 어스 - 카멘 샌디에고]

구글 어스에도 숨겨진 기능처럼 구글 어스를 활용하여 카멘 샌디에고 게임을 할 수 있다. 오히려 이것이 실사와 어울려 보다 더 실감나는 몰입감을 주기도 하는데 의외로 쉽지 않다. 지난 시절 추억을 더듬어 가며 카멘 샌디에고 아니 카르멘 산디에고를 찾아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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