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격투게임의 원조, ‘페르시아의 왕자’ 시초 되다

[페르시아의 왕자]
유투브 (/watch?v=Xv20j8ChtRY)

최근의 브러더번드는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는 전문 퍼블리셔 업무와 함께 교육용, 의료용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 공급하는 업체로 알려져 있지만 1980년대~1990년대만 해도 유명한 게임사였다. 브러더번드의 가장 대표적인 게임을 꼽으라면 많은 분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이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출시 이후 엄청난 인기를 얻고 게임 출시 이후 각종 만화나 드라마의 소재로도 등장했으며,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게임은 어린 시절 즐겼던 고전 게임 중에 베스트 10을 꼽으라고 하면 페르시아의 왕자를 꼽는 분들이 많을 정도로 고전 게임 중에서도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기 게임 중에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유명한 게임을 개발했던 개발자 조던 메크너는 사실 게임 개발자가 아니었으며, 게임도 만들 생각이 없었다라는 것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다. 그는 게임 개발자보다는 영화 각본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결국 영화를 만들어 꿈을 이루었다).

페르시아 왕자 게임의 타이틀 화면에 브러더번드의 찬란했던 과거의 향수가 아련하다. 게임 타이틀 화면에 브러더번드 회사로고가 나오긴 하지만 페르시아의 왕자는 브로더번드가 개발한 것이 아니라 유통만 담당했던 게임이다.

실제 게임을 개발했던 개발자는 조던 메크너라는 젊은 청년이었다. 조던 메크너는 20세에 이미 예일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수재였다(입학이 아니라 졸업). 조던 메크너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만들기 이전에 ‘가라데카’라는 게임을 먼저 만들었는데, 이 게임이 브러더번드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회사를 설립하고 얼마 안 된 브러더번드는 가족 단위의 소규모 회사였고, 회사의 인력 구성원 자체도 여러 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개발할 여력이 없었던 터라 대표 히트작이 될 만한 게임을 외부에서 섭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에 조던 메크너가 만든 가라데카라는 게임을 보고 바로 계약을 체결했을 만큼 가라데카는 당시 큰 화제가 됐었던 게임이다.

[Karateka 1984 - Apple II]
유투브 (/watch?v=rxdDd-z4374)

가라데카는 1984년 출시되어 대전 격투 게임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플레이어끼리 대전을 하는 모드는 구현하지 못했지만 공격 판정 시스템 등을 제시하며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와 다양한 대전액션 게임이 나오는데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가라데카 게임이 당시 화제가 됐었던 이유는 캐릭터의 부드러운 애니메이션 때문이었다. 당시 게임들은 움직이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수의 컷을 사용했지만 가라데카는 마치 실제 사람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액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을 자랑하는 게임이 되었던 이유에는 개발자 조던 메크너라는 인물과 관련이 깊다.

가라데카라는 게임을 통해 게임업계에 데뷔한 조던 메크너는 1964년 뉴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린이답게 어린 시절부터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본인 스스로도 밝혔을 만큼 그림에는 재능이 없어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재능을 일찌감치 파악하여 진로를 애니메이션 작가에서 영화 쪽으로 변경하였다.

[어린 시절의 조던 메크너]
https://www.unocero.com/software/30-anos-principe-de-persia/

조던 메크너는 장차 헐리우드에 진출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영화의 각본을 쓰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일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한 것은 선물로 받은 Apple II 컴퓨터였다. Apple II 에서 처음으로 게임을 해본 조던 메크너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작가에서 영화 각본 작가로 장래희망을 변경하면서 시나리오 습작이나 집필 쪽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조던 메크너에는 게임 쪽하고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지만 게임을 해보면서 애니메이션과 영화와 게임의 공통점을 발견해낸 것이다. 바로 영상이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와 게임의 공통점은 그래픽 영상으로 결과물을 표시한다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었고 게임의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에 가슴 속에도 무언가 알 수 없는 꿈틀거림이 일었다.

조던 메크너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해 내는 수단으로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을 생각했다가 그림의 재능이 없음을 통탄하고 다시 영화 각본을 쓰는 작가로 진로를 변경하였는데 게임을 해보고 나니 어쩌면 자신이 그리던 이야기를 게임으로 표현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난 뒤 처음으로 실험을 해 본 것이 그의 첫 작품이자 게임사에도 큰 족적을 남긴 ‘가라데카’라는 게임이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꿈꾸던 조던 메크너에게 게임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와 같은 캐릭터의 움직임이었고 그것을 구현해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래서 애니메이션과 영화에 관련 된 영상 제작 기법 중 ‘로코스코핑’이라 불리는 카메라 촬영 원본 영상을 캡쳐하여 채색 과정을 거쳐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기법을 활용하여 가라데카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했다. 그래서 가라데카는 역사상 최초로 모션 캡쳐 기술을 사용한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

[쿵푸]
유투브(/watch?v=8XqsIhnJiRU)

조던 메크너가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1984년에 미국에서는 동양적인 소재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미국 전 국민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스타워즈에서도 동양적인 소재가 차용되어 사부와 제자라는 개념과 함께 스타워즈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요 개념으로 ‘포스(Force)’라는 것이 등장한다. 1980년대에는 스타워즈의 ‘포스(Force)’를 ‘기(氣)’로 번역하여 “포스가 함께 하기를(May the Force be with you)”이라는 대사가 “기가 함께 하기를”이라고 나오기도 했다. 포스라는 것이 원래 동양의 기(氣)라는 개념을 도입 한 것이긴 해도 포스와 기(氣)가 일대일의 상관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점은 지극히 서양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동양의 그 무언가는 굉장히 신비롭고 오묘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1972년부터 1975년까지 3개 시즌, 총 63화에 ‘Kung-fu’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동양의 무술에 대해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데이비드 캐러딘은 이 드라마를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쿵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이후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는 인기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무술이나 중국의 소림사 관련 또는 요리 프로그램까지 관련 TV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Carl Douglas’의 ‘Kung Fu Fighting’ 노래는 1974년 발매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는 ‘Kung-fu’ 드라마의 주제곡으로도 쓰이면서 유명해졌다. 2008년에는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에서도 OST로 수록되어 다시 한 번 인기를 끌며 그 이후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었다.

[데이비드 캐러딘]
유투브(/watch?v=8XqsIhnJiRU)

쿵푸 드라마는 이전 주인공이었던 데이비드 캐러딘을 다시 주인공으로 하여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총 88편의 쿵푸 후속편으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방영 되어 쿵푸의 주인공이었던 데이비드 캐러딘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이렇게 동양의 무술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절에 조던 메크너 역시 그의 동생과 함께 동네에 있던 가라데 도장에 등록하게 된 것이 가라데카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정작 자신은 일주일 만에 도장을 그만두었지만 당시 가라데와 쿵푸와 같은 동양 무술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게임으로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많았다. 그리고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영화에 사용되는 영상기법도 실험해 볼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조던 메크너는 당시 관장에게 부탁해 동작을 사진으로 찍어 일일이 손으로 옮겨 담는 작업을 통해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해냈다. 이런 노력 끝에 최초의 모션 캡쳐가 사용된 게임이 개발되었고 출시하자 마자 50만장 이라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화제가 된 인기 게임의 개발자였던 조던 메크너는 더 이상 게임을 개발할 의사가 없었다. 게임은 잠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영상 부분의 일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해 봤을 뿐이었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영화 시나리오와 대본을 통해 작가로 등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브러더번드의 창업자 Doug Carlston이 누구였던가? 안 하겠다는 동생을 사업에 동참시키기 위해 3000마일도 날아가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포기란 없었다. 이미 Doug 자신은 잘 나가는 법률사무소와 변호사도 그만두고 게임 개발에 매진하기 위해 회사도 만들었는데, 조던 메크너가 만들기 싫다고 해서 그만 둘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라데카의 수익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기대이상으로 흥행에 성공하자 그의 마음은 더욱 급해져 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인기를 타고 상승세에 있을 때 후속작을 통해 확실하게 자리매김하여 안정된 수익을 바라는 것은 사업가에 기본 요소였고 그런 관점에서 Doug는 조던 메크너가 가라데카의 후속작을 개발해 주기를 원했다.

[동생이 뛰어다니던 모습]
유투브(/watch?v=ZdFOpftbnDE&list=PL3606251EA4F8DFCC&index=1)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설득(협박)당한 조던 메크너는 딱 하나만 더 만들어 본다는 조건으로 브러더번드에 합류하여 1986년 드디어 브러더번드의 개발실에서 게임 개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딱 하나만 더 만들어보고 그만두겠다던 게임이 가라데카의 후속작으로 만든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이다.

[페르시아의 왕자]
https://www.broderbund.com/

이미 새로운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던 조던 메크너는 금방 완성될 줄 알았던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의 개발이 무려 3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게임 개발 자체에만 3년이 걸린 것이 아니라, 게임 개발 중간에 다른 일이 생기면서 지연된 것이었다. 그렇게 3년 뒤인 1989년 DOS용 게임으로 출시된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은 출시 이후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는데 가라데카 보다 더 뛰어난 부드러운 캐릭터 동작이 화제가 됐었다.

이 게임을 디즈니에서 영화로 만든 것이 2010년 개봉한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다. 게임의 개발자였던 조던 메크너가 영화의 각본을 맡아 그는 게임과 영화를 동시에 제작한 개발자로도 이름을 남겼다.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약 1,700만장 이상이 팔린 베스트 게임 중에 하나가 되면서 조던 메크너는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만으로 게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페르시아의 왕자]
유투브 (/watch?v=Xv20j8ChtRY)

(다음 편에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비화가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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